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엔젤
마가렛 로렌스 지음, 강수은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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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여자는 아름다워지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노력의 성과는 줄어든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도 세월이 만드는 주름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스톤 엔젤』의 주인공 헤이거는 왕년에는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으나, 지금은 며느리와 아들과의 잦은 갈등으로 인해 양로원 안에 갇혀야 하는 신세다. 이 소설은 그녀의 과거를 추억하며 늙었던 여자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게 만들며, 요즘 세대간의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30여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헤이거가 집에서 도망쳤을 때, 낡은 통조림 공장에서 만난 머레이 퍼니 리즈라는 여성과 만났을 때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이지만, 보이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두 사람 모두 여자이며, 담배를 필 줄 안다는 것 외에도).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마치 오랜 친구가 고민을 침묵으로 전달하는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의 대화도 매우 깊이 있었고, '늙음'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잘 드러내 준다.

 

 처음에는 스톤 엔젤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돌로 된 천사상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많이 보지 못했다. 과거야 어찌되었든 현재가 중요하니까. 『스톤 엔젤』은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다. 현재? 헤이거는 한 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종 '하갈'이었으나, 버림받고 방랑자가 되어, '돌'이 되어버리고 만 '엔젤'이다. 양로원 안에서는 모두 돌이 되어버린다. 늙음과 세월 앞에서 몸은 서서히 굳어간다. 그것이 아름다운 천사라고 할지라도.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헤이거의 의식이다. 마빈과 도리스(아들과 며느리의 이름)와 의견 차이가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향하는 조소, 자신이 실수를 하고 난 뒤의 뒤늦은 후회.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파악하며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쨌든 나는 만족스럽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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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샤를로테 링크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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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말이 있다. 변방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또한 '이방인(stranger)'을 연상시킨다. 두 개념 모두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소외된 자들을 명칭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여기에 나는 '관찰자(Beobachter, observer)'도 추가하고 싶다. 그 영향은 물론 샤를로테 링크의 『관찰자』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관찰자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관찰'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고통을 그저 '관찰'하기만 하는 무관심한 다중을 의미한다. 나는 『관찰자』를 완주하고 나서(내가 이런 표현을 쓴 까닭은 700쪽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분량 때문이었다), 미스테리한 범죄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모두 관찰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 솔직히 고백하자면, 『관찰자』는 결말을 알지 못하면 초반부가 도통 진행이 되지 않아 지루한 소설이다. 그렇다고 결말을 알자니, 작품의 반전이 깨져 밋밋해지고....... 이것이 이 소설이 가진 결함이었다. 사실 『관찰자』를 하루만에 독파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 작은 사건과 심리묘사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독자가 그것만 기억하게 만들어버렸다. 나도 사건만 진행하는 유형은 바라지 않았다.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지르고,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바랬다. 하지만 저자는 너무 욕심이 지나쳤다. 400~500쪽이면 충분했을 분량에 중요하지 않은 인물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삽입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선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관찰자』에 대해 찬사를 하고 싶은 까닭은, '뛰어난 묘사력' 때문이다. 일기 형식으로 진행되어, 동시간대에 일어나는 인물의 심리를 동시에 조명하는 효과도 일품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잘 파악하여 그 부분에 섬광을 비추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 즉 '관찰자가 되지 말라'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여기서 읽었다.

 

 범인은 당연히 벌을 받고 감금이 돼야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원래 엄청난 결점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걸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인상을 주지. 그런 사람의 이력을 추적해 보면 특히 어린 시절에 끔찍한 일을 겪은 경우가 많아. 나는 엄마가 알코올의존자였고 아빠한테 학대를 당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연쇄살인범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하지만 지켜보면서 침묵하는 사람들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이 나라에서도 부모가 아이를 굶겨 죽이거나 죽을 만큼 폭행을 하는데 이웃사람들은 외면하지. 그리고 부인이 남편한테 폭행을 당하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들 하지. 그리고 학생들이 같은 반 아이들한테 따돌려지고 괴롭힘을 당해서 절망감에 빠져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데 교사들은 개입하지 않아. 이런 일들은 계속해서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어. 그 이유는 바로 국민 대부분이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귀찮아하고 비겁하고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기 때문이야. (p.637)

 

 샤를로테 링크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관찰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떤 관찰자 말인가? 타인의 고통을 그저 관찰하기만 하는 무관심한 자들 말이다. 의문의 연쇄살인에 대해, 나는 아니겠지, 하고 애써 무관심하다가 자신에게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심어준다. 범인의 심리는 너무나 망가져 있었고,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암울한 생각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 희망을 걸어놓았다. 바로 '삼손'이라는 인물이다. 사실 이 인물은 성경에 등장하는 '삼손'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눈이 뽑혀 모든 힘을 잃다가 마지막 순간에 영웅적인 행위를 하여, 그 이후 널리 기억되는 일을, 삼손은 한 것이다. 마찬가지다. 인생의 패배자, 무능한 남자, 삼손이 우리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줄지 소설 속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저자가 삼손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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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세트 - 전3권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옮김 / 효형출판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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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이 책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나한테 "사람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걷는 존재"라고 대답할 것이다(물론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제외하고). 우리는 매일매일 걷는다. 걷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걸음은 한 발자국씩 밟은 흔적을 남기고, 앞으로 갈 길을 스스로에게 제시해 준다. 특히, 걸음은 여행에 주로 사용된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발걸음만큼 좋은 것이 없다. 『나는 걷는다』는 저자가 4년 동안 횡단한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그 동안 11000km를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고, 걷는 것을 즐거워 했다.

 

 여정은 실크로드 횡단이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서 중국의 시안까지 이어지는, 부와 영광으로의 길인 실크로드를 걸은 것이다. 지금은 비록 과거의 길이 되었지만, 걷는 것을 삶의 행복이자 의무로 생각하는 베르나르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다. 『나는 걷는다』의 여정을 잘 따라 가려면, 저자와 함께 걸어가는 것뿐이다. 기자 올리비에가 들려주는 박학한 이야기나, 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산책하듯이, 잘 음미하다보면 어느새 그와 함께 4년간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걸었던 11000km의 실크로드. 동서양을 이어주는 끈이 된다.

 

 아마 이 시리즈를 보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나도 실크로드를 걷고 싶다!", 혹은 "나도 걷기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받을것이다. 나는 실크로드를 걸을 생각은 없어도, 걸어서 국토 횡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받았다. 그거야 어렵지 않고, 말도 통하고, 편하면서 느낀 점도 많을 것 같으니까. 여행은 좁은 나의 시각을 확장시켜 준다. 그 중에서도 몸으로 직접 느끼는 걷기 여행은 삶이 편안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올리비에는 아마 저 긴 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좌절했으리라. 그리고 기자로서의 편안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 조국 프랑스로 돌아가볼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걷기의 유익함을 떠올리며, 힘을 내어 다시 한 걸음씩 내딛을 것이다. 미지의 삶으로의 발걸음을.

 

 아직 그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걷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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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펀펀 투데이 (교재 + MP3 CD 1장) - SBS 라디오 DJ 김영철의 펀펀한 영어 회화 시트콤
김영철.조혜정.제니퍼 옥 지음 / 두앤비컨텐츠(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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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교재가 있다. 특히, 영어를 잘하는 방법, 생활 영어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다. 나도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는 책을 읽고 나서 노하우를 알았으며, 틈틈이 영어 듣기와 영어 원서 읽기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한계는 그것들이 주로 영단어와 문법에 관련된 공부이지, 생활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문학 작품에서 쓰이는 어투를 실생활에 그대로 응용할 수 있겠는가? 『멋진 신세계』의 한 구절을 따 와서 "Civilization is sterilization(문명은 살균이다)"를 말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영어듣기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말하기였다.

 

 『김영철의 펀펀투데이』는 직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에피소드에서 쓸 수 있는 영어표현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주고 있지만, 사실 그 표현들은 직장뿐 아니라, 다른 사회 활동에서도 응용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예를 들어, '펀펀투데이 3'에 나오는 'don't cross the line'이나 'don't put off till tomorrow what you can do today' 같은 표현들은 직장이 아니라, 학교나 가정에서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의 목적은 '일취월장'이다. 매일매일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를 보며, 그 속에 함께 어우러져 있는 영단어나 표현들을 배우는 것,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책이, 바로 『김영철의 펀펀투데이』인 것이다. 게다가 MP3로 들을 수 있는 CD까지 주니, 일석이조다.

 

 조혜정, 제니퍼 옥, 그리고 <펀펀투데이>의 DJ인 김영철이 만들어 낸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라디오로도 만날 수 있다니, 참 기쁜 소식이다. 간혹 생각나면 챙겨봐야겠다. 영어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겠지. 나도 이 책을 다시 보며, 영어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도 가지고. 많은 도움이 된 책이었다.

 

 김영철 씨. 다른 분들은?

 

  (한가지 아쉬운 점은, '부록'인 K-pop를 영어로 바꾸는 것이 좀 흔한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차라리 별권으로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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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을 기다리며 필립 K. 딕 걸작선 9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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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딕의 작품을 보면, 언제나 사회의 음울한 면이 담겨 있다. SF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은 오늘날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회의 추악함은 어제나 오늘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왜 태양계까지 진출하고, 시간여행도, 기억의 조작도 가능해진 필립 딕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막지 못했을까? 마치 이러한 업적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듯 하다. 『작년을 기다리며(Now Wait for Last Year)』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키워놓은 문명을 감당하지 못한 인간들의 고뇌와 절규가 이 작품에도 담겨 있다.

 

 이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악한 소재는 '마약'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했을 당시에 아내와 다투며 마약에 의존한 채로 살았다는 것이다. 흔히 말해, '약 빨고' 쓴 소설이다. 하지만 필립 딕의 무의식 속에는 아내와 다시 화해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년을 기다리며』에서 인공장기 이식 의사로 등장하는 에릭 스위트센트는 필립 K. 딕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아내 캐시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구 대표(이 소설의 배경은 외계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대다)인 몰리나리의 주치의를 자원한다. 한편, 에릭의 아내는 불행으로부터의 탈출구로 마약을 선택했고, 그 마약을 복용하다가 지구와 외계인의 거대한 싸움으로 연결되고 만다(개인의 문제를 이렇게 커다란 문제로 만드는 시나리오적 솜씨는 필립 딕을 따를 자가 없다. 그래서 그의 수많은 작품이 영화화되었던 것이 아닐까?).

 

 『작년을 기다리며』의 원서인 『N-

ow wait for last year』. 아직 영화

화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결국 이 모든 상상의 끝은 저자가 생각했던 바로 그 주제들이다. 시간여행으로 과거로 간 아내, 그리고 과거의 에릭과 지금의 에릭. 과거로 간 아내를 기다린다는 것은 곧 그들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것이다(그래, 필립 딕은 작품의 결말을 제목에 암시한다). 이 책은 SF 소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부를 위한 소설이기도 하다. 잃어버렸던 인연의 관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시간은 그것을 허용해주었고, 특별한 운명이 그들의 만남을 이루어주었다. 왜 『작년을 기다리며』가 필립 딕 작품 세계로 들어가는 현란한 입문서라는 찬사를 받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필립 딕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필립 K. 딕.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

는 인간의 따뜻한 모습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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