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의 주 사건은 탈옥수 매그위치의 등장과 관련해 벌어진다. 핍의 유산 증여자가 밝혀지고, 매그위치가 체포되고, 무일푼이 된 핍은 매부 조
가저리의 보살핌을 받고 그제서야 교훈을 깨닫는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상태였으므로 침대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갈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운 채 참회의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오, 하느님, 그를 축복하소서! 오, 하느님, 참 그리스도인다운 이 고결한 사람을 축복하소서!"
- 본문 387쪽에서 인용. 병상에서 눈 뜬 후 매부 조 가저리를 발견한 핍의 말.
여기서 '참 그리스도인다운 이 고결한 사람'은 원작에 'gentle christian man'이라 적혀있다. 그렇다. 젠틀맨, 신사인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소설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으로 인용되곤 한다. 신앙은 긍정하고 계급은 부정하던 당시 대중 소설의 독자,
시민계급의 구미에 실로 맞는 주제라 볼 수 있다.
한편, 사랑 없이 조건만 보고 결혼한 에스텔러 역시 고된 결혼생활을 정리한 후에 성숙해진다. 그제서야 자신를 바라보던 핍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시련이 다른 모든 가르침보다 더 강력한 교훈을 주어서, 하느님이 너를 축복해 주시기를, 그리고 하느님이 너를 용서해 주시기를!이라고
말이야. 그때 그렇게 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면, 네가 지금 이 순간에 다시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거야. 그 시련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네 심정이 한 때 어떠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에는 말이야.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데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동정심과 너그러움을 베풀어 줘.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친구라고 나에게 말해
줘. "
- 426쪽에서 인용. 새티스 저택에서 핍을 우연히 만난 에스텔라가 하는 말.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데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라니! 이 얼마나 '돌아온 첫사랑
그녀'의 대사로 어울리는가! 외워두어야겠다. 겪고도 깨우치지 못해 새로운 섶을 지고 새로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가는 여자들도 많은데, 그나마
에스텔러는 다행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핍과 에스텔라는 각각 하층과 상층 계급에서 출발했지만, 인생의 교훈을 얻은 계단의 위치는 같다. 이제
같은 높이에서 만났으니 둘에게 새로운, 더 나은 미래가 열릴지도 모른다. 소설은 둘이 함께 할 미래를 암시하며 이렇게 끝난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폐허의 장소에서 걸어 나갔다. 오래전 내가 대장간을 처음 떠났을 때 아침 안개가 걷혔던 것과
똑같이, 그렇게 저녁 안개가 그 순간 대지 위에서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밑으로 넓게 펼쳐져 나타난, 고요한 달빛 속의 그 모든 풍경
속에서 나는 그녀와의 또 다른 이별의 그림자를 전혀 보지 못했다.
- 427쪽에서 인용.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하층계급에 속하는 대장장이 조 가저리가 진정한 신사였고, 늦게 깨달은 얼치기 신사 견습생 핍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새티스 저택이, 상류
사회가, 신사라는 계급이 '폐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에스텔러의 손을 잡고 폐허를 나선다. 이제 둘의 이별은 없을것만 같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조차 나에겐 에스텔러에 대한 서술이 거의 와닿지 않는다. 에스텔러, 그녀는 이름 그대로 별stella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디킨스선생은 여성 인물을 잘 못 그려 내는듯. 반면 미스 해비셤이나 가저리 부인같이 독특한 성격을 가진, 약간 괴팍하고
사이코같은 여성은 잘 표현한단 말이야. 흠, 이상해. 이제 디킨슨 선생의 연애편력을 파헤쳐 봐야할 시간인가? -_-
또 하나, 이런 핍의 성숙을 이끌어내는 정신적 스승 겸 인도자 샤먼같은 조 가저리의 직업이 대장장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서구 문명
전통에서 연금술사와 대장장이의 역할이 생각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