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를 깨드립니다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가만 보면 이런 식으로 사건 외 관계자가 우연히 사건 이야기를 듣고 그 사건을 풀어가는 책이 제법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런 점으로 보면 방향은 비슷하지만 여기에서 사건을 듣고 해결하는 사람은 오로지 그 사건의 알리바이를 깨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당연하게도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에서 용의자가 내세운 알리바이의 허점을 찾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얼핏 봐서 좀체 빠져나가기 힘든 촘촘한 시간의 틈새 모순점을 찾아 단박에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이렇게 타고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의 직업은 시계수리업자이자 순진한 토끼 같은 외모의 20대의 아가씨

그녀가 어리다고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그녀가 시계 수리공이셨던 할아버지 밑에서 시계를 수리하는 법과 더불어 알리바이를 깨는 법을 배운지도 십수 년인 자타 공인 베테랑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사건을 물어다 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이 된지 오래되지 않은 신입 형사라는 설정도 재밌는 부분이다.

우연히 시계의 약을 갈러 들른 이곳 <미타니 시계점>에서 시계의 약을 가는 동안 그의 눈에 들어왔던 문구가 바로 알리바이를 깨 드립니다라는 문구였고 마치 뭐에 홀린 듯 지금 수사 중인 사건에서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깨 줄 수 있는지 호기심 반 기대반의 심정으로 의뢰했다 단숨에 사건을 해결하게 된 것을 계기로 사건이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그녀를 찾게 된다는 설정이다.

그가 그녀에게 사건을 의뢰할 때마다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데 단순한 사실만을 근거로 지금 현재 경찰들이 용의자의 어떤 알리바이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지를 군더더기 없이 짧게 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인데 사건 자체도 복잡하지 않고 나오는 사람도 간단하지만 무엇보다 사건이 발생한 후 빠르게 용의자를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 또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용의자의 심경이라든가 피해자의 사연 등등 사건 자체에 깊숙이 들어가 범죄사실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기엔 쉬워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퍼즐을 풀듯이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내세운 철벽같은 알리바이에서 작은 허점이나 단서를 이용해 그 자체를 깨부수는 데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

의외로 알리바이를 깨는 데는 그 사람의 평소 습관이나 순간적으로 나온 말 중에서 단서를 찾기가 쉽고 스쳐지나치기 쉬운 데서 그 사건 해결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선 그런 부분에서 특히 날카로운 감각을 발휘하는 것 같다.

짧은 분량의 단편이라 읽기에도 부담 없고 사건 자체도 지나치게 무거운 소재가 없으며 작은 단서로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가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 한국추리문학선 8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해결 사건을 두고 유명 프로파일러와 아마추어 추리 클럽 회원 간에 대결을 벌인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모두 카메라로 담아 방송을 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대결이 될 것 같고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에 환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점을 간파한 방송국 제작팀은 급하게 대결할 팀을 꾸린다.

한때는 사람들로부터 찬탄과 더불어 인기도 치솟았던 프로파일러 감건호는 이제 하는 방송마다 폭망하고 프로파일러로서의 능력도 의심받는 처지기에 방송국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그에겐 아마추어와의 추리 대결이 굴욕적이지만 방송 시청률만 올릴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나 `왓슨 추리 연맹`이라는 아마추어 클럽의 멤버 중 한 사람이 그의 신작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가 한 프로 파일링의 잘못된 점을 꼬집어 망신을 준 적이 있는... 그야말로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 그의 기분을 더욱 저조하게 만들고 그 회원들에게 약간의 힌트도 주고 싶지 않다.

반드시 자신이 이 사건을 해결해서 아마와 프로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리라 마음먹고 해당 사건이 발생한 곳 고한으로 향한다.

추리 연맹 회원들은 그야말로 스스로가 좋아서 사건을 조사하고 그 사건을 이리저리 짜 맞추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순수 동호회이기에 멤버 각자가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어릴 적 우연히 목격한 삼촌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에 법의관이 되고 싶어 하는 해부학과 대학원생, 아픈 사람의 손과 발이 되고 싶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대학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탐정이 되고 싶어 하는 농수산물 시장 상인 등 각자가 하는 일은 달라도 이들은 미스터리한 문제를 다각도로 연구하고 그 수수께끼를 푸는 일을 몹시 좋아한다는 공통 취미를 가지고 뭉친 친구들이다.

그들에게도 역시 이번 방송 제의는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즉 민간인이 사건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어 아쉽던 부분을 해소하고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고 제의를 받아들인다.

당연히 사건을 해결하면 더욱 좋은 일이고... 이렇게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대결에 임한다.

그들에게 내려진 과제는 2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한 20대 여자를 찾는 일이다.

그녀의 이름은 김미준

그녀가 사라질 당시 그녀의 방에서 다량의 출혈이 있어 사건성이 의심되지만 경찰은 그녀가 우울증이 있었다는 이유로 단순 가출로 처리 별다른 수사를 하지 않다 뒤늦게 사건성을 인식하고 조사하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증거들이 사라지고 난 후였기에 남은 증거도 없었고 당연히 그녀의 행방도 묘연한 채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프로파일러를 위시해 추리 연맹팀과 방송국 제작팀이 모여 사라진 김미준의 행적을 따라가지만 그녀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다 자신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고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감건호는 추리 연맹을 방해하기 바쁘고 그들이 약간의 허점이 보이기라도 하면 훈계를 하기 바쁘다.

이런 모든 점은 그 역시 불안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시대에 뒤떨어지고 그가 하는 방송은 모두 폭망해서 이번 방송마저 제대로 터져주지 않으면 더 이상은 방송일을 할 수 없을 거란 불안감은 그로 하여금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고 자신도 모르는 새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사소한 일에도 짜증 부리기 예사인 요즘 세대들이 싫어하는 꼰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 처음부터 부담 없이 가볍게 흥미를 가지고 사건에 임했던 추리 연맹팀은 사라진 미준의 행적을 뒤쫓으며 피해자가 느꼈던 외로움과 절망 그리고 사라진 딸의 행방을 몰라 괴로워하고 무너져가는 미준의 엄마를 보면서 점점 더 진지해지고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사라진 미준을 찾는 방식도 두 팀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데 주변 인물을 조사하고 그녀의 행적을 따라가는 정통적인 수사기법을 보여주는 감던 호와 달리 추리 연맹팀은 요즘 사람들답게 sns 같은 걸 적극적으로 활용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간다.

sns 나 블로그 같은 걸 이용해서 그 사람의 행적을 추적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는데 그런 쪽으로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봐도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몇 사람만 거치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 언제 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역시 사건은 어느 한쪽의 방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고 결국 두 팀이 단결해서 서로 수사한 걸 공유하는 순간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가진 불안과 문제점을 직시하게 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게 된 건 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남자가 죽였을까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7
하마오 시로.기기 다카타로 지음, 조찬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고전 미스터리를 소개하는 이 시리즈는 소재의 다양성 면에서도 그렇고 지금과 다른 듯 비슷한 사건 전개 방식, 여기에다 그렇게 오래전에도 범인들이 사건을 저지르는 동기는 현재와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해 읽는 재미를 준다.

게다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숨기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 역시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걸 보면 사람은 크게 진화하지도 발전하지도 않은듯하다.

이번 편에선 2명의 작가가 쓴 단편을 모아놓았는데 두 사람의 이력이 특이해서인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다른데 그게 또 매력적이다.

내용들이 상당히 전문적이고 구체화되었는데 그건 아마도 한 사람은 법률가로 또 다른 사람은 의료인으로서의 공부를 한 뒤 추리소설을 쓴 이력 때문이리라

표제작인 그 남자가 죽였을까부터 하마오 시로가 쓴 3편의 단편은 그의 장기를 잘 살려 법적으로 완전 종결이 된 사건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한 여자를 애타게 연모했고 그녀 역시 비록 남편이 있지만 자신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라 믿었던 남자가 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그 남자가 죽였을까는 범인이 스스로의 범죄를 자백했고 정황상 그가 부부를 죽인 듯이 보이지만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는 변호사의 노력에도 사형이 집행된다.

그리고 발견된 그의 수기에서 그가 진범이 아닌데도 스스로가 원해 범인임을 자처한 동기가 나오면서 법률가로서 법이 얼마나 공정하게 그리고 약간의 의심도 없이 집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실려있다.

죽어가면서 자신이 짠 각본에 따라 아무런 죄도 없는 자신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법체제를 비웃으며 사라져간 남자의 비뚤어진 연정을 시작으로 또 다른 이야기인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에서도 한 남자의 질투가 불러온 비극을 다루고 있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아내와 친밀하게 지내는 아내의 사촌을 질투하던 남자

사촌을 외진 곳으로 불러내었는데 끝내 사촌은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남편은 별다른 조사 없이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이후 남편은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얼마 후차에 치여 죽게 된다.

이 교통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차를 친 남자가 얼마 전 죽은 그 사촌의 형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알아내고 그를 향한 의심을 눈길을 보내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그를 방면한다.

이렇듯 사실관계가 명확하고 모든 정황이 범인이라 지목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용의자를 무죄라 방면해도 될까? 아니면 틀림없이 범인이라 생각했지만 정말 만 분의 일의 확률로 그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경우는 없는 걸까?

두 편의 단편은 그런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범행 수법이 단순하지만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법의 틈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취한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법이라는 것 역시 사람이 행하는 것이라 실수가 있을 수도 있음을 그래서 더욱 형을 선고함에 있어 냉정하게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정신이상의 병리학적 특징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기기 다카타로의 소설은 좀 더 싸늘하다.

망막 맥시증은 아빠를 무서워하던 소년이 어느 날부터 엄마를 멀리하고 아빠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더니 말을 무서워하다 이제는 작은 동물에 두려움을 느끼고 죽은 쥐를 보면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공포를 느끼고 이제는 집이 불탄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 발작을 일으킨다.

그를 진단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그야말로 의외의 결과... 소년이 이렇게 변화해가는 이유를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근거를 드러내 하나씩 밝혀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한데 여기에다 의문의 실종과 더불어 엄청난 비밀이 드러난다.

용의자를 내세운 것도 아니고 사건이 뚜렷하게 발생하기도 전에 오로지 소년과의 문답을 통해 사건 전체의 그림을 그려내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웠다.

잠자는 인형과 취면의식은 좀 더 병적인 느낌이 강한데 자신이 가진 지식을 동원해 원하는 욕망을 취하는 사람들이 처음의 의도와 달리 점점 더 편집증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참으로 그로테스크했고 그 결말을 보면서 요즘의 메디컬 스릴러와 비교해도 소재의 신선함이나 파격성 면에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이전에 나온 시리즈보다 좀 더 현대물과 닮아 있는... 그래서 읽는 재미가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환자
시모무라 아쓰시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랫동안 소원했던 형이 칸첸중가를 등반하다 눈사태를 만나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남은 것은 누군가가 미리 잘라둔 듯한 형의 자일뿐...

형의 의심스러운 죽음에 대해 미처 알아보기도 전 형과 같은 산을 등반했다 눈사태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환자가 나타났고 그의 증언으로 인해 한순간에 안타까운 희생자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을 외면한 이기적인 사람들로 전락해버린 형과 등반대

평소 자신이 알고 있던 형의 모습과 많이 다른 처신에 의문을 표하지만 등반대들은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었고 살아남은 사람의 증언을 반박할 수도 없다.

연일 매스컴은 살아돌아온 생환자인 다카세의 말을 인용해 그의 무사귀환에 도움을 준 등반대 중 한 사람인 가가야를 칭송하기 바쁘고 아무도 희생자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연일 비난하기 바쁜 즈음 기적처럼 등반대 중 한 사람인 아즈마가 귀환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연하게도 살아돌아온 또 다른 남자의 출현은 이전까지의 분위기를 180도 전환하는데 살아돌아온 아즈마가 다카세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을 뿐 아니라 그가 영웅처럼 묘사했던 가가야를 대원들이 잠든 틈을 타 혼자서 살아남겠다는 욕심으로 모두의 짐을 훔쳐 간 파렴치한으로 묘사하면서 진실공방이 벌어지지만 그전까지 적극적으로 방송을 하던 다카세는 아즈마의 생환과 더불어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고 더 이상의 발언을 하지 않음으로써 아즈마의 발언에 힘이 실린다.

극명하게 갈리는 진술 과연 둘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분명 목적을 가지고 진실을 숨기려는 것이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 살아 돌아온 자의 과거부터 하나씩 더듬어 찾아가면서 이들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생환자는 두 사람의 상반된 주장과 끊어진 자일이라는 미스터리 요소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데 여기에다 우리는 잘 몰랐던 등반가의 삶과 그들이 산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암벽등반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과정마다 곁들여놓아 재미를 더하고 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기후,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듯한 험준한 산을 오르면서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파트너를 믿고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등반가의 모습은 일반인의 시각에서 상당히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몸이든 장비든 준비 소홀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팀을 이룬 파트너의 목숨까지도 위험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산을 쉽게 보고 오르는 행위는 산악인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하기에 그들이 한 결정을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과 달리 그들에게 산을 오른다는 건 신성시되는 일과 마찬가지 행위이므로...

칸첸중가라는 누구나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산에서 벌어지는 그날 밤 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은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종의 밀실 사건이기에 그 진실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집요하게 추적해 작은 단서를 쫓아 한 걸음씩 나아가 마침내 그날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의 묘사가 좋았다.

그리고 같은 행위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면서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상당히 전문적인 소재에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첨가해 지루함 없이 흥미롭고 가독성 있게 끌고 간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 다소 도전적인 느낌이 드는 이 책은 오래전 읽었을 때 작가 게이고에게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풍기는 뉘앙스가 왠지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라 언제 살인사건이 벌어질지 조마조마하며 읽었는데 웬걸~끝까지 살인사건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추리소설로서의 충분한 강점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제목에서 풍기는 살인의 냄새와 달리 전혀 사건 다운 사건이 나오지 않음에도 묘하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가지게 하는 책이었고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살인사건 없는 추리소설... 당시에는 참으로 신박하다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오래전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연락이 온 게 이 사건에 내가 개입하게 된 원인이다.

그녀 사야카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품에서 지도와 함께 열쇠 하나를 발견, 그곳으로 가는 길에 자신과 동행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녀와 함께 간 그곳은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없는 외딴곳에 있는 집이었고 현관문은 봉쇄된 채 지하실로만 출입이 가능한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은 느낌의 조금은 이상한 집이었는데 남들과 달리 어릴 적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야카는 이곳에서 그 집을 아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왠지 이 집이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어있음을 느낀다.

사람의 흔적이 끊긴지 오래인 이 집은 어찌 된 일인지 마치 조금 전까지 누군가가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집안의 모든 시계는 같은 시간에 멈춰있는 다소 평범하지않은 상태였다.

나와 사야카는 이 집에 살았던 12살 소년의 일기를 통해 이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유추해보기 시작하면서 그녀 사 야카의 과거에 조금씩 근접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이윽고 밝혀지는 진실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 투성이일 뿐 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 오랫동안 남겨진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작은 소품 하나하나를 통해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복선으로서 장치된 것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몰입감을 높여준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남겨둔 게 없이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사건을 파헤치는 단서가 되는 것을 보면 그 치밀함에 감탄하게 되는데 요즘 나오는 게이고의 책보다 예전 책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아들 유스케의 일기를 통해 유추해본 이 집은 유복하고 평화로웠지만 가장의 발병과 죽음 이후 이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된 일명 그 녀석의 출현이후 급격하게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한다.

늘 술을 마시고 주먹까지 휘둘러대는 그 녀석은 이 집의 폭군이자 모든 불행의 시초이기도 한데 유스케의 일기를 통해 그가 바로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적이 없이 늘 실망만 안겨주던 이 집의 장남임을 밝혀내게 된다.

얼핏 봐서 이 집에서 벌어진 모든 비극이 유스케의 일기를 통해 볼 때는 장남 즉, 그 녀석으로 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아들 역시 피해자였음을 알 수 있는데 유스케가 이런 걸 간파하기에는 너무 어렸다는 것도 이 집의 비극적인 운명에 한 몫을 한 듯 하다.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를 맞출 수 없는 아들의 비애 그리고 그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실망은 자존감을 한없이 떨어트렸을 뿐 아니라 자신 대신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스케에 대한 질투와 분노라는 최악의 형태로 나타난다.

얼핏 봐선 고요하기만 한 이 집에서 벌어진 비극은 주변을 삼킨 걸로도 모자라 끝내는 사야카에게로까지 뻗쳐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힘들도록 만들었고 사야카 본인도 모르는 사이 희생자가 되어버린 듯하지만 이곳에서 알게 된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마침내 새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된듯하다.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 마치 곤충이 탈피하듯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벗고 한 발자국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을 예전의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걸로 작가는 묘사한 게 아닐지...

특별한 사건이 나오거나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고 오로지 단 두 사람과 낡은 집만으로도 분위기를 끌어내고 긴장감을 주는 작가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게 한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