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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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나의 전부다. 나 자체가 삶이니까. 그리고 인생은 셀 수 없이 많은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갈리는 까닭은 그 수많은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큰 비중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스포츠가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러하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에게는 책 읽기가 바로 삶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으리라. 그녀는 책 속에서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뿌리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적었다. 마찬가지로, 독서가 인생의 핵심이 된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같이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정혜윤 PD의 글을 예스24에 올렸던 칼럼 '어느 날 ~을 알게 되었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거미 여인의 키스』에 대한 칼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이후, 나는 그녀의 글을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맛깔나고 간단명료한 글 안에 삶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번에 읽은『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삶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연상시켰다. 그 역시 인문고전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책 속에 적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녀는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슬플 때나 외로울 때 읽는 책은 곧 위안이 되며 벗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혜윤 PD는 수많은 고전들과 사례를 예로 들며, 그 책들이 누군가의 인생(또는 그녀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생생하게 설명한다. 그녀가 이 책에서 던진 아홉 가지 질문(비밀 질문 포함)에, 과연 나는 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목차에도 나와 있듯이, 아래와 같다.

 

 1.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2.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3.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4. 책이 정말 위로가 되나요?

 5. 책이 쓸모가 있나요?

 6.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7.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8.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비밀 질문: 그렇게 살아도 돼요?

 

 

 장 오노레 프라고라느의 <책 읽는 소녀(그림 왼쪽)>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소녀(그림 오른쪽)>. 그들은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 혼자서 책을 읽는 소녀는 실연을 당했을 수도 있고, 정말 기쁜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즉, 그녀에게 책 읽기란 위안의 책 읽기 또는 미래를 위한 책 읽기이다. 반면, 오른쪽 두 소녀들은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정혜윤 PD는 함께 책을 읽으면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두 소녀는 함께 같은 페이지를 읽으며 무언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위의 질문들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독서에 대해 간단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까닭이다. 저자가 "많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책을 몇 번 되풀이해서 보거나 곱씹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정도 규칙적으로 책 읽는 시간이 몇 권을 읽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라고 적었을 때, 나는 나의 습관적인 독서 습관, 즉 마지막 장을 덮기 위해 읽는 독서 생활을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책은 무언가의 형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일찍 죽은 어린 아들을 애도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가 남들 눈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 말고도 삶에는 다른 것이 있음을 말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사물들』은 조르주 페렉이, 행복을 추구하는 동안에 잃어버리는 빛나는 시간들에 대해 말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휴먼 스테인』은 필립 로스가 역사와 정치가 개인에게 묻혀 놓은 더러운 얼룩에 대해서 말하는 형식일 수 있습니다. 우린 포기가 어떻게 표현되었나, 슬픔이 어떻게 표현되었나, 양심은, 두려움은, 좌절감은, 위로는 어떻게 표현되었나를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책은 더 이상 종이조각이 아니다. 하얀 종이 위에 새겨진 검은 글자의 모음이 아니라, 텍스트 속에 담긴 또 다른 삶의 형식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책 읽기와 삶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이며, 그 책을 통해 변화되는 것은 저자의 마음과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책은 내가 예전에 "어렵다"며 무시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였다. 나는 인류 최초의 고전이라는 타이틀과 찬사에만 따라가다 보니, 본질을 놓친 것이다. 그것은, 호메로스가 말하고자 한 삶의 방식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시인은 서사시 속에서 누구도 엑스트라로 만들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전사들이 주인공(영웅)들에 의해 죽어가는 그 순간, 호메로스는 마치 신처럼 그것을 포착하여 그 자의 삶을 보여주었다. 어떤 사람의 삶도 결코 헛되지 않는다. 그 자가 사악하든, 선하든.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런 점에서 마지막 비밀 질문, "그렇게 살아도 돼요?"는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그래,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 질문은 다시 말해,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아요?"라는 질문이 된다. 정혜윤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질문에서 시작되어 질문으로 끝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응답한다. "아니,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야. 지금에 머무르면 삶을 포기하는 거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전 작가들도 대답할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알아냈다. 그들이 쓴 책에 숨겨져 있는 삶을 본받아 가는 것이다. 쥘리앙처럼 살아도 되는가? 카츄사처럼 살아도 되는가? 보바리 부인처럼 살아도 되는가? 그것보다는, 호메로스처럼, 감춰져 있는 또 하나의 인생을 따라갈 것이다. 평범하지 않는, 상상력 없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특별한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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