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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헤이세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연인에게 안락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히토나리
헤이세이의 해에 태어나 이름도 헤이세이랑 같은 한자를 쓰는 히토나리는 언론에 의해 마치 헤이세이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곧 헤이세이의 해가 끝나고 새로운 연호가 시작될 즈음 히토나리는 헤이세이의 연호와 함께 사라질 결심을 한 듯 보였고 당연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연인 아이는 그의 이런 결심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도 기억나는 밀레니엄의 그 해프닝이 떠오른다.
밀레니엄을 맞기 직전 세기말이라는 걸 이용해 그걸 팔아먹으려는 사람들과 혹은 새로운 해가 떠오르기 전 지구는 종말 한다는 어느 종교의 말을 믿고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로 온 세계가 어수선한 가운데 누군가는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비운과 비탄에 젖어 두려워하며 새로운 해가 과연 뜰지... 뜬다면 어떤 세상이 될지를 모두가 숨죽여 기다렸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고... 세기가 바뀌든 말든 해는 똑같이 떠올라 한동안 허무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연호가 바뀌는 것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평범한 날 중 하나가 아닐지...
단지 쓰던 연호만 달라질 뿐 사람도 공간도 달라짐이 없을 텐데 왜 히토나리만 유독 혼자서 사라져갈 연호의 운명과 함께 하려고 할까 아이는 답답했지만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이 말이 절대로 그냥 해본 말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더 막막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든 아이는 그가 이런 결심을 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의 오랜 친구도 찾아가지만 뚜렷한 이유 따윈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안락사의 현실을 보여준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직접 안락사하는 현장을 보여주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그는 왜 안락사를 원할까?
그의 말처럼 더 이상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지도 더 나은 활동을 할 수도 없는 지금 현재가 가장 정점이고 앞으로 사그라질 일만 남았을 뿐이니 이때가 죽기에 가장 좋을 때라서?
히토나리라는 인물은 머리는 뛰어나지만 사람과의 교류가 서툴고 누구와의 신체적인 접촉도 꺼리는... 심지어는 연인과의 섹스조차도 거부하는 남자다.
마치 인간적인 면은 남아있지 않은 안드로이드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그가 차갑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상처가 많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가시를 세워 접근을 막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히토나리에 비해 아이는 사랑에 적극적이고 즐기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초식남 같은 히토나리와 아이의 결합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듯하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그래서 이 둘의 사랑은 남들이 볼 땐 터무니없는 듯 보여도 두 사람의 관계는 제법 견고하다. 히토나리가 안락사를 결정하기 전까지지만...
그가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건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소설은 이 책이 나올 당시 일본에서 천왕의 양위가 결정되어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안락사를 원하는 건 단순히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 그 안에는 뿌리 깊은 허무감과 쓸쓸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남자의 고독함이 쓰며 있다.
마치 세기말을 앞두고 온 세계를 뒤덮었던 그 허무함, 공허함, 절망감처럼...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서 그런 결정을 한 히토나리를 완전히 이해는 못 하지만 납득할 수는 있었고 결말 또한 전형적인 일본 소설다운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