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책에 대한 궁금증 보다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본인들은 극구부인을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얼굴이 명함인 사람들 아니던가? 그런 잘난 사람의 이야기가 예전엔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의 글일테니 나에겐 거부감이 들밖에.(나는 어느 새, 메이저를 꿈꾸는 삶에서 마이너의 삶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삶으로 전락(?)했다.ㅜ) 그래도 이 책을 쉽게 내칠 수 없었던 건 이 책이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출판사를 좋아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인지도가 있어 기회가 주는 호사를 거부한다는 건 여러모로 예의가 아닐 것이다.(책에게나, 출판사에게나, 이 책을 건내 준 모처에게나,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나 두루두루) 

읽고나니 과연 지면의 제약이 아쉽긴 했지만,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은 과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누군들 돈 많이 벌고, 입신양명하여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을까? 우리는 태어 나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기를 교육 받고 살지 않는가? 우린 그런 삶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어느 새 그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것 같아도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더라. 입신양명과 상관없이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들이다.  

공선옥. 소설을 좋아 하지만 늘 나의 선택에서 제외되는 작가다(하긴 그런 작가가 한 둘인가? 그래도 작년 초, 나는 겨우 그녀의 책을 한 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행복한 만찬>이다). 그녀의 삶을 읽고나니 그녀의 글이 얼마나 소박하고 진솔하길 바라왔는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대 작가들은 참 고급이다. 평균학력은 모르긴 몰라도 대졸이요, 재미있다기 보다는 똑똑한 사람도 많다. ......나는 충무로, 종로, 명동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쓰지 못한다. ... 그곳은 내게 사랑도 상처도 주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가 살았고 내가 경험했고 내게 사랑을, 상처를 주었던 곳,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만 쓸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삶의 시골, 삶의 변방, 삶의 오지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한데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나는 마흔 일곱해가 되도록 생의 한데에서 떨고 있다. 내가 안온해 지는 길은, 기술을 배우는 것 뿐이다. 이런 '펜대 잡는 기술'이 아닌 다른 기술 말이다.(19~20)      
   

하긴, 작가가 없는 말을 어떻게 지어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럴 작가도 없진 않지만 또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녀의 자기 글을 대하는 방식에 무척 신뢰가 느껴졌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또 어떤가? 이 사람의 글을 읽으면 약간 섬짓해 지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말하랬더니 글을 4분의 3(또는 3분의 2)을 영화 감독 임권택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리고 무척 냉소적이다. 자신의 세계가 확고하게 서 있어 그 삶을 흔들어 놓을만한 어떤 사람도 사건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임권택에게 깜빡 넘어 가다니!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삶은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임권택을 빗대어서 아주 살짝 '나는 이런 사람이오.' 퉁치고 있다. 굉장한 반항아 같다. 나름 매력있다. 

또한 매일 기생충에게 고마워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연구하느라) 우리의 마태우스 서민 교수. 늘 사람들에게 재미와 유익을 전달하고자 설레발(!)계의 절대강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나 역시 오래 전부터 '왜 하필 기생충을...?'하는 의문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는 것도 예의는 아닌 성 싶어 참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렸다.  

지금은 기생충을 연구하겠다는 후학들이 늘어나서 좋긴 하지만, 그 젊은이들이 너무 일찍부터 자신의 길을 정해 버리는 것 같아 흔쾌히 기뻐해 줄 수만은 없다는 그의 심정이 꼭 부모 같다. 어느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 중 자신의 일이 너무 힘들어 내 자식은 나와 같은 길을 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다잖는가? 그처럼 서민 교수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10년 후에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 결정하라고 조언한다니 그의 솔직함에 마음 한켠이 찡해 온다. 만약 의학계에서 예산 삭감들 당한다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외로운 분야 중 하나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매일 화장실 가는 한 사람으로써 바랄 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기생충 한 마리가 국가도 구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갈팡질팡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기생충 포에버!다. 

개인적으로 가장 부럽기는 김창남 교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일로 확대시켜서 사는 사람이다. 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은 일 따로 취미 따로가 대부분이 아니겠는가? 물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김창남 교수 같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취미가 일이라고 생각하면 머리에서 쥐부터 나고, 취미가 취미면 잠시 좋아하다가 마는 그래서 시작해 볼 엄두도 못내는 맹추로선 그저 부러울 뿐이다. 또 그렇기로서는 대중문화 평론가 이영미씨도 비슷한 류에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얼리어댑터인 아버지 덕분에 텔레비전을 일찍 접했고(그녀는 60년대 초에 태어났고, 우리나라 방송 개국도 비슷하게 때를 같이 한다), 그 덕분에 그녀는 '텔레비전 키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뿐 아니라 요즘 소위 '미드'라고 불리우는 <도망자>나 <전투>같은 외회시리즈에 심취할 수 있었고,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더빙을 누가 맡았는지도 정확히 기억해 낸다. 이름만 들어도 그리운 프라이 보이 곽규석의 <쇼쇼쇼>나, 라디오 드라마인 <아차부인, 재치부인>은 나도 기억하는 프로다(특히 이 두 프로가 종영을 맞을 줄은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못지 않은 얼리어댑터인데 난 왜 이영미씨 같이 못 됐을까 후회가 든다. 하긴, 그녀는 학업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어 자신의 관심을 학업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난 학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덕에 결국 요모양 요꼴이 됐다. 정말 공부해서 남 주는 거 아닌데. 일찌감치 길을 찾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 그녀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역사를 정리 연구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밖에도, 미술치료사인 박승숙 편을 읽으면 난 그림에는 젬병이긴 하지만 다시 한번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란 생각이 들고, 요즘 우연찮게 <언니네 방>(갤리온)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 페미니스트인 김신명숙 편이 마음을 사로 잡았다. 확실히 여성의 문제는 남성의 문제고, 남성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것이 결국 온전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사람이 하는 일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져 본다.(솔직히 내가 페미니즘에 이토록 가슴 뛰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항상 대학교육을 모색하는 양희규 씨도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지금의 교육으론 정말 우리 아이들은 올바로 키워낼 수 없다.  

책이 워낙에 많은 사람(17인이면 너무 많다. 7인만 해도 많은 것을)을 다루고 있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애초에 내가 가진 선입견과 달리 하나같이 박수쳐 주고 싶고, 응원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알고보면 외로운 문화전사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하는 일에 다 관여는 할 수 없지만 응원하는데 돈 드는 거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부러웠다. 자신의 삶을 무엇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재간이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 삶이 그들에게로 왔는지, 아니면 그들이 그 삶에로 투신을 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드는 생각은 나는 내 삶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럽기도 하고, 자책도 하게 된다. 꼭 이렇게 어떤 한 분야에 족적을 남기는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 지금이라도 그 일을 말 없이 부지런히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적어도 누가 알아주던 못 알아주던, 읽어 주던 안 읽어주던 자기만의 자서전을 써야하지 않겠는가? 그 자서전의 이름을 꼭 '그 삶이 내게 왔다'고 하진 않더라도 그 비스무레하게라도 이름 지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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