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5 - 대산세계문학총서 025 대산세계문학총서 25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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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권, 삼장법사 취경길의 절반을 따라왔다. 5권에도 요약본에 늘 등장하는 유명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홍해아, 타룡, 차지국의 사악한 도사들, 통천하의 금붕어 등 막강한 요괴들이 등장한다. 얼마나 막강한지 손오공의 힘으로는 무찌를 수 없어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역시나, 원양이 한 방울도 새 나가지 않아 살코기가 맛있는 삼장법사는 요괴들에게 납치되곤 한다. 그런데 늘 목숨을 건진다. 요괴들은 삼장법사를 납치하는 즉시 요리해 먹지 않는다.  늘 손님이나 부모 친지 어르신을 초대하고 도착하기까지 기다린다. 결과적으로 요괴들은 스스로 손오공 등에게 삼장을 구할 시간을 벌어 주는 셈이다.  헐, 서부영화의 악당은 결정적 순간에 말이 많아 화를 자초하고, <서유기>의 요괴들은 너무 착해서 삼장을 못 먹는다. 아, 이 요괴들은 왜 이리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가! 게다가 지네들끼리 위계 질서는 왜 이리 잘 지키는가! 요괴월드에도 도덕과 법질서가 있다니,,, <서유기>의 세계는 결국 인간세계의 여러 면을 보여주는 거 아닌가?

 

홍해아가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되거나, 통천하 강물의 요괴가 알고보니 관음보살의 애완 금붕어였다거나,,, 이런 식으로 요괴와 사람이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변화하는 이야기 구조가 인상깊다. 이렇게 누구나 개심하고 거듭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서유기>의 세계다. 하지만 어떤 요괴는 독경 소리를 듣고 깨우치기는 커녕, 더 고약한 요괴가 되기도 한다. 이것도 <서유기>의 세계다,,, 결국 다 인간 세계이다. 내가 살고 있는. 그렇다면 <서유기>를 읽고 리뷰를 쓰고 있는 나는 사람인가 요괴인가. (그래요, 이 리뷰 액체빵 마시고 쓰고 있어요! ) 나는 내 목표에 도달할만큼 충분히 변화하는 과정에 와 있는 존재인가.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친 원숭이를 나는 어느 정도 길들였는가,,,,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심원(心猿)'이라 칭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그밖에 소소한 재미, 발견, 궁금증은 이하.

 

1 90쪽에 달린 역자 주에 따르면, 후스는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110개 성지를 방문하는 여행 이야기가 서유기에 영항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고.

 

2 본문 곳곳에서 손오공은 말장난을 즐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를 한다. 이를 중국어표현으로는 해음쌍관어(諧音雙關語)라고 하나보다. 뿐만 아니라 변소를 '오곡이 윤회하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등 서유기에는 유머가 넘친다. 제대로 된 원전 번역서로 읽지 않으면 서유기를 읽으면서도 이 맛을 못 볼 것같다.

 

3 탄탄대로(坦坦大路)는 황제가 사는 도성 앞에 뚫린 넓은 길이란 뜻의 한자어였다.

 

 

 

 

5 통천하의 요괴에게 동남동녀를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에서, 중국은 어느 시대까지 황하 등 강에 인신제물을 바쳤는지 궁금.

 

6 원래 통천하(通天河) 강물의 주인이었던 자라가 일행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네준다. 그리고 서천에 가거든 여래님께 언제 짐승의 탈을 벗고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쭤 달라고 부탁한다. 삼장은 흔쾌히 약속한다. 앗싸! 복선 찾았다. 아, 이래서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삼장 일행이 통천하에 빠지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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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4 대산세계문학총서 24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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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권은 요약본 서유기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뤄지는 중심 사건들이 다 모여있다. 손오공은 황포 요괴에게 납치된 보상국 백화수 공주를 구해내고, 금각대왕 은각대왕과 대결하며, 홍해아를 만난다. 도사에게 살해당하고 왕국을 빼앗긴 오계국 황제 이야기는 대부분 축약본에서 소개하지 않는 이야기인지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명말에 세덕당본으로 집대성된 서유기에는 도교 도사에게 미혹당하는 황제를 조롱하고 부패가 만연한 조정 시스템을 풍자하는 내용이 곳곳에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오계국 황제의 유령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정을 하소연하자 삼장법사가 저승에 내려가 염라대왕에게 고소하지 않은 까닭을 묻는 이 대목.

 

"그 도사란 놈은 신통력이 제법 정도가 아니라 워낙 너르고 커서, 천지간에 이승과 저승 할 것 없이 모든 관리들과 절친하게 사귀고 있소. 도성 안의 서낭신이 그놈과 술자리를 같이하고, 바다의 용왕들이 모두 그놈과 일가친척간이요, 동악제천이 그놈과 절친한 벗으로 사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저승의 십대 염라왕조차 그놈의 배다른 형제가 된단 말이오. 사세가 이러니, 짐도 어디다 호소할 데가 없는 거요. "

- 본문 235쪽에서 인용

 

그동안 왜 그렇게 요괴들은 삼장법사를 잡아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었는데 이번에 본문 중 금각 은각의 대화에 그 이유가 나왔다.

 

"당나라 화상이란 자는 아래 보통 승려가 아니라, 바로 금선장로가 속세에 내려온 사람으로서, 십세(十世)를 두고 수행한 아주 굉장한 인물이라는데, 도를 닦는 데 전념하느라고 원양(元陽)이 한 방울도 새어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살코기를 한 점 먹기만 해도 수명을 늘이고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걸세. "

- 본문 85쪽에서 인용

 

그런데 '원양'이 뭔지 역주에 설명이 없었다. 뭘까?

 

여튼, '십세를 두고 수행한'이란 위 인용부분에서도 보이듯, 서유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다들 전생의 인연과 죄과가 얽혀있다. 요괴나 신들도 마찬가지다. 황포 요괴가 백화수 공주를 납치해 강제로 부부의 연을 맺은 이유도 알고보니 안타깝다. 황포 요괴는 원래 천상의 별인 규성, 규목랑이었다. 그는 선녀와 사랑에 빠졌다. 선녀는 벌받아 인간계로 떨어져 보상국 공주로 환생했다. 규목랑은 황포 요괴로 변하여 공주를 납치, 못다한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지워진 공주는 요괴를 죽이고 부모에게 데려다달라고 손오공 일행에게 부탁한다,,, 이럴 수가. 요괴에게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니.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죽기 전에 총명탕을 한 드럼 마시리라고 다짐했다.

 

또 "손대성이 그것을 그냥 보아넘길 리가 있으랴. 훙포한 야성이 되살아난 그는 철봉을 휘둘러 닥치는 대로 후려갈기면서 동굴 쪽으로 다가섰다. 요괴들은 불쌍하게도 인간의 몸을 얻으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이날 이때껏 힘들여 갈고닦은 공과(功果)를 모조리 잃어버린 채 한낱 털 가진 짐승으로 돌아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본문 178~179쪽)' 이런 부분도 가슴 아프다. 난 영웅으로 등장하는 손오공보다 손오공에게 맞아 죽는 요괴에게 더 마음이 간다. 이들도 다 나름 노력하며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며 살아온 존재들이었다니 말이다.

 

'수(水, 저팔계)와 화(火, 손행자)가 서로 도와 저마다 인연이 있으니, 온전히 토모(土母, 사오정)에 의지하여 짝을 이룸이 당연하다. (본문 223쪽)' 여전히 이런 식으로 음양오행이나 도교 관련 서술이 이어진다. 가만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  당시 중국문화를 반영하다보니 자연스레 자꾸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참, '아바마마께서는 저 당나라 이세민이 왕위에 올라 스스로 황제라 일컬으며 강산을 통일하고 나서도 만족할 줄 모르고 다시 군사를 일으켜 바다 건너 땅을 정벌하엿던 사실을 상기하옵소서.(본문 316쪽)'라는 오계국 태자의 말을 보면, 바다 건너 땅을 정벌 - 당태종이 나당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침공한 사실이 언뜻 보인다. 궁금하다. 이 소설을 즐기던 명말 이후의 일반 중국 민중들은 이 정도만 언급되어도 알아들을 정도로 역사 지식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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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3 대산세계문학총서 23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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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3권, 드디어 사오정까지 합류하여 라인업이 완성된다. 삼장, 손오공, 저팔계(저오능), 사오정, 백마(용마삼태자). 이들은 각각 자신의 사명을 위해, 업을 풀기 위해 머나먼 천축국으로 떠난다. 이제야 발단이 끝나고 전개가 시작되는 셈이다. 손오공은 길을 헤쳐 나가고 저팔계는 짐을 짊어지며 사오정은 말고삐를 잡는다. 백마는 삼장을 태운다. 삼장은,,,, 걍 존재한다. 중국 고전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주인공 같지 않은 유약한 주인공(유비나 송강, 가보옥) 캐릭터의 특징을 가장 극대화시켜 구현하고 있는 인물같다.

 

3권의 큰 흐름은 황풍괴를 제압하고, 네 모녀의 유혹을 이겨내고, 인삼과를 훔쳐 먹고, 요괴에 농락당한 삼장이 손오공을 쫓아내는 이야기. 전체적으로 보아 큰 활약을 보이지 않던 용마가 미모의 시녀로 변신해 검무를 추기도 하는 등, 다른 편에서 못 볼 활약을 보여 준다. 이렇게 많은 재능을 그동안 어떻게 숨겨두고 말 노릇만 묵묵히 했나 싶다.

 

나는 어릴적부터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와의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했다. 앞서 <현장 서유기>를 읽으면서 요괴와의 대결이 경전 토론 배틀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점은 처음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막, 고열, 모랫바람 등등 여행길에 겪게되는 자연적 고난, 재해였던 것 같다. 이번 3권에서 황풍대왕의 바람(29쪽) 묘사를 보니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겠다. 이렇게 힘든 여행길, 왜 근두운을 타고 쉽게 가지 않고 이들은 사서 생고생하는 것일까? 그 답이 되는 "사부님은 범태 육골이라 무겁기가 태산 같아서, 내 구름 가지고는  사부님을 모셔갈 수 없소."  "태산을 옮겨 보내기는 겨자씨보다 더 가볍지만 인간을 데리고 홍진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라는 대화가 이번 3권의 62쪽에 나온다. 현장이 인간, 죄업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 육체의 물리적 무게, 라기보다는 영혼의 죄업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다는 것. 그래도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우리 인간에게도 구원의 길은 있다. "다만 우리 사부님은 이역 만리 궁벽한 땅을 고생해가며 두루 편력하시지 않고서는 고해를 초탈하실 수가  없단 말일세.  " 아아, 백마 탄 왕자 현장이 싸돌아다니는 것에는 이런 슬픈 이유가 있었다!

 

또 궁금한 것은, 소설에 계속해서 보이는 도교 외단술(신선의 불로장생 선약을 만드는 방법)의 서술이다. 이번 3권도 55쪽을 보면 "우선은 영아와 차녀를 거두고 다음에는 목모(木와 금공(金公)을 내놓았다"라는 서술이 있다. 역자 주를 보니 목모는 도교 내단술 용어로 수은을 의미한다고 한다. 수은은 해(亥)를 낳는데, 해는 돼지이므로 목모는 저팔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풀어가면 금공은 납, 납은 경을  낳는다. 경신(庚申)은 금, 신(申)은 원숭이이므로 손오공이라고 한다. 그럼 손오공과 저팔계의 티격태격이 다 납이 수은을 만나 황금으로 변하는 과정을 의미한 것일까? 고된 취경길 이후 죄업을 씻고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황금이 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소설을 빌어 도교 연금술의 비법을 서술한 것일까? 이거 서유기 코드인가? (이 부분은 아무래도 나카노 미요코의 <도와 연단술의 심벌리즘 : 서유기의 비밀>을 읽어봐야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3권 최고의 상상력은 인삼과 부분이다. 나는 어릴 적에 <서유기>이야기를 읽고 인삼과 이야기에 매혹당했다. 중국의 인삼과 아기가 자라서 조선에 와서 전설의 고향 출연,내 다리 내놔, 하며 쫒아오는 산삼귀신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상상도 했다.

 

손행자는 나무 밑에 기대어 서서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과연 남향으로 벌어진 나무 가장귀 위에 인삼과 한 개가 드러나 보이는데, 정말 갓난아기와 똑같이 생겼다. 꼬리 부분에는 꼭지가 있어 가지에 매달려 있고 손발을 마구 휘저으면서 끄덕끄덕 고갯짓도 할뿐더러, 바람결이 스쳐가는 대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 본문 155쪽에서 인용

 

116쪽에 달린 역자 주에 따르면, 인삼과는 먹으면 불로장생하는 사람형태의 신비스런 영약이란다. 그런데 도교에서는 이런 사람 형태의 영약이 또 있다고 한다. <포박자> 선약 편에는 동물처럼 움직이는 '육지'와 나무뿌리에 달린 '인형복령'이 등장한다고. <선술비고>에 양정이라는 사람이 물을 길러 샘에 가다가 아주 깔끔하고 새햐얀 어린애 하나가 샘터에서 놀고 있기에 하도 귀여워 집에 데려갔는데, 집에 당도하고 보니 어린애는 마치 나무뿌리처럼 빳빳하게 굳어져서 인형복령이라는 것을 알고 먹었더니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그런데 아기 형태의 영약, 도교 연단술에서 납을 의미하는 '영아(嬰'의 다른 버전 이야기 아닐까? 혹시 이거 이거,,, 아이 유괴와 식인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 아님?하는 지극히 껌정다운 생각도 드는데? 서양의 맨드레이크(만드라골라)와 우리나라 동자삼 전설은 또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흠. 더 파 보리라! 껌오정의 취경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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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2 대산세계문학총서 22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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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 와서야 삼장법사의 취경 여행이 시작된다. 몰래 국경을 넘어가던 현장의 역사적 사실과 달리, 소설에서 삼장법사는 당태종의 의동생이 되어 전폭적 지지와 협찬을 받아 떠난다. 그 이유는 11회에 드러난 당태종의 저승 유람에 나와 있다.

 

출발하자마자 삼장법사는 호랑이 굴에 빠진다. 이는 아마 시종을 다 잃게 만드는 장치겠지? 이어 손오공을 구해주고 제자로 삼아 함께 여행한다. 백마로 변신한 용왕의 아들인 용이 삼장을 모시는 데 합류한다. 16회는 관음선원에서 보물인 금란가사를 도둑맞는 이야기다. 이 일화는 남에게 헛된 자랑을 삼가라는 의미가 있는 듯. 어떻게 보면 서유기가 마음 수양 여정을 우의적으로 돌려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고로장 사위인 저팔계 등장이요! 그 역시 제자가 되어 취경 여행에 합류하게 된다. 제 1권이 손오공 위주라면 이번 제 2권은 저팔계 위주이다. 팔계는 오훈삼염(五葷三厭 즉 마늘 부추 파 달래 생강, 기러기 뱀장어 개)을 먹지 않는 계율을 지켜서 팔계이다. 물론 성은 돼지 저(猪). 식욕과 성욕이 강하며 쇠갈퀴 하나로 척척 농삿일을 해 내는 저팔계는 중국 농민의 전형적 성격을 반영한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다. 죽었다가 당태종의 여동생 옥영궁주의 몸으로 환생한 여자가 궁궐을 보고 "황달 걸린 병자들이나 사는 싯누런 집구석"이라고 말하는 대목(57쪽)이나 "늙은 호랑이가 동헌에 자리 잡고 앉았으며, 푸른 이리 떼가 낭청에서 주부 노릇을 한다. 사자와 코끼리는 저마다 왕이라 일컫고, 호랑이와 표범은 저마다 임금 노릇을 하고 있느니"라고 읊는 대목(324쪽)을 보면 체제 비판적인 면도 꽤 있어 보인다. 이는 아마 여러 서유기가 집대성되어 오승은에 의해 세덕당본으로 정착되는 1592년, 명말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이리라.

 

나는 서유기와 도교, 연금술 관련 부분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 책 296쪽에서 실마리를 조금 잡은듯하다. "영아(嬰兒)와 차녀(䒲女)로 음양을 배합하니, 납과 수은이 서로 어울려 일월을 분간했다." 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영아는 갓난아기가 아니라 선약을 구워 만들 때 쓰는 납을 가리킨다고 한다. 유레카! 이렇게 본문 주석에 도교, 불교 관련 지식들이 나와 있어서 이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앞길에는 스스로 도와줄 신명(神 있으리니, 고되고 어렵다고하여 경을 가지러 가는 길을 원망하지 마라.

- 본문 109쪽에서 인용

 

위는 삼장 법사에게 태백금성이 남긴 쪽지에 적힌 말이다. 이 부분 읽고 마음이 좀 말랑말랑해졌다. 서유기는 경을 가지러 가는 구도의 길이다. 서유기를 읽고 메모해가는 나의 길 역시 나의 경, 나의 글을 가지러 가는 구도의 길이다. 아, 그렇다면 지금 날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글벗들은 다 나의 태백금성님들이시구나. 이런,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다 못해 분홍분홍해지는 걸. 후후.

 

1권에서는 여우 요정, 이런 식으로 나와 좀 그랬는데 2권부터는 '요괴'로 번역되어 나온다.

 

그외 궁금증:

1 서유기랑 상관 없지만, 영아가 납을 의미하는 연금술적 상징어라면, 에밀레종 전설처럼 아기를 희생시켜 금속광물 관련 작업을 하는 전세계의 설화 역시 제작과정을 설명하는 한 상징이었을뿐인가?

2 손오공이 변신했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한 손으로 얼굴을 쓰윽 훑어내려 본색을 드러냈다(293쪽)"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거 변검 등 중국 연극의 영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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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2-01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유기 읽고싶어져요. 예전에 읽은 기억으론 (빨간양장 금박 글씨 전집...같은..) 요괴들이 보통 사람으로 변신해서 친해지다 탄로나고 .. 그런 장면들을 재밌어 했어요.ㅡㅡ

자유도비 2015-02-01 13:09   좋아요 0 | URL
그 요괴들, 알고보면 원래 귀여운 애들이 많더라고요. 관음보살댁 연못의 애완 금붕어 같은,,, 하하.
 
서유기 1 대산세계문학총서 21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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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에 꽂혀서 이 돌원숭이의 여정을 뒷북치며 허겁지겁 따라 가고 있다. 영화 <와일드>를 봐도 자신의 마음을 찾아 가는 서유기의 아류작으로 보일 지경이니,  이거 단단히 꽂혔나보다.

 

어린이, 청소년용 축약본으로 워밍업을 한 후 완역본을 찾아 보니 문지사 본과 솔 출판사 본 두 종류가 있다. 해요체로 풀어 번역한 것 등으로 보아 줄거리를 빠르게 따라 가기에는 솔 출판사 본이 읽기 편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고전을 읽을 때는 고전적 문체의 육질을 질겅질겅 씹어 즐기는 성격이라, 문지사 본으로 선택했다. 뭐, 문지사 본으로 일독한 후에 솔 출판사 본으로 또 읽으면 되니까, 이 책 저 책, 이 번역 장점 저 번역 장점 다 내가 가려 섭취하면 그만이니까. 이럴 때는 백수래서 행복해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하하. 

 

제 1권의 내용은 이렇다.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 손오공이 원숭이 대왕 미후왕이 되고 도술을 배운 후 천궁에서 말썽을 부려 오행산에 갇히는 내용이 제 1회에서 7회, 나머지는 삼장법사의 취경 여행의 배경이 되는 진현장 부모와 당태종의 이야기이다.

 

역시, 읽어나가면서 완역본의 맛과 멋에 흠뻑 빠져든다. 내가 어릴적 읽었던 삼국지와 서유기는 이단 조판에 세로줄 짜임이었고 고풍스런 목판화 삽화가 실려 있던 목침만한 책이었다. 그래서 축약 동화책으로 읽은 독자들에 비해 나는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현장 부모와 당태종 관련 이야기는 처음 읽었다. 그 이유는 역자가 세덕당본의 부록에 있던 진현장 부모의 일화를 제 9회로, 경하 용왕과 당태종 일화를 제 10회로 넣어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덕당본<신각출상 관판대자서유기>을 기본으로 하고 <이탁오 선생 비평 서유기>와 대조 검토해서 구성한 중국 북경인민출판사 본을 번역했다. 역자는 0000 4자 곱하기 4행으로 구성된 송(頌)도 운율감을 살려 번역해주셨다. 독자에 따라 고루한 번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나는 이 점이 참 좋았다. 나는 <춘향전>등 판소리계 소설의 운문체 낭송체 문장을 전부 현대식 산문 문장으로 바꾸어버리는 스타일의 고전번역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당시의 고전을 당시의 형식대로 보는 것도 고전 읽기의 큰 맛이라고 생각하기에.

 

경을 가지러 가는 사람 아홉을 잡아 먹은 후 해골은 물 속에 던져서 버리는 사오정. 그런데 아홉 사람 해골만은 물 속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 있다. 사오정은 신기해서 해골 아홉개를 건져 끈으로 꿰어 심심할 때마다 꺼내서 가지고 논다. 그러다 스스로 무언가 깨닫게 된다. 본문 262쪽 이야기인데, 내 이야기 같아 가슴에 와 박힌다.

 

그외 궁금증 :

1 왜 돌에서 원숭이가 태어날까? 여러 선생님들의 해석에는 천지기운의 감응,,,, 이 정도인데 나는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전세계 설화에 돌에서 태어난 생명의 이야기가 심하게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 민간전승에는 돌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도 있다.

2 손오공은 왜 심원(心猿), 즉 마음 원숭이라고 불릴까? 서유기는 손오공처럼 오만방자한 마음을 찾아가는 이야기인가? 십우도?

3 진현장의 모친은 아기가 죽임당할까봐 널에 묶어 아기 현장을 강물에 띄워 보낸다. 이거 모세와 페르세우스 이야기이다! 이들의 관련성은? 영웅 설화의 기본적 설정이라면 근본 모티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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