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불
다카하시 히로키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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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도쿄에서 시골로 전학 온 아이 아야무는 늘 그러하듯이 이번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에 별다른 걱정이 없다.

잦은 이사로 인해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면 생긴 건데 이번에 온 중학교는 내년이면 학교가 폐교되는 만큼 올해가 마지막 졸업생이 되는 셈이고 아야무의 아버지도 이번 전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가족을 이끌고 타지로 옮겨 다닌 필요가 없다.

아야무가 고등학생이 될 때 즈음엔 안정된 직장에서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지금의 생활을 조금만 참으면 되는 만큼 다른 때와 달리 여유가 생긴 아야무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깊은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 반에서 달랑 6명뿐인 남학생들 사이에 끼지 못하면 1년 내내 괴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재빠르게 간파한 아야무는 아이들의 리더인 아키라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아이는 늘 이상한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친밀감과 결속력을 다지는 아이라는 걸 깨닫는다.

당연하게도 그런 놀이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벌칙을 받아야 하는데 아야무가 지켜본 바로는 그 대상은 미노루라는 아이로 항상 정해져있었다.

조금은 위험한 내기에도, 진 사람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사줘야 하는 내기에도 그 대상은 언제나 미노루였고 아야무의 눈에 보이는 이런 이상함이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건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없다.

아야무 역시 이상하다 느끼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무심히 지나칠 뿐 그 역시 아키라의 장난을 빙자한 폭력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치는 또 다른 이상한 점은 그런 장난과 내기를 빙자한 괴롭힘을 당한 다음날이면 미노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아키라의 곁에서 그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 역시 조금의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참은 건지도...

이렇게 일상이 조용히 흘러가는 가운데 마치 옥에 티처럼 가끔씩 장난처럼 비일상적인 일이 벌어지지만 한 아이 즉, 미노루만 조금 괴로우면 모두가 장난처럼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아야무는 심지어 위험한 장난에 자신 대신에 그 아이가 걸리길 바라기까지 하게 된다.

그런 아야무의 심정의 변화를 깨달은 탓일까?

미노루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는 자신을 괴롭힌 아키라가 아닌 아야무를 향한다.

어쩌면 자신을 도와줄 수도 있었을 아야무의 외면이... 자신이나 친구들과는 달리 폭력이 벌어지는 일상에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야무의 처지가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 원망스럽기도 했는지 모르겠다.

조용하게 벌어지는 축제의 어두운 곳에서 폭발하듯 벌어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은 누군가의 아픔과 부조리함을 외면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처음 들었을 때 시적으로 들렸던 제목이 조금 무섭게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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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헤이세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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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에게 안락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히토나리

헤이세이의 해에 태어나 이름도 헤이세이랑 같은 한자를 쓰는 히토나리는 언론에 의해 마치 헤이세이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곧 헤이세이의 해가 끝나고 새로운 연호가 시작될 즈음 히토나리는 헤이세이의 연호와 함께 사라질 결심을 한 듯 보였고 당연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연인 아이는 그의 이런 결심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도 기억나는 밀레니엄의 그 해프닝이 떠오른다.

밀레니엄을 맞기 직전 세기말이라는 걸 이용해 그걸 팔아먹으려는 사람들과 혹은 새로운 해가 떠오르기 전 지구는 종말 한다는 어느 종교의 말을 믿고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로 온 세계가 어수선한 가운데 누군가는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비운과 비탄에 젖어 두려워하며 새로운 해가 과연 뜰지... 뜬다면 어떤 세상이 될지를 모두가 숨죽여 기다렸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고... 세기가 바뀌든 말든 해는 똑같이 떠올라 한동안 허무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연호가 바뀌는 것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평범한 날 중 하나가 아닐지...

단지 쓰던 연호만 달라질 뿐 사람도 공간도 달라짐이 없을 텐데 왜 히토나리만 유독 혼자서 사라져갈 연호의 운명과 함께 하려고 할까 아이는 답답했지만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이 말이 절대로 그냥 해본 말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더 막막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든 아이는 그가 이런 결심을 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의 오랜 친구도 찾아가지만 뚜렷한 이유 따윈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안락사의 현실을 보여준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직접 안락사하는 현장을 보여주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그는 왜 안락사를 원할까?

그의 말처럼 더 이상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지도 더 나은 활동을 할 수도 없는 지금 현재가 가장 정점이고 앞으로 사그라질 일만 남았을 뿐이니 이때가 죽기에 가장 좋을 때라서?

히토나리라는 인물은 머리는 뛰어나지만 사람과의 교류가 서툴고 누구와의 신체적인 접촉도 꺼리는... 심지어는 연인과의 섹스조차도 거부하는 남자다.

마치 인간적인 면은 남아있지 않은 안드로이드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그가 차갑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상처가 많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가시를 세워 접근을 막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히토나리에 비해 아이는 사랑에 적극적이고 즐기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초식남 같은 히토나리와 아이의 결합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듯하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그래서 이 둘의 사랑은 남들이 볼 땐 터무니없는 듯 보여도 두 사람의 관계는 제법 견고하다. 히토나리가 안락사를 결정하기 전까지지만...

그가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건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소설은 이 책이 나올 당시 일본에서 천왕의 양위가 결정되어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안락사를 원하는 건 단순히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 그 안에는 뿌리 깊은 허무감과 쓸쓸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남자의 고독함이 쓰며 있다.

마치 세기말을 앞두고 온 세계를 뒤덮었던 그 허무함, 공허함, 절망감처럼...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서 그런 결정을 한 히토나리를 완전히 이해는 못 하지만 납득할 수는 있었고 결말 또한 전형적인 일본 소설다운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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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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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마음을 먹곤 하지만 그런 미련은 특히 지금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만족스러울수록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더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 두 갈래 선택의 길에서 이쪽을 선택했을 때와 또 다른 쪽을 선택했을 때의 모습을 보여줬던 예능이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후회 병동 역시 인생에 있어서 어떤 기억이나 행위에 대한 후회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히 제목에서부터 병동이 등장하는 만큼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삶의 시한이 정해져있다는 제한을 두고 있다.

왜 이런 제한을 둔 건지에 대한 의문은 그들을 안 가본 길로 인도하는 신비한 청진기의 등장으로 풀 수 있다.

이 청진기는 사람의 마음속 말들이 들리고 원한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당연하게도 이 비밀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베풀어지는 특혜이다 보니 병원에 있는 사람 누구도 이 비밀을 알지 못한다.

신비한 청진기의 주인은 사람들이 대부분 여의사에게 남자 의사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상냥함이나 싹싹함 혹은 애교 같은 걸 기대한다는 점에서 늘 손해를 보고 있는 루미코라는 여의사이다.

그녀가 환자에 대해 불친절하거나 퉁명스럽거나 한다기보다 단지 좀 눈치가 없고 아픈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요령이 부족하다고 보면 되는데 그래서 늘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클레임이 자주 들어와 곤욕을 치르고 있던 중 우연히 주은 청진기가 알고 보니 환자의 마음속 이야기가 들리고 심지어는 찰나의 순간에 과거로 돌아가 후회했던 일을 되살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 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가 죽음이 목전에 다가와서도 후회하고 미련이 남은 일을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선택을 해서 가보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편히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많이 거치면서 사람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루미코는 조금씩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람의 마음을 살필수 있는...아픈 몸만이 아닌 마음까지 돌볼줄 아는 진짜 의사가 되어가고 그런 그녀의 변화는 어릴적 헤어져 원망만이 남았던 아빠와의 화해를 돕게 된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딸을 둔 노부인의 회한... 그때 그토록 딸아이가 결혼하고 싶어 하던 남자가 비록 한심하고 형편없는 남자라 할지라도 결혼을 반대하지 않고 시켰어야 했다는 것인데 루미코는 노부인의 원을 들어줘 과거를 바꾸러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과 아내를 두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가장의 회한... 왜 좀 더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열심히 일을 한 이유가 가족과 함께 좀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함이었는데 어느샌가 그걸 잊어버리고 일에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족이 모여도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고 이제는 함께할 시간마저 없다.

그 역시 과거로 돌아가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다 온다.

이렇게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계속 마음에 남아 후회가 되는 일을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번 다른 삶을 살 기회를 줌으로써 그때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안을 받거나 혹은 다른 선택을 해서 미련이 남지 않도록... 그래서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준다.

그 청진기가 다른 인생을 살 기회를 준다고 해서 진짜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거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얼마 남지 않은 삶에 회한이나 후회를 적게 남기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달까

재밌는 건 그 문을 열었다고 해서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몰랐어도 좋았을 아내의 본모습을 알게 된 남자의 이야기는 그 후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따뜻한 느낌에 감성을 자극하고 여기에다 이야기를 좀 더 동화처럼 만들어주는 요소인 신비한 청진기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말로는 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설정은 평범함에다 약간의 조미료를 넣음으로써 조금은 특별한 맛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느낌이다.

확실히 가독성도 좋았고 읽고 난 뒤에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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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코나
아키타 요시노부 지음, 마타요시 그림, 김동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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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온 사방에 꽃가루가 날리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콧물에 재채기의 연속으로 그야말로 고생길이 열린다고 볼 수 있다.

근데 이런 알레르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한 신약이나 에방 백신 같은 것의 등장이 아닌 바로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을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라지게 만드는 대항 꽃가루 체질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 것인데 이 특이체질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의 꽃가루를 사라지게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 대신 그 독성을 자신의 내부에 흡수해 본인에게는 치명적이라는 딜레마가 있다.

이렇게 특이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몇 해전 토호야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사람이 바로 같은 나이의 하루코였다.

사람들에게 널리 이롭게 하는 대항 꽃가루 체질의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을 위한 특별한 집과 방호 슈트 등을 제공하는 개선이라는 단체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는 하루코의 요청을 받아 그녀의 등굣길에 옆에서 도움을 줄 사람으로 토호야를 선택했고 덕분에 토호야는 그녀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는 힘들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긴밀하게 그녀와 연결된다.

어딘가를 갈 때에 자신의 발밑조차 볼 수 없어 늘 위험에 직면해야 하는 불편한 방호 슈트를 입은 하루코지만 그런 하루코와의 등하굣길이 즐거운 토호야에게 어느 날 눈앞에서 그녀가 넘어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두 사람의 통학길에 누군가가 몰래 무슨 장치를 해 둔 거란 걸 알게 된 토호야는 사람들의 악의에 분노하게 된다.

자신에겐 치명적인데도 사람들을 위해 무겁고 불편한 방호 슈트를 입고 거리를 나서는 하루코의 희생이 어째서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지 토호야는 사람들의 숨겨진 악의에 슬픔까지 느껴지지만 그런 토호야의 마음과 달리 피켓을 들고 그녀 즉 대항 꽃가루 체질인 하루코를 저격하는 선동가들이 나타나 동네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있어 하루코 같은 사람들은 자연에 반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이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지만 그녀가 꽃가루를 소멸하면서 인간이나 자연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그녀의 외출을 막고 심지어는 그녀와 같은 존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당연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에 맞서 또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도 등장해 이제 학교 앞과 마을은 그들의 구호로 뒤덮였지만 여기에서 공권력이 할 일이란 특별히 없다.

그들이 단순히 구호를 외치고 선동을 할 뿐 뭔가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선 하루코는 고작 여고생일 뿐이라는 건 그들의 안중에 없다. 단지 자신들의 목소리만 높일 뿐 논리도 없고 명확한 근거도 없이 집단 속에 숨어 다른 누군가를 흠집 내고 자신과 다른 의견은 틀리다 주장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른의 모습이지만 사고 수준은 아이들보다 결코 높지 않다.

이렇게 바깥이 난리를 피울수록 조용히 침잠하는 하루코와 그런 하루코의 곁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토호야

이제 두 사람에게 바깥의 혼란은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니다.

연애소설이라 하기엔 설렘이 부족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토호야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 첫사랑을 닮아있다.

여기에 꽃가루를 흡수하는 대항 꽃가루 체질이라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소재도 독특해서 기억에 남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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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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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 가 아무도 죽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낸 소설이 등산을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 `여자들의 등산 일기`이다.

제목에서부터 등산에 대한 걸 다룬 소설임을 나타내듯이 이 책은 여러 파트로 나눠 각각의 소설 속 화자가 왜 산을 오르는지 그 사연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가 안고 있는 문제나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단순히 그 사람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나 고민에 대한 이유 같은 것만 다루고 등산은 그저 단순히 배경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한데 그 사람이 등반하는 산이 가진 배경이나 위치 그리고 등반하는 코스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도 담겨 있어 그야말로 등산 일지나 등산 일기와 같다.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나 어떤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도중에 어떤 꽃을 봤으며 동행하게 된 사람 이야기나 날씨이야기에 바라본 풍경에 대한 감상 등등 산을 오르는 사람이 쓴 일지 같은 내용에다 그 사람이 등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와 그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를 곁들여 다큐적인 부분에다 소설적인 재미를 더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단 백화점에 근무하며 곧 결혼을 앞둔 여자 리쓰코의 이야기는 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생각조차 하지 않은 시부모와의 합가 이야기가 결혼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될 즈음 툭 튀어나오고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다 우연히 맘에 드는 등산화를 손에 든 김에 등산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이것조차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같이 가기로 했던 일행 중 한 사람은 빠지고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동료와 함께 산을 올라야 하는 처지가 된 데다 그 동료는 처음부터 산을 오르는 게 어떤 거라는 자각조차 없는 차림으로 나타나 스트레스를 줘 결국은 폭발하듯 불만이 표출되어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하지만 이런 불만도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경관의 감동에 묻혀버린다.

사실은 평소 그 동료에 대한 불만이 제법 있었던 데다 자신이 평소에 존경하던 상사와의 불륜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자신의 결혼에 회의가 더욱 회의가 든 이유도 있었던 것인데 산에서 대화를 통해 동료의 또 다른 모습과 직장 상사 부부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면서 미워했던 마음이 스르르~

또 다른 에피소드는 자매가 있는 집이라면 더욱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다.

평소부터 늘 모범적이고 공부도 잘하는 언니와 비교를 당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던 동생

게다가 언니는 의사 형부를 만나 줄곧 평탄하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데 반해 자신은 대학을 나와서도 뚜렷한 직장이 아닌 프리랜서 번역 일을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하는 양파 밭일을 돕고 있는 데 그런 모습을 언니와 형부가 한심하게 보면서 늘 깔보고 있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자신은 혼자 남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고향으로 내려왔고 남들이 볼 땐 한심할지 몰라도 아버지를 돕고 간간이 번역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현재의 자신이 누가 뭐래도 좋다. 하지만 자신 몰래 아버지와 언니가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그녀 역시 고민이 많아졌는데 이럴 때 언니가 자신과 등산 여행을 계획해 등산을 하던 중 비는 쏟아지고 대화를 하다 다툼이 이어지던 과정에서 언니의 충격 발언을 듣게 된다.

평소에 작은 것 가지고도 다투고 서로 짜증을 내는 자매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너무나 빨리 단결하고 단합하는 게 또 자매들 간의 의리... 이 들의 문제도 역시 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라는 건 부모형제 아니 그 누구라도 해결해줄 수 없고 오롯이 혼자서 감당하고 이고 짊어져야 할 짐과 같은 것이기에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힘든 등산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 인생이란 산을 오르듯 혼자서 묵묵히 견디고 올라야 한다는 걸...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통해 객관적으로 비쳐주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덕분에 등산에 대해 궁금증도 많이 생겼다.

정말 이렇게나 좋을까 하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역시 십수 년이 흐른 후 헤어진 연인과 함께했던 그 장소를 다시 들러 과거의 자신을 다시 보고 그때 둘이서 느꼈던 감동을 새삼 확인하며 다시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뉴질랜드 통가리로 편인데 과거와 현재를 교차편집해서 그때 함께여서 모든 것이 빛나고 행복했던 모습도 혼자서 자신이 원하던 길을 찾아 과거의 한때를 회상하는 지금의 모습도 다 좋았다.

그녀처럼 행복했던 순간의 추억의 장소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 정도로...

전체적으로 따듯하면서도 인위적인 느낌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와 갈등을 섞어놓아 공감이 많이 갔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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