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1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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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투박한 번역인 『지리의 힘』의 원제는 'Prisoners of Geography'이다. 직역하자면, '지리의 죄수들' 정도로 된다. 이 책의 요지는, 현존하는 역사는 지리에 의해 결정되었고,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까지도 지리는 세계 정세에 강력한 힘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리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한 명도 없다. 인류의 일대기는 지리에 매인 채, 그것을 이용하거나 극복하려는 부류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굵직한 나라나 대륙을 선정해서 그 나라의 역사에 지리가 미친 영향을 읽다 보면 현재의 국면이 꽤나 이해가 된다.

 

 첫 번째 장인 중국 편을 읽고, 중국이 왜 티베트나 네팔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의 독립 여부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으로 인해 인도로 접근이 어려우나, 반면 인도는 티베트를 통해 강물의 수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9장인 인도와 파키스탄을 읽고, 두 나라가 그토록 오랜 갈등을 벌이는 까닭은 정치적 영향도 있었지만, 3000km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탓도 있었다. 국경선의 길이와 위치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애시당초 한국이 선진국으로 부상하기 전부터 미국과 소련의 주목을 받은 것도 그 특유의 위치 때문이 아닌가? 일본이 독특하게 발달한 이유도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은 섬이기 때문이 아닌가? 동아시아 삼대장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리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 모범(?) 사례라고 보아야 한다.


 지리에 매인 나라의 대표적인 경우는 러시아이다. 시베리아부터 동유럽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러시아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싶었다. 그로 인한 혜택을 많이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부동항(얼지 않는 항구)에 대한 갈망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이어졌고, 크림 반도를 향한 욕망이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을 유발했다. 이밖에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자연적 지리로 인해 발전이나 문화적 교류의 가능성이 끊겼고, 이는 그들의 성장을 지연시켰다. 중동은 서양의 인위적인 국경선 긋기와 이슬람 종파 갈등으로 오랜 갈등을 맺고 있다. 여러모로 '지리의 죄수들' 내지는 지리 환경의 피해자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반면, 미국은 지리를 풍요롭게 누린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땅을 적절히 매입한 덕분에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각지에서 몰려오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국토를 보유했다. 그러면서도 방대한 해안선은 인접한 국가들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분담해 준다. 물론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으로 인한 분쟁이 현재 미국의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으나,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지리적으로 가장 축복 받은 나라가 아닐까 싶다. 보통 국가들은 지리적 조건이나 환경으로 발전이 가로막힌 경우가 많은데, 미국은 정반대의 결과를 받았으니 말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에 동시에 영향력을 펼칠 수 있으니, 과연 서방 세계의 패권을 차지할 만하다.


 21세기의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으로 지리적 제약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아예 배제해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치관의 차이'라거나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와 상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한 번도 우리는 지리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작든 크든 국지적인 갈등은 다른 곳으로 확산되기 마련이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 물리적 거리가 영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인류는 필연적으로 세계에 매여 있으나,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계를 더욱 알아가고, 사랑으로 품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기심은 생존 확률을 반감시킬 뿐이다. 아마존의 환경 파괴와 중동의 종교 갈등, 아프리카의 빈민들, 유럽 연합의 엇갈리는 이해 관계, 세계 곳곳의 난민들에 대해 고민하고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모든 사안은 답답한 일들일 뿐이다. 그러나 풍성한 시각을 가지고 유한한 세계에 놓여짐을 감사할 때, 비로소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그대들이 세계를 누리는 자들로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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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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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조각이 모여 소설이 된다. 문학이 삶을 반영하듯, 사소함이 차곡차곡 쌓여 역사를 만든다. 『공터에서』는 분석해야 한다는 강박을 빼고, 창작자가 생각한 파편을 조립해야 책의 의미가 완성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반드시 써야 하는 장면을 점 찍어 두고 상상력이라는 선을 이용해 그것을 잇는다. 점 찍기는 너무나 간단하고 열띠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선 긋기는 고통스럽고 의욕을 떨어뜨린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그 선을 긋는 과정이 다소 선명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역사의 특정 장면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나, 독자가 집중해야 하는 후반의 서사는 얇다. 작가의 의도일지는 몰라도 개인사로 넘어온 이후의 이야기는 파편적이다.


 박상희에 대한 태도도 다소 아쉽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매우 완벽한 인물로 등장한다. 서양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학원 강사를 하면서, 군대에 간 마차세를 기다려 주는 한편, 결혼한 이후에도 큰 다툼 없이 남편을 보필한다. 그녀가 생명을 잉태하는 부분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나, 별다른 굴곡 없이 마차세를 지지하는 박상희의 존재가 어쩐지 판타지처럼 여겨진다. 능력, 성품, 사랑, 모든 점에서 완벽한 이 인물은 존경 받기 합당하나, 그가 그리는 세계에 과연 그런 인물이 몇이나 되었을까? 그리고 그런 여자가 마차세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를 품은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박상희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아꼈기에, 나는 그녀의 연약한 부분과 약점을 더 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상처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현대사의 단면은 촘촘하게 구현되어 있다. 흥남 철수와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굵직한 역사의 기록과 처절하기 짝이 없는 개인사가 교차된다. 분명히 나는 역사적 사건보다 마차세가 치러야 하는 삶이라는 전쟁에 더욱 몰입했다. 그 시절 모두가 힘들게 살았건만, 그중에서도 마차세는 치매에 걸려 쪼그라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보필하다가 자신도 요양원에 들어가는 이도순을 지켜봐야 했고,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매번 좌절했으며, 오장춘의 꾀임에 넘어가 형의 불법적인 사업에 휘말렸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에 나는 가슴을 졸였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의 아주 작은 순간까지 포착하다가, 한 남자의 개인적인 일대기에 대해서는 시야를 넓힌다. 두 축의 이야기 속에서 사소함은 축적되고, 그것이 마차세의 삶을 이룬다.


 마차세와 마장세의 삶에서 그들의 결핍을 본다. 마차세는 자신을 지우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간직했고, 마장세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가족을 떠났다. 그러나 마차세는 누니라는 딸을 통해 그것을 해소했고, 마장세는 린다와 결합하지만, 그녀의 떠남으로 인해 상처가 악화된다. 각 인물이 통과한 삶의 여정이 새옹지마 같았다. 마차세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마장세는 사업으로 잠시 성공을 얻은 듯 했지만, 그 실체가 들통나자 모든 것을 잃었다. 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했는데, 같은 역사를 겪었는데, 형제였던 두 사람은 왜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자는 사소한 것들에서 그 단서를 찾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모조리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진 현재 너머를 보는 여유가 주어진다.


 마동수, 이도순, 마장세, 마차세, 박상희, 누니가 통과했던 현실이 지금과 다른가? 어쩌면 격동의 시기였던 과거보다 오늘이 훨씬 더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대통령 암살, 독재라는 거대한 암흑은 지나갔으나, 개인의 삶에 드리운 먹구름은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 벌이가 안정되고 기술이 발전했지만, 행복은 찾아왔는가? 각자에게 사랑할 여유가 있는가? 우리 모두는 여전히 공터에서 어떤 해답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방황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실마리를 실시간으로 놓치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집중할 수밖에, 거대한 서사에 목을 매기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공포를 직면하고, 맞설 수 있기를. 감당했던 하루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는 날이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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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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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모순으로 가득함을, 인간은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인과 관계를 설정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덧붙여서 만사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로 삶이란 설명하려 할수록 그럴 수 없음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을 사랑했던 그 이유가 미움의 계기가 되고, 누가 봐도 보필인 사람을 멀리하며,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보다 행복에 가깝다. 무엇보다 각자의 인생에게 반대편 상황에 대한 동경이 있다. 부족한 아비를 둔 자식은 그 아비를 외면하려고 하나, 끝내 그를 포기할 수 없고 그를 닮아간다. 가난에 진절머리가 난 자들은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부자는 걱정 없이 살고 싶어 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결핍이 있고, 그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이해한다.


 『모순』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구한,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나 속은 모순으로 찬 안진진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 삶의 편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솔직한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지치기도 하지만, 끝내 그녀가 통과하는 비극에 참여하게 된다. 마치 그것이 모든 인간의 운명인 듯이 말이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재회도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 상황에서 진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보 같은 선택을 반복할 뿐이다. 누구한테 들려주어도 어리석었다고 말할 짓만 벌인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라는 다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쩌면 이 오래된 소설은 안진진의 작은 다짐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했던 그녀는 담담하게 가난에 저항했고,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던 이모를 따른다. 자유로운 아비를 끝내 사랑하는 어머니, 용서를 넘어서 불구나 다름 없는 남편을 돌보는 어머니를 거부한다. 나영규는 철저히 계획 속에서 자신을 사랑했고, 김장우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했다. 안진진은 어떤 것은 선택으로, 어떤 것은 받음으로 엇갈린 운명을 맛본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께 돌아가고, 이모부와 다름 없는 나영규를 선택한다. 행복에 잠겨 있는 줄 알았던 이모는 불행과 불안 속에서 침식되고 있었다.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상실을 겪음으로 안진진은 인생이 모순투성이임을 이해한다.


 아마 인간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모순은 이것이 아닐까. 죽음을 받아내는 것은 산 자의 몫이다.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일은 오직 생존자의 영역이다. 죽은 자가 통과한 영역을 끝내 남겨진 자는 알 수 없음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이리라. 세상살이에 놓인 우리는 종종 이러한 논의를 잊고, 외면한다. 마치 죽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타인의 고통과 몰락이 그들 자신의 모순으로 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산 자들끼리 죽음에 대해 나누지 않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모순이다. 아마도, 죽음이란 겪고 나서야 이해되는 인생의 모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유일한 관념이기 때문이리라. 


 오늘날 많은 이들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인생의 격언으로 삼는다. 마치 주어진 현재를 마음껏 즐기라는 선조들의 조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라틴어 경구가 완성되려면 반드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가 동반되어야 한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현재는 너무나 소중해진다. 누구도 지금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꿈꾼 자에게만 진정한 오늘이 주어진다. 그저 눈앞의 즐거움만을 따르며 산다면, 반드시 자기 안의 모순과 직면하게 된다. 그때 좌절하고 아예 무너져버리느니, 우리의 일상을 적당한 무지와 적당한 가난과 적당한 고통으로 채우는 것이 오히려 행복에 가깝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완벽하게 건강하고, 완벽하게 편안한 상태를 꿈꾸며 살아간다면, 글쎄, 그 꿈이 당신을 좀먹을 것이다. 인간의 자체적인 모순과 불완전함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미련하게 살아가도, 조금은 더 손해 봐도, 조금은 더 따뜻하게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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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꿈의 책장 에디션)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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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긴 글을 읽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두꺼운 책에 설렜다. 그 방대한 이야기가 주는 도전, 모험을 시작할 때의 설렘, 그리고 여정의 끝에 성장하게 될 나에 대해 기대했다. 그러다 나는 긴 글을 쓰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된 무모한 돌진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실이라는 것에 치여 책 읽을 시간도 없다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한가로이 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아무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긴 소설을 써 왔다. 때로는 이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이 소일거리 내지는 자기만족을 위한 무의미한 일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야 납득하는 것은, 내가 접했던 모든 책이, 내가 만들었던 모든 이야기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돈키호테』를 도서관의 서가에서 고른 이유는 나 역시 『돈 키호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나 『성경』처럼 나의 인생을 지대하게 바꾸지는 못했어도, 어린 시절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상당히 일조했다. 소설에 담긴 모험들을 나 역시 사랑했고, 돈 키호테가 지향하는 가치를 마찬가지로 동경했다. 처음에는 산초의 편에 서서, 엉성하기 짝이 없는 기사의 여정에 코웃음을 쳤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며 변화하는 그의 모습에 동화되었다. 이야기의 힘은 그런 것이다. 미련한 자조차 현명하게 만들어 버리고, 무모한 자를 용감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인생에는 그러한 힘이 있다. 각자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은 크든 작든, 좋든 싫든 타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 설령 그 사람과 전혀 무관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돈키호테』는 『돈 키호테』라는, 세르반테스가 탄생시킨 불멸의 고전을 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작품을 읽었기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단순히 세르반테스를 '반태수'로, 세비야를 '서울'로 일대일대응시켜 번안하는 작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여정이, 평범하고 때로는 한심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그 끝에서 성숙해진다. 그 안에 수많은 인생들이 스쳐 지나가고, 어떤 삶은 인연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낳기도 한다. 진솔의 도전은 그녀의 기억 속 돈키호테였던 장영수에게 닿아, 마침내 그조차 변화시키게 된다. 그들이 함께 만드는 이야기는 담백하고 소소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준다.


 아마 여정의 중간에서 힘듦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진솔의 고민과 그녀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흐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야기가 완성되고 나서야, 그 서사들이 필요했음을 인정한다. 어떤 이야기던 간에 결말을 무시한 채 판단할 수 없다 했던가, 한 권의 책을 덮기 전까지는 섣불리 평가할 수 없고, 인생이 끝을 맺기 전까지 함부로 잣대를 매길 수 없다. 각 등장인물의 고민을 과소평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한 권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음 여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멈추고 싶어도 삶은 지속되듯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그러므로 배움은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다. 돌아볼 틈도 없이 나는 인생의 또 다른 모험 속으로 휘말린다. 처음에는 그것이 버거웠으나, 이제 그 모험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나의 매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하다. 찰나에 남아 있던 불안마저 기대로 바꾸게 되었다. 돈 키호테로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고? 한번이라도 마음을 열고,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떤지. 나이와 상황 때문에 두렵다면, 그것도 존중한다. 가난과 실패보다 우리의 인생이 크다. 어떠한 역경도 여정을 끝낼 만큼 강력하지 않다.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 그것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겠지. 우리 모두 세상을 이루는 귀중한 캐릭터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주목되는 세상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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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균류 - 신비한 버섯의 삶
로베르트 호프리히터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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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류 및 버섯의 생태에 대해 읽고 있자면, 절로 겸손해진다. 감각의 노예인 인간은 지각되는 것에 너무나 취약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주문에 스스로를 세뇌시켜, 지구상에서 가장 생존에 유리한 '공존'을 실현하는 균류를 하찮게 여긴다. 균류의 세계는 굉장히 미세하고 섬세해서 잘 인지되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실재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크다. 벽 너머와 바닥 아래의 세상을 전혀 모르는 인간은 햇빛 아래에만 생명이 있다고 착각한다.


 균류는 분명 동물과 식물도 아닌 그 무엇이다. 그것은 죽음을 이용하여 생명을 피운다. 선사시대의 대멸종이 균류에게는 낙원이었다. 방사능과 극지방, 사막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것은 생존한다. 그들은 물질을 분해하고, 생물을 감염시키기도 하지만, 생태계를 회복시키기도 한다. 한때 인간은 이것을 식물로 오해하기도 했고, 분류를 어려워 했으나, 이제야 실마리를 잡아가고 있다. 버섯은 실로 인간의 오랜 친구였다. 트러플, 목이, 느타리 등 희귀하거나 익숙한 버섯들이 줄줄이 소개된다. 어떤 것은 독성이 있으나, 어떤 것은 인간의 병을 치유한다. 


 균류의 세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자연의 신비는 미처 다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것이 앞으로의 인간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한편, 그 지식들이 생태계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한다. 각 동식물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 조금 더 진심이 되지 않을까? 지식과 기술이 그동안 환경을 파괴하는 데에 이용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지식과 기술이야말로 지금은 자연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그러나 실재하는 세상이 있고, 각 세대는 그것을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간은 멸종해도 균류는 살아남을 것이다. 소위 '인류세'를 논의할 때, 동식물이 주인공이 되는 문학 작품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겨진 세상에서도 어떤 생명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부터 수많은 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극히 사소해 보인다고 그 생명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우리가 아기와 아이의 죽음에 더욱 슬퍼하는 까닭은 한 우주와 같은 가능성이 소멸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시각은 죽음 너머의 생명을 바라보는 일이다. 균류가 물질을 분해하고, 또 다른 생명을 쌓는 토양이 될 것이다. 균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의 소중함을 모두가 동의할 때, 또 다른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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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2-18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전쟁이후에도 살아나갈 생명체는 균류와 바퀴벌레 뿐이라고 하는데 정말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한다고 여겨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