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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센터처치 - 팀 켈러 목사의 30년 목회 지혜의 집대성
팀 켈러 지음, 오종향 옮김 / 두란노 / 2016년 3월
평점 :
어렸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인상 깊게 읽었다. 고대 철학자는 중용의 개념에 대해 매우 상세히 설명했다. 수학적으로 정확히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것과 부족한 것의 중간에 있는, 소위 말해 '적당히'를 강조했다. 사회 생활도 중용이 중요하다. 너무 튀지도, 무익해서도 안 되고, 너무 무심해서도, 지나치게 친절해서도 안 된다. 저마다의 다른 기준을 맞추어 가며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유능한 모습을 보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팀 켈러의 『센터 처치』는 그 중용을 '교회'라는, 상당히 거대하고 어찌 보면 막연한 개념에 적용하는 대담한 책이다. "좋은 교회는 어떠한 모습인가?"에 대해 많은 목회자나 설교자가 다른 대답을 할 것이고, 그에 따라 다른 교파, 다른 형태의 교회로 나타나 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이것에 대한 역효과(이단과 사이비의 융성)나 교인들의 피로(대체 교단마다 무슨 차이란 말인가?)가 잇따라 온 것도 사실이다. 건물로서의 교회든, 공동체로서의 교회든, 교회를 이루어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이 책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제목에 해당하는 '센터', 즉 '중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사역의 중심에 신학적 비전을 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줄타기식 중용과는 조금 다르다. 사역이 보여지는 것,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 이면과 동기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그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모든 인류의 죄가 사하여지고, 인간의 죄로 인해 타락한 창조 세계 전반이 회복된다는 선언이다. 그러니 복음은 믿는 자뿐만 아니라, 아직 믿지 않은 자에게도 기쁜 소식일 수밖에 없다. 죽음에서 피할 도리가 없던 우리에게 조건 없이 주어진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에 대해 비종교(믿지 않음)과 종교(나를 위한 믿음)으로 반응하는 모든 자들을 위해 말씀이 필요하다. 저자는 그 대상을 도시에 사는 자들에 집중한다.
전도와 선교는 보통 미개척 영역, 제3세계로 향해 있던 때가 있었다. 기술의 발달로 이미 많은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아직 문명이 닿지 못한 곳에 말씀이 전해지면, 사명이 완수된다고 믿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나 열심을 다하다 보니, 복음이 전파되기만 할 뿐 공중에 흩뿌려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도시에 대한 사명이 축소되고, 오해되었다. 사실 부흥이 가장 필요한 곳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인데 말이다. 이것을 깨달아도 정작 도시마다 어떻게 전도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대해 팀 켈러 목사는 상황화, 즉 복음의 본질을 타협하지 않으면서 번역되고 적응되는 것을 주장한다. 실제로 복음은 각 문화권과 시대에 맞게 적응해왔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과 지금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시나, 각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역사하셨다.
상황화에서 중요한 것은 중심을 지키는 일이다. 문화를 너무 받아들이면 자유주의 신학이 된다. 성경의 최종 권위를 문화에 기대면 안 된다. 그러나 일반 은총을 이해해야 하고, 세상 문화와 일방적으로 단절되면 곤란하다. 은혜의 복음이 참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나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세상의 문화를 정죄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대항 문화를 만들고, 기꺼이 헌신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네 가지 모델을 제시하여 균형 잡힌 개선법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교회마다 다르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는 어느 하나의 사역에 치우치지 말 것, 비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예배를 드릴 것, 복음과 구제를 함께 할 것,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에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교파가 다르더라도 같은 신학적 비전을 공유하는 복음의 생태계를 도시에 구축하자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설교는 없으며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교회도 없다.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공동체"라는 보편적 정의가 있지만, 애초에 이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교회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 설교를 찾아듣거나,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교인에게 일침이 된다. 완벽한 목회자도, 완전히 성숙한 공동체도 없다. 성도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 구하며, 자기 부인을 거쳐야 한다. 타인에게 의존하여 나의 죄를 씻으려는 욕망만큼 무섭고 허망한 것도 없다. 또한, 잘 알지 못하는 열방과 국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면서 자신이 속한 도시 내지는 지역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성경적 명령을 올바르게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현 주소는 어떨까? 어느 때보다 사역이 활성화되고, 사역의 방법론이 다양해진 시대이다. 그러나 그만큼 마음속에 신학적 비전을 새기고 살아가는 자들이 비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내 지식으로 함부로 모든 것을 헤아릴 수는 없으나,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해 뜨겁게 기도하는 것에 비해, 십자가의 무게 앞에서 도망치고 주저하는 이들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투덜대지는 않으리라. 우선 기도로써 회복을 바라리라. 그리고 나의 작은 믿음보다 다른 모든 신자들의 믿음이 더 큼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한 자세로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차분히 진행하겠다. 내 앞에 어떤 일이 펼쳐져도 주님이 보시기에 선하시고 합당한 것이니, 그것을 믿음으로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