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견 치로리 - 쓰레기장에 버려진 잡종개가 치료견이 되어 기적을 일으키다, 개정판
오키 토오루 지음, 김원균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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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심리학』은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 및 인간이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과 개와 고양이에 대한 의문에 대한 대답이 있는 책이다. 그 책은 제목처럼 심리학과 과학의 입장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정리한다. 그래서 『치료견 치로리』는 위의 도서와는 차이가 있다. 사실 치로리는 꽤 유명하다. 2006년에 암으로 죽었을 때, 300명의 사람들이 '치로리'라는 개를 위해 추모회를 열었다. 그리고 국내에는 『고마워 치로리』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당연히, 개가 만든 감동 실화다.

 

 치로리는 장애가 있는 잡종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수많은 개들보다 더 뛰어난 일을 한다. 치료견 훈련을 마치고, 치료견이 된 치로리는 전신마비 환자를 움직이게 하고, 말을 잃은 노인에게 말을 되찾아주었다. 그는 버림받았지만, 그것을 복수하지 않고, 치료견이 되어 세상을 밝힌 것이다. 사람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개가 하다니, 참 부럽고, 부끄러웠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와 같다. 만약, 치로리가 그대로 유기견이 되어 안락사당했다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모두 없어졌겠지.......

 

 치로리. 2006년에 암으로 떠나고, 1년 후에

 『고마워 치로리』가 출간되었다(『치료

 견 치로리』는 그 책의 개정판이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는 왜 치로리 같은 좋은 개가 없을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선 우리는 애완견을 더 하등한 생물로 본다. 그저 평등하게만 바라보면 되는데....... 안타깝다. 무엇보다 애완견이 질리면, 마치 생명이 없는 물건을 버리듯 유기한다. 하지만 주인이 유기한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가? 유기견은 주인이 없으면 안락사당한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자신은 충실하게 주인을 따랐는데, 어느 날 주인이 나를 버리고, 이제 죽어야 한다니. 만약 내가 개를 키운다면 절대 유기시키지 않을 것이다. 치로리는 못 된다 해도, 누군가의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만들 것이다. 그 전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치로리는 죽었지만,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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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 심리학
세르주 치코티, 니콜라 게갱 지음, 이소영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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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와 고양이. 애완동물, 아니 동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들이다. 인간과 가장 가깝고, 서로 앙숙이라고 알려져 있는 개와 고양이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그리고 인간과 이 두 생물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사실 그 해답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길들이지(교육하지) 않으면,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에 반드시 길들여야 하고, 그렇다고 사랑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외에도 많다. 왜 그들은 이렇게 닮은 걸까?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심리학』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담은 책이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동물들과 함께 하면 삶이 외로울 때가 없고, 더 즐거우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물론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왜 애완동물이 주인을 따르는가? 당연히, 우리가 친한 친구와 어울려다니듯이, 애완동물은 주인을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을 학대한다는 것은, 인간과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인도적인 행위일 것이다(과학서에서 윤리를 말하는 나는 참........ 윤리적인가?). 이 책에서는 동물학대와 인간학대가 왜 발생하고, 그것으로 인해 받는 영향들을 심리학적으로 다루었다.

 

 이외에도 이 심리학서는 우리가 개와 고양이에 대해 가졌던 궁금증을 명쾌하게 해결시켜 준다. 또한,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그들의 놀라운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가끔 개와 고양이는 깜짝 놀랄 일을 한다. 인간의 역량으로는 할 수 없는 곳에 다다른 위대한 생명체이다. 이 책이 왜 흥미롭냐면, 딱딱한 과학이 아니라, 좀 더 친숙한 분야인 심리학을 중심으로, 애완동물들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책을 보라.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심리학』은 이

세 존재의 상호관계뿐만이 아니라, 고양이와 개의 이야기까지 등장하니까. 물론 그들에 대한

심각한 오해도 해명될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개와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를 아무리 설명해도, 결국 인간이 중심이겠지.......'라고. 개와 고양이에 대해 말해도 결국 모든 게 인간과 연결될 거라고. 하지만 '외전'에는 반전이 있었다. 인간 역시 동물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다행히 이 책은 인간중심주의를 부르짖는 게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조화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 점에선 참 다행이다.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애완동물을 모두 설명해놓고, 인간이 최고다라고 외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한 번쯤은 그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함께 앉을 수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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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벤구르 을유세계문학전집 57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윤영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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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한 보물은 숨겨져 있는 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고전들은 읽어달라고 간청하며 스스로를 세상에 내보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은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발굴된 것이다. 『체벤구르』라는 이 20세기의 숨은 고전은 저자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이 이름은 마치『국가』를 통해 이상향을 그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을 연상시킨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그의 책을 성경 책으로 삼은 윤영순 교수이다. 그는 플라토노프의 저작에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그리고 그는 1928년에 출간된 이후 60년 간 세상에 빛을 내지 못한 『체벤구르』를 국내에 출간시켰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기뻤다.

 

 이제 그토록 기다려왔던 『체벤구르』의 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큰 파란을 일으킬 만큼, 실험적인 수법과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문제작이다. 작가는 조이스나 포크너와 같은 모더니즘 작가와 비교될 정도로, 창의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사실 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처음에 내가 제임스 조이스에게 다가간 것은 그의 놀라운 문학적 실험이었으나, 『율리시스』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여러 번 읽으면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나 기법이 아닌 내용과 주제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러시아와 농경 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구절들이 우리 가슴 속에 파고들지만,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디스토피아 문학은 그 역사가 깊다. 사실 내가 『체벤구르』에 가까이 다가간 계기도 탄압받던 시절의 러시아 문학이기 때문이다. 봉건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너무 이른 도약을 한 나머지 무지와 가난의 늪에 빠져버린 수많은 러시아인들을 깨우치기 위해, 지식인들이 항상 억압과 이단자 취급을 받으면서 걸작들을 써 내려갔다. 자먀찐의 『우리들』을 시작해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등 디스토피아 문학과 수용소 문학들의 고전이 모두 『체벤구르』가 쓰여졌던 시기, 즉 이념이 인간을 억누르던 때에 쓰여진 책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공산주의 유토피아'는 의미가 깊다.

 

 

        왼쪽은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이고, 오른쪽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다. 전자는 세계 최초의 디스토피아 문학이며, 후자는 수용소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작품이다. 이 두 소설 모두 러시아의 암흑시대에서 탄생되었다는 점에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와 일맥상통한다.

 

 사회주의라는 개념은 마르크스가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통해 널리 선포한 혁명적 사상이다. 하지만 그것을 읽지 않고,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공산주의라는 '최종 과정'으로 급격히 넘어간 20세기 러시아와 다르지 않다. 샤샤의 방랑은 지상 낙원인 체벤구르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이야기는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왜냐하면 체벤구르야말로 플라토노프가 꿈꾸었던 러시아의 모습 그 자체니까 말이다. 그가 애써 그 '슬픈 유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묘사하려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문체를 사용한 까닭도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조국 러시아를. 그는 공산주의였지만, 배운 지식인의 의무로서 거대한 땅만큼이나 문제점이 보였던 러시아를 변혁시키길 원했다. 그 결과가 바로 『체벤구르』다. 하지만 조국은 그를 믿지 않았고, 그는 자신의 작품이 인정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951년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다가 2012년 10월, 그의 말에 귀기울인 사람이 나타나 그를 이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이 멋진 신세계를 많은 이들이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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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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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나의 전부다. 나 자체가 삶이니까. 그리고 인생은 셀 수 없이 많은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갈리는 까닭은 그 수많은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큰 비중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스포츠가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러하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에게는 책 읽기가 바로 삶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으리라. 그녀는 책 속에서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뿌리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적었다. 마찬가지로, 독서가 인생의 핵심이 된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같이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정혜윤 PD의 글을 예스24에 올렸던 칼럼 '어느 날 ~을 알게 되었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거미 여인의 키스』에 대한 칼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이후, 나는 그녀의 글을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맛깔나고 간단명료한 글 안에 삶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번에 읽은『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삶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연상시켰다. 그 역시 인문고전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책 속에 적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녀는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슬플 때나 외로울 때 읽는 책은 곧 위안이 되며 벗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혜윤 PD는 수많은 고전들과 사례를 예로 들며, 그 책들이 누군가의 인생(또는 그녀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생생하게 설명한다. 그녀가 이 책에서 던진 아홉 가지 질문(비밀 질문 포함)에, 과연 나는 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목차에도 나와 있듯이, 아래와 같다.

 

 1.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2.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3.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4. 책이 정말 위로가 되나요?

 5. 책이 쓸모가 있나요?

 6.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7.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8.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비밀 질문: 그렇게 살아도 돼요?

 

 

 장 오노레 프라고라느의 <책 읽는 소녀(그림 왼쪽)>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소녀(그림 오른쪽)>. 그들은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 혼자서 책을 읽는 소녀는 실연을 당했을 수도 있고, 정말 기쁜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즉, 그녀에게 책 읽기란 위안의 책 읽기 또는 미래를 위한 책 읽기이다. 반면, 오른쪽 두 소녀들은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정혜윤 PD는 함께 책을 읽으면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두 소녀는 함께 같은 페이지를 읽으며 무언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위의 질문들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독서에 대해 간단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까닭이다. 저자가 "많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책을 몇 번 되풀이해서 보거나 곱씹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정도 규칙적으로 책 읽는 시간이 몇 권을 읽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라고 적었을 때, 나는 나의 습관적인 독서 습관, 즉 마지막 장을 덮기 위해 읽는 독서 생활을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책은 무언가의 형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일찍 죽은 어린 아들을 애도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가 남들 눈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 말고도 삶에는 다른 것이 있음을 말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사물들』은 조르주 페렉이, 행복을 추구하는 동안에 잃어버리는 빛나는 시간들에 대해 말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휴먼 스테인』은 필립 로스가 역사와 정치가 개인에게 묻혀 놓은 더러운 얼룩에 대해서 말하는 형식일 수 있습니다. 우린 포기가 어떻게 표현되었나, 슬픔이 어떻게 표현되었나, 양심은, 두려움은, 좌절감은, 위로는 어떻게 표현되었나를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책은 더 이상 종이조각이 아니다. 하얀 종이 위에 새겨진 검은 글자의 모음이 아니라, 텍스트 속에 담긴 또 다른 삶의 형식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책 읽기와 삶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이며, 그 책을 통해 변화되는 것은 저자의 마음과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책은 내가 예전에 "어렵다"며 무시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였다. 나는 인류 최초의 고전이라는 타이틀과 찬사에만 따라가다 보니, 본질을 놓친 것이다. 그것은, 호메로스가 말하고자 한 삶의 방식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시인은 서사시 속에서 누구도 엑스트라로 만들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전사들이 주인공(영웅)들에 의해 죽어가는 그 순간, 호메로스는 마치 신처럼 그것을 포착하여 그 자의 삶을 보여주었다. 어떤 사람의 삶도 결코 헛되지 않는다. 그 자가 사악하든, 선하든.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런 점에서 마지막 비밀 질문, "그렇게 살아도 돼요?"는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그래,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 질문은 다시 말해,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아요?"라는 질문이 된다. 정혜윤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질문에서 시작되어 질문으로 끝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응답한다. "아니,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야. 지금에 머무르면 삶을 포기하는 거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전 작가들도 대답할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알아냈다. 그들이 쓴 책에 숨겨져 있는 삶을 본받아 가는 것이다. 쥘리앙처럼 살아도 되는가? 카츄사처럼 살아도 되는가? 보바리 부인처럼 살아도 되는가? 그것보다는, 호메로스처럼, 감춰져 있는 또 하나의 인생을 따라갈 것이다. 평범하지 않는, 상상력 없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특별한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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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 -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의
김진만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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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마존의 눈물>과 <남극의 눈물>을 비롯한 '지구의 눈물'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 그런 다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답지 않은 높은 관심 덕분에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다. 조에족과 남극 이야기는 tv를 보지 않은 나도 많이 접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시청자들은 거기서 관심을 멈추게 된다. 그 뒤에 있을 삶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예능 프로그램 같은 다른 프로그램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 것들은 방송만을 위해 짜여진 내용이다. 반면, 다큐멘터리에서 촬영하는 내용은 촬영 이전의 삶부터 계속되어 왔던 것이며, 촬영이 끝나도 계속된다. 그래, 다큐는 삶의 기록이다.

 

 그런 점에서 PD라는 직업은 참 놀랍다. 프로그램의 기획, 진행 과정,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의 여파를 모두 알고 있으니까. 마치, 작가와 영화 감독이나 다름 없는 직업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작가'와 '감독', 그리고 'PD'는 편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나의 생각을 쥐어잡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진만 PD를 보니, 이 세 직업은 편한 직업이 아니라 힘든 직업인 듯 하다. 문명 사회에 적응되어 있던 한국인들이 문명의 손길에서 벗어난 아마존과 남극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는가.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물론 김진만 씨에게는 고생만큼의 보답, 즉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들어왔으니 만족스러웠으리라 짐작한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참 놀라웠다. 책의 구성이 정말 야무졌다. 역시,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PD답게, 어떤 방식으로 책을 전개해야 독자들이 재미있어 하고 감동하는지 알고 있다. 보통 실력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PD가 된 사연은 '의도치 않게'였다. 사실 어떤 사연이 있어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와 감독과 PD는 작품으로 말하니까(이제 김진만은 PD이자 작가인 건가?). 예인 최민수와 세진이 모자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아마존의 눈물>편과 <남극의 눈물>이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진 일행은 아마존과 남극에서 다시는 겪지 못할 뜻깊은 체험들을 한다. 아마존 내에 숨겨진 많은 부족들을 만나며 그들의 관습을 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문명에 오염되어 버린 부족을 안타까워하는,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존재한다. 방송으로는 잘 느껴보지 못했던 여운들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이 책부터 본 사람은 이제 방송을 봐야 하고. 남극에서는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약한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그들의 생존기를 볼 수 있다. 황제펭귄을 찍기 위해 블리자드와 화이트아웃과 엄동설한과 싸우며 취재를 계속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멋지다. 『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깨우침과, PD라는 직업이 어떤 직업인지, 그리고 삶이란 게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었다. 내 앞에 놓일 삶은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 그러나 분명히 그 속에는 뜻 밖의 행운이 있으리라는 것,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P.S : 역시 한국 라면은 글로벌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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