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은 참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다. 유머가 넘치고, 요괴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좋은 문장 하나 건지기도
했다.
금두동 마왕은 워낙 강력해서 손오공의 힘으로 감당이 안 된다. 손오공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보지만 불과 물의 공격으로도 마왕을 꺾을
수가 없다. 원래 주인인 태상노군이 와야만 마왕은 잡힌다. 마왕은 원래 태상노군 외양간의 청우, 푸른 소였다. 집 나간 소, 이건 집 나간
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십우도(十牛圖)에 나오는 심우(尋牛) 이야기일까? 취경일행이 아직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인지, 9권에 대거 등장하는
인동의 소 요괴들과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태상노군은 금강탁에 숨 한 모금을 훅 불어넣어 괴물의 콧구멍을 꿰뚫은 다음, 도포에 둘렀던 허리띠를 끌러 가지고 금강탁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손으로 잡아끄니 고삐가 되었다. 지금도 쇠코뚜레를 만들어 쓰는 풍습이 남아 있어 '빈랑(賓郞)'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이때부터 생겨난
관습이라고 한다.
- 본문 83~ 84쪽에서 인용
위 인용부분처럼, 서유기 이야기와 현실 관습의 유래를 연결하는 서술도 재미있다.
어린이용 축약본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삼장과 저팔계의 임신 에피소드도 이번 6권에 있다. 자모하 강물을 마시고 잉태한 삼장과 저팔계.
손오공은 낙태천의 물을 떠 와서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둘을 낙태시킨다. 물론 낙태천을 지키는 요괴와 대결해 이겨서 물을 얻는다. 여기서 잠깐.
살생을 금하는 불교 수도자들이 왜 낙태를 하지? 이거 이해 안 된다. 여튼 이 지역은 여자들만 사는 여인국이었다. 그래서 잉태를 하려면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여인국이라, 또 삼장이 여난을 겪을 것이 뻔하다. 맛있는 고기 때문에 요괴들에게,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인간 여자들에게
시달리는 삼장은 서량여국의 여왕과 결혼할뻔하다 간신히 탈출한다.
그러나 탈출하는 순간, 삼장은 여왕보다 무서운 여괴에게 납치당해 또 신방에 들게 된다. 이 내용이 55회인데 제목은 '색마는 음탕한
수단으로 당나라 삼장 법사를 농락하고, 삼장은 성정을 지켜 원양을 깨뜨리지 않다." 이다. 여기에서 역자분은 원양을 '동정'이라 풀이하셨다.
어? 원양이 그냥 동정인가? 지금까지 정액으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이번 6권의 "내 원양(元陽)을 상실하여 불가의 덕행을 망치고 진정(眞精)을
쏟아낸다면,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몸을 타락시키게 될 것 아니냐?(134쪽)" "나의 진양(眞陽)은 지극한 보배요. 내 어찌 경솔하게
그대처럼 분 바른 해골바가지에게 넘겨주리오?(169쪽)" 이런 서술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다른 책에는 '원양이 한 방울도 새어 나가지
않은' 이런 서술도 있는데. 도대체 원양이 뭘까? (맨날 서유기 리뷰 쓸 때마다 원양 타령하니까 내가 좀 변태같지만, 이 글을 읽는 친구분들은
나의 학구적 탐구심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 )
워워, 돌아가자. 알고보니 이 색녀요괴는 전갈요정이었다. 그래서 무기도 독침이다. 아마도 취경 일행이 지나가는 중앙아시아 사막의 위험을
의인화한 것 같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전갈요괴를 물리치는 묘일성관은 커다란 수탉이라는 것. 지네와 닭은 천적이라는 설명이 본문에
나온다. 이렇게 <서유기>에는 중국 민간 설화와 풍습, 속담이 많이 담겨 있다.
"당신, 아주 벽창호로군! 이런 속담도 못 들어봤소? '굵다란 버들가지로는 키를 엮어 쓰고, 가느다란 버들가지로는 열 되들이 됫박을 엮어
쓰니, 도구의 쓰임새는 저마다 달라도 똑같은 버드나무요, 이 세상에 제 아무리 추접스레 생겼어도 사내는 사내'라고 했소이다."
- 본문 131쪽에서 인용
위 인용부분은, 삼장법사만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자 저팔계가 속담을 인용하여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곳곳에 중국 속담이
나온다. 재미있다.
취경 일행 사이의 최고의 갈등도 이번 6권에 있다. 손오공이 요괴도 아닌 인간, 산적떼를 때려죽이자 삼장은 손오공을 추방한다. 쩨쩨하게
죽은 시체 앞에서 불경 드리면서 삼장은 '저승가서 나를 고소하지 마라, 너희를 죽인 것은 손오공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실망한 손오공은
삼장 일행을 버리고 떠나 관음보살에게 의탁한다. 하지만 역시 손오공이 떠나자마자 일행에게 위기가 닥친다. 사오정이 손오공을 모시러 본거지로 가
보니 가짜 손오공이 가짜 삼장, 가짜 저팔계, 가짜 사오정을 만들고 경을 가지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 완역본을 읽기 전에는, 이
에피소드가 <옹고집전>의 진옹 가옹 이야기처럼 단순 재미를 위한 것인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다. 58회의 제목은 '마음이 둘로
갈리니 건곤을 크게 어지럽히고, 한 몸으로는 참된 적멸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다. 두 명의 손오공은 두 마음이었던 것이다. 취경여행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 이렇게 두 마음. '사람에게 두 마음이 있으면 재앙이 생겨서(271쪽)'라는 대목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또 석가여래는 두 손오공이 재판해 달라고 싸우면서 오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 저기 보아라, 두 마음이 서로 다투면서 달려오고
있지 않느냐?(274쪽)' 아, 그래서 손오공이 심원(心猿)이었구나. 시련을 겪고 납에서 황금으로 되는 마음.
가짜 손오공을 밝혀 퇴치한 후, 삼장은 다시 손오공을 받아들인다. 일행은 화염산에 이르러 서쪽 길이 막힌다. 손오공은 불을 끄기 위해
나찰녀의 파초선을 빌리러 간다. 나찰녀는 우마왕의 본처이고 옥면공주는 우마왕의 첩이다. 우마왕은 현재 옥면공주와 살고 있다. 손오공은 이
삼각관계 사이를 사인,코사인,탄젠트로 바삐 오가며 열심히 거짓말을 해서 파초선을 손에 넣는다. 그런데, 이들의 삼각관계에서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느니,
"그곳에는 애당초 만년호왕이란 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 여우 임금이 죽을 때 딸을 하나 남겨두었습니다. 딸의 이름은 옥면공주라고 부릅니다.
이 공주는 백만장자의 재산을 가지고 있느나 그것을 관리해줄 사람이 없어 이곳저곳 수소문하던 끝에, 이 년 전 우마왕을 찾아갔다가 신통력이 굉장한
것을 눈여겨 보고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남편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마왕은 나찰녀를 버리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 본문 317쪽에서 인용
"내 부모가 돌아가시고 의지할 데 없어서 네놈을 모셔다가 보호나 받고 살아가려 하지 않았더냐! 세상에서 네놈을 제법 호걸 노릇하는 놈이라고
하기에 그런 줄 알고 믿었더니만, 이제 봤더니 여편네나 무서워하는 졸장부였구나!"
- 본문 325쪽에서 인용
당시 여성들의 입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뭇 남성들의 먹잇감이 되는 미혼 상속녀. 자신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할수없이 첩살이를
선택하는. 아아, 요괴도 여성으로 태어나면 시대적 한계 때문에 살기 힘들었구나야!
아무튼, 6권 최대의 소득은 이 문장이다.
"저기 보아라, 두 마음이 서로 다투면서 달려오고 있지 않느냐?"
서유기, 나의 취경여행을 마치면 서로 다투면서 달려가던 내 두 마음이 편해질까. 글쎄. 그저 읽고 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