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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평점 :
천선란 작가에 대해서는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국내소설에, 아니 요즘은 문학 전체에 관심이 통 없던 나에게 한국형 SF 소설의 대가가 나타났다는 것이 신문 기사를 통해, 영상을 통해 전해졌다. 그 당시에는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얼마 전에 그녀의 신작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말을 듣고 불현듯 구매했다. 제목인 『노랜드』에 대한 첫 인상은 "방황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일까, 였다. 그리고 모든 작품을 읽고 난 뒤 든 느낌은 "no homeland"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비유하자면 <노 웨이 홈(no way home)>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작품 중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묘사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기에 떠나야 했던 자들의 심정이니까.
나는 이 작가의 소설들을 처음 읽어보았는데, 전체적인 감상평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필립 K. 딕의 스타일에 자신만의 주제를 덧붙여 한국의 정서에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종말 이후의 이야기 또는 종말론적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는 세계관은 앞서 언급한 작가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21세기 SF 문학의 대표적인 추세이므로 딱히 흠 잡을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색채를 얼마나 고유하게 녹여내었느냐인데 나는 그녀가 그것을 잘 해냈다고 본다. 우선 갑자기 얻은 명성을 의식해서 작품에 힘을 준 흔적이 없는 것이 좋았다. 그냥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는 인상, "소설이 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조소 섞인 분석 등이 그렇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갇히지 않고 차분하게 하지만 재치 있게 주제를 풀었다. 그리고 가볍게 한 말이 곱씹어 보면 작품들을 관통하는 단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유 없이 살아가자. 문학, 그중에서도 SF 문학은 장르의 특성답게 부연 설명을 참 좋아한다. 사실이든 허구든 도구를 동원하여 인물의 동기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대담한 시도는 해야 할 말에 대해서 침묵하는 일이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는다는 구차한 변명 대신, 정말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는 도전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에게」다. 이름을 불리기 전까지 이승에 남아야 하는 존재라니,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은가? 유령으로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고 마침내 이름 세 글자가 불리는 순간의 감동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 천선란은 주인공의 이름에 대해 침묵했다. 대신 단서를 남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이름을 가진 모두의 이야기로 말이다. 그 절제가 이야기의 보편성을 확보한다. 오히려 너무 흔한 소재가 되어버린 좀비를 기이한 마을의 분위기와 접목시켜 심리 스릴러처럼 그려낸 「이름 없는 몸」이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한 것은 아이러니이자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담긴 구성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제목과 가장 부합하지 않을까 싶었다. 공간은 있지만, 사람이 없기에 더 이상 고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아닐까? 물리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등장인물들은 수없이 언급되었으나 정신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의 이야기는 소수이다. 고향에서 도망쳐왔다가 귀환한 자들에게 환영 인사는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순수한 상상력이 빛난 단편이었다. 바로 「두 세계」였다. 소재부터 전개까지 모두 매혹적이었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설 속의 세계에 풍덩 빠져들고 싶은 욕망을 품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실현시켜 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다니! 심지어 온몸을 알집에 가두고 요란하게 흔들리는 기계 따위가 아니라, 마그네틱 버튼을 관자놀이에 붙이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획기적이고 기발한가! 게다가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상호작용할 수도 있으니, 이보다 신나는 게임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애서광들에게 천선란은 예상 밖의 대답을 던진다. 그렇게 문학을 사랑하던 당신은, 당신이 그토록 아낀 등장인물에 의해 잡아먹혔다. 우리는 아락스와 신규영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락스는 가상현실 밖의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습득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규영을 설득했을 것이다. 규영은 순수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절대 해서는 안 될 거래를 했다. 현실에서든 프로그램에서든 몸을 죽이면 영혼도 소멸하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소름끼치는 설정이 압권이다. "아락스가 죽었다"는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대목이다. 인공지능과 함께 떠나는 신나는 모험은 씁쓸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어쨌든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만약 천선란의 작품에 매력을 느낀 독자라면, 다른 작품을 구매해서 읽고 싶은 욕망이 생길 것이다. 특히 이렇게 인상적인 한국형 SF소설은 존재만으로 반갑다. 하지만 잦은 모험을 떠난 이들이라면 느낄 것이다. 나를 완벽하게 기쁘게 하는 소설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소설가가 된 이들은 어쩌면 더 큰 목적을 찾아 끊임없이 방랑하는 '노랜드' 속 등장인물들과 같을지도 모른다. 설명할 수 없는 맹목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그들은 돌아갈 곳을 파괴하면서까지 기꺼이 먼 길을 떠난다. 누군가는 고작 글자들의 나열일 뿐이라고 말리지만, 그 안에서 엿보는 새로운 세계에 한 번 감동한 자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없다. 그 환희를 위해 아락스는 살아간다. 별다른 이유 없이도 말이다.
유라는 원래부터 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책을 많이 읽거나 글을 직접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책이라는 물질 자체가 좋았다. 그래서 학생 시절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서점에 찾아가 아무 책이나 샀다. 구매한 책을 전부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글자와 글자가, 단어와 문장이 서로 얽혀 독자적인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게 늘 신기했다. 유라에게 책은 소비재라기보다 소장품에 가까웠다. 그래서 되도록 어떤 형태든 책이 주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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