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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게 사랑을 묻다 - 명사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위대한 작품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5년 6월
평점 :
예술가들의 감춰진 삶의 이면을 읽는다는 건 확실히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그들의 연애사는 단연 으뜸일 것이다. 보통은 예술가들이 연애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는 뭘까? 연애를 잘 하기 때문에 예술가가 된 것일까 아니면 예술을 하니까 연애도 자연스럽게 잘하게 된 것일까?
알다시피 뮤즈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중 하나로 예술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사랑하는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애인에게 이것만큼 잘 어울리는 대명사가 또 있을까? 이 책은 예술가들의 사랑하는 사람과 그것이 예술에 미친 상관관계를 소개한 책이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서 그 질투의 마음을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란 썼던 톨스토이. 확실히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고나 할까?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자 평생 다섯 곳의 전장을 누비며 총알 사이로 사진을 찍었던 로버트 카파. 그에게도 평생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지만 같은 사진 기자였기에 결혼을 하면 오히려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거라는 연인의 말에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찰라에서 영원으로의 사랑으로 죽어서 이룬 신화 같은 사랑되어 버렸다.
또한 평생 빚을 갚기 위해 하루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써야했던 발자크. 그것이 위대한 문학혼을 낳았다고 우리는 단순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더 크고 발칙한 사연이 덧붙여져 있다.
평생 빚을 갚기 위해서만 글을 써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창작의 고통을 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고 더 많은 연인과의 염문과 향락을 위해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계의 나폴레옹이란 야심을 품게 만들었다.
역시 발자크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그런 그에게 속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것은 그의 허세스러움과 몽상 같은 꿈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것이 남에게 환영을 받던 비난을 받던 사람은 자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실천했던 사람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빚에 쪼들린다고 불행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는 살면서 나름의 낭만을 즐겼던 사람이다. 사람은 확실히 사는 낭만을 알아야 살 수 있다.
보들레르는 또 어떤가? 평생 잔 뒤발과 폴로니 사바티에 두 여인을 사랑하면서 하나는 밤의 감성을, 다른 한쪽의 낮의 이성을 오가며 어찌보면 사랑의 지옥과 천국,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선과 악을 동시에 경험하며 사랑과 정염의 화신이 됐던 건 아닐까?
이 책은 이렇게 총 25명의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펼쳐보이고 있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저 25명 중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라는 점인데, 역사라는 게 거의 대부분 남자의 이야기고 보면 이렇게 엮은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다. 또 사랑이란 게 종종 벌이 꽃을 보고 달려 드는 형국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역사도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 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게 주가 되지 않던가?
이 책은 평이하긴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을 확실하게 집어주고 있어 고맙기도 하다. 예를들면 조루주 상드 같은 경우 우린 흔히 여자 카사노바로 모든 남자를 첫눈에 무력화시키는 마력을 지닌 사람으로 알지만, 책을 보면 그녀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보여진다. 그걸 알고나니 상드에게 정감이 간다.
하지만 뮤즈로서 가장 확실한 인물은 역시 루 살로메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지성 이를테면 니체나 프로이트를 자신의 발 앞에 무릎꿇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더구나 사랑은 하되 육체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연애 방정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상대는 얼마나 애간장이 녹았을까? 그랬던 그녀가 릴케에게는 몸을 허락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릴케는 물론이고 그녀를 사랑한 사랑의 최후는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루 살로메야 말로 뮤즈의 진정한 마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본인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어쨌든 읽다보면, 예술하는 사람은 사랑을 잘할 거라는 환상이 이 책에서 다소 깨어지는 느낌이다. 연애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 사람의 성격에 달린 거지 예술을 하기 때문에 연애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뭔가를 할 줄 안다는 것 또는 그것으로 인해 유명해지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을 하기 때문에 연애도 잘할 것이라는 건 섣부른 판단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들은 사랑을 자신의 예술에 승화시킬 줄 안다는 면에서 확대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예술인이라고 사랑을 더 아름답고 성숙하게 할 거란 편견도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사랑과 예술에 대한 빠르고도 얕은 꿀팁을 제공해 준다. 그냥 교양서 정도로 읽어주면 좋을 것 같고, 오타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는 흠이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