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10 - 대산세계문학총서 030 대산세계문학총서 30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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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10권이다. 이번 10권은 1~9권보다 월등히 두꺼운데, 그건 200여쪽에 달하는 역자 해설이 부록으로 함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325쪽까지만이다.

 

삼장 일행은 옥화성을 떠나 금평부에 있는 자운사에 머무른다. 여기서 소합향유를 공양받는 존재들을 만나는데, 그곳 사람들은 이들을 부처님 세 분이라 말한다. 이에 삼장이 절하자 역시나 납치된다. 이들은 부처가 아니라 소머리 귀신, 코뿔소 요괴들이었다. 손오공은 규목랑 등 네 별자리와 힘을 합쳐 요괴들을 퇴치한다. 여기서 잠깐, 인도의 소 요괴들과 대결하는 것은 혹시 힌두교와 불교의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불교 설화에 보면 힌두교와 불교 승려가 대결하는 장면에서 소와 사자의 환영이 공중에 나타나 싸우는 장면도 있던데.

 

손오공은 사위국 공주로 변신한 요괴를 퇴치하고 진짜 공주를 찾아 준다.  공던져 결혼하기 이벤트를 꾸며 1년동안이나  첫날밤 그의 원양진기를 빼앗아 태을상선이 되기로 음모를 꾸며 놓고 있었던(98)' 여요괴는 알고보니 달나라 옥토끼였다. 월궁의 주인인 태음성군이 와서 옥토끼를 데려간다. 마음이 많이 여유있어진 손오공은 요괴의 본모습을 보고도 예전처럼 단매에 때려 죽이려고 봉을 꺼내들기는 커녕, 옥토끼를 귀여워한다. 오, 손오공 너 많이 변했다? 뿐만 아니라 삼장도 둘째만 편애하는 어리석은 가부장 같은 모습을 보이던 지난 1~9회와 달리 이제는 제대로 헛소리하는 저팔계를 야단치고 옳은 말하는 손오공을 두둔한다. 이들, 다 성장하고 있었다.  

 

이어 구원외 부자의 지극한 공양을 받는 일행. 이어지는 환대를 거절하고 떠나는 날 하필 구부자집에 도둑이 든다. 부인을 호의를 거절당한 것이 분해 앙심을 품고 일행을 고소, 손오공이 해결하고 구부자도 염라대왕에게 말해서 살려준다.

 

*** 주의! 조만간 <서유기> 완역본을 읽을 계획이 있으신 분은 이 이하 읽지 마세요. 서유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드디어 여래 계신 영취산에 이르렀다.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 법, 역시 취경일행은 세찬 강물을 만난다.  위태로운 외나무 다리만 있을뿐. 일행이 못 건너고 있자 부처가 뱃사공으로 변신해서 밑바닥이 없는 배로 건너준다. 이때, 상류에서 사람 시체가 한 구 떠내려오는데,,, 바로장이었다! 이 대목,  역자 주에 따르면 당나라 스님이 능운도에서 육신의 껍질을 벗고 성불하는 과정은 불교의 해탈이 아니라 도가의 이른바 시해(尸解)과정이었다. 해탈은 곧 속박과 고통의 번뇌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신적 자유 상태에서 도를 깨쳐 평온한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인데, 도교의 시해는 뱀이나 매미처럼 껍질을 벗고 날아오르듯 속세에 더렵혀진 육신을 버리고 우화등선하는 방식이다.(245)’ 라고 하니, 불교이든 도교이든 삼장이 취경여행을 통해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근데,,,,이 대목 읽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들의 취경 여행을 따라온 나는 그럼,,,, 책을 놓고 이런 생각을 한참 멍하게 했다. 아마 장편 소설을 읽는 맛이 이런 것이 아닐까. 줄거리 요약하면 별 거 아닌데 하나하나 등장 인물들의 궤적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전체적으로 묵직하게 뭔가 느낌이 다가오는 맛. 차근차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미련하게 읽지않고 다이제스트 판으로 접하면 절대 느낄 수 없는 맛.

 

여튼 일행은 부처님 만나 5048권 불경 받고 돌아가게 된다. 아난과 가섭의 대가 요구를 거부한 탓에 글자 없는 백지를 받아가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유자진경으로 바꿔 간다. 이 과정에 걸린 시일이 십 사년, 오천 사십 일인데 여드레 모자라 경전 수효인 5084에 안 맞기에 일행은 8일만에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시해과정을 통해 삼장도 범태육골을 벗은 지라, 개고생하며 걸어 올 때와 달리 이번에는 팔대금강의 구름을 타고 날아간다. 그런데 구구 81인데 지금까지 겪은 재난은 80난이다. 아직 한 재난이 남았다. 이들은 추락한다. 주위를 보니 통천하였다. 강 건너 갈 일을 찾아보는데 예전의 그 자라가 나타나 등에 태워 강을 건네 준다. 그러나 자라의 부탁을 삼장은 잊었다. 자라는 심통나서 일행을 빠뜨려 버린다. 이제 완성 되었다. 일행은 강 기슭에서 경을 말리고 다시 날아 당태종 앞에 경을 내놓고 다시 날아 서천으로 돌아온다.  현장은 전단공덕불, 손오공은 투전승불, 저오능은 정단사자, 사오정은 금신나한, 백마는 팔부천룡이 된다. 마지막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손오공이 머리를 가리키며 부처님께 부탁한다.  송고주를 외워 금테 벗겨 달라고. 그러나 손오공은 취경 여행길에 이미 성불하지 않았는가. 부처는 말한다.  “그것이 아직까지 네 머리에 씌워져 있을리 있겠느냐?” 아아, 그렇구나. 걍 의식하지 말고 걱정하지 않고 하루하루 오늘 걸을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면 나를 옭죄던 것들이 어느덧 자연스레 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 한번 더 책을 놓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 여기부터는 다시 읽으셔도 됩니다. ^^

 

자, 이제 나의 취경여행을 마쳤다. 어떻게 이 마지막 리뷰를 마무리할까. 살짝 고민하다 서유기 각 장의 마지막 문장의 형식을 빌려 마친다.

 

"서유기 완역본 10권을 다 읽은 껌정요괴. 과연 이번 취경독서여행으로 그녀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또 어떤 황당하고 신선한 역사 이야기를 써 낼지, 여름에 나올 껌정의 다음 새 책에서 풀어보기로 하자. "

 

(껌정의 취경독서여행 정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 http://blog.yes24.com/document/7946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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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9 - 대산세계문학총서 029 대산세계문학총서 29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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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에 이르러, 취경 일행은 이제 천축국 변방에 이른다. 부처님이 계신 서천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괴는 우굴거린다. 손오공은 매우 침착해져서 점점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앞의 8권에서 구해준 여자는 요괴의 본성을 드러내고 삼장을 납치한다. 알고보니 탁탑이천왕과 나타태자를 아버지와 오라버니로 섬기고 있는 쥐 요정이었다.  이렇게 부처님이나 보살, 천상 존재들과 관련이 있는 요괴들은 한편으로 보면 중앙 권력자들과 사적 관계로 결탁해 부정을 저지르는 지방 지배자들인 것도 같다. 손오공이 요괴와의 관계를 들이대며 추궁하자 쩔쩔매는 신적 존재들을 보라. 

 

손행자는 고래고래 악을 썼으나, 요괴는 아예 못 들은 척 달아나기에 바쁘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뒤쫓겨 거의 따라잡힐 지경에 처하자, 그녀는 왼발에 신고 있던 꽃신 한 짝을 벗어들더니 선기 한 모금 불어넣고 주어를 외우면서 외마디 호통을 쳤다.

변해라!“

주술에 걸린 꽃신 한 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요괴의 모습으로 둔갑하더니 여전히 두자루 칼로 쌍검무를 추어가며 손행자에게 맞서 싸우고, 그녀 자신은 번득하는 찰나에 일진청풍으로 화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 본문 44쪽에서 인용

 

 

이어 멸법국왕을 삭발해 개심하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유머러스하게 서술된다. 역시 리디큘러스 마법은 폭력보다 세다. 이제 인도로 들어 섰다. 이곳은 천축 변방에 속한 외곽 고을로서, 지명을 봉선군이라 부르오. (232)’  봉선군에 온 손오공 일행은 하늘을 모독하여 가뭄이 든 봉선군이 죄업을 뉘우칠 방도를 알려준다. 이 부분에서 가뭄과 기근을 겪는 백성들의 고통을 묘사한 대목을 자세히 읽었다. 아무리 인도 변방이 공간적 배경이라해도, 분명 이는 명말 사회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유한 백성은 그나마 여축해놓은 식량으로 간신히 살아갈 수 있으되, 빈궁한 백성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어렵다. 좁쌀 한 말에 백 금의 값어치요, 땔나무 한 단에 닷 냥 값이나 주어야 살 수 있다. 열 살짜리 계집아이를 쌀 석 되와 맞바꾸며, 다섯 살짜리 사내아이는 아무나 데려가는 대로 맡겨두는 실정이다. 성내 백성들은 국법이 두려워 죄를 저지르지 못하고 의복과 물건을 전당포에 잡혀 겨우 목숨을 부지하나, 시골에서는 관청의 위엄을 능멸하고 노략질을 하거나 심지어는 사람을 잡아먹으며 연명하고 있다.

- 본문 23쪽에서 인용

 

일행은 천축국 옥화현에 이른다. 삼장은 법회를 열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옥화친왕 세 왕자를 각각 제자로 받아들여 무예를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손오공들의 병기를 훔쳐간 호구동 사자 요괴들을 퇴치한다. 역시 확실히 인도로 들어왔구나. 사자가 등장하니 말이다.  각 여정에서 등장하는 요괴들은 확실히 각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이나 자연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10권 남았다. 100장으로 구성된 장회소설인 <서유기>는 장터에서 구연되던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각 회의 마지막은 다음 회를 안내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과연 이번에 나아가는 길에 또 어떤 우여곡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다음 회에서 풀어보기로 하자. (125쪽)'는 식으로. 자, 이제 마지막 10권에선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 책을 집어들기가 아쉬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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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6 대산세계문학총서 26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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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은 참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다. 유머가 넘치고, 요괴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좋은 문장 하나 건지기도 했다.

 

금두동 마왕은 워낙 강력해서 손오공의 힘으로 감당이 안 된다. 손오공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보지만 불과 물의 공격으로도 마왕을 꺾을 수가 없다. 원래 주인인 태상노군이 와야만 마왕은 잡힌다. 마왕은 원래 태상노군 외양간의 청우, 푸른 소였다. 집 나간 소, 이건 집 나간 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십우도(十牛圖)에 나오는 심우(尋牛) 이야기일까? 취경일행이 아직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인지, 9권에 대거 등장하는 인동의 소 요괴들과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태상노군은 금강탁에 숨 한 모금을 훅 불어넣어 괴물의 콧구멍을 꿰뚫은 다음, 도포에 둘렀던 허리띠를 끌러 가지고 금강탁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손으로 잡아끄니 고삐가 되었다. 지금도 쇠코뚜레를 만들어 쓰는 풍습이 남아 있어 '빈랑(賓郞)'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이때부터 생겨난 관습이라고 한다.

- 본문 83~ 84쪽에서 인용

 

위 인용부분처럼, 서유기 이야기와 현실 관습의 유래를 연결하는 서술도 재미있다.

 

어린이용 축약본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삼장과 저팔계의 임신 에피소드도 이번 6권에 있다. 자모하 강물을 마시고 잉태한 삼장과 저팔계. 손오공은 낙태천의 물을 떠 와서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둘을 낙태시킨다. 물론 낙태천을 지키는 요괴와 대결해 이겨서 물을 얻는다. 여기서 잠깐. 살생을 금하는 불교 수도자들이 왜 낙태를 하지? 이거 이해 안 된다. 여튼 이 지역은 여자들만 사는 여인국이었다. 그래서 잉태를 하려면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여인국이라, 또 삼장이 여난을 겪을 것이 뻔하다.  맛있는 고기 때문에 요괴들에게,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인간 여자들에게 시달리는 삼장은 서량여국의 여왕과 결혼할뻔하다 간신히 탈출한다.

 

그러나 탈출하는 순간, 삼장은 여왕보다 무서운 여괴에게 납치당해 또 신방에 들게 된다. 이 내용이 55회인데 제목은 '색마는 음탕한 수단으로 당나라 삼장 법사를 농락하고, 삼장은 성정을 지켜 원양을 깨뜨리지 않다." 이다. 여기에서 역자분은 원양을 '동정'이라 풀이하셨다. 어? 원양이 그냥 동정인가? 지금까지 정액으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이번 6권의 "내 원양(元陽)을 상실하여 불가의 덕행을 망치고 진정(眞精)을 쏟아낸다면,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몸을 타락시키게 될 것 아니냐?(134쪽)" "나의 진양(眞陽)은 지극한 보배요. 내 어찌 경솔하게 그대처럼 분 바른 해골바가지에게 넘겨주리오?(169쪽)" 이런 서술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다른 책에는 '원양이 한 방울도 새어 나가지 않은' 이런 서술도 있는데. 도대체 원양이 뭘까? (맨날 서유기 리뷰 쓸 때마다 원양 타령하니까 내가 좀 변태같지만, 이 글을 읽는 친구분들은 나의 학구적 탐구심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 )

 

워워, 돌아가자. 알고보니 이 색녀요괴는 전갈요정이었다. 그래서 무기도 독침이다. 아마도 취경 일행이 지나가는 중앙아시아 사막의 위험을 의인화한 것 같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전갈요괴를 물리치는 묘일성관은 커다란 수탉이라는 것. 지네와 닭은 천적이라는 설명이 본문에 나온다. 이렇게 <서유기>에는 중국 민간 설화와 풍습, 속담이 많이 담겨 있다.

 

"당신, 아주 벽창호로군! 이런 속담도 못 들어봤소? '굵다란 버들가지로는 키를 엮어 쓰고, 가느다란 버들가지로는 열 되들이 됫박을 엮어 쓰니, 도구의 쓰임새는 저마다 달라도 똑같은 버드나무요, 이 세상에 제 아무리 추접스레 생겼어도 사내는 사내'라고 했소이다."

- 본문 131쪽에서 인용

 

위 인용부분은, 삼장법사만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자 저팔계가 속담을 인용하여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곳곳에 중국 속담이 나온다. 재미있다.  

 

취경 일행 사이의 최고의 갈등도 이번 6권에 있다. 손오공이 요괴도 아닌 인간, 산적떼를 때려죽이자 삼장은 손오공을 추방한다. 쩨쩨하게 죽은 시체 앞에서 불경 드리면서 삼장은 '저승가서 나를 고소하지 마라, 너희를 죽인 것은 손오공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실망한 손오공은 삼장 일행을 버리고 떠나 관음보살에게 의탁한다. 하지만 역시 손오공이 떠나자마자 일행에게 위기가 닥친다. 사오정이 손오공을 모시러 본거지로 가 보니 가짜 손오공이 가짜 삼장, 가짜 저팔계, 가짜 사오정을 만들고 경을 가지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 완역본을 읽기 전에는, 이 에피소드가 <옹고집전>의 진옹 가옹 이야기처럼 단순 재미를 위한 것인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다. 58회의 제목은 '마음이 둘로 갈리니 건곤을 크게 어지럽히고, 한 몸으로는 참된 적멸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다. 두 명의 손오공은 두 마음이었던 것이다. 취경여행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 이렇게 두 마음. '사람에게 두 마음이 있으면 재앙이 생겨서(271쪽)'라는 대목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또 석가여래는 두 손오공이 재판해 달라고 싸우면서 오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 저기 보아라, 두 마음이 서로 다투면서 달려오고 있지 않느냐?(274쪽)' 아, 그래서 손오공이 심원(心猿)이었구나. 시련을 겪고 납에서 황금으로 되는 마음.

 

가짜 손오공을 밝혀 퇴치한 후, 삼장은 다시 손오공을 받아들인다. 일행은 화염산에 이르러 서쪽 길이 막힌다. 손오공은 불을 끄기 위해 나찰녀의 파초선을 빌리러 간다. 나찰녀는 우마왕의 본처이고 옥면공주는 우마왕의 첩이다. 우마왕은 현재 옥면공주와 살고 있다. 손오공은 이 삼각관계 사이를 사인,코사인,탄젠트로 바삐 오가며 열심히 거짓말을 해서 파초선을 손에 넣는다. 그런데, 이들의 삼각관계에서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느니,

 

"그곳에는 애당초 만년호왕이란 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 여우 임금이 죽을 때 딸을 하나 남겨두었습니다. 딸의 이름은 옥면공주라고 부릅니다. 이 공주는 백만장자의 재산을 가지고 있느나 그것을 관리해줄 사람이 없어 이곳저곳 수소문하던 끝에, 이 년 전 우마왕을 찾아갔다가 신통력이 굉장한 것을 눈여겨 보고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남편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마왕은 나찰녀를 버리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 본문 317쪽에서 인용

 

"내 부모가 돌아가시고 의지할 데 없어서 네놈을 모셔다가 보호나 받고 살아가려 하지 않았더냐! 세상에서 네놈을 제법 호걸 노릇하는 놈이라고 하기에 그런 줄 알고 믿었더니만, 이제 봤더니 여편네나 무서워하는 졸장부였구나!"

- 본문 325쪽에서 인용

 

당시 여성들의 입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뭇 남성들의 먹잇감이 되는 미혼 상속녀. 자신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할수없이 첩살이를 선택하는. 아아, 요괴도 여성으로 태어나면 시대적 한계 때문에 살기 힘들었구나야!

 

아무튼, 6권 최대의 소득은 이 문장이다.

"저기 보아라, 두 마음이 서로 다투면서 달려오고 있지 않느냐?"

서유기, 나의 취경여행을 마치면 서로 다투면서 달려가던 내 두 마음이 편해질까. 글쎄. 그저 읽고 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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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8 대산세계문학총서 28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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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태세 마왕은 늑대 괴물이었다. 이번에도 관음보살이 제압한다. 이어 손오공 일행은 반사동에서는 일곱 미녀 요괴와 황화관 도사를, 사타동에서는 늙은 마귀를 물리친다. 비구국에서는 희생당할뻔한 천 명의 아이들을 구해준다. 원양을 기르고자 배필을 구하려 하는 색녀가 삼장을 납치해가자 구하러 가는 것으로 8권이 끝난다.

 

사실 제천대성은 하늘도 겁낼 만큼 무서운 영웅호걸이기는 하지만, 당나라 스님을 따르게 되면서부터 속이 많이 트였다. 그는 요사스런 마귀가 슬픈 목소리로 애걸복걸 빌어가며 자기를 떠받드는 것을 보니, 차마 더 이상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줄어들고 착한 마음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서해주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다짐을 받았다.

"요괴야 내가 네놈을 용서해주면, 어떻게 우리 사부님을 모시고 이 산을 넘어가게 해드릴 작정이냐?"

- 207쪽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단에서 볼 수 있듯, 7권에 이어 손오공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리고 손오공이 부처와 보살의 힘을 빌리는 대목이 점점 빈번해진다. 아아, 이렇게 주제의식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이제 여정의 끝이 보이기 때문인 건가.

 

환상소설이지만 은근 원전 <대당서역기>를 반영한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삼장이 방문하는 나라의 국왕에게 자기 소개하는 대목에서 '대당나라(299쪽)'를 말하는 것을 보니 실제로 현장이 천축국에서 고국을 '마하지나'라고 소개한 것이 생각났다. 또 여정에서 뒤로 갈수록 서역인의 외모를 한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것도 사실적이다.

 

아참, 8권이나 읽어서야 발견한 사실이 있다. 황화관 도사인 백안마군은 차에 독이 들은 대추를 넣어 손오공 일행을 죽이려 든다. 알고보니 그는 겨드랑이 양 쪽에 1천 개의 눈알이 달린 다목괴, 지네정령이었다. 여기서 잠깐, 독지네니까 독을 사용하는 거 아닌가? 어이쿠, 지금까지 읽어오면서 요괴의 본모습과 살생시 사용하는 방법이나 무기를 연관지어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다시 1권으로 돌아가서 읽을 수도 없고. 아, 아쉽다.

 

해골바가지는 산더미처럼 쌓이고, 뼈다귀는 숲을 이루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담요를 짰는가 하면, 벗겨낸 가죽과 살덩어리는 썩어 문드러져 시궁창에 수렁이 되었다.

- 167쪽에서 인용

 

위는 요괴 소굴을 묘사한 대목이다. 아우슈비츠의 머리카락 담요가 생각났다. 아놔, 요괴가 환상소설에나 있으면 좋으련만. 이건 너무 사실적이잖아.

 

갑자기 우울해지니, 한 문단 더 인용한다.

 

"저 당나라 화상은 동신(童身)으로 수행을 쌓은 놈이라, 그 몸에서 원양(元陽)이 한방울도 빠져나가지 않았으니, 저놈을 잡아서 나하고 몸을 섞기만 하면 태을금선이 되는 것즘 문제가 안 될 터인데, 뜻밖에도 저 밉살맞은 원숭이 녀석이 내 술책을 꿰뚫어 보고 화상을 구해 갈 줄이야! "

- 359쪽에서 인용

 

뭐 중요하지는 않지만, '원양'의 뜻에 관심가지시는 친구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그런데 삼장은 등신 아니고 동신임. 걍, 학구적 의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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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7 대산세계문학총서 27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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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은 7권에도 연이어 만만찮은 요괴들과 대적한다. 파초선을 가진 우마왕과 나찰녀 부부와 싸우고, 재새국 금광사의 보물을 훔쳐간 도둑요괴를 물리치고 보물을 찾아주어 스님들의 누명을 벗겨준다. 나무요정의 초대에 응해 시를 읊다가 얼떨결에 장가갈뻔한 삼장을 구해내고 가짜 소뇌음사의 황미대왕의 황금바라에서 가까스로 탈출하기도 한다. 의원 흉내를 내서 주자국 국왕의 병을 고치고, 새태세 마왕에게 잡혀간 금성궁을 구하러 간다.

 

이번 7권을 다 읽고나니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요괴를 무찌르는 패턴에 변화가 생긴 것이 느껴진다. 손오공은 전에 비해 진중해졌다. 무지막지하게 요괴만 보면 날뛰지 않는다. 전에는 꼭 필요하지 않은 살상도 저지르고 위협 당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폭력적 본성을 억누르는 편이다. 그래서 삼장이 손오공의 머리를 옭죄는 긴고아주 주문을 외우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요괴들은 전에 등장하던 요괴들보다 강력해진다. 겸손해진 손오공은 자신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부처님 힘을 빌리러 간다. 우마왕은 금강보살이, 황미대왕은 미륵보살이 도와 퇴치한다. 뭐랄까, 점점 주제에 다가가는 느낌이 온다.

 

우마왕과 손오공이 변신술법 재간을 겨누는 장면이 재미있다. 우마왕이 황새로 변해 도망가자 손오공은 보라매로 변해 황새를 잡는다.  우마왕이 사향노루로 변해 도망가자 손오공은 호랑이로 변해 잡는다,,, 이런 식의 변신 대결이 이어지는데, 오, 이 장면 익숙하다! 이거 <동국이상국집>에서 유화에게 청혼한 해모수를 하백이 시험하는 장면과 같다. 하백이 꿩으로 변해 달아나면 해모수는 매로 변해 잡고, 하백이 사슴이 되어 달아나면 해모수는 이리로 변해 잡는,,,, 그 장면이다. 또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강의 신 아켈로오스를 다스리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외, 많다. 이런 화소는 무엇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서유기>는 원전격인 현장의 <대당서역기>가 씌여진 당태종 시절과, 오승은의 세덕당본 서유기가 출판된 명말기의 배경을 다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그런데, 1권에서도 등장했던 당나라 승상 위징이 경하 용왕의 처형과 관련, 계속 나온다.

 

"법사, 그 현명한 신하는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오?"

"바로 우리 임금 아래 있는 승상으로서 성씨는 위이며 이름은 외자로 징이라 하옵니다. 그는 천문 지리를 꿰뚫어 통달하고 음양을 파별할 줄 아는 안방입국의 위대한 재상이옵니다. "

- 본문 267쪽에서 인용

 

위징,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7세기 당나라 승상인데 16세기 이후까지 이렇게 대중 소설에 등장하는가? 이점이 궁금한데,,,, 당 역사, 당태종, 위징, 정관정요,,, 등등을 파봐야 하나? 아, 이거 서유기 읽기 시작했다가 끝이 없네. 후~ (먼산 보고 한숨)

 

 참, 그리고 내게는 이런 복선 너무 웃기다. 새테세란 요괴가 주자국 국왕이 총애하는 금성궁 마마를 납치, 3년동안 부부로 지낸다. 이에 주자국 국왕이 병이 난 것이다. 손오공은 당연히 요괴를 물리치고 금성궁을 주자국 국왕 품에 돌려 주겠지. 그런데, 서유기를 즐기던 당시 사람들은 금성궁이 요괴의 육체적 사랑을 받았다면 손오공이 구해와도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다보다. 아무리 그녀에게 잘못이 없어도 육체적 순결을 잃은 여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껄끄러우니까 말이다.

 

"재작년에 금성 황후를 잡아왔을 때 어디서 왔는지 신선 한 분이 나타나서 오채선의 한 벌을 바쳐 금성 황후에게 입혔지 뭐냐. 그 옷을 입자마자, 황후의 몸뚱이에 온통 바늘같은 가시가 돋아 나와, 우리 대왕님은 감히 손을 대지도 못하시고 어루만져보시지도 못하게 된 거야 어쩌다가 한번 잘못해서 건드렸다가 손바닥이 아프다고 펄펄 뛰셨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어. 그때부터 대왕님은 지금까지 황후의 몸을 건드려보지도 못하시고, 잠자리 한번 같이해보지도 못하셨단 말이다. "

-본문 335쪽에서 인용

 

그래서, 위의 인용 부분처럼 웃긴 설정이 있단다. 푸하하, 가엾은 새태세 대왕, 찌질한 당시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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