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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이승규 - 세계 최고 간이식 드림팀을 이끄는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지음 / 허원미디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오래 전,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이전에 읽었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나 <7막7장>같은 그런 분위기가 난다. 그런 류의 책들이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는 것처럼 이 책 역시도 그렇지 않나 싶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저자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흔히 운이 좋은 사람,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만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왠지 일회성이며, 자신의 노력 보단 순전히 거저먹기 식의 사람을 가리킬 때 하는 말 같다. 하지만 저자는 정말 복이 있는 사람 같다. 이 복은 거저먹기 식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어느 분야에 들어서든 입신양명을 꿈꾸기 마련이다. 저자 역시 아무나 갈 수 없는 의대를 지원하고 의사로서 훈련을 받았지만 입신양명을 꿈꾸었기에 그러고도 돈 잘 벌고,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려고 했다.(그래서 선택하려고 했던 게 대장항문 외과란다. 그쪽분야가 그렇게 돈 잘 버는 분야라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런데 좋은 떡대와 좋은 스승과 선배를 만난 덕에 외과를 선택했고 나중에 간이식에 최고 전문가가 된다. 만일 그 사람들이 똑같이 돈 잘 벌고 편한 곳을 이끌었다면 오늘 날 명의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타고난 근성과 일을 좋아하는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혹독한 유학생활도 이기고 돌아와 학연의 텃세(실제로 그는 서울대 출신이지만 그가 일하는 곳은 고대출신이 많은 병원에서 일했다고 한다)도 다 이길 수가 있었다. 그러니 저자를 두고 그저 단순히 운 좋은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운이 좋은 건 딱 한 가지 좋은 멘토를 만나 다른 분야도 많은데 (하필)외과를 선택했다는 정도다. 사실 어찌보면 좋은 멘토도 아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라." 그렇게 말해 주기는 쉬운가? 남의 명운을 그렇게 쉽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단지 그것을 찰떡 같이 알아 듣는 저자가 더 대단한 사람인 줄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이 개척하고 노력했다. 그러니 그를 어찌 운 좋은 사람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복은 스스로가 불러 들이는 것이라고 그런 점에서 그는 복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해 본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좋은 사람들이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이다. 책 중간 이상을 넘어 읽다보면 저자가 힘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를테면 누구는 어떻고, 어떠며, 어떻더라. 뭐 그런 얘기를 장황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다. 어찌 보면 특이하다 싶기도 하다. 그런 거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어느 분야건 권위자가 되기 까지는 절대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더구나 매번 수술을 해야하는 직업이라 팀워크가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좋아하고, 사람에게 공을 돌릴 줄 아는 저자의 겸손과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인 것이다.
그는 자기 분야에 있어서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당시 간이식은 뇌사자의 간을 기증 받았을 때나 이루어지던 것을 한 차원 높여서 생체간이식에 성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다 설혹 인정이 돼 간을 적출을 한다고 해도 수혜를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안에 죽어나가는 간질환 환자가 얼마겠는가? 그런데 생체이식은 그런 번거로운 절체를 뛰어넘었고 그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상당한 해결을 보았다고 한다. 이를테면 법으로 금지된 정기매매나 중국 원정수술 등의 부작용 등.
저자는 그 팀에게 이렇게 강조한다고 한다고 한다. “우리는 3차 진료기관이 아니라 4차 진로기관이다. 그만큼 더 열심히 환자들을 봐야한다.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1차, 2차, 3차 진료기관에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가 찾아오는 4차 진료기관, 우리 간이식팀은 그런 사명감으로 일한다.(109p) 병원이 자신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가르치고, 이런 사명감으로 일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게 참 자랑스럽고 믿음이 간다.
현재 우리나라의 (적어도 아산병원의 팀이다 하여 ‘아산 드림팀’) 간이식 수술성공률은 96%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보다 먼저 간이식 수술을 시작한 미국, 유럽, 일본 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특히 혈액형이 달라도 그 수술이 가능한 것을 보면 가히 간이식의 혁신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것으로 볼 때 목에 힘을 줘도 될 텐데 저자와 아산 드림팀은 나머지 4%에 또 연연해 한다. 확실히 전문가는 만족을 모르는 완벽주의자다. 그것은 ‘제4차 진료기관’을 감당하고픈 그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책은 편안하면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외과의사의 직업병이 무엇이고, 사람들의 성격적 특징, 수술 현장들을 소탈하면서도 흥미롭게 전달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의 의료현장은 언제나 희비가 엇갈리는 그야말로 ‘인간극장’이라고 말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살아보겠다고 원정 수술도 하고, 간이식 수술을 하면 조금은 젊게 살 수있다는 말에 실제로 나쁘지도 않은 간을 수술 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우리나라의 이 못돼먹은 건강에 관한 지나친 관심은 여전하다 싶다. 또한 가족 간의 간이식을 성사시키고도 수술 하루 전에 증발해 버리는 씁쓸한 일도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미국이나 선진 유럽에 비하면 아직도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본인이 장기기증의 뜻이 없다는 의사표현이 없는 한 장기기증은 국민 저마다 하는 것으로 의무화 되어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기 주민등록증에 장기기증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판이한 양상이다.
이렇게 아쉽고 눈살 찌푸리는 사례도 있지만 훈훈한 사례도 있다. 특히 간질환으로 수혜를 입고 그 때문에 또한 세상을 등져야 했지만 남편의 유언을 따라 지금까지 3억을 기증한 어느 부인의 이야기. 또 관련기관이 만들어져 자칫 죽을 뻔한 사람들이 살아난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정말 이 맛에 의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다.
처음에 이 책은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인이 읽어도 좋다. 간에 대한 의학상식을 겸해서 읽을 수 있으니 좋다. 더구나 아직은 연초가 아닌가? 연초에 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또 한 해 또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은 힘이 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