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모욕에 대처하는 법
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엊그제 이 책을 읽고 거기 나온 '성적 모욕에 대처하는 법' 이란 글을 올렸더니 지금까지 추천을 무려 17개나 받았다. 글이 워낙 재미있어서 함께 나누자고 올렸을 뿐인데 추천을 그렇게나 많이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추천을 많이 받은 이유는 뭘까? 나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재미있어서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여성들은 여전히 성적 모욕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 책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것 

뭐 이렇게 성을 건강하게 드러내놓고 나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웃을만한 부분도 있지만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많다. 내가 이 책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이런 게 성폭력이 아니라고?>(70p~76p)를 쓴 '안티 오아시스'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의 내용이다. 간단하게 얘기를 하자면, 그녀는 먼저 자신은 '오아시스'란 영화를 지독히 싫어한다고 했다. 왜 그럴까?  

그녀는 한마디로 자신의 집에 무단침입한 강간범에게 당했다. 강간 당하지 않으려고 소리치고 반항해 봤자 자신의 목숨만 위태로워질테니 그 목숨 지켜내보겠다고 생면부지의 놈이 시키는대로 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상당히 침착해서 비교적 상처도 안 받았을 것 같지? 사실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녀는 비교적 담담하고 상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이 위기의 순간을 대처하느라 그녀가 받았을 고통과 상처가 어땠을지 가히 잠작이 간다.(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그녀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는 그 처절한 상황에서도 범인을 따돌리고 간신히 경찰서로가 범인의 만행을 고발하고 잡아줄 것을 말해 봤지만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경찰서로 가기까지는 그전에 눈을 다쳐 범인을 졸라 안과를 갔는데 진술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어떻게 범인과 안과까지 갈 수 있었냐며 의아해 하더란다. 거기엔 경찰의 무슨 생각이 덧발라져 있을까? 어쨌든 둘이 좋아서 섹스한 거 아니냐라는 것도 포함이 되었겠지. 그녀는 그 일이 있기 전, 강간범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에 관한 글을 읽어둔 터라 그렇게 해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외국 사람이 쓴 외국의 경우라 우리나라엔 아직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을까? 그녀에겐 덧이었을 뿐이다. 정작 그 간강범에게서 여자를 지켜줘야 할 경찰이 미온적으로 나왔고 범인에게 내려진 죄명은 '무단침입강간미수'가 다였다. 이것은 정말 내가 봐도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가 '오아시스'란 영화를 혐오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영화도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소통부재를 다루고 있는데 그녀는 진짜 강간이란 걸 당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어처구니 없게도 나중에 그 강간범에게서 주인공이 애정을갈구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감독은 "사랑, 해보셨나요?"라며 간강범의 간강을 미화시키고 나아가선 관객을 가르칠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영화를 지독히도 미워한다고 했다.(나도 그 영화를 보긴 했지만 정말 그 영화는 문제가 많은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백 번 아니 천만 번 공감한다.  

원래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가 다르긴 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저술가들이 이것을 좁혀 보고자 많은 책을 써왔다.(이를테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류의) 그런데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언어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 경찰서에 여자 경찰만 있었어도 상황은 그나마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정말 여자는 남자 보다 언어 능력이 발달 됐다고는 하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남자의 논리와 힘이 지배를 하고 있음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              

또 하나의 이야기는 <섹스할 때, 끝까지 넌 이기적이었지>를 쓴 글이다. 나도 들어보기는 한 것 같다. 섹스는 가급적 이기적으로 하라고. 그것도 여자에게 이르는 말이다. 얼핏들으면 여자를 위한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보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섹스에 대해 소극적일 수 밖에 없음으로 여자를 자극하여 남자를 유리하게 만드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글의 내용은 사랑해서 동거를 했지만 남자의 배려없음에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는 한 여자의 씁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헤어졌으면 끝까지 쿨하면 얼마나 좋은가? 이 남자 녀석 헤어지고 두 달쯤 지나서 우연히 지나는 길에 만났는데, 대뜸 지금은 안 피곤하냐고 묻더란다. "너 그때 '피곤해서' 섹스하기 싫다고 했잖아. 요즘에는 안 그렇냐는 거지." 모르긴 해도 그 녀석도 여자와 헤어진 것이 꽤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그런 식으로 긁고 있으니.  사실은 남자의 지독한 이기심 때문에 헤어진 건데. 그녀가 섹스할 때마다 당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뿐인가? 다른 부분의 이야기지만, 깐엔 배려한답시고 끊임없이 "좋으냐?" 물으며 자신의 능력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그 남자의 심리는 또 뭐냐? 빨리 일을 끝마쳐주길 바라면서 일부러 연기해야 하는 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이 알기는 알까?  

이책은 좋으면서도 위험하다.      

이 책이 어떻게 해서 내 손에 들어 왔는지 모르겠다. 사지는 않았고, 몇년 전에 받아만 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 걸 최근에야 읽었다. 여러가지 사정상 못 읽은 것도 있었지만 한편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난 그다지 성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관심이 없다는 게 자랑은 아닐 터. 읽어보니 내가 이 책에 선입견이 많았구나 싶다. 이렇게 솔직하고 대범할 수가! 하지만 너무 공감이 가고, 오히려 나의 무지와 게으름을 책망하고 싶어졌다. 어떤 부분은 단편 소설을 읽는 것 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기도 했다. 

이책은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언니네 방'이란 싸이트에 올라 온 글들을 발췌한 글들이다. 이 싸이트가 생겼을 때 적지 않은 여성 네티즌들이 환영을 했다고 한다. 혼자만 음습하게 가지고 있었던 아픔들 상처들을 용기있게 양지로 끌고 나왔다는 점에서 많은 위로와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언제 한번 이런 일이 있었는가? 당한 건 여잔데 범한 남자는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말이나 되는가? 섹스가 인생에 전부는 아닌데 상업주의와 맞물려 모든 사고를 그런 식으로 해결하고 귀결시키는 이놈의 세상. 그리고 그 후유증은 또 얼마냐? "...좇까라. 씨발..."은 이럴 때 써 먹는 말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 '언니네 방'이 잘 운영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싸이트 찾아 봤지만 잘 못 찾겠던데. 이렇게 자유롭게 서로의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지만 자칫 우려되는 건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남성 기피' 내지는 '남성 혐오'를 부추길까 봐 그게 걱정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더 이상 찍어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고. 진정한 페미니즘은 여성우위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자는 억압받고 하위의 개념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회해 보고자 하는 움직임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며 공존하는 것일 것이다.  

결코 만들어지지 못할 방           

'언니네 방'이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시도가 있다는 건 상당히 획기적이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언니네 방'은 있으면서 남성을 위한 '형님네 방'이나 '오빠네 방'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이런 방쯤 만들어질 필요도 있을 텐데 내가 아는 바로는 없는 것 같다. 있어도 섹스를 어떻게하면 만족스럽게 할 것이냐? 뭐 그런 게 되어버릴 가능성이 많다. 남성도 말 못할 고민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방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부장의 사회에서 같은 종족 욕 먹일 필요 있냐? 절대 만들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성에 대해서 잘 말하지 않기론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진데 그속은 좀 다를 것이다.  

 '여성학'이란 학문은 진정한 의미에서 '학'이 될 수 없다     

나의 20대 어느 가을 날 나는 어느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었고 그때 처음 여성학이란 학문을 접했다. 지금은 잊었지만 그때 가르쳤던 강사가 '여성학'이란 학문은 진정한 의미에서 '학'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언젠가 여성이 진정으로 해방이 되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안다. 여성학이란 학문은 지구에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여성학은 점점 더 중요한 학문이 되리라는 걸. 

하지만 여성학은 어느 특정인을 위한 전위물처럼 취급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이런 저작물이 아니면 어디가서 여성의 실태를 쉽게 접할 수 있을까? 여성학은 없어지지 않을 것인데 이 책은 절판이 됐다는 것이 다만 아쉬울 뿐이다.(품절로 나오지만 아마도 절판됐지 싶다) 그런데 왜 짧은 시간 절판(품절)이 됐는지(이책의 초판은 2006년이다.) 알 것도 같다. 나름 부작용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궈서야 말이 되는가? 어느 날 화려한 복간을 기대해 본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야기를 나눠줬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