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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을 기다리며 ㅣ 필립 K. 딕 걸작선 9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7월
평점 :
필립 딕의 작품을 보면, 언제나 사회의 음울한 면이 담겨 있다. SF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은 오늘날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회의 추악함은 어제나 오늘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왜 태양계까지 진출하고, 시간여행도, 기억의 조작도 가능해진 필립 딕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막지 못했을까? 마치 이러한 업적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듯 하다. 『작년을 기다리며(Now Wait for Last Year)』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키워놓은 문명을 감당하지 못한 인간들의 고뇌와 절규가 이 작품에도 담겨 있다.
이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악한 소재는 '마약'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했을 당시에 아내와 다투며 마약에 의존한 채로 살았다는 것이다. 흔히 말해, '약 빨고' 쓴 소설이다. 하지만 필립 딕의 무의식 속에는 아내와 다시 화해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년을 기다리며』에서 인공장기 이식 의사로 등장하는 에릭 스위트센트는 필립 K. 딕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아내 캐시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구 대표(이 소설의 배경은 외계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대다)인 몰리나리의 주치의를 자원한다. 한편, 에릭의 아내는 불행으로부터의 탈출구로 마약을 선택했고, 그 마약을 복용하다가 지구와 외계인의 거대한 싸움으로 연결되고 만다(개인의 문제를 이렇게 커다란 문제로 만드는 시나리오적 솜씨는 필립 딕을 따를 자가 없다. 그래서 그의 수많은 작품이 영화화되었던 것이 아닐까?).

『작년을 기다리며』의 원서인 『N-
ow wait for last year』. 아직 영화
화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결국 이 모든 상상의 끝은 저자가 생각했던 바로 그 주제들이다. 시간여행으로 과거로 간 아내, 그리고 과거의 에릭과 지금의 에릭. 과거로 간 아내를 기다린다는 것은 곧 그들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것이다(그래, 필립 딕은 작품의 결말을 제목에 암시한다). 이 책은 SF 소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부를 위한 소설이기도 하다. 잃어버렸던 인연의 관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시간은 그것을 허용해주었고, 특별한 운명이 그들의 만남을 이루어주었다. 왜 『작년을 기다리며』가 필립 딕 작품 세계로 들어가는 현란한 입문서라는 찬사를 받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필립 딕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필립 K. 딕.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
는 인간의 따뜻한 모습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