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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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를 만나다

 

 나에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매우 뜻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4년 전, 플라톤의 『국가』를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 천재 중의 천재인 플라톤의 사유를 따라가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국가』를 완주했다. 그 후, 나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차츰 알아가기 시작했다. 『청소년을 위한 국가』에서 시작해서 전남대학교에서 『파이돈』을 읽으며 토론하고, 『소피스테스(소피스트)』와 『정치가』를 읽기 위해 안달했다. 나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는 것을 즐거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다니는 '시나브로 인문학 교실'에서 플라톤을 읽자는 말이 나왔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첫 번째 대화편은 『프로타고라스』, 소피스트의 궤변을 폭로하고 '덕'이 무엇인지 다루는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전만큼의 감흥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에 한 『메논』, 『크라튈로스』, 『소피스트』,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변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네 작품을 요약하는 숙제를 꼬박꼬박 했지만, 즐거워하지 않았다. 플라톤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힘들어 하다가, 나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플라톤의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라는 한 인물을 본 것이다. 처음에는 소크라테스가 대화편에 등장하는 인물로만 간주했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크리톤』, 그리고 『파이돈』을 다시 한 번 보니, 부당한 죽음에 대해 용감하게 맞선 위대한 인물로 변해 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플라톤의 대화편을 제외하고, 모든 플라톤의 글을 만났다. 그 중 나의 마음을 가장 끈 것은 『국가』와 이 책에 수록된 네 대화편이었다. 이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야말로 나의 단조로운 플라톤과의 만남에 불을 지펴준 고마운 인물이기에, 이 글을 그에게 바친다.『국가』는 지금 필사하며 정독하고 있으니, 나중의 일로 미루고, 이 자리에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크리톤』, 그리고 『파이돈』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향연』은 생략한다). 물론 나의 글솜씨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깊은 생각에 닿을 수는 없으리라.

 

 

 

 중세 필사본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사실 이 그림은 잘못되었다. 지

금 붓을 잡고 있는 이는 소크라테스인데, 소크라테스는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진리를 포기하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외침: 『소크라테스의 변론』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래의 요약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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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의 진리에 대한 변론-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서 있다. 시인 멜레토스, 장인이자 정치가인 아니토스, 변론가 리콘이 그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하늘에 있는 것과 지하에 있는 것을 탐구하고, 약한 주장을 강한 주장으로 만들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의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변론을 하려고 한다. 그 전에 그는 청중에게 정중하게 자신의 말투에 대해 양해해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이 올바른 것을 말하는지 살펴주기를 요청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고발한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었는데, 한 부류는 실제로 고소한 사람들이며 다른 한 부류는 전자보다 더 두렵고, 이름도 모르는 부류를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후자에 대해 변론한다. 이들은 자신을 자연을 탐구하는 자, 또는 소피스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적인 지혜를 탐구하는 사람이며 소피스트와는 다르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친구 카이레폰이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자는 없다”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아테네 사람들을 계속 캐물어 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현명한 존재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과 “내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참으로 현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후 소크라테스는 현명한 자들로 여겨지는 시인, 장인, 그리고 정치가들을 차례로 만나 대화를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은, 시인은 자신들이 지혜가 아닌 소질과 영감으로 시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장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곳에서도 훌륭하게 자기 기술을 발휘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캐물어서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변론한다. 소크라테스는 마치 신이 신탁을 통해 자기를 본보기 삼아 지혜와 관련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전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말하려 하는 것 같다고 하며, 자신은 이 신탁을 따르기에 바빠 나랏일이나 집안일을 돌볼 겨를도 없다고 말한다. 한데 갑부의 자식들이 자신을 따라다니고 흉내내서 많은 사람들을 망신시켜놓고서, 망신당한 사람들이 오히려 소크라테스를 비난하고 공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선입관이 쌓여버렸다고 말한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를 상대로 자신의 고발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고 밝힌다. 그는 멜레토스에게 계속 캐물어서 결국 그를 자가당착에 빠지게 하고 그 스스로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를 타락시키지 않았고 신을 믿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 후, 소크라테스는 아킬레스의 일화를 들며 자신이 받은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설파한다. 만약 죽음이 두려워 도망간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자 수치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그는 만약 철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무죄방면해주겠다고 누군가가 제안한다면 그것을 거절할 것이며 동정심을 유발시켜서 목숨을 구걸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자신을 법으로 판결 내려주라고 호소한다.

 

   사형이 확정된 후에도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는 자신을 사형시킨다 해도 더 가혹한 캐물음이 배심원들에게 닥칠 거라고 예고한다. 또, 그는 죽은 후에 만날 현인과 영웅들과 대화하리라는 상상에 젖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죽으러 가는 길과 사는 길 중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 신을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며 변론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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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는 누구인가? 그가 죽은지 250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를 인류의 4대 성인으로 여기며 인생의 모델로 삼고 있다. 그는 신의 신탁을 받고 난 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하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재판 과정에서 소크라테스가 한 말들을 플라톤이 기록해 놓은 책이다. 하지만 이 현자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몇 시간 동안 변론을 아무리 해도, 사람들 마음 속에 깊이 박힌 선입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살려달라고 구걸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대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글쎄 언젠가는 그가 델피까지 가서 감히 이에 대한 신탁의 대답을 구했죠.-한데, 제 말씀대로, 여러분! 소동을 일으키지는 마십시오.- 실은 그가 저보다도 더 현명한 이가 있는지를 물었으니까요. 어쨌든 피티아 여제관은 더 현명한 자는 아무도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 그리고 그(정치인 아니토스)와 대화를 해 본즉, 이 사람이 다른 많은 사람한테는 현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특히 자신이 그렇게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제게는 생각되었습니다. (…) 저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제 마음 속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람보다야 내가 더 현명하지. 그건, 실은 우리 중에서 어느 쪽도 훌륭하디훌륭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은데도, 이 사람은 자기가 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대단한 걸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야, 사실상 내가 알지 못하듯, 알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지. 어쨌든 적어도 이 사람보다는 바로 이 사소한 한 가지 것으로 해서, 즉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이 사실로 해서, 내가 더 현명한 것 같아." (서광사,『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박종현 옮김, 2003, p. 115~118)

 

 

 

 소크라테스가 신탁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사실 이 신전 앞에 적혀있는 글귀다.

 

 이 변론에서 배울 수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바로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는 사실이다. 동양의 공자도 『논어』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자로야! 내가 너에게 아는 것이 뭔지 알려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꿔서 표현하면, '아는 척 하지 말고 자신이 아는 것만 말해라'는 것이다. 즉, 필요할 때 말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태도를 버리고, 겸손하고 경건한 자세로 진리를 추구하라는 의미이다. 자신이 참으로 아는 것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그 거짓이 진리로 향하는 눈을 가로막으리라. 소크라테스는 70년 평생 이 한 가지 진리만을 추구했고, 전파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멜레토스, 아니토스, 리콘처럼 거짓에 눈먼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비방하고 죽이려 했다. 그리고 이제는 소크라테스에게 협박을 하면서 그 진리를 포기하라고 소리지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보시오,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줄곧 고민하면서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오.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오직 한 가지, 즉 자신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지 그릇되게 행동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자신이 선한 사람처럼 행동하는지 악한 사람처럼 행동하는지만을 고심해야 한다는 말이오. (…) 사람이 일단 자리를 정했으면, 그것이 그에게 가장 좋아 보였기 때문이든 아니면 상관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든, 그는 죽음이든 그 밖의 무엇이든 괘념치 말고 오직 불명예만을 생각하면서 위험을 무릅쓱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해문집, 『소크라테스의 변론·파이돈』, 2008, p.37) 

 

 이 말에서 나는 소크라테스의 진실된 태도에 감동했다. 올바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자,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린 자, 소크라테스. 이 용감함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의 항의에 못 견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건졌다면, 지금도 그가 이렇게 존경받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크리톤』에서도 이어진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친구 크리톤의 부탁을 받아들여, 조국을 버리고 도망쳤다면, 오늘날까지 그가 명예로운 성인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사실 죽음이 코앞에서 자신을 위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겁을 먹어 그가 해달라는 대로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목숨까지 버리는 용기로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와 올바름을 끝까지 지켜내어, 명예까지 얻었다. 결국 그는 사형 선고를 받지만,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하는 것은 이런 자신감과 용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파올로 베로네세의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그는 『변론』 내에서 벌금에 보증 서 줄 사람들 중 

언급될 뿐이다.

 

 하지만 이제 떠날 시간입니다. 저에게는 죽으러, 여러분한테는 살아가려 떠날 시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신을 빼고는 모두에게 불명한 일입니다. (서광사, 같은 책, p.189)

 

 올바른 삶과 조국을 위한 선택: 『크리톤』

 

 (줄거리 요약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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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화편은 어둑새벽에 소크라테스의 친구 크리톤이 감옥에 있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눈앞에 두고도 단잠을 자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일어나자 크리톤은 그에게 그의 사형집행을 미뤄주던 배가 오늘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탈출하라고 설득한다.

 

   크리톤은 만약 자신이 소크라테스를 죽게 내버려둔다면 친구를 구할 수 있었는데도 돈 때문에 친구를 버렸다는 평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의 평판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가장 나쁜 짓도, 가장 좋은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득에 실패한 크리톤은 돈이나 친구를 걱정해서 탈출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음을 설파한다. 값싼 밀고자들은 돈으로 입을 막을 수 있고, 소크라테스를 안전하게 모실 곳까지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리톤은 아들들의 양육과 교육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을 고아로 만들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사실 이 친구는 자신의 소심함으로 인해 소크라테스를 탈출시키지 못했다는 평판을 걱정했다.

 

   크리톤의 주장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반론을 시작한다. 우선 그는 의견(평판)들 중에서는 유의해야 하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되는 의견 역시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다중의 의견보다는 그 문제에 관해 이해가 깊은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몸이 건강해지듯이, 몸보다 더 귀중한 영혼 역시 전문가와 ‘진리’가 말하는 바에 유념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것을 가장 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나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올바르지 않은 짓을 하는 것은 좋지도 훌륭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해를 입었다고 앙갚음을 하는 것 역시 올바르지 못한 짓이라고 크리톤에게 문답을 통해 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서로 지키자고 합의한 것, 즉 법률이 올바를 경우 이것을 지켜야 하는지 친구에게 묻는다. 물론 그의 답은 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나라를 설득하지 않고 도망간다면 합의한 바 있는 그 올바른 것들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당황한 크리톤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법률과 시민공동체를 의인화시켜 그 답을 내린다. 만약 그가 법률을 어기고 도망간다면 이 나라는 전복될 것이다. 만약 그 판결이 잘못되었다 해도 그것 역시 합의된 것이고, 그를 양육하고 가르친 조국에게 앙갚음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다. 누구보다도 조국에 충성했던 자가 조국을 저버리는 것은 미천한 노예의 행동이나 다름없다. 그런 뻔뻔스러움을 무릅쓰고 외국으로 간다 해도 사람들의 비난을 들으며 비참하게 살 것이며 죽어서도 결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결국 이 긴 훈계의 결론은 어떤 것보다도 올바른 것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권유를 무릅쓰고 신이 인도하는 운명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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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소란이 끝나고, 달빛을 받으며 차가운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용감한 소크라테스. 사실 『크리톤』은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온다. 탈출을 하느냐 마느냐의 긴박한 상황인데, 너무나 평온하게 대화를 주고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철학자의 칼이 있다. 크리톤의 설득도 상당히 일품이지만, 소크라테스의 반박은 그를 능가한다. 잠깐 들어보자.

 

 그러면 이보게! 이처럼 우리는 많은 사람이 우리를 두고 뭐라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유념하지 말고, 올바른 것들과 올바르지 못한 것들에 관해 전문가인 한 사람 그리고 진리 자체가 말하는 바에 대해서 유념해야만 하네. (…) 즉 가장 중히 여겨야 할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고 함이 우리에게 있어서 여전히 타당한지 아니면 그렇지 못한지 다시 생각해 보게나. (서광사, 같은 책, p.225~226)

 

 죽음 앞에서 사람은 가장 진실된 것을 털어놓는다고 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곧 '진리'가 된다. 맞다,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이다. 왜 누군가는 그저 그런 삶을 살고, 누군가는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가? 사실 그것은 사고방식의 차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훌륭하게 살면 그것이 바로 훌륭한 삶이요, 행복한 삶인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아테나이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선택을 듣고 "그런 멍청한 녀석!"이라고 비웃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내가 평가하는 소크라테스의 삶은 당대의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리고 선택만 보지 말고, 선택의 이유까지 보라. 소크라테스가 탈출이 아닌 죽음을 택한 까닭은 훌륭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국 아테나이를 위함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라가 정한 법을 어기면 나라가 혼란에 빠져 전복될 수도 있다. 공동체가 힘을 모아 정한 법이 그렇게 쉽게 깨져버리면, 다른 사람들도 서로 법을 어길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혼란 속에서 불행해질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여기까지 본 것이다. 그의 마음 속에는 자신을 죽인 '원수' 아테나이 시민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크리톤은 그 사랑을 보고 포기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성립되는 '헌신'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만두게, 크리톤! 신이 이렇게 인도하니, 이렇게 하세. (서광사, 같은 책, p.245)

 

 영혼과 죽음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논의: 『파이돈』

 

 마침내 대단원이 막이 내렸다. 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음으로써 멋진 삶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스승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그를 기리기 위해,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대화편을 써냈으니까. 『파이돈』은 그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임종 장면을 그리는 동시에, '영혼'과 '죽음'이라는 가장 중요한 주제에 대해 깊이 논의하고 있으니까. 이 마지막 장면에서 플라톤은 자신을 병에 걸렸다고 밝힘으로써 겸손하게 물러난다.

 

 

 장 프랑수아 피에르 페롱 작, 〈소크라테스의 죽음〉.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인 만큼, 그

에 관련된 그림도 많다.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자신이 죽으면 신들과 함께 하리라는 확신을 품고 있다. 그는 자신이 죽어서 호메로스와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축복받은 자들의 섬(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섬)'에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이 죽어야 하는 것에 화를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제자들에게 설명한다.

 

 올바른 방식으로 철학에 종사해 온 사람들은 평생 죽는 것과 죽음만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일세. 이제 이 말이 사실이라면, 평생 이것만을 열망해 오다가 정작 오래도록 열망하고 예비한 것이 닥쳤을 때 화를 낸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짓이 되겠지. (서해문집, 같은 책, p. 91)

 

 

 『파이돈』의 키워드 중 하나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죽음이다. 이 대화편은 보통 사람의 죽음이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등장해야 하는 개념이 바로 '영혼'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몸과 영혼의 분리라고 주장한다. 철학자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몸이 영혼을 붙잡아 참된 것을 못 보게 한다. 반면, 사람이 죽어 몸과 영혼이 분리되면, 그제서야 영혼은 진리를 볼 수 있고, '순수'해지는 것이다. 즉,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영혼과 몸이 분리되기(죽음)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소크라테스는 그 순간의 직전에 있으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마땅하다. 나 역시 그의 엄청난 논박에 사로잡혀 버렸다. 난 지금 그의 제자가 된 것처럼, 그의 말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마이클 하네트의 〈소멸과 불멸〉. 소크라테스는 '대립되는 것은 대립되는 것으로부터 생

겨난다'는 논박을 통해 살아 있는 것이 죽은 것에서 나온다는 논증을 얻어낸다. 그리고 그는 또 다

시 이로부터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낸다. 바로 '영혼 불멸'이다.

 

 영혼 불멸. 이것이 바로 『파이돈』의 주제다. 플라톤은 '영혼 불멸'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많은 장을 할애한다. 나는 기독교를 믿기에 오래 전부터 영혼이 불멸함을 믿어 왔다. 그런데 플라톤 역시 영혼 불멸설을 지지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플라톤은 『메논』에서 주장한 말을 다시 꺼낸다. 영혼은 순환하여 새로 생성되는 것에 들어간다. 하지만 영혼은 땅에 있는 것과 하데스에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 따라서 영혼을 지닌 존재인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왜 사람은 덕과 지혜와 진리를 모르는가?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상기'해야 하는 것이다. 상기는 기억과는 다른 개념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문답을 통해 끌어내는 과정을 뜻한다. 소크라테스는 오랫동안 문답법을 통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진리를 끌어내는 산파 역할을 해 왔다. 이 산파는 '끌어내는 과정'을 배움이라고 말하며 "배움이 곧 상기다"라고 제자들에게 설파한다. 

 

 그들은 다시 영혼에 관한 대화로 돌아간다. 시간에 매여 있는 우리와는 달리, 영혼에게는 시간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영혼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했고, 죽은 후에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신적이며 죽지 않고 지성을 통해야 알 수 있고 단일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해체되지도 않고 그 자신에 관련해서 항상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가장 닮았고, 반면에 몸은 인간적이고 사멸하며 지성을 통해 알 수 없고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해체되고 자기와 관련해서도 절대로 항상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과 가장 닮았다고 말이야. (서해문집, 같은 책, p.129)

 

 

 

 자크 필립 조제프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몸의 쾌락보다는 영혼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크라테스

의 태도를 보고, 몸에 얽매인 나의 타락한 생활에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도

"죽음은 존재의 해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영혼은 몸에 얽매인 존재인 만큼, 몸의 방종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영혼은 몸보다 더 월등한데, 왜 더 하등한 몸에게 얽매여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영혼은 일종의 '조화'다. 만약 영혼이 몸을 내버려두고 자기 멋대로 움직인다면,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이는 사람이 될 것이고, 한 마디로 '미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영혼은 스스로를 죽을 때까지 봉인시켰다. 하지만 그것을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바로 '논의'다. 소크라테스는 "논의를 싫어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란 없다"고 말한다. 논의를 통해 완전해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영혼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선 큰 축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영혼을 사랑하는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는 생각하지 말고 진리를 훨씬 더 많이 생각하게나. 만일 내가 뭔가 참된 것을 말한다고 생각되면 동의해 주고, 그렇지 못하다면 자네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논의를 동원해서 저항하게"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것만은 꼭 유념해두게"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만일 영혼이 정녕 죽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하는 이 시간은 물론이고 영원한 시간을 위해서도 우리는 영혼을 보살펴야 한다네. 자신의 영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걸세. 만일 죽음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면, 나쁜 사람들에게는 천행일 테지. 죽으면서 영혼과 몸과 그들 자신의 나쁨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니 말이야. 하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 것이 분명하니, 영혼이 나쁜 것들에서 벗어날 수단이나 구원받을 길은 가능한 훌륭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것 말고는 없을 것이네. 영혼이 하데스로 가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교육과 생활 방식밖에 없으니 말이야. 이것들이 저승으로 가는 여정의 바로 첫 단계에서부터 죽은 사람에게 가장 이롭거나 해로운 것이라고들 하지. (서해문집, 같은 책, p.193)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 있는 지옥, '코키토스'에 관한

삽화.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혈족을 배신한 자들이

이곳에 온다고 한다.

 

 "왜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까, 소크라테스?" 이 질문에 그 동안 많은 대답을 했지만, 위의 대답만큼 정확한 것은 없으리라. 죽음 앞에서 그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다. "올바르게 안 살면 넌 죽은 이후 계속 불행하게 살게 될 거야"라고. 그 자신은 자신의 영혼에 확신을 가진 채로. 사실 나는 내 영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난 올바르게 살지도 않았고, 훌륭한 일을 한 적도 없다. 지혜도 없으며, 진리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고 나의 영혼에 확신을 가지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소크라테스가 죽기 마지막에 한 말일수록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나의 영혼에 확신을 품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그 보상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말이 아닐까? 나는 희망을 얻었다.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용기를, 『크리톤』에서 올바름을, 『파이돈』에서 희망을 선사해주었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 참으로 고맙다. 비록 잘못된 선택으로 부당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보여준 모든 태도와 논의는 내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왜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까, 소크라테스 선생님?"

 "너는 너 자신의 영혼과 타인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살아야 그것을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다비드가 그린 이 장면은 『파이돈』의 글귀를 연상시킨다.

"선생님께서 독약을 마시는 모습을, 아니 이미 다 마신 것을 보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자신만 해도 눈물

이 억수같이 쏟아져 얼굴을 가리고 상실감에 비탄해 했습니다. 제가 비통해 한 것은 선생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와 같은 동지를 빼앗겼다는 저 자신의 불행 때문이었습니다."

 

  아랫배 부분이 거의 차가워졌을 때, 이미 덮여 있던 선생님께서 직접 덮고 있는 것을 걷으면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빚을 갚아 주게. 소홀히 하지 말고."

  "그리할 걸세. 그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나 생각해 보게."

 크리톤의 물음에 선생님께서는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몸이 흔들렸습니다. 마침내 그 사람이 선생님을 덮고 있던 것을 걷으니, 선생님의 눈동자는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시고 크리톤은 선생님의 입을 다물고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에케크라테스! 이것이 우리 친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지혜로웠으며 올바른 사람이었다고 말해야 할 그런 분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서해문집, 같은 책, p.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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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06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쓰신 글이지만 무척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몽테뉴의 수상록을 다시 읽으며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물론 몽테뉴 자신이 워낙 소크라테스를 흠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저 역시 소크라테스를 흠모하지만 글로 쓸 엄두는 차마 내지 못하겠더군요. http://blog.aladin.co.kr/oren/6695020)

플라톤의 책들을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들이 가물가물한데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싶습니다.

이프리트 2014-01-09 11:36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지혜의 메시지를 깊이 숙고하고 싶습니다.
또한, 플라톤의 책들은 위의 대화편 외에도 깊은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는 대화편(예를 들어 『소피스테스』나 『정치가』가 있습니다)들이 많이 있으니, 그 책들도 유익하게 읽으시길 바라겠습니다.

oren 2014-01-09 13:21   좋아요 0 | URL
플라톤의 책들은 웬만한 고전에서는 너무나 자주 인용되고 있어서 언젠가는 다시 한번(제가 80년대 초반에 읽었던 책들은 《국가》,《향연》,《소크라테스의 변명》등이었고 그마저도 얼마만큼 제대로 읽었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네요) 깊게 일어봐야 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플라톤의 책 세 권을 사긴 했답니다. 세 권 모두 천병희 님 번역으로 '도서출판 숲'에서 나온 최근판이고,『국가』『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파이드로스/메논』이랍니다.

이프리트 2014-01-09 14:00   좋아요 0 | URL
다시 읽는 책도 있고, 처음 읽는 책도 있네요. 부디 저처럼 얕은 독서가 아니라 깊이 있는 독서를 하시길 바랍니다. 『국가』는 현재 조금씩 필사 중인데, 이해하기에는 제 머리가 많이 부족하네요. 어쨌든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으며 삶의 지혜와 진리를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