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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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결국 이 세상을 일종의 동굴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제 사라마구의 『동굴』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고, 그 안의 진실이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상이라는 동굴 속에서 문학이라는 빛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내가 이 소설에 매료된 것은 센터에 순응할지 반항할지 결정해야 했던 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 자체보다는 시시각각 독자에게 말을 거는 서술자 때문이었다.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주제이다. 내가 문학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했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도 마찬가지의 주제를 다루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눈먼 자들의 도시』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다. 


 『동굴』에서 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소재는 바로 유기견 '파운드'이다. 시프리아노 알고르가 개를 받아들였을 때, 그는 개의 이름을 '로스트(잃어버린)'로 지을지 '파운드(발견된)'으로 지을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한다. 이는 버려진 과거가 아닌, 발견된 현재를 중요시하는 알고르와 그의 딸 마르타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알고르에게 아내의 죽음은 분명한 상처이고 그를 좌절하게 하는 요소지만, 마르타의 임신이 그 노인을 계속 살아가게 만든다. 마치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빛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간은 얼마든지 과거의 어둠, 무지의 시대 속에 갇혀 있을 수 있다. 현재의 빛, 인식의 시대로 전환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선택이다. 그것을 위해 따가운 햇살과 수고를 견뎌야 하지만, 새로운 삶이 줄 진정한 자유에 비하면 아주 값싼 것이다.


 작가가 종교적 모티브를 항상 사용한다는 점을 보았을 때, 시프리아노 알고르가 도공인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인간이 흙에서 빚어졌다는 성경 구절을 이용해, 찰흙 인형을 만드는 알고르와 마르타의 모습은 인간의 창조와 연결된다. 센터의 의뢰를 받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인형을 굽다가, 필요 없어지자 빗물에 녹아 없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그들의 행동은, 어쩌면 동굴 속의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세계에 무관심한 신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역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성상의 눈을 가린 상징적인 장면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의 모습을 고발하면서 신의 부재를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신은 왜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고 침묵하느냐고 말이다. 


 대신에 주제 사라마구는 소설 속의 세계의 창조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이 세 사람의 알레고리가 현실과 무관한 우화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듯이, 그는 이렇게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이 소설의 정연한 논리와 규칙을 어길 수 있고 반드시 어겨야 하지만, 한 사람의 배타적이고 본질적인 특징, 즉 그의 성격, 그의 존재 양식, 그만의 뚜렷한 본성을 구성하는 요소만은 결코 망가뜨릴 수 없다. 사람의 성격이 모순으로 가득 찰 수는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아서는 안 된다. (p.291)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부정적인 뜻을 분명히 선언하기 위해 부정을 뜻하는 단어를 두 개나 품고 있는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전문적인 문법학자들에 따르면, 그런 문장은 오히려 강한 긍정을 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즉 We can't do nothing이라는 문장이 결국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다(We can do something)는 뜻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p.401)


 그는 이야기 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동굴의 비유를 글라우콘에게 상세하게 설명하는 소크라테스 역할을 자처한다. 마치 그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그러나 그 역시 센터를 떠나 새로운 길을 걷는 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나머지는 독자가 써 내려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문학은 동굴 안을 밝히는 빛이기 때문에 존재할 가치가 분명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연히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 빛을 보고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문학은 실로 무용한 것이리라. 그 불안하고 위태로운 길을 기꺼이 걸어갔던 자들이 있었다. 나는 단지 동굴 안에 있는 자들에게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꼭 변화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어둠이 익숙하다면, 머물러도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빛이 있는 곳이다. 나는 어떤 것도 강요할 힘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어둠을 헤쳐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냐, 그가 물었다. 항상 시작하는 지점부터요, 첫걸음부터, 마르타가 대답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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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 마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9
윌리엄 골딩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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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간만에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충격을 받은 책을 만났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는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파리대왕』을 집필한 윌리엄 골딩의 또 다른 책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페이지에 나타난 글자를 쫓아가며 읽기에 바빴다. 서술자는 바다 한복판에 떨어진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가 점차 신체를 되찾아가고 바위 섬에 표류한 이후 구조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틴이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바람들이 왜곡되게 실현되며, 마틴은 자신이 만든 환상을 보고 미쳐간다. 그때 검은 번개가 나타나 그가 만든 가짜 세상을 파괴하고, 마침내 마틴 자신마저 파괴한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야 해군이었던 핀처 마틴은 방수 장화를 벗을 틈도 없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독자인 내가 느낀 충격은 마틴이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모두 핀처 마틴이 만든 환상이었단 말인가?


 이 소설의 세계에 초대되려면 상당한 인내력이 요구된다. 작중 초반부는 현재 상황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아주 모호하게 쓰여져 있다. 인간이 아닌 주어들이 계속 나타난다. 읽으면서도 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아가 자신의 상태와 주변의 상황을 인지하게 되면서 독자 역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나중에 그것들이 모두 죽음을 인정하지 않던 핀처 마틴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도,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독자는 적어도 자신이 인지한 것은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은 누가 뭐래도 믿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 아닌가?


 핀처 마틴은 뛰어난 연극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의 자아를 지배하는 것은 구조되기 위한 간절한 노력보다는 바위섬의 구성물에 이름을 짓고, 각자에게 역할을 배분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 소극장에서 기필코 주연을 맡는다.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해군에 입대해야 했던 현실 때문인가,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도 갈팡질팡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정의하는 일뿐이었다.


 크리스토퍼 해들리 마틴. 마틴. 크리스. 나는 언제나의 나 그대로다! (p.103)

 

 이런 식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행위는 곧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욕망을 마음껏 발휘하는 마틴의 모습을 정당화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사망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떼를 쓰는 그의 영혼의 자작극이다. 독자는 마지막 장에 나타난 타인의 증언을 통해 차가운 진실을 마주한다. 그가 만든 세상은 검은 번개에 의해 파괴되었다. 검은 번개가 나타나든 그렇지 않든, 마틴의 죽음은 확정적이고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마틴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착각이다.


 우리는 모든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분명히 살아 있다. 현실이라는 것은 개인의 환상 속에서 전개되지 않는다. 계속 흐르는 시간선 위에 서 있는 우리는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며 어디론가 흘러간다. 스스로 만든 바위 섬과 망망대해 위에 갇힌 마틴과는 분명 다르다. 꼭 그럴까? 우리 마음 속에는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과 욕망이 없는가? 나에게도 많은 후회와 아쉬움과 원망과 미련이 있다. 나는 가끔 그것을 해소하는 상상을 한다. 가상의 세계 속의 나는 아주 잘 나가기도 했다가, 성인만큼 선량하기도 했다가, 추악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상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조금 씁쓸해 한다. 환상은 그토록 무섭다. 그것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죽인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세상이 있다. 상상력이 부족한 핀처 마틴에게는 이루지 못한 과거,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 섬, 구조되지 못할 미래가 전부였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더 큰 세상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만든 세상 속에서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성취를 거두어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이후는? 현실이라는 검은 번개가 모든 환상을 박살 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는 언제나의 나 그대로다"라고 외치며 자신을 위해 살아가자는 결심을 되새기는 일뿐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진리를 명분으로 삼아 스스로 만든 세계에 갇힐 필요도, 타인을 마음대로 하려는 욕망을 간직할 필요도 없다. 마틴의 영원 같은 시간 속에서 나다니엘은 얼마나 많이 죽고, 메리는 얼마나 고통 받았을까? 아무리 그 세계가 가짜라고 해도, 그에게 그럴 권리가 있을까? 


 이제 타인을 마음대로 다루고 지배하는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왜곡된 탐욕은 인간의 정신을 망가뜨린다. 수병들의 시신을 거두는 캠벨과 데이비드슨은 마틴이 고통을 받았을까 걱정한다. 그리고 죽은 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영혼들이 있다. 대서양 한복판이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 도처에 말이다. 인간의 필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원히 이 순간을 살아갈 것처럼 지금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들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들을 안타까워 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이 만든 세상은 안녕한지, 그곳에 진정한 평안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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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엄마의 선물로 읽게 되었다. 신춘문예의 시들을 이렇게 따로 모아놓은 책이 있다는 것은 꽤 새로웠다. 시에 대한 감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흥미로운 것은 시인들의 소감들이었다. 대부분 주목받지 못했지만, 꿋꿋이 시를 써 왔고, 한 번 시인으로 등단한 이상 계속 그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공통적으로 보였다.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시에서 느껴진 자유분방함이 절제력 있는 수상 소감과 만나서 신비한 인상을 주었다. 앞으로 신춘문예로 당선된 신선한 시들을 자주 만나고 싶다.


 『에피쿠로스 쾌락』은 돈을 주고 구매한 책이다. 나쁘지는 않았고, 고전을 읽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기분을 주지만, 나와 견해가 참 다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사고가 잘 변하지 않은 탓인가, 신념이 확고한 자의 철학이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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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를 추억하며
마크 트웨인 지음, 마음속 샛별 옮김 / 황금비둘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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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다르크라는 영웅은 우리와 거리가 꽤 있어 보인다. 중세 시대의 프랑스에서 자란 시골 소녀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업적과 죽음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백년 전쟁을 종결짓는 데 결정적으로 일조했고,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으나 명예가 회복된 이후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영웅으로 기록되고 있으니까. 마크 트웨인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영웅 서사에서 빠지지 않은 기원이 되었다. 재능을 알지 못한 채 평범하게 자라났으나, 신의 계시를 받아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영웅의 등장은 예언으로 예고되었으며, 장본인은 평화를 사랑하고 무력이 아닌 지혜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포로가 된 이후에도 온갖 핍박과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며 숭고한 정신을 유지했으나, 속임수에 넘어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보다 완벽하고, 동시에 인간적인 영웅 서사가 어디 있을까? 작가가 인간이 낳은 가장 비범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이유가 충분히 느껴진다.


 물론 작가의 다소 과장된 평가나 허구를 제하고 보면, 잔 다르크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아무리 많은 이들의 증언이 있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약점은 미화되고, 중요성은 확대되기 마련이니까. 그녀를 둘러싼 여러 가지 신비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잔 다르크가 성자처럼 숭배되어야 할까, 라고 물어본다면 고개를 젓고 싶다. 잔 다르크 역시 연약한 한 명의 사람일 뿐이었고, 그녀가 영웅으로 서기까지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비롯한 수많은 조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마크 트웨인 역시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그녀의 친구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을 화자로 만든다. 이들의 목소리는 작품을 다소 감상적으로 만들기는 하지만, 보다 생생하게 그녀의 업적을 드러낸다.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잔 다르크와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받는다면, 누구나 잔 다르크가 될 수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작가는 그녀에게 주어진 환경의 제약(교육을 받지 못한 시골 소녀라는 점 등)을 언급하지만, 적절한 교육과 좋은 환경이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그녀와 같은 지략을 갖출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열아홉의 소녀에게는 누구도 쉽게 가지지 못하는 강한 정신력이 있었다. 손발이 묶인 채 몇 달, 거의 몇 년을 감옥에 갇혀 피폐해진 환경 속에서도 굳센 정신과 선량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은 진정 초인적이고 영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니 눈앞의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을 고할 수도 있었지만, 잔 다르크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열악한 상황에서 오히려 강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진술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녀가 성스럽게 묘사되는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잔 다르크는 그녀가 받은 엄청난 재능과 명예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출발한 곳을 잊지 않았다. 프랑스를 구출해 냈을 때, 그녀가 소원으로 삼은 것은 단 하나, 고향 동래미에 영원히 세금을 면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약속은 결국 깨졌지만, 자신의 부와 명예가 아닌 고향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귀중하다. 보통 짧은 기간 내에 많은 것을 이루어 내는 사람들은 승리감에 젖은 나머지 자신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잊곤 한다. 그리고 더 높은 곳을 나아가기 위해서 타인을 짓밟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납득한다. 하지만 잔 다르크가 원한 것은 이 전쟁이 승리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결코 되찾을 수 없던 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잔 다르크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참전한 이후로 한 번도 그런 평화를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누구나 잔 다르크가 될 수 있지만, 누구도 될 수 없다. 그러한 위기 속에서 그러한 지혜와 명철을 보이면서도, 그러한 선량한 마음과 굳건한 정신을 간직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마크 트웨인이 에디슨의 사례를 언급했던 것처럼, 주변의 도움과 적절한 상황이 갖추어질 때 영웅이 탄생하는 법이다. 가장 이상적인 시대는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지만, 영웅을 요구하지 않는 시대는 한 번도 없었고, 시대의 부름에 응하는 영웅이 등장한 적은 더욱 적었다. 그 좁고 험한 길을 누구도 걸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살리는 것은 영화나 매체에서나 등장하는 일이지, 역사 속에서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 마크 트웨인이 잔 다르크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던 까닭은,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기를 동경했기 때문이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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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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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펜을 들어 첫 문장을 쓰기까지, 아니 생존자들을 만나 아픈 기억을 되뇌이기까지, 비극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이겨내기까지. 소설은 그 허구성 때문에 종종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차라리 『소년이 온다』는 이 모든 것이 꿈이었길 바라게 만든다. 다름이 아니라, 권력이 휩쓸고 간 자리가 너무나 황폐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은 지배욕이다. 상대의 삶과 죽음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것이 초래한 수많은 역사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실히 그 힘을 떨치고 있다. 권력은 종종 그 지배욕이 당연한 것인양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권력이 행사된 자리에는 생명도, 인간성도, 희망도 찾아보기 힘들다. 소년의 이름과 꿈과 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차곡차곡 완성된 이 소설의 페이지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했을까?"라고 질문했다. 내국인에게 반동분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얼마든지 잔인하게 학살해도 된다는 허가를 내렸다니, 그리고 자신의 승진과 돈을 위해 그것을 기꺼이 수락했다니, 원하는 자백을 듣기까지 수감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마음대로 유린하다니, 어떻게 같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럴 수 있을까? 누가 그들에게 이러한 권리를 부여한 것인가? 그 수많은 질문에 위정자들은 "권력"이라고 대답하고, 억울하면 힘을 기르라고 나를 도발한다. 그렇게 세상에 부조리가 판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면, 네가 힘을 길러서 그것을 바꿔 보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역사는 알고 있다. 그날 광주 사람들이 강했던 이유는 한 명 한 명이 연약했기 때문임을 말이다. 진정한 힘은 약자에게 있다. 물론 고문과 학살에 희생된 이들과 그들의 유가족은 무슨 말이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에게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아니 애초에 전두환의 집권과 비상계엄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이 있었다면,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그 체제가 올바르게 작동했더라면 5·18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작점을 더듬어 가보자. 개인은 세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아무리 힘을 기른다 한들,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몰아치는 파도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그날 광주 시민들이 보였던 작은 용기는 거대한 권력에 휩쓸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는 황폐함만 남아 있었다. 밝혀지지 않는 진실에 통곡하고, 찾아내지 못한 유골들에 애통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이 밝혀짐에 따라 변화는 시작된다. 동호, 정대, 은숙, 선주, 진수, 성희....... 권력이 군홧발과 탱크로 짓밟았던 사람들의 몸에서 영혼이 솟아난다. 그 어떤 무기와 억압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순결한 정신이 다른 이들의 마음으로 이전된다. 그곳에 있었던 어떤 이들의 희생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또 다시 수많은 이들이 고통과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했다. 그 대가로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얻기도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시간을 돌렸을 때 몇 번이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대답하리라. 고결한 양심은 그런 것이니까. 자신의 안위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손해와 실패를 무릅쓰고 진실을 밝히려는 마음은, 인간의 역사를 피로 얼룩진 지배욕에 맞서온 강력한 힘이니까.


 역사는 늘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말해야 할 것은 말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찰나의 지배욕을 맛보기 위해 고결한 양심을 버린 이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영원한 악인으로 기록된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힘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역사는 어떤 이도 그것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끊임없이 "억울하면 힘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해도,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약자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권력의 밑바닥으로 갈수록, 나의 욕망을 포기할 수록 우리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곳에는 어떠한 사상도 설명하지 못한 신비한 힘이 있다. 권력자들이 그토록 없애고자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 나는 그 힘을 믿고 나아가려 한다. 권력이 휩쓸고 간 자리는 황폐하지만, 그 자리에 다시 꽃을 피우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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