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본성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천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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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문명은 항상 돈과 함께 해 왔다. 경제 생활은 정치 생활과 더불어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 마치 우리 인간에게 부모님 같은 존재랄까. 물론, 그 수단의 일부인 돈이 인간보다 우월한 물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돈도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수단에 얽매여 목적을 잊고 사는 것일까? 도대체 '돈'이란 것의 본성은 무엇일까?

 

 제프리 잉햄의 『돈의 본성』은 '돈'이라는 개념보다는 '화폐'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 money라는 단어의 의미 중에는 '화폐'라는 뜻도 있으니까. 저자는 이 책에서 화폐의 본질과 그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다른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말을 빌려 설파하고(안타깝게도 그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뿐이었다), 2부에서는 화폐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결국 결론은? 안타깝게도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화폐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물질이라는 것?

 

 왜냐하면 화폐는 추상적인 단위이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날에는 동전과 지폐, 수표로 '눈에' 보이지만, 과거에는 조개나 보석 등이 화폐의 가치를 지녀왔다. 이처럼 화폐를 나타내는 것은 항상 변한다. 즉, 그것의 본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마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연상시킨다. 보이지 않는 개념에 의해 우리는 먹고 살고, 또 죽는다. 이쯤 되면 조금 소름돋는다. 내가 화폐의 줄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돈의 본성을 파악하면, 그 조종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화폐는 항상 정치적인 투쟁과 관련되어 있을 때에만 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치와 경제를 별개로 놓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물론 『중용』에서는 정치인들이 경제에 신경 쓰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돈의 본성, 화폐의 본성에 주의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돈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고, 삶의 질을 더욱 늘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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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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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갑자기 시작된다. 꿈에서 깨어난 사람은 그 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인생의 가장 첫 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사실에만 의존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한다. 나는 내가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는 삶의 부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부르겠다. 그 시간을 되찾으려면 '나'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내 근처에 있던 수많은 '너'를 찾아서 그 허전한 부분을 메꿔야 하는 것이다.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작은 여정이다.

 

 소설은 카밀라라는 여자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유이치라는 남자가 등장하면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매우 이국적인 분위기를 띤다(이름 하나로). 언뜻 보면, 이 이야기는 이 두 사람이 펼치는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2부 '지은'으로 넘어가면서 소설의 주인공은 과거의 인물로 변한다. 카밀라의 어머니, 정지은에 관한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카밀라, 아니 희재는 '너'를 찾아간다. 자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자신을 세상에 보냈고,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지은이었더라도 답답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마치 실종된 아이를 찾는 기분이랄까.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진실과 사실로 파고들어갈수록, 소설의 내용은 점점 가빠진다. 진남에 얽힌 여러 가지 전설과 그것들과 관련된 정지은의 이야기.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난 뒤, 희재는 마음이 홀가분해졌으리라.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심연을 건너가는 것, 우리가 두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는 것, 혹은 당신이 내 소설을 읽는 것, 심연 속으로 떨어진 내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카밀라가 알아낸 또 다른 사실은 그녀의 어머니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학교 내에서만 조금 알려진 시집이었지만 그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시집 속에는 어머니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감동받을 수 않을 수 없다. 카밀라는 심연 속에 숨겨져 있던 '희망'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마침내 찾았다.

 

 감성적인 작가 김연수는 책 속에서 이런 구절을 적었다. "진실은 개개인의 욕망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 밝혀질 뿐"이라고. 그렇다, 진실은 감춰져 있어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그러므로 작가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내가 읽기 위해서는 그것을 간절히 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이야기는,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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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버먼의 자본론 -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리오 휴버먼 지음, 김영배 옮김 / 어바웃어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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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운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품었던, 하고 싶었던 생각과 말들을 이 위대한 경제학자가 조리있게 잘 풀어냈다.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지적하며 나에게 그것들의 환상을 깨주었다.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뜨렸다. 그렇다, 사회주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었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꿈꾸었던 사회주의와 다른 무엇인가를. 잘못된 실험........

 

 하지만 휴버먼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지극히 평화롭다. '자본론'은 마르크스의 그것에 대한 오마주일까? 휴버먼의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그 대안인 사회주의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나는 사회주의가 "자유를 공유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수많은 주제에 관한 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나열된 에세이 같지만, 잘 보면 그것에 깊은 흐름이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타고 올라가, 마침내 사회주의의 등장과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이 책은 마무리된다. 저자가 꿈꾼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인정한다. 자본주의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그에 맞는 보상을 받는 것. 그리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조건 하에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 정말 꿈같은 제도이고, 우린 그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하는가? 그래서 사회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이론과 현실의 어쩔 수 없는 불화. 자본주의의 꿈은 무너졌고, 우린 새로운 꿈을 꾸었다. 사회주의라는. 하지만 때를 너무 앞당기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사회주의가 제대로 된 때에 나왔다면 이런 세상이 펼쳐졌으리라.

 

  노동자는 더 이상 공황과 실업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고, 전문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으로 진보하게 되고, 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고, 농민들은 자신의 농작물들을 열심히 생산하는 데 전념할 수 있게 되고(그에 합당하는 보상 역시 받는다), 청년들은 더 이상 실직 문제로 고민하지 않고 그들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여성들은 출산과 관련된 다양한 혜택을 받게 될 것이고, 유색 인종은 더 이상 차별 받지 않게 될 것이고, 자본가들은 이제 스스로의 노력으로 존경받게 될 것이다. 그래, 안다. 사회주의도 이런 장밋빛 이론을 품었지만 실현되기란 어렵다는 것을. 마치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린 이러한 이론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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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 문정희 산문집
문정희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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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저는 쓰고 싶어서 씁니다! 제가 쓴 것 같은 책들을 읽고 싶어서 씁니다. 오로지 현실을 바꾸었을 때에만 그것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에 씁니다. 종이 연필 그리고 잉크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에 씁니다.

 삶, 세계 모든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롭기 때문에 씁니다. 삶의 그 모든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단어들로 표현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씁니다. 도무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씁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씁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쓰고,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기 위해 쓰고, 세상을 바꿔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바꾸기 위해 쓴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도 같은 존재인 듯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마치, 취미나 특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인 줄 안다. 때로 나는 육체의 피곤함 때문에 책을 읽는 정신 운동에 소홀해지곤 한다. 하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독서에 몰입하느라 육체가 힘들더라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작년 이맘때인가, 『책은 도끼다』라는 책이 잠시 세상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도 책이 내 정신을 깨우는 도끼라는 말에 공감했다. 문정희 시인의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는 나에게 잠시 그 책을 떠올리게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저자가 인문학자가 아닌 시인이며, '책'이라는 종합이 아닌, '문학'에 한정하여 내 삶을 깨우라고 독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하필 문학이며, 시인가? 누군가는 자기계발서에 인생이 바뀌고, 철학책에 빠져 철학자가 되고, 인문학 도서와 경제학 도서를 탐독하는 교수가 되는데 말이다. 왜 저자는 문학이 삶에 필수적인 도끼라고 표현했을까?

 

 이 책의 내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문정희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전하는 부분, 다른 하나는 여러 기행과 체험을 통해 그녀가 얻은 지혜를 말하는 부분이다. 이 에세이는 매우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마치 시처럼. 그러나 마치 시집처럼 각 장마다 새로운, 그리고 충격을 주는 이야기가 내 삶을 자극한다. 특히, 문학의 도시 아일랜드를 방문하는 장면, 그리하여 그녀가 아일랜드의 위대한 문호들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하는 나에게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또한, 이 책에는 문정희 시인의 시뿐 아니라 수많은 시인들의 노래가 담겨 있어, 시집을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시집과 희곡은 편안하게 읽는 타입인 나는, 그야말로 매 장마다 즐거움과 충격을 얻은 채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사진작가였다. 그녀는 이 책에서 '삶이 문학이 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삶은 때로는 극적이고, 때로는 과장되고, 때로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떄로는 너무나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모든 문학이 그렇듯이, 삶의 순간은 우리에게 영감과 즐거움과 충격, 그리고 희망과 지혜를 가르쳐준다. 한편, 그것은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그래,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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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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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셉은 이것이다. 살인자로 여겨지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그 여자와 함께 하는 것. 여자는 자신이 왜 피해자를 죽였는지 알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으려고 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는 세상이 범죄자로 지목한 자를 추적하고, 후엔 함께 한다. 이 기묘한 운명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저자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서스펜스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는 그것에 성공한 멋진 소설이다. 난 『알렉스』에서 보았던 놀라움과 색다름을 다시 한 번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목은 평범하면서도 무섭다. '웨딩드레스'라는 말에서 나는 '보통'을 보았고,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에서 '특별함'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드레스는 여자가 입으니까. 그리고 소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남자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그의 어머니가 입었던 낡은 구식 드레스였다. 그럼에도 '프란츠'라는 남자가 그것을 입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프란츠는 '소피'라는 여성과 함께 했을까? 소피는 도망자이다. 일어나 보니 동생 레오가 목 졸라 죽어 있었고, 그녀는 순식간에 도망자로 전락한다. 그녀가 세상의 감시와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주하는 장면은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이윽고, 작가는 속도를 늦추어 소피의 심리를 파고든다. '마리안 르블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전의 삶을 잊어야만 하는 그녀의 슬픔을.

 

 그리고 프란츠. 그는 소피를 감시하기 위해 '임무'를 시작했지만 약 2년 간의 추적 끝에 얻은 결론은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피의 특별한 행동을 기록하기 위해 일기를 썼지만, 사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비밀 일기장이었다. 결국 소피의 연인 뱅상이 죽자, 그 빈자리를 프란츠가 대신하고, 두 사람은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프란츠만의 짝사랑이었던 것 같다. 소피는 이미 '절대 알고 싶지 않는 세상'에 발을 들인 몸이니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벗어나려고 하니까. 결국 맞지 않는 사랑의 동거, 그 결과는 비참한 마무리일 뿐이다. 나는 프란츠가 왜 웨딩드레스를 입을 수밖에 없었는지 깨닫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 책이 너무나 섬뜩하고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물의 심리를 끝까지 파고드는 전개, 그리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전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 종착점은 '죽음'이라는 것. 아니, 작가는 이렇다. 범죄와, 사람의 죽음과, 그로 인해 얻은 타인의 새로운 삶. 그래, 희망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해피 엔딩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으니까. 두 번의. 전자는 불운의 길이었으나, 후자는 행복의 길이니, 이제 소피는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고도 새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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