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올드랭사인 [Auld Lang Syne]/하모니카연주/모리모토

 

 

감독 : 머빈 르 로이(MERVYN LE ROY) 
주연 : 비비안 리(VIVIEN LEIGH)/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 
제작 : 1940년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1939년 9월 3일 저녁, 안개 자욱한 런던의 워털루 다리위에

한 대의 지프가 멎는다. 로이 크로닌 대령은 프랑스 전선으로 부임하기 위해 워털루 역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그는 48살이 된 그날까지도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워털루 다리 난간으로 간다. 난간에 기대어 선 그는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마스코트를 꺼내어든다.

 

워털루 다리 위를 산책하던 25살의 젊은 대위 로이 크로닌은 때마침 공습 경보로 지나가던

사람들과 함께 지하 철도로 피신한다.그는 프랑스 전선에서 휴가를 받고 나와 있다가

내일로 다가온 부대 귀환을 앞두고 거리를 거닐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그는 핸드백을 떨어뜨려

쩔쩔매고 있는 한 처녀를 도와주고 함께 대피한다.

 

 

 

 혼잡한 대피소 안에서 그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그녀는 올림픽 극장에서 공연중인

올가 키로봐 발레단의 무희였다. 그날 밤 극장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던 마이라는 객석에서

로이를 발견하고 놀란다. 로이는 사람을 통해서 마이라에게 쪽지를 전한다. 친구 키티의 도움으로

둘은 몰래 만날 수 있게 되고 그곳에서 싹트기 시작한 그들의 사랑은 다음날 로이의 청혼으로

이어지나 참전을 앞둔 로이의 스케줄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전쟁터로 떠난다.

마이라는 전쟁터로 떠나는 로이를 마중하러 워털루 브릿지역으로 나가고 그로인해 발레단에서

쫓겨나게 된다.

 

 

 

 

 로이 어머니를 만나러 나간 장소에서 우연히 전사자 명단에 들어있는 로이 이름을

발견하고 절망에 휩싸인다. 상심한 마이라는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


어느날 워털루역에 나갔던 마이라는 로이를 귀국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발견한다.

결국 지난 날에 대한 후회와 사랑을 지키지못한 죄책감으로 행복해야 할 둘의 사랑은 무너지고

마이라는 워털루 브릿지에서 자살하고 만다.

 

 

여러번 퓨처상을 수상한 로버트 E. 샤웃의 원작을 영화화한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연애 영화로

시대를 불문하고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공습하의 런던을 무대로 서부 전선을

향하는 청년 장교와 발레리나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애절하고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여러 번 리바이벌되어 들어와 여성 팬들의 손수건을 적시게 한 영화이다.

"올드랭 사인"의 아름다운 선율과 비극적인 라스트 신으로 언제나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명화로, 이 영화로 해서 한때 우리나라엔 마스코트 유행의 선풍이 일어나기도 했다

 


출처:山 河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숨은아이 2004-12-2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올드 랭 사인"의 스펠이 정말 궁금했어요. 이제야 알았다. ^^;

stella.K 2004-12-2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제 시원하시겠어요. 저도 잘 몰랐다는...^^
 

  

 

 

 

...그녀, 기억하시죠?

 

70~80년대 숱한 한국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청순미인의 대명사 올리비아 허시.

 

68년 프랭코 제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사람은
누구나 생각했을 겁니다. 그녀 이상의 줄리엣은 없다고..

솔직히 로미오, 했을 때 곧바로 리오너드 화이팅이 떠오르는 건 아닌데
(오히려 바즈 루어만 감독의 96년작 ‘로미오+줄리엣’에 출연한 리오너드 디캐프리오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줄리엣, 하면 여지없이 (클레어 데인즈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올리비아 허시가 떠오릅니다.
저만 그런 걸까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앙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친구들끼리 수십가지 질문을 적은 노트를 돌려가며 답변을 받는 것이 유행이었죠.

한창 '로미오와 줄리엣'에 감명을 받았던 터라, (정확히 말하면 올리비아 허시의 외모에 감명을 받았던 터라)

'좋아하는 배우'라는 항목에 리너드 화이팅, 올리비아 허시를 빼놓지 않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당시에는 '레오나르도 화이팅, 올리비아 핫세'라고 썼습니다.)


허시의 이름 스펠링은 Olivia Hussey(본명은 Olivia Osuna)인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올리비아 ‘핫세’라고 알려졌지요.
일본인들의 발음이 바다를 건너온 게 아닐까 합니다.
(신문협회 표기원칙은 ‘올리비아 허시’여서 그에 따라 표기하겠습니다.)

 

동그란 눈에 달걀형의 맑은 얼굴. 윤기가 흐르는 짙은 색의 긴 생머리..
당시 그녀의 선풍적인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때 연예인 사진을 파는 어디에서나 그녀의 확대 사진을 볼 수 있었죠.


특히 평상복 차림으로 빛나는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정면을 바라보는 유명한 스틸 사진은
미장원과 호프집, 기타 무수한 대한남아들의 방 벽을(저희 삼촌의 방을 비롯해) 장식했습니다.
가로로 길쭉한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저도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하고 감탄하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제가 가장 좋아하던 그 사진은 요즘 찾기가 힘들더군요.

햇살을 받아 빛나던 그 긴 머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아쉽습니다.

 

대신 캡처가 가능한 DVD에 힘입어, 영화 사진은 각 장면별로 구하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다시 봐도 가슴설레는 명작입니다.

국내에서도 '말죽거리 잔혹사'에 출연한 한가인이나 S.E.S 출신 탤런트 유진 등에 대해

'한국판 올리비아 허시' 운운하는 말이 나오곤 했는데

얼굴은 일견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시절 분위기까지 닮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올리비아 허시는 이미 많은 이들의 기억 깊은 곳에 첫사랑의 추억처럼 절대적으로 각인돼 있으니까요.

 

 

 

 

 

 

붉은 드레스와 대비를 이루던 까만 머리,

세상의 더러움과 추악함은 아무것도 모를 듯 한없이 순진무구한 그녀는 눈동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죽음마저 아름다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미녀는 많지만, 서양인 가운데 올리비아 허시 같은 독특한 동안(童顔)의 청순미인은 흔치 않은데
유럽과 남미의 핏줄이 섞인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탱고 가수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를 둔 허시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성은 오수나였지만 두 살일 때 부모가 이혼함에 따라
그녀는 어머니의 처녀시절 성인 ‘허시’의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일곱살에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온 뒤 어머니의 독려로 5년간 연기 학교를 다녔고
연극 무대에 섰다가 제퍼렐리 감독의 눈에 띄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실제 극중 줄리엣도 어린 나이였지만) 500명의 지원자 가운데 전격 발탁됐고,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줄리엣의 탄생이었습니다.

 

불과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전세계에서 팬레터를 받는 스타가 되고

골든글로브상과 이탈리아의 아카데미상에 해당하는 오나텔로 상을 수상하는 등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모두 어린 나이에 거머쥔 듯 보였지만

허시 개인으로서는 아름다운 시절의 종말이자 힘든 나날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딜 가든지 환호성을 지르며 달라붙는 사람들이 어린 허시에겐 감당하기 힘든 공포의 대상이었고

신경이 예민해진 그녀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근 1년간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했습니다.

활동을 재개한 이후에도 광장공포증(Agoraphobia)으로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여 고생했는데
약물(medication) 대신 명상(meditation)으로 오래도록 쫓아다니던 불안감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대학원생이던 아는 언니로부터
70~80년대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을 왕창 얻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 돼서 버리려고 하는데 가지겠냐’고 해서 얼씨구나 받긴 했는데
사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그림만 들여다 봐야 했죠.
가끔 등장하는 영어를 통해 배우들의 이름을 접하면서
예쁜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찢어서 교과서나 참고서를 싸곤 했는데
‘수학의 정석’ 표지가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신의 흑백 컷이었습니다.

 

당시 받은 스크린 가운데 한 권에는
20대 후반쯤 됐을 법한 올리비아 허시가 비키니 차림으로 찍은 사진도 실려 있었습니다.
서양인들이 워낙 빨리 나이가 들어보이기도 하지만
그 귀엽던 얼굴이 그 때 이미 웃을 때 뺨에 주름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조각같던 턱은 볼살이 빠지니까 너무 뾰족하게 느껴져서 거슬리고

(올리비아 허시는 아래 사진에 나타나듯이 웃을 때 턱이 길어보이는 스타일로,

좀 심하게 말하면 미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과 약간 비슷합니다. -_-;)

당시 사진에선 몸매도 상당히 중년 여성처럼 펑퍼짐해 보이는 것이(물속에 있어서 더 그래보였겠지만)
줄리엣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 나이가 들어 보여서 어린 마음에 실망했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도 그녀를 한 떨기 꽃처럼 청순한 얼굴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그녀는 상당히 굴곡 있는 풍만한 몸매의 소유자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잠깐 노출신이 등장하는데(당시 국내 TV로 보신 분들은 대부분 못 보셨겠지만)
당시 열다섯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매는 놀라울 정도로 어른스러웠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순결하고 성스러운 역할도 잘 어울리고
따뜻한 어머니로서의 모성애적인 역할도 의외로 어울립니다.

 

우리나라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그녀의 소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허시는 80년대 잠시 휴식기를 가진 이후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영화와 TV 등에서 활동을 해왔습니다.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모두 구사하는 관계로
미국, 영국, 남미권,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인연이 깊은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영화에 출연했지요.

 

그러나 대중들은 그녀가 줄리엣이 아닌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녀는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과 배역 속에 잊혀져갔습니다.

그러다가 1977년 프랑코 제퍼렐리 감독의 시리즈물 ‘나자렛 예수’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맡아 그녀에게 새로운 모습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나일강의 죽음’ ‘미망의 여인’ 등에 출연했고
‘사이코’ 4편에 얼굴을 비치는 등 깜짝출연도 몇차례 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나사렛 예수' 이후엔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던 허시에게

평생 꿈꿔오던 역할인 테레사 수녀의 역할이 주어진 것은 그녀의 나이가 50을 넘어설 때였습니다.

만인의 연인이었던 그녀가 성모 마리아 역에 이어 또한번 '성녀'로 돌아온 것이죠.

최근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비아 허시의 이름이 오르내리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바로 그녀가 출연한 '마더 테레사'가 내년 1월 국내에서 개봉하기 때문이더군요. 

 

사실 그녀가 테레사 수녀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얘기는

이미 근 3년 쯤 전에 제가 조선일보 영화섹션 '씨네카페'에 썼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허시는 평소 테레사 수녀를 너무나 존경해왔기에 이 역할을 맡게 돼서 너무나 행복해 했습니다.
“매일 최소 한 시간은 기도한다”고 할 정도로 신앙도 독실한 그녀는
테레사 출연이 확정된 뒤 “25년 동안 갈구해 온 역할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 제작소식을 들었을 때 무릎을 꿇고 그 역을 맡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흘 뒤 출연 제의와 함께 대본이 도착했죠. 전 제가 출연하게 된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모 마리아에 이어 이번에 테레사 수녀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줄리엣 역 이후 언제나 기품있고 우아한 이미지를 유지해온 데다
조용하고 고전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 더욱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녀도 사생활을 들여다 보면 결국 한명의 속세의 인간일 뿐입니다.
스타라는 이름으로 군중 속의 고독에 시달려 왔을테니 더욱 그렇겠지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LA로 이주해 할리우드에서 활동해 온 그녀는
1971년 스무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딘 마틴의 아들인 록가수 고(故) 딘 폴 마틴과 사랑에 빠졌고

그와 결혼해 현재 배우로 활동중인 아들 알렉산더를 낳습니다.
그러나 마틴이 불법무기소지죄로 체포되면서 스무살의 환상은 끝나버렸죠.

결국 1978년 결혼 7년만에 둘은 이혼하고 맙니다.

"우리는 너무 어렸고, 너무나 서로 사랑했죠.

40대가 되면 다시 합치자고 말하곤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과거 한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

 

1980년에는 일본계 가수인 아키라 후세와 재혼해 1983년 아들 맥스를 낳지요.
그러나 이 결혼생활 역시 7년만에 끝이 납니다.
허시는 1991년 세번째 남편인 록스타 출신 데이빗 아이슬리와 결혼합니다.

"데이빗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50번 봤다고 했어요. 그 말에 전 저항할 수가 없었어요.

내 마음의 일부분은 아직도 내가 줄리엣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허시와 아이슬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 인디아 조이는 현재 열살이 됐습니다.

그녀가 소녀가 아닌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나이들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다소 묘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영원한 줄리엣'인 그녀는 왠지 영원히 나이들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였으니까요.

 

 

 

   


 

 

그러나 세월과 함께 그녀도 나이가 들어갑니다.

1951년생이니 지금은 만 53세가 됐겠네요.

끝없이 이어지는 촬영과 잦은 여행에 지친 허시는
간간이 연기활동을 멈추고 아이를 키우는 데 전력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LA의 한 목장에서 열살 난 딸과 애완동물들을 돌보는 재미로 산다고 하더군요.
딸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녀는 명상의 나라 인도에 상당히 심취해 있나 봅니다.
“딸 아이가 좀더 크면 또 같이 인도에 가고 싶다”며 “인도는 마법처럼 내 영혼을 채워준다”고 하더군요.
나이가 들어도 그녀가 항상 평화롭고 맑게 보이는 이유도

그런 명상과 기도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줄리엣과 마리아, 테레사로만 기억될 수 있다면, 그걸로 전 충분해요."

허시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좀더 일에 충실하고, 좀더 좋은 선택을 하겠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2001년 인터뷰 당시 자서전 집필에 전력하고 있다며
‘테레사’ 촬영이 끝날 때쯤까지는 그 작업을 끝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는데
예정대로 출간이 됐나 모르겠네요.

 

‘마더 데레사’는 내년 1월 21일 세계 최초로 국내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작년에 TV물로 방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극장에서 개봉하는 게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는 뜻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여튼 세월의 깊이만큼 주름진 올리비아 허시의 얼굴이 어떤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줄지

그 옛날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을 잡지에서 찢어내던 소녀처럼 설레는 심정입니다.


국내팬 중에는 영화사측에서 최근 공개한 ‘마더 테레사’의 사진만 보고
벌써부터 “늙었구나 늙었어 쯧쯧”하며 실망을 표하는 분들이 많던데
올리비아 허시, 하면 ‘줄리엣’ 당시 모습만을 기억하는 국내팬들이
이제 더이상 꽃다운 소녀가 아닌 장년의 그녀 모습을 보러 과연 얼마나 극장을 찾을지도 의문이지요.
흰 수녀복을 입고 타인의 밑바닥 삶까지 감싸안으며 나이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사랑을 잃고 목숨을 버린 붉은 드레스의 줄리엣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허시는 많은 이들에게 영원히 열다섯살 줄리엣으로 기억되겠지만

사실 이 스산한 겨울,

그립던 그녀가 테레사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와준 것이 저는 이상하게 아주 고맙게 느껴집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얀마녀 2004-12-1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줄리엣이라는 말을 듣거나 글로 읽을 때문 올리비아 허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당분간은 다른 이미지로 대체되지 않을 듯 싶네요. 맨 위의 사진은 전에 서재 이미지로 쓰셨었죠? ^^

stella.K 2004-12-1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기억력 좋으시네요. 예. 제가 좀 그런 이미지라서...호호호.

근데 마더 데레사에 올리비아 허시라니 캐스팅이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들어도 우아하네요.^^

stella.K 2004-12-2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좋아했어요. 청초하지 않습니까?^^

니르바나 2004-12-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한 입맞춤이 그녀를 볼 적마다 생각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노랫책 앞장에 실린 사진이 말을 걸어옵니다.

밑에 있는 사진을 보니 마더 데레사 수녀님 모습이 숨어 있네요.


stella.K 2004-12-2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도 올리비아를 좋아하시는군요.^^
 

‘매트릭스 광’ 현각스님 ‘‥2 리로디드’ 관람기

 


위험한 질문‥종교도 매트릭스?

 

 

1편‥'더 원'이 세계를 구할것이다

 

종교는 때때로 위험하다. 진실한 믿음은 마음을 해방시키는 혁명이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러한 혁명은 종파에 상관없이 매우, 매우 위험한 것이다. 혁명을 두려워하는 종교적 도그마 자체가 매트릭스이고, 우리는 그 매트릭스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지난 주, 이집트 정부는 <매트릭스 2 리로디드>(이하 <리로디드>)의 상영을 전면금지했다. 금지된 이유는 폭력이나 선정성 때문이 아니라, 인류창조에 대한 전통적 종교관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중동지역 특정종교 하나의 편견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아니다. 이집트 문화검열국장이 밝혔듯, “이 영화가 금지된 이유는 인간의 실존과 창조같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존중하고 신봉하는 3대 유일신 종교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모두와 관련된다.”

2003년 현재의 “현실세계”에서조차 이처럼 곤란한 질문은 위험하다. 실존의 본질 자체에 대한 질문은 기존 종교체제를 전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또 왜 창조되었는지 묻는 것은 위험하다. 종교의 권위자들은 말한다.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단지 거기 놓였을 뿐이다.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선택의 자유는 우리에게 없다. 당신은 매트릭스를 믿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위해 매트릭스에 도전해야만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가” “맹목적 신앙은 진실한 길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이 방대한 시스템의 설계자 내지 프로그래머는 선한가, 악한가”

<리로디드>는 매우 변혁적인 영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주해온 맹목적인 종교적 믿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놓지 못하는 믿음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내가 접한 대중문화 가운데 이만큼 멋진 통찰을 보여준 영화는 드물다. 인간 밖의 유일한 권력을 믿는 제도화된 종교들은 또다른 형태의 통제와 지배, 즉 인간의식을 지배하는 매트릭스에 불과하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종교 자체가 일종의 매트릭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매트릭스 2 리로디드' 장면들

2편‥구원자 '더 원'은 없다

 

<매트릭스> 1편은 스스로 깨달은 니오가 인간의식을 지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매트릭스에 승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초영웅적 존재인 니오가 인류를 구원하러 옴으로써 선지자의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겉으로 보면 감독들이 이런 생각을 은근히 유도하면서 관객이 모피어스처럼 맹목적으로 생각하도록 유혹한다 - 우리가 예언을 따르기만 하면 초인적인 ‘더 원’(The One)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나 <리로디드>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전복시켜 버린다. 모피어스가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떠받드는 예언자 오러클은 매트릭스의 권력에 봉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이다. 오러클은 매트릭스의 “어머니”이고 시스템의 완전통제를 돕는다. 니오가 모피어스에게 말하듯 “예언은 거짓이었다. ‘더 원’의 목적은 그 어떤 것도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건 또 다른 통제 시스템에 불과했어.” 바로 이런 전복성이 이 영화의 뛰어난 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용어와 상징만 보고 이 영화가 자신들의 종파적 종교관을 입증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1편에선 세계를 구원하는 ‘더 원’이 단순한 정답인 듯도 하다. 그러나 2편은 “정답” 대신 모든 위대한 종교들이 가르쳐온 일, 즉 질문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안주해온 신앙체계를 전복하고 무너뜨린 다음, 우리 실존의 본질 자체에 대한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맹목적 신앙은 정답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니오는 오러클로부터 모피어스에게 전해진 맹목적 신앙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깨닫는다.

 

따라서 <리로디드>는 종교적 확실성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어떤 도그마나 예언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쉬운 신앙을 주창하는 영화도 아니다. 쉬운 정답 대신 위험하고 심오한 질문을 제시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상영금지된 것이다. 정치적이건 민족적이건 종교적이건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신 질문해야 한다.

 

니오와 설계자의 만남 역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니오는 두개의 문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 한쪽으로 가면 시온을 구하지만 연인은 죽는다. 다른 한쪽으로 가면 연인을 구하지만 시온주민 모두가 멸망한다. ‘더 원’의 사명은 인류의 구원이다. 예언에 따르면 그것이 니오의 목적인 것이다. 시온을 구하지 않으면 니오는 ‘더 원’이 될 수 없다.

 

 

당신 자신이 당신을 구한겁니다

 

그러나 니오는 예언으로부터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선택하고 트리니티를 구함으로써 설계자에 맞선다. 예언의 계획 대신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따름으로써, 궁극적인 힘은 설계자가 아닌 바로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인과법칙을 넘어서고 매트릭스 시스템의 설계자와도 대결한 니오는 홀로 서있다. 인간의 도덕적 조건에 대한 책임은 오직 인간 자신에게 있을 뿐, 개인의 자유의지보다 더 큰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니오의 말처럼 “선택, 문제는 선택이다.”

 

만일 신앙에 대한 전통적 지지를 철회했다면, <리로디드>에서 종교적 믿음이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999년 인터넷 채팅 인터뷰 중 “이 영화에서 신앙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감독 워쇼스키 형제 스스로 답한 바 있다. “(우리가 관심 있는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니오가 시온에 돌아왔을 때 한 청년이 “당신이 나를 구했어요”라고 외친다. 그러나 니오는 퉁명스럽게 답하기를 “아니요, 당신 자신이 스스로를 구한 겁니다.”

 

그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너를 구한 것은 네 믿음”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은 누군가 “다른” 이가 “나를” 구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더 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허나 니오도 인간 밖의 수퍼맨이 구원자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뤄진 <리로디드> 비평 가운데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불교적 영향을 받았는지 언급한 것은 드물다. 1999년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쓴 워쇼스키 형제는 불교가 그들의 사상과 시나리오에 큰 영향을 끼쳤느냐는 질문을 받고 “예스!”라 대답했다. “불교와 수학, 특히 양자물리학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고 그 둘이 접합하는 지점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둘 다 오래 전부터 불교에 매혹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관객이 이 점을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무지와 미몽에 빠져 잠들어 있으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만 스스로 깨닫고 또 다른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울 수 있다. 한편 니오가 오러클을 만나러가는 장면에선 종교물품 벼룩시장이 등장한다. 힌두교 신, 성모 마리아, 예수상 등이 보인 후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불상을 비춘다. 화면 속의 부처는 명상자세로 앉아 자기 마음의 본질을 관조하고 있다. 니오가 오러클을 만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비춰진 종교의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1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니오는 마치 최후의 초영웅 ‘더 원’처럼 보인다. 하지만 2편에서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에 따르면 니오는 “수학적 완성”의 여섯 번째 예외, 여섯 번째 구원자이다. 흔히 상징 기법을 사용하는 영화에서 과연 이 여섯 번째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교에 매료된 감독들의 답은 명료하다 - 불교에서 2500년 전 나타난 석가모니 부처는 고해의 매트릭스인 이 우주에 나타난 여섯 번째 부처로 간주된다. 고전불경에 따르면, 새로운 우주가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부처가 나타나 미몽에 빠진 중생을 제도한다. 만물이 유전하므로 우주 또한 끊임없이 변하고 이윽고 쇠하여 적멸한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고 따라서 새로운 부처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태어나고 다시 또 태어나고 - 나는 중생들 가운데 다시 태어날 것이다.”

 

<리로디드>가 던지는 화두는 바로 믿음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기에 따라서는 대중문화가 성서나 불경처럼 올바로 종교적 믿음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출처: 본효아줌마이야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꼬마요정 2004-12-14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트릭스 세 편을 모두 보면서 현각스님과 비슷한 느낌을 가졌어요.. 사실 매트릭스를 본 이유도 불교 관련 영화였기 때문이었죠... 3편의 마지막 장면.. 스미스와 오러클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감독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알기는 아는구나라구요.. 여기서 보니 그 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퍼 갈게요~^^*

stella.K 2004-12-1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전 2편까지만 봤는데...^^
 

출처:본효아줌마 이야기

[원문] 재미있는 영화 베스트 추천   

                            

                            

 

 

 

   1999년 미국 전역 극장에 방영이 시작됐던 Matrix는 기대했던 것보다 그다지 반응이 좋지않아서

   영화관련자의 많은 실망을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디오로 출시 되자마자 그 인기도와 흥행은 급물쌀을 탄 배처럼 멈출 줄을 모르고,

   비디오 업계 기록들을 모두 달아 치우는 놀라운 흥행 변화를 가져와 굉장한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전편 만한 속편은 없다는 혹평도 있었고

   국내 비평가들처럼 미국의 영화 비평가들도 이구동성으로 [매트릭스3 레볼루션]가 엉망이라고 비판도 합니다. 

   폭력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작품이다. 진부하고 단조롭다 등등 ,,

 

   그러나 나에게

   Matrix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매트릭스는 과연 무엇일까?

 

   Matrix 1편을 보면

   “What is the Matrix?" 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Matrix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견해와 해석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현실…프로그램…환상…나……?

 

   나 스스로 결론 내린바.

   결국 네오는 진정한 나를 깨우쳐서 매트릭스의 굴레 안에서 벗어나게 되고,

   Agent에게 잡힌 그의 스승을 구출하게 되는 영화.

    ‘깨어나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세상을 구제' 한다고  했을때

   저 가슴은 마구마구 뛰었습니다.

  

 

   나 스스로 결론 내린바.

   간접적인 체험으로 매트릭스를 깨우친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는

   잠재적인 의식이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어도 계속 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 스스로 결론 내린바.

   깊은 동양 철학의 교훈을 가슴에 담고,

   발전된 과학과 대중매체의 전달력과 신속성을 날개로 삼은 The Matrix

   나를 버렸을 때 진정한 “참 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주인공 네오의 삷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나에게  올바른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였답니다.

 

 

   .......

 

   2003년  두 달을 남기지 않은 11월 초였을겁니다..

   함께 수행하는 젊은 벗 11명과 함께
   밤 11시 전 세계적으로 함께 개봉했던  [The Matrix Revolutions]를 보았습니다...

 

   어두운 녹색 빛이 감도는 디스토피아의 분위기, 의상과 소품을 통한 퓨전적인 스타일,

   선글라스로 인간성을 지워낸 기호화된 인물들, 산성비처럼 쏟아지는 녹색 문자들.

 

   그리고 우리가 늘 쓰는 단어들이 무수히 나왔던  사랑, 진실, 정의, 평화, 존재의 가치...
   전 편 내내 [The Matrix Revolutions] 는 충분히 난해하고 복잡하여,

   그 뜻을 해석하느라 이미지에 집중할 여지를 빼앗아 버렸지만

   두 장면만 이라도 오늘 기억에 담을 수 있으니.


   트리니티가 죽음 앞에서 네오에게 이런말을 합니다.(내 기억이 온전 할리 없지만...)
   "함게 한 긴 시간이 참 행복했었다..그러나 더 행복한 것은 지난날 행복했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합니다.



   레오가 영화 내내 말을 하지요.

    "내가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그 길을 가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과연 실재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쬐금은 철학적일 수 밖에 없었답니다.

   영화 관람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몇가지 결론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들은 우물 바깥에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일로만 끝마칠 것이 아니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또는
   눈에 보이는 것이 과연 실재 하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필요 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빠져들어 거기서 헤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 할 필요가 있다.'

   '우물 속은 맑은 물만 있는지 이끼만 끼여 있는지 누군가 빠뜨린 동전이 우물 바닥에는 가라앉아 있는지를

   알아 가기 위해 서라도 우물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용기의 수행이 필요 하다.' .....

 

    다음날 몇몇 도반과 함께 하루 300배 100일  기도를 입제 원인을 제공한 'The Matrix Revolutions'

 

   "함게 한 긴 시간이 참 행복했었다...그러나 .지난 날 행복했었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라고 한  트리니티 말을 가슴속으로 간직하게 된 'The Matrix Revolution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 대부로 우리에게 각인된 배우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1924) 는 올해 7월1일 타계했다

신문에 난 그의 기사를 보고도 며칠이 지난 어느날.

 

말론 브랜도의 죽음에 대한 이동진 기자의 칼럼을 보며 나는 갑자기 숨이 막히는듯 했다

장엄한 한 배우에 대해 감동하기 시작한것은 다름아닌 한 기자가 막힘없이 휘두른 그의 필봉 때문이었다.

글의 위대함을 느끼는 몇 안되는 칼럼니스트중 한사람으로 마음속으로 그의 칼럼이 나오면 어김없이

읽곤했지만 말론 브란도 타계에 대해 쓴 그의 칼럼을 보며 깊이 감동 했던것은 신들린듯이 쏟아부은 그의

필봉 때문이었다. 말론 브랜도를 싫어했던 사람마저도 흡입하는 장엄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아래에 이동진 기자가 쓴 글을 5달이 지난 오늘 꺼내보았다. - JeeJeon -

 

 

대부 (The Godfather, 1972)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Ultimo tango a Parigi, 1972)...  

 

타계한 名배우 말론 브랜도 20세기 영화史의 카리스마 

연기의 깊이에 있어서라면 로렌스 올리비에도 있고, 신화화된 정도로 따진다면 마릴린 먼로도 있다.
그러나 영화라는 새 매체의 첫 백년을 대표할 단 하나의 얼굴을 뽑아야 한다면 단연 말론 브랜도다.

 

지난 1일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브랜도는 ‘대부’ ‘워터프런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같은 대표작들로 스크린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또렷하게 새겼다.

기존의 양식화된 정통 연기 틀을 깨고 동물적 본능으로 자유롭게 즉흥연기를 일찌감치 펼쳐낸 그는 60년대

로큰롤 열풍을 포함, 지난 세기 대중문화의 폭발적 에너지 자체를 예고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1895년 시작된

영화사(映畵史)에서 20세기가 끝난 날은 2004년 7월 1일이었다.

 

‘고독한 아웃사이더 영웅’은 그의 발명품이다. 데뷔작 ‘더 멘’(1950) 이후, 오토바이 폭주족으로 등장한 ‘와일드 원’

(1953)에서 그가 입은 티셔츠와 청바지, 가죽 재킷은 선풍을 일으키며 젊음의 상징이 됐다.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겨준 ‘워터프런트’(1954)로 그는 서른에 최고 배우 자리에 올랐다. 타락한 조합 간부들을 고발하는 부두 노동자

역을 맡아 가슴 속 격렬한 내연(內燃)을 함축한 침묵과 무표정으로 내면 연기의 최고봉을 보여줬다

 

바운티 호의 반란’(1962) 이후 10년간 긴 슬럼프를 겪은 그를 부활시킨 것은 ‘대부’(1972)였다. 마피아 보스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은 그는 약한 듯 쉰 목소리에 강한 카리스마를 담아 선명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 하나를

조각해냈다. 살인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 다정히 쓰다듬음으로써 인물의 이중적 측면을

요약했고, 정원에서 손자와 놀다 불현듯 무너져내리는 연기를 통해 그의 죽음을 긴 여운으로 변주했다. ‘대부’로

다시 아카데미상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할리우드의 아메리카 원주민 묘사 방식을 비판하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민권운동에서 환경문제까지 그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한 배우였다.

 

‘대부’에서 배우 자신을 숨기는 연기의 정점을 보여줬다면 뒤이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는 정반대 스타일의

최고 경지를 선보였다. 아내 장례식을 앞두고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파괴적 섹스에 몰두하는 남자 역을 맡아 딱 한 번

자신을 온전히 드러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배우로서의 이력을 생생한 즉흥연기 대사에 담아 오랜 세월 묵혀온 한

을 폭발시켰다.

 

그의 삶의 동력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방종하고도 폭력적이었던 아버지는 평생 갈등을 빚으며 아들의 삶에 걷히지 않는 그늘을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 이름이 그와 똑같은 말론 브랜도 였다는 것은 뭘 뜻할까.

아들에게 아버지는 냉혹하게 채근하는 세상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그 아들 자신의 인정하기 싫은 그림자이기도 했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내 안에도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토로한 브랜도는 실패한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그는 아들 크리스천이 살인을 저질러 수감되는 것과 딸 셰옌이 자살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모두 아홉 명의 아이를 뒀다. 그러나 한 친구가 “정말로 자식이 몇 명인지는 자신도 모를 것”이라고 했듯,
그는 평생 수많은 여자를 전전했다. 하지만 아무도 진정으로 사랑하진 않았다. 가정 폭력의 희생자였고 알코올 중독자

였던 어머니만이 그의 유일한 진짜 애인이었다. ‘지옥의 묵시록’(1979) 때 130kg까지 불어나게 한 대식증, 수십 년

정신과 의사 신세를 지게 했던 우울증은 그를 망가뜨린 또 다른 괴물들이었다. 그는 “덜 미치려고 애쓰면서 평생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할리우드와 연기 자체를 혐오했다. “연기는 자기 방종을 낳을 뿐인 부랑자의 삶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대가로

보수를 받고 그 결과도 무가치한 것이 된다”고 한 그는 “1년 중 석 달만 연기하면 나머지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 생활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그의 삶에 빨판처럼 붙은 습관적 냉소가 아니었을까. 배역을 통하지 않고는 비명 지르는
법을 알지 못했던 이 음울한 사내에게 연기란 그 자체로 호흡 같은 것이었다. 증오하면서도 되돌아가 껴안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는 어떤 것, 그것은 찬란한 재능으로 한 시대를 사로잡았던 거인 말론 브랜도의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했다.  - 이동진기자 -   2004-07-05

 

옮김 : 2004/12/05  JeeJeon 

 

출처:지전의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