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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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니체의 <짜라투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건 십대 말이었다. 뭘 알아서 읽었던 건 아니고, 어찌나 어렵고 난해 하던지  그냥 나도 그 책을 읽었다는 이름 하나 짓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나이에 맞지 않은 지적 허영. 하지만 그 책을 읽고 내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책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무익한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 정도였다. 즉 책의 수준에 나를 맞추다 열등감을 느끼기 보다, 이렇게 어려워 읽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면 그 저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별로 유익한 책을 쓴 건 아닐 것이라고 자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지 얼마 안 되서 니체는 기독교에선 거의 적그리스도로 매도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바로 '신은 죽었다'라고 했던 니체의 말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그 책을 읽었던 80년 대는 한창 우리나라  기독교 부흥기를 맞이했던 때였다. 그러니 니체의 그 말이 얼마나 가당치 않게 들렸겠는가. 신은 이렇게 살아 계셔서 성령의 은혜를 폭포수와 같이 부어주고 계시는데 신이 죽었다니!  그건 신성모독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나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래 뭐, 니체 아저씨는 시대를 잘못 만나 적그리스도로 매도 됐다고 쳐도 철학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니체가 이단의 수괴었다면 그렇게까지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철학잔데 철학이란 학문은 신에게 배치되는 학문일까? 물론 철학이란 학문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내가 믿는 신과 배치된다면 난 철학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생각이긴 하지만 이건 확실히 (적어도 그때의)철학과 기독교가 잘못한 바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다양성이 결여된 시대이기도 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었고, 권위의 시대였다. 한 번 그런 식으로 매도가 되면 영원히 낙인된 것처럼 인식이 되던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날 어떠한 학설이나 사고가 재해석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니체 역시 마찬가지다. 무조건 적그리스도라고 매도하기 보다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왜 그가 그렇게 얘기를 했어야 했는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그의 나머지가 그 말 때문에 사장되지 않고 후세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가 그렇게 외쳤던 건 1800년 대 기독교적 윤리관은 지나치게 내세만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그 보다 현재를 온전히 살게 하는 진리와 선, 그리고 도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 날 그의 말은 기독교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이 가능한 말이다. 기독교가 발전되어 온 발자취가 그렇지 않은가? 내세만 강조하고 기복의 잔재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관이 기독교의 질을 떨어 트려왔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또 다른 기독교 진영에선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고 그것은 니체가 주장하는 것과 일맥 상통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니체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런 각성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떨치지 못한 1800년 대식 기독교가 적그리스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는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죽였다고 해야 옳은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니체가 그렇게 웅변했던 것은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철학계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철학은 철학대로 어찌나 어렵고 까탈스러운지.도무지 상아탑에 갇혀서 나올 줄을 모른다. 그래서 권위는 있을지 모르나 대중과 소통할 줄 모르고 학문으로 전락한 것도 사실 아닌가. 물론 그나마 요즘엔 대중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노력들을 많이 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이런 책도 나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냥 에세이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것도 니체의 아폴리즘을 인용한 에세이 말이다. 저자는 정말 니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짜라투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를 하도 어렵게 읽어 그후 지금까지 니체를 읽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의 책에서의 잠언을 인용해 저자 특유의 생각을 자유자제로 풀어 쓰고 있다. 결국 읽으면서 니체가  새롭게 보인다.

 

특히 니체가 불행한 삶을 살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정신까지 불행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항상 향상심을 독려했고,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과연 그렇게 말하는 게 타당한가 의문스럽기도 했다. 뭔가 모순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맞겠다 싶기도 하다. 누구나 고난을 겪으면 그 삶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법이다. 더구나 그는 철학자다. 얼마나 깊은 고독 속에서 그런 잠언을 끌어 올렸겠는가? 그러므로 고독을 두려워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하지는 마라. 항상 편안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아 온 사람에게선 결코 얻을 수 없는 인간 심연 깊은 곳을 그는 이미 여행하고 그 같이 설파했다.

 

그의 삶을 보면 왠지 반 고흐의 삶과도 닮았다는 느낌든다. 특히 그렇게 많은 저작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의 사후에 조명을 받았다고 하니 더욱 그렇지 않은가.

 

처음엔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자기계발류의 느낌도 없지는 않다. 하긴, 심리학이 자기계발에서도 쓰이고 있으니 철학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확실히 좀 박식해 보인다. 니체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어 니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만큼 쉽게 쓰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고. 하지만 이런 책은 그야말로 입문을 위한 책일뿐 이왕 니체에 빠져 보겠다면 그의 저작물 내지는 그의 사상을 다룬 책을 읽어야 진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딱 그만큼의 책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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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2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고흐와 니체가 서로 은근히 닮은 점이 있어요. 일단 두 사람 다 수염이 있죠. 아버지가 목사에요.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어요. 매독에 걸려서 고생했어요. 고흐의 남동생이 형의 그림과 편지를 정리했고, 니체의 여동생이 오빠의 저작물을 관리, 편집했어요.

stella.K 2015-08-23 09:34   좋아요 0 | URL
완전 평행이론이군!ㅎㅎ

yureka01 2015-08-26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니체의 여자들도 한번 보세요.재미난 슬픈 사랑들...

stella.K 2015-08-26 12:10   좋아요 0 | URL
앗, 그런 책이 있습니까?
니체가 루 살로메를 좋아했다 요즘 시쳇말로 까였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는데 말이죠.
읽어 봐고 싶단 생각이 불끈 드네요.ㅋ
 
생각수업 -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질문
박웅현 외 지음, 마이크임팩트 기획 / 알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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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그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 1월, 이틀에 걸쳐 한 지식 컨퍼런스가 열렸고, 거기에 무려 4천여 명이 참가 15시간 동안 9명의 연사들이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읽고 있자니 과연 그 행사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그런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면 나도 한번 기웃거려 봤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하도 뜨거우니 이젠 '인문학'이란 단어를 넣지 않은 책이나 강의는 관심도 끌지 못할 실정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하도 인문학, 인문학 하니 그것에 대한 피로감도 없지 않다. 그럴 경우 우린 꼭 따져 묻는다. 그거 하면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고. 분명 인문학이 그저 이론만을 소개하는 정도라면 그건 죽은 학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엇이든 각성하고, 적용 가능해야 그 학문은 살아있는 것이 된다. 사실 많은 책들이 인문학을 다루고 있다지만 너무 전문적이고, 깊이만을 추구하다 보면 보고서 형식에서 끝나버릴 수가 있고 따라서 넓게 바라보는 시야가 부족할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 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컨퍼런스가 유용하겠다 싶다. 읽다보면 뭔가 깨어나는 느낌이고 퍼즐이 맞혀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린 흔히 지식의 깊음만을 추구하지 넓음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 나온 9인의 지식인들은 나름 그 분야에선 실력자고, 여러 많은 지식과 경험을 압축시켜 들려주고 있어 유용하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독특한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사고해야 얻는 것들을 단시간내에 속성으로 끌어내려고 하는데 탁월하다. 그게 결국 우리나라 교육의 맹점이기도 한데, 질문하지 않고 그러면 그런 줄 아는 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피라이터 박웅현의 '왜는 왜 필요하가'는 (실제로 컨퍼런스에서 첫번째 타자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뭔가 문을 여는데 적합한 내용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요즘 사회가 스팩을 중요시 하고 있는데 과연 스팩이 중요한지, 왜 쌓으려 하는지를 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하므로 스펙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죽으면 하나 쓸모도 없어지는 것ㅣ다. 그렇다고 허무주의를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모르 파티! 즉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살라고 조언한다. 

 

그는 인생을 100으로 봤을 때 90은 이미 존재하는 기존이요, 9는 이미 이루어진 기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단 1만이 미성, 즉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바로 이 1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어떻게 하는가? 이미 그렇게 생겨 먹어 어찌 할 수도 없는 것에 지레 분노하고 좌절하던가, 아직 이루지 못한 그 1에 대해서는 겁내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장 뜨끔했던 건 '우리는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의 진중권 편이다. 읽고 있자니 나는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투표에 참여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 안한 것 같다. 왜 몇 번 밖에 안 했냐고 한다면 답은 뻔하다. 찍을만한 사람이 없고, 찍어 준다고 해도 그 사람이 정말 일을 잘할 사람인지 확인할 길이 없으며, 무엇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방송은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인들의 치부와 막말 파문 등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가까운 미래에 저런 사람들에게까지 찍어 줄 표는 없다는 것. 찍을 사람이 없는데 투표를 독려한다는 건 강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투표를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투표를 하지 않을 권리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럴듯한 변명이라고 해도 내가 정치에 관심없다는 것과 게으름은 피할 수 없는 나의 진실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진중권은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어찌나 논리적인지 반박을 할 수가 없게끔 만든다. 

 

사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치는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냉소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른 감시와 관심을 가져 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린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안타깝고 위태롭게 느낀 건 '자본주의가 정의로울 수 있는가'의 장하성의 부분이 아닌가 한다. 사실 나는 정치 못지 않게 모르는 것이 경제다. 그런데 장하성의 말을 들으면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 지경이 된 거야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니 새삼 이 말을 다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그의 말 중 인상적인 건, 이미 유럽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이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없어지면 큰 일 날 것처럼 철저하고 처절하리만치 대립하여 파벌과 계파 간의 갈등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엔 기득권의 암투와 유언비어가 남발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나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모르는 것이 결코 약이 될 수 없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성은 희망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대충 얼버무리는 느낌인데 그게 시간에 쫓겨서 그런 것인지 아직까지 이렇다 할 확실한 희망에 도달하지 못해서인지 알 수가 없다. 난 몇 년 전 우연찮게 그의 책을 손에 넣은 일이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도무지 읽을 기회를 갖지 못해 누가 읽겠다고 하기에 내 준 적이 있다. 그게 좀 후회가 된다.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을, 최근 내가 책을 너무 함부로 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재밌게 읽었던 것은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의 고미숙의 부분이다. 그는 스스로를 고전평론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동양철학이나 의학에 해박한 인문학자다. 특히 명리학에 관심이 많은가 본데 나 역시 근래에 들어서 뭔가 인생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의 비밀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걸 알지 못하고 죽는다면 우리가 개나 돼지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인문학 또한 공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읽고 있는데 읽다보니 고미숙은 그런 말을 한다. 연애는 운명의 신비 중 가장 뒤떨어진 것에 속한다. 내가 어떤 리듬을 갖고 내 운명을 창조할 것인가가 중요하지 단순히 누군가를 만나는 게 목표라면 설령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연애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변태 아니면 권태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105p)라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질 운명이라면 모를까 연애를 못할까봐, 결혼을 못할까봐 지레 조바심내거나 그와는 반대로 일부러 도망치거나 3포 세대라고 미리 포기하거나 하진 말자. 세상이 내가 정한대로만 된다면 그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이 될 것인가?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시야가 좁고 내가 무탈한 삶을 살면 세상도 그러한 줄 알고 살기 쉬운 세상에서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아 흡족했다. 책 말미에 가면 환경학자 안병옥 씨가 가수 홍순관의 노래 '쌀 한 톨의 무게'를 소개해 놓고 있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홍순관의 노래 '쌀 한 톨의 무게' 중                             

그러면서 안병옥은 그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바람, 천둥, 비와 햇살, 외로운 별빛, 농부의 땀 그리고 우주를 나에게로 연결시켜주는 생명의 다리며 그래서 쌀 한 톨을 먹는다는 것은 나와 세계 그리고 우주와 접속하는 일이 된다 (311p)고 했다. 우리가 인문학을 하는 것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세상을 좀 더 의미있게 조망하고, 작은 것에서도 우주를 발견하는 일. 자연과 공동체를 생각하기 위해 우린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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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7-1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쉽네요. 제가 어제 책 세 권을 주문했거든요. 이 책도 함께 주문했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이 리뷰를 보면 이 책을 사고 싶고, 저 리뷰를 보면 저 책을 사고 싶으니...
독서광이 되어야 할 텐데 단지 책광이어요. ㅋ
책 대신에 이렇게 리뷰로라도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 정리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stella.K 2015-07-12 19:5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언니 마음이 제 마음이어요.
근데 전 요즘 알라딘 중고샵에 꽂혀서 새로 들어 온 중고책들이
더 사고 싶더라구요. 개인으로 하는 중고샵 보다
배송비도 싸고 예전에 찜만하고 사지 못한 책 싸게 나온 거 보면
정말 사고 싶더라구요. 하지만 적립금이 없어서리...ㅠ
그나마 없는 게 낫겠다 싶어요. 안 그랬으면 책탐이 발동했을 테니.
그렇지 않아도 지난 달 적립금이 생겨서 털어서 샀는데 말입니다.ㅠㅋ

cyrus 2015-07-12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만 느끼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위 ‘인문학’이나 ‘철학’을 한다는 똑똑한 사람들의 글이나 말을 보면 ‘생각’ 또는 ‘사유’라는 단어를 남발한다는 걸 느껴져요. 말로만 생각하라고 권하고 있을 뿐, 현실 문제 앞에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가 아쉬워요. 이러니까 철학을 현실에 동떨어진 낡은 학문으로 보는 편견이 사라지지 않아요. 고미숙 씨의 칼럼을 보면서 실망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8566

stella.K 2015-07-13 12:04   좋아요 0 | URL
네가 읽어 보라고 해서 읽어 봤는데 난 잘 모르겠네.
맞는 얘기한 것 같은데... 물론 현실에 대한 비판만 있지 이렇다 할
실천책이 없다는 거 그걸 말하는 건가?

네 생각이 맞아. 나도 동감해. 그런데 이 책 제목을 대했을 때
얼마나 생각을 안하면 이런 제목을 달고 나왔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
생각 없이 사는 사람도 많고 우리나라 교육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잖아. 그런 세상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지식 컨퍼런스에 4천 명이 모였다니
좀 놀랍긴 했어. 마치 옛날 7, 80년대 기독교 부흥회나 사경회가 생각이 나더군.
우리나라 저력있는 나라야. 나는 생각만이라고 하고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
나만해도 나이가 드니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 머리가 굳는다는
생각이 들더군.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말야. ㅠ

2015-07-18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8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9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9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분 BOOn 9호 - 2015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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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 잡지를 읽어 볼 생각을 했던 건 순전히 착각에서 였다. 

작년 이맘 때 나는 후지와라 신야가 쓴 <겪어야 진짜>란 책을 읽었는데 왠지 이 사람에 대해 흥미가 갔다. 그런데 이번호에서 이 사람을 다룬다지 않는가? 혹하는 마음에 집어 들었던 거다. 그런데 왠걸, 신야는 맞는데 잡지가 다루고 있는 신야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신야가 아니었다. '다나카 신야'였던 것이다. 일본에선 나름 알아주는 소설가인가 본데 나는 이 작가를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좋은 일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신야는 소설가는 아니고 일종의 문화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하긴, 후지와라 신야도 처음부터 알고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니, 다나카 신야도 지금 알면 되는 거 아난가?  덕분에 모르는 작가도 알게 되었으니 나쁘지는 않다. 

사실 다나카 신야는 우리나라에도 그다지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지난 2010년 가와바타 나스나리 수상작품집이 번역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번데기>란 작품이 실리긴 했지만 그나마 이책은 품절 상태라 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잡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니 나름 꽤 다부진 인상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과 함께 몇번의 고배 끝에 <도모구이>란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도 받았는데, 그때 시상식에 참석한 도쿄도지사가 그런 말을 했단다. 지금의 젊은 작가들에게 리얼리티가 결여됐다(23p)고. 그러자 다나카 신야가 이렇게 받아쳤다고 한다.

"아마 셜리 맥클레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몇 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가 돼서 마지막에 받았을 때 '내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것 같은데요, 뭐 대략 그런 느낌입니다. 네 번이나 떨어뜨려진 뒤니까 이쯤에서 거절해 주는 것이 예의라고 하면 예의입니다만 저는 예의를 모르므로, 혹시 거절했다고 듣고 소심한 심사 위원이 쓰러지거나 하면 도쿄도의 행정이 혼란하므로 도지사 각하와 도쿄도민 여러분을 위해 받아주겠다, 입니다. 저기, 얼른 끝냅시다" (23p) 

도쿄도지사가 요즘 작가에게 리얼리티가 없다고 일침을 가한 것도 놀랍기도 하지만 다나카 신야가 시상식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 또한 놀랍다. 난 이 도지사가 문학평론가쯤 되는 줄 알았는데 일본은 일개(?)의 도지사가 이런 말도 하는가 보다. 요즘 우리나라는 어느 유명 작가의 표절로 시끄러운데 그 말은 우리가 들어야 할 말 아닌가? 우리나라 작가들 리얼리티가 떨어지니까 표절도 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작가가 이런 말로 받아치는 게 의외이긴 하지만 나에겐 일단 눈도장 한번 확실하게 찍는구나 해서 관심이 간다. 하지만 왠지 그의 작품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소설 <일식>으로 유명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인터뷰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잡지는 일본의 문예지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일본의 주목 받는 작가도 소개하지만 문화 전반의 것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호에서 다루고 있는 두 편의 에세이가 눈에 띄었다. 그 하나는 '헤이안 시대 궁정 여인의 삶'과 또 하나는 '한일의 경계를 산 사람들,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억하며'다.

특별히 '한일 경계를 산 사람들....'에서 세스페데스 신부는 1500년대를 살았던 스페인 신부로 일본인 60만이 카톨릭을 믿게 된 예수회 소속 신부라고 한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임진왜란을 직접 겪고 본 신부이기도 한데, 지난 드라마 <이순신>이나 현재 방영되고 있는 <징비록>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서 이건 정말 꿀팁이다 싶다.

또한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에선 젊은이들이 어떤 유행어를 쓰고 있는지 비교해서 다룬 글이라든지, 우리나라에 현재 번역되어 나온 일본의 신간들과 주목 받는 책들의 서평을 읽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밖에도 여러 읽을 것들이 쏠쏠하다.

 

솔직히 난 남의 나라 문화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 나라 문화도 모르는 것이 많은데 남의 나라에 대해 뭐 그리 관심이 많겠는가. 하지만 이 잡지는 일본문화에 대해 나름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다루고 있어 앞으로 종종 관심을 같고 읽고 싶어질 것 같다. 흔히 우리나라는 일본과 정치적으론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문화적인 면에선 많은 부분 비교가 되기도 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잡지 대비 가격도 적당한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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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23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이 생각을 했어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추리소설 같은 전문 장르문학 잡지가 활발히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잡지가 우리나라에 나온다면 장르소설 마니아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특수 장르 잡지가 안 팔리면 1년도 못 가고 폐간되는 현실이 아쉬워요.

stella.K 2015-06-24 12:07   좋아요 0 | URL
솔직히 이 잡지도 얼마나 갈지 의문이야.
나름 괜찮은 잡지라고 생각해. 울나라랑 일본이랑
문화 비교도 할 수 있고.
격월로 발행한다는데 오래 갔으면 좋겠어.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미스테리아 잡지 나왔잖아.
그리고 이와 비슷한 잡지가 언제부턴가 나오기 시작했는가 본데
지금은 우리나라도 순수소설 보다 장르소설을 선호하는 편 아닌가?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나도 미스테리아를 예스24에 주문했봤어.
창간호니까 어떤가 싶어서. 근데 며칠째 안 오고 있다.
다른 책과 함께 신청했는데 그게 나온지 좀 오래 된 책이거든.
완전 끝장이다.ㅠ

페크pek0501 2015-06-2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관심사가 다양하네요. 이런 책도 읽으시다니...

오래전, 루스 베네딕트 저, <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가 이렇게 비슷한 점이 있나, 그랬어요. 마치 우리나라에 대한 글을 읽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마도 같은 동아시아의 나라이기에 그런가 봐요. 사실 그 책을 읽기 전엔 일본이 우리나라와 얼마나 다른가에 관심이 갔었죠.
그래도 두 나라의 다른 점은 분명히 있죠. 소설을 읽어도 참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다른 나라와 비교함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얼굴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을 통해서도요.

stella.K 2015-06-24 12:13   좋아요 0 | URL
ㅎㅎ 모처에서 협찬 받아서 읽어 본 거예요.
사실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중국이 조금씩 닮아 있잖아요.
전 우리나라가 인간성은 중국이랑 많이 닮은 것 같고
문화는 일본과 많이 닮고 그런 거 같던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음흉하잖아요. 아닌가?ㅎㅎ

같은 출판사에서 중국문화를 다룬 잡지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같이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제가 워낙 잡자를 안 보는 주의라
생각만...^^
 
명작에게 사랑을 묻다 - 명사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위대한 작품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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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감춰진 삶의 이면을 읽는다는 건 확실히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그들의 연애사는 단연 으뜸일 것이다. 보통은 예술가들이 연애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는 뭘까? 연애를 잘 하기 때문에 예술가가 된 것일까 아니면 예술을 하니까 연애도 자연스럽게 잘하게 된 것일까? 

알다시피 뮤즈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중 하나로 예술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사랑하는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애인에게 이것만큼 잘 어울리는 대명사가 또 있을까? 이 책은 예술가들의 사랑하는 사람과 그것이 예술에 미친 상관관계를 소개한 책이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서 그 질투의 마음을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란 썼던 톨스토이. 확실히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고나 할까?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자 평생 다섯 곳의 전장을 누비며 총알 사이로 사진을 찍었던 로버트 카파. 그에게도 평생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지만 같은 사진 기자였기에 결혼을 하면 오히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거라는 연인의 말에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찰라에서 영원으로의 사랑으로 죽어서 이룬 신화 같은 사랑되어 버렸다.

또한 평생 빚을 갚기 위해 하루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써야했던 발자크. 그것이 위대한 문학혼을 낳았다고 우리는 단순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더 크고 발칙한 사연이 덧붙여져 있다.

평생 빚을 갚기 위해서만 글을 써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창작의 고통을 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고 더 많은 연인과의 염문과 향락을 위해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계의 나폴레옹이란 야심을 품게 만들었다. 

역시 발자크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그런 그에게 속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것은 그의 허세스러움과 몽상 같은 꿈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것이 남에게 환영을 받던 비난을 받던 사람은 자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실천했던 사람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빚에 쪼들린다고 불행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는 살면서 나름의 낭만을 즐겼던 사람이다. 사람은 확실히 사는 낭만을 알아야 살 수 있다.

보들레르는 또 어떤가? 평생 잔 뒤발과 폴로니 사바티에 두 여인을 사랑하면서 하나는 밤의 감성을, 다른 한쪽의 낮의 이성을 오가며 어찌보면 사랑의 지옥과 천국,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선과 악을 동시에 경험하며 사랑과 정염의 화신이 됐던 건 아닐까?

이 책은 이렇게 총 25명의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펼쳐보이고 있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저 25명 중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라는 점인데, 역사라는 게 거의 대부분 남자의 이야기고 보면 이렇게 엮은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다. 또 사랑이란 게 종종 벌이 꽃을 보고 달려 드는 형국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역사도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 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게 주가 되지 않던가?

이 책은 평이하긴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을 확실하게 집어주고 있어 고맙기도 하다. 예를들면 조루주 상드 같은 경우 우린 흔히 여자 카사노바로 모든 남자를 첫눈에 무력화시키는 마력을 지닌 사람으로 알지만, 책을 보면 그녀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보여진다. 그걸 알고나니 상드에게 정감이 간다.

하지만 뮤즈로서 가장 확실한 인물은 역시 루 살로메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지성 이를테면 니체나 프로이트를 자신의 발 앞에 무릎꿇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더구나 사랑은 하되 육체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연애 방정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상대는 얼마나 애간장이 녹았을까? 그랬던 그녀가 릴케에게는 몸을 허락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릴케는 물론이고 그녀를 사랑한 사랑의 최후는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루 살로메야 말로 뮤즈의 진정한 마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본인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어쨌든 읽다보면, 예술하는 사람은 사랑을 잘할 거라는 환상이 이 책에서 다소 깨어지는 느낌이다. 연애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 사람의 성격에 달린 거지 예술을 하기 때문에 연애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뭔가를 할 줄 안다는 것 또는 그것으로 인해 유명해지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을 하기 때문에 연애도 잘할 것이라는 건 섣부른 판단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들은 사랑을 자신의 예술에 승화시킬 줄 안다는 면에서 확대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예술인이라고 사랑을 더 아름답고 성숙하게 할 거란 편견도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사랑과 예술에 대한 빠르고도 얕은 꿀팁을 제공해 준다. 그냥 교양서 정도로 읽어주면 좋을 것 같고, 오타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는 흠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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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6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 한 번도 안 피고, 반려자 한 사람만 사랑하다가 살다 간 예술가를 꼽으라면 이중섭, 마그리트, 백석, 천상병이 떠올려요. 이 사람들 말고 더 있을 텐데 평범함을 뛰어넘는 열정적인(?) 사랑을 하다 간 예술가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네요. ^^;;

stella.K 2015-06-16 18:1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예술가들 바람둥이일 것 같지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의외로 깨끗한 사람도 많아.
마루야마 겐지도 그렇고, 하루키도 있잖아. 박목월도 있고.ㅋ
난 작가도 성직자 못지않게 정결해야 한다고 봐.ㅋ

푸른기침 2015-06-1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가의 심정을 이해 못하고 오늘도 커피나 홀짝이고 있습니다. ㅎ

굿밤요~~~

stella.K 2015-06-19 11:55   좋아요 0 | URL
ㅎㅎ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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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읽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이번엔 한창훈이다.

 

번듯한 글 한 줄 제대로 못 쓰면서 나는 매번 이런 책에 눈독을 들인다.

그런데 아뿔싸! 제목이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한창훈 자신의 글 쓰기론만을 온전히 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느 에세이류는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가 예전에 내놓은 <향연>의 개정판이다. 어쨌든 그동안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작가를 이제야 이책으로 조우했다. 물론 제목이 그러했던 만큼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긴은 한다. 

 

그가 작가가 되기로 한 동기가 재미있다.

미술은 동생이 하고 있었고, 음악은 돈이 너무 많이 들며, 연극은 한마디로 며느리시집살이와 맞먹는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독고다이류'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작가가 되는 것. 천 원어치 종이와 볼펜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직업. 문학은 고아가 하는 짓. 둘째로, 남을 짓누르고 올라서려는 종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 이 원칙을 훼손당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작가이겠구나 했단다. (8~9p)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주인공이 사회 비참과 무관심의 대상이면 독자들이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예전에 <아침마당>에서 헤어진 가족찾아 주기 뭐 그런 프로를 했는데 왜 재수없게 아침부터 눈물바람아냐'며 항의를 듣는단다. 순간 그는 인생이 얼마나 평안하고 즐거우면 타인의 아픔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아침엔 울어서는 안 되는가? 그래서 그는 그들이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라고(13~14p) 했다. 거기엔 그 나름의 분노가 서려 있어 보인다.

 

또 어느만큼 읽어가다 보면 그는 이렇게도 썼다. 

20대 중반, 직업에 대한 궁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회사에 취업할 능력도 마음도 없고, 투자비가 거의 들지 않으면서 세상에 대한 태도로 소설가를 선택했다고(161p). 하지만 문제는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는 것. 약간은 황당해 보이기도 하다. 소설가가 되기로 했으면서 소설을 어떻게 쓰는 지 모르다니. 하지만 그의 말이 맞기도 하다. 소설은 알아도 모르겠는 게 소설이다. 매번 새 소설을 쓸 때마다 미궁속을 헤메는 게 소설가들 아닌가? 단지 목표 의식만 뚜렸하다.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지? 답은 바로 나왔다.

잘 쓰거나 열심히 쓰거나.

무엇을 써야하지? 이것도 마찬가지.

좋은 것을 쓰거나 감동적인 것을 쓰거나 그럼 됐다.

좋고 감동적인 것을 열심히, 잘 쓰면 되겠구나.('삶을 궁리하는 방법',162p)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건 '궁리'라는 단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궁리하며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뭐 본질적인 문제에 해답을 달겠다고,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라고 고민하는 햄릿형 인간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게 훨씬 인간다워 보인다. 그러니까 비굴하게 삶에서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하지 말고, 상대적 박탈감 내지는 빈곤감에 우울하거나 일희일비 하지말고 그냥 잘 살려고 오늘도 어제처럼 궁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때로 그의 글이 나를 위로한다. 궁리 끝에 선택한 직업이 소설을 쓰는 일이면서 무슨 글 짓기 대회에서 장려상 쪼가리 하나 받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나도 그런데. 장려상은 고사하고 학창시절 교지에 내 글 한 자 올려 보지 못했다. 물론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아주 가끔 내 글이 활자화 되기도 했지만 그건 어찌보면 활자가 권위의식을 벗어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오래 전, 386 세대의 작가들이 문단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누구는 문단계의 지각 변동을 예측했다. 이제 발로 뛰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책들을 보고 연구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로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며, 연구서 비슷한 책을 낸다고. 또 그렇지 않으면 자아에 대한 깊은 고뇌와 고독 뭐 그런 책들을 낼 거라고. 그것도 작가로 살아가는 궁리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머리와 가슴은 커졌을지 모르지만 삶의 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작가 한창훈은 지금도 어부로 일하면 글을 쓴다. 그가 고민 끝에 아니 궁리 끝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는 하지만 순수하게 글만 써서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작가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그래서 작가는 일종의 명예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체험이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삶의 터전이 되고 바탕이 되는 곳에서부터 흘러 나온다. 비록 내가 원하는 그의 글 쓰기에 관한 부분은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에선 짭쪼름하면서도  비릿한 바다의 그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삶 그대로를 끌어 안은 냄새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선 남도의 걸진 욕이 튀어 나오고, 어느 부분에선 다듬어지지 않는 야성의 해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부분에선 같은 마을에 사는 누구의 사랑을 소설로 썼노라고도 밝히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선 같은 문인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적어도  한창훈 작가는 자신이 궁리한 것 중 하나는 지키고 쓰는 것 같다. 그것은 좋고 감동적인 것을 열심히 쓰는것. 작가가 그럴수만 있다면 그도 꽤 성공한 작가겠다 싶다. 그렇다면 나의 궁리는 무엇인가?

 

내가 늘 작가들의 이런 글을 읽고자 하는 건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를 알고 싶기도 하지만,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드는가를 알고자 함도 있다. 예전엔 분노가 글을 쓰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마침 박혜영 교수가 한 잡지에 '요즘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읽어보면 조울증이나 자폐증에 걸린 작가들은 쉽게 볼 수 있지만 화가 난 작가들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12p)'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조울증을 포함한)우울증은 미국의 의료사회가 그것을 키워서 진료와 약의 판매고를 높이기 위함이라고는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작가들까지 그것에 편승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제대로 분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조울증과 자폐증이 창궐하는 문학판에 대한 분노인가? 아니면 사회의 갑질에 대한 부조리와 억압을 글로써 표현하는 게 작가의 제대로 된 분노일까? 

 

박혜영 교수의 진단이 맞는 것이라면 오늘 날 우리나라 작가는 너무 나약하다. 고작 작가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니. 반대로 작가는 누구 보다도 건강해야 하고 탄탄한 근육질로다져져야 한다. 제대로 분노할 줄 모르는 작가가 작가일 수 있겠는가? 나는 또 궁리해 본다. 

 

끝으로 작가의 생활철학이 마음에 들어 여기 적어 본다. 책의 날개에는, '사람을 볼 때 51점만 되면 100점을 주자.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어야지 꿀을 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진심 보다 태도이다. 미워할 것은 끝까지 미워하자. 땅은 원래 사람의 것이 아니니 죽을 때까지 단 한 편도 소유하지 않는다.' '말 많은 이들과 오랫동안 술좌석을 같이하다가 터득한 것으로 '새로운 의미나 정보, 웃음, 그 외는 다물고 있자(297p)' 참고하면 사는데 두루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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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1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작가의 생활철학은 저랑 비슷해요.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면 일단 경청해요. 진부한 대화 주제가 나오면 그저 듣기만 합니다.

stella.K 2015-05-20 11:5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구나. 실제로 작가도 그런데.
근데 넌 참 좋은 성격을 가졌네.
남자들 중엔 자기 말만 떠드는 사람 있거든.
유무식을 떠나. 그런 사람 보면 나도 가만히 듣고 있긴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지 않더라.
그러면서 그걸 자신은 언변이 좋다고 착각을 하고.
언변이 좋은 사람 보다 들어주길 잘하는 사람이
훨씬 좋다고 봐.
더 좋은 건 남자든 여자든 대화를 주고 받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상대가
좋긴 하지.^^

페크pek0501 2015-05-2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리... 그러고 보니 제가 요즘 궁리를 많이 하고 사네요.
이런 때엔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궁리를 해요.
쉬운 게 없다는 게 제 결론이고요. 아무리 코딱지 같이 하찮은 일이라도
마음을 쓰지 않으면 엉망이 되고 말아서요.

이 책 읽으셨군요. 저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고 있는데 술술 읽혀서
하루에 백 쪽 이상을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뻔한 얘기인데 괜히 샀나? 이러면서도 뭔가 얻어지는 게 있겠지, 그러면서 읽어요.
좋은 글 발견하면 나중에 페이퍼로 올릴 게요. ^^

stella.K 2015-05-24 18:1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나이들면 왜 그리 궁리도 많아지고, 걱정도 많아지는지 모르겠어요.ㅠ
오늘도 하루 해가 저물고 있네요.

저도 유시민의 책은 처음 글쓰기에 관해 읽는 사람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 그런가 보네요.
네. 좋은 글 있으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