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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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있는 중에 처음이다. 그동안 읽었던 책은 사실 작가는 알지만 작품을 몰랐거나 작가도 작품도 알지만 이미 다른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그 책에 대해 접했던 책들이였지만 세계문학전집을 읽기로 결정했을 때 작가와 작품만 알고 전혀 접하지 못했던 책을 읽고 싶었던 생각이 강했는데 드디어 작가와 작품은 알고 있지만 접하지 못했던 첫 책에 당도했다.

 

솔제니친은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오랜 기간동안 수용소에 갖혀 있었고 망명도 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당시에 소련에서 사상투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공산당은 무조건 나쁜 놈이고 그 중에서도 소련에서 감옥에 있는 사람이니 무조건 우리편인데 그의 작품으로 노벨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어딘지 모르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당시에는 명확하게 흑백논리가 횡행하고 있어 우리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이였다. 지금이야 러시아라고 하면서 교역도 하지만 당시에 우리는 미국과 함께 자유진영이였고 소련은 공산당으로 대변되는 아주 아주 나쁜 놈들의 우두머리였다. 중국은 별로 존재감이 없던 시절이였는데 이제는 사정이 변화해서 러시아가 예전의 존재감 근처도 못가고 있다.

 

책에서 재미있게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의 영화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나와 상당히 반가웠다. 지금이야 사람들의 관심도 없는 작품이지만 몽타주 기법으로 영화의 기술사적으로도 대단한 작품이고 영화내용적으로도 선상반란에 대한 이야기로 예전에는 참으로 많이 언급되었던 작품이 나와 반가웠고 두번째로 한국전쟁에 대한 언급도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중국이 한국전쟁에 뛰어들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솔제니친의 작품은 노벨상으로 인해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에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에 괜히 반갑고 친근함이 느껴졌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것에서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만나거나 노래를 들은 것과 같은 감정이 아주 잠시 왔다.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도 꽤 있고 책으로도 좀 있다. 한 때는 영화들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아 수용소에서 탈출하는 작품이나 '빠삐용'같은 작품들도 있었고 최근에 가장 유명한 '프리즌 브레이크'는 아예 수용소를 탈출하는 내용으로 하나의 시리즈가 구성되어 있다. 최근에도 수용소의 부조리한 상황을 사회의 축소판으로 들여다보는 작품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대부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자유 주의(??)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이지만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전혀 정보가 없고 알지도 못하는 소련의 수용소, 그것도 공산당 정권 시절의 하루를 그리고 있어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읽어보면 인간 사는 것은 결국에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수용소라고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점호받고 식사하고 노동을 하고 다시 들어와 식사를 하고 점호를 받고 하루를 마감한다. 어느 나라의 작품을 봐도 동일하다. 직접 경험해 본적은 없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일상이다.

 

딱 하루동안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그리고 있으나 솔제니친의 인생과 결부되어 소설이라 느껴지기보다는 실제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하루로 축약하고 압축하여 보여줬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다. 더구나, 직접 수용소에서 체험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묘사할 수 없는 세밀한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기본 밑밥으로 작품의 작가가 경험한 바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게 되면 도저히 작품의 주인공과 작가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저절로 작가의 상황이였다고 감정이입이 된다. 그에 따라 주인공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에 따라 함께 감정의 고조를 겪게 된다. 

책의 배경인 소련의 수용소에서만 겪을 수 밖에는 없는 환경이 묘사된다. 무려 영하 20도의 추위에 제대로 된 낭방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옷이랄 것도 보잘기 없고 신발도 따뜻함은 바랄 수도 없고 발을 덮는 정도이고 음식은 죽이니 아주 작은 환경적인 변화에도 쉽게 자신의 몸이 상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수용소 안에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별의 별 이유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 각자 억울한 사정도 있지만 이미 수용소라는 환경은 수용소 밖에서의 지위와 환경은 무시된다. 오로지 수용소 안에서의 권력이 중요하다. 그나마, 유일하게 지켜주는 것은 바로 돈이다. 외부에서 돈이 될 수 있는 것이 들어온 죄수는 그 안에서도 남들보다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다. 수용소 안에서 거기서 거기지만 보다 따뜻한 곳에 있을 수 있고 노역을 가도 편한 것을 할 수 있는 정도면 아주 아주 훌륭한 것이다.

특히, 음식과 관련되어서는 서로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한다. 추위는 어찌 할 수 없지만 음식만큼은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노력하고 먼저 먹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 작은 차이로 인해 인생의 행복까지 느낀다. 각자 알아서 빵같은 것을 숨겨서 몰래 몰래 먹는다. 열량을 보전하지 않으면 이 추위에 버텨낼 방법은 전혀 없다.

의외로 주인공은 끊임없이 빵을 먹는다. 몰래 옷에 숨겨 놓고 죽을 먹을 때 발라 먹기도 하고 너무 배가 고플때도 먹는다. 훔친 것은 아니고 배급을 아껴 먹는 것인데 한편으로 참 신기했다. 잘도 틈틈이 먹어서 말이다. 더구나, 들키면 영창인 상태에서 - 영창을 가면 이 추위에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 인간의 생존능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다른 죄수들도 각자 그런 부분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인지 그에 대한 반응은 전혀 없는 걸로 묘사된다.

밖에 나가 노역을 한 후에 점호가 늦어져 수용소에 늦게 들어가게 되어 이미 좋은 자리와 음식을 선점할 수 없다는 포기감에 일부러 느리게 걸음을 옮기던 죄수들이 자신들말고도 다른 조들도 늦어졌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에 엄청난 속도에 자리를 선점하려고 하는 묘사는 애잔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참으로 잘 알려준다. 아무리 빨리 걸으라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온갖 회유와 협박을 경비병들이 해도 일심단결해서 서로 말없이도 알아서 느릿하게 걷던 죄수들이 말이다.

딱 하루동안 수용소에서 겪는 생활에 대해 묘사를 한다. 여러 날을 묘사할 이유가 없는 것이 탈출은 꿈도 못 꾸는 상황에 - 그 모습으로 영하 20도에 탈출한다는 것은 죽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 하루 하루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루만 이야기로 전달해도 사람들은 충분히 알아들을 것이라 본다.

읽으면서 책 제목 자체에서 하루라고 되어 있어 어떤 식으로 작품이 끝이 날지 궁금했다. 잠을 자면서 끝이 나는지 하루에 대한 감상으로 끝이 날지에 대해서 괜히 호기심이 발동했다. 뭐, 딱히 특별한 것은 없고 그렇게 하루가 끝이 났고 주인공은 그렇게 10년을 수용소에서 지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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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의 17가지 미신 - 당신의 투자를 망치는
켄 피셔 & 라라 호프만스 지음, 이건 옮김 / 부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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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데카르트가 말함과 동시에 인간은 한 단계 진화와 진보를 하게 되었다. 자신이 믿고 보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진실인지에 대한 고민은 철학으로 발전하여 근대 문명과 산업화까지 진행되어 현재의 과학과 체제에 이르기까지 되었다. 갈수록 너무 많은 정보들이 범람하여 사람들은 점점 자신들에게 주입되는 정보를 별다른 노력없이 믿어 버린다.

 

특히,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과 정보와 브랜드와 인지도와 실력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거의 틀림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더이상 본인 스스로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믿어 버리는 경우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설마, 틀리겠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판단이 아닌 권위와 같은 것에 의지하여 내린 판단을 자신의 판단이라 믿고 결정을 내린다.

 

과거에 비해 엄청난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식을 쌓았을지는 몰라도 갈수록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이 점점 없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스스로 생각을 한다고 믿는 것이다. 결코, 자신이 한 생각이 아니라 남들을 통해 주입된 생각임에도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고 보통의 획일적인 생각들이 큰 규모로 늘어나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빠져 버린다.

 

내가 생각한 것들을 별다른 의심없이 타인들도 동의를 하고 똑같이 행동을 하고 있으니 별 의심없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은 더욱 확고히 되고 모두들 함께 자신의 생각이라 여긴다. 오늘도 인지도있고 유명한 누군가가 하는 이론이나 정보에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고 옳다 여기며 행동을 한다. 자신이 생각한 것이라는 착각속에서. 본인 스스로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 다른 면이나 그 이면에 대해서는 알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일들은 현대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워낙 많은 홍수의 범람속에 과연 어떤 것이 옳은지에 대한 가치판단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정보중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와 실제 믿어야 할 정보의 판단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교묘해지고 지친다. 첨예한 이익이 걸려 있을 때는 더더욱 올바른 정보를 받아들이기 더욱 힘들다.

 

투자는 결국에는 돈을 벌자고 하는 행위이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옳다는 믿음을 갖지 못하면 자신의 판단은 쓰레기가 되는 것을 넘어 순식간에 손실이 확정되고 처참히 피를 흘리고 퇴출되고 만다. 이럴 때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무엇인가 필요하다. 올바른 판단의 기준은 중요하지 않고 내가 한 행동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아이큐 180이나 90이나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아무 정보도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투자이다. 그 중에서도 주식 투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돈을 딸 수도 잃을 수도 있는 분야이다. 주식 투자에서는 '사후편향'이 판을 친다. 

 

거의 대부분 이론이나 법칙이나 멋진 이익은 사후에 판정이 난다. 지금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있게 확신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론을 열심히 떠들 때에 지난 과거를 갖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미래를 예측한 주장대로 움직인다면 단언컨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다. 혼자 조용히 독식하면 된다.

 

'주식시장의 17가지 미신'은 주식시장에서 사람들이 나름대로 떠들어대는 17가지의 잘못된(?) 또는 틀리는 경우가 더 많은 믿음(??)또는 미신에 대해 알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대체적으로 '휴~우'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였다. 그럴 가능성과 확률이 크다는 것이지 미신이라고 치부할 것은 또한 아니라는 생각에.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나에게 알려주는 정보와 내용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느냐가 핵심으로 보인다. 실제로 책에 반박하는 각종 그래프와 표와 이야기들 중에는 도저히 내가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나는 켄 피셔만큼의 방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도 못하고 반박할 수 있는 정보를 찾아낼 능력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평소에도 여러 사람들을 통해 들었던 내용이라 '그렇지~~'라고 읽었지만 과연 이것마저도 나는 내 생각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봐야만 한다. 내가 직접 데이터를 가공하고 만들어 확인해 본 적 없이 내가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내세운 데이터와 차트와 표와 부연 설명으로 알고 있던 부분이니 말이다.

 

책은 아주 아주 짧고 핵심나 간추려서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리틀북'이라는 시리즈중에 한 권으로 출판이 되었나 본데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둔 시리즈에 포함된 책에 자신의 성공에 대해 검증이 가능한 켄 피셔가 저술한 내용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이 믿을만 하지만 켄 피셔 스스로가 그러면 안된다고 했으니 판단은 역시나 자신의 몫이 아닐까 한다.

 

 

 

켄피셔의 전작 And(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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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의 게임 ㅣ 클럽 오딧세이 (Club Odyssey) 1
올슨 스콧 카드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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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turner'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 한번 잡으면 도저히 놓지 못하는 책을 말하는 의미라고 한다. '엔더의 게임'책 역자가 알려준 표현이다. 역자 스스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다지 신경쓸 것은 없지만 '엔더의 게임'은 실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책이다. 재미가 보장된다는 표현이 딱 맞을 듯 하다.

 

미국의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최초로 동시에 수상하고 아직까지 그런 작가가 없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는데 읽어보 상당히 재미있었다. 좋안 하는 스토리가 성장 드라마이다. 가장 잘 묘사하고 흥미있게 읽는 책들이 일본 만화 중에 스포츠 만화같은 종류이다. 이런 만화들은 주인공의 성장드라마에 갈수록 더 뛰어난 상대자가 나와 한 명씩 극복하는 과정이 나온다. 그 외에도 헌터X헌터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사실, 이런 만화에 비해서는 오히려 성장드라마로써는 재미가 덜 하지만 소설로써 재미를 생각할 때 충분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소설을 읽는 다양한 이유중에 하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겨가며 상상하고 흥미롭게 읽는 것인데 '엔더의 게임'은 그런 면에서 간만에 더운 여름날 집중하며 읽은 소설이다.

 

초반부터 내용이 파악되고 읽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 더욱 읽기 편했다. 책의 주인공의 나이는 10살도 안된 소년이다. 살인병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외계인과의 일대 전투를 치루기 위한 존재로 선택되어 트레이닝을 받는 과정이 나온다. 아무리, 읽어도 도저히 초등학생이라 생각할 수 없는 아이들의 생활과 전투와 전략이 나온다.

 

설정상의 나이가 10살도 안되거나 겨우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나올 뿐이지 그들의 대화와 생각이나 행동은 도저히 아이들이라 볼 수 없다. 혈기왕성한 20대 생도들이라 여겨진다. 미래의 일들이라 하여도 아이는 아이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끊임없이 전투를 연습하고 모의 전쟁을 하는 모습속에서 아이다운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만 하고 읽으면 더욱 현실감있게 읽을 수 있지만 아이들이라는 생각으로 읽게되면 약간 주저함이 생긴다. 거대한 적과의 싸움앞에서 닥친 현실을 감안해도 아이는 아이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아이로 설정한 이유는 소설의 말미에 알게 된다. 아이로 설정한 이유가 현실성있고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도 된다.

 

책의 주인공은 한 명이지만 그 집안의 아이들이 전부 위대한 인물이 되는데 부모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것도 다소 의아스럽기는 하다. 아무리, 천재이고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어도 나이와 함께 경험하는 한계가 존재할 텐데 그런 상황은 싹 무시한다는 단점은 있어도 소설로써의 재미는 더욱 높혀주고 극의 흥미를 올려줘서 사실 무시하며 읽어도 좋다.

 

지구라는 별에서는 공통적인 적 앞에서 일치단결하여 서로 반목을 하지 않는 상태로 나온다.지구인들끼리 싸워 봤자 외계인과의 싸움이 우선이라 무의미한 행동이 된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종교적, 민족적, 국가적 싸움과 다툼과 전쟁은 더 큰 전쟁앞에서 멈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함께 죽게 생겼는데 우리끼리 미리 싸워 멸망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비록, SF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성장드라마와 스포츠 드라마라고 봐도 무방하다. 앤더라는 소년이 지도자로 선택되어 각종 훈련을 통해 지도자가 될 자질을 시험받고 자신의 극한까지 몰아부쳐 결국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션을 완성한다는 내용에 새로운 시대와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소설이다.

 

숨은 의미와 책에서 표방하는 세계관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무시한 상태에서 책만을 집중하여 내용만 쫓아가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만 그런 것이지 몰라도 어딘지 모르게 평범하지만 점점 갈수록 힘을 더하고 고민을 하지만 현명하게 대처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점점 뛰어난 사람이 되어가는 내용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는 크다. 내가 그렇지 못해 그런지 몰라도.

 

'엔더의 게임'은 내러티브를 쫓아가면서 읽는 것만으로도 킬링 타임용으로도 재미있고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세계관을 유추하는 것도 나름 재미를 더 해 준다. 마지막에 단순히 지구인만의 문제가 아닌 우주적인 더불어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가기도 한다. 1권이 아니라 2~3권으로 나왔어도 충분할 내용을 1권으로 밀도있게 풀어낸 것도 아주 좋게 보인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시간도 잘 가고 재미있게 읽을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책이다.

 

 

 

킬링 타임용(사진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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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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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스미스의 전작인 '심플플랜'을 보고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재미있는 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이니 재미는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작가가 쓴 모든 작품이 전부 재미있을 것이란 것은 말이 안 될수있지만 이미 친숙한 작가의 작품세계로 어느정도는 먹고 들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소설을 읽으면 초반 50페이지 정도까지 글이 잘 안 들어올 때가 있다.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고 전체적인 흐름에 조금씩 젖어들어 서서히 내용이 이해되면서 소설에 재미를 더해가는 것인데 50페이지가 될 때까지 안 될때가 있어도 100페이지 정도되면 그제서야 책이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 것인지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책의 주제가 무겁거나 어려워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해도 100페이지를 넘어 갈 때까지 머리에 안 들어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폐허'같은 경우에는 100페이지가 넘어 갈 때까지 책이 어떤 내용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선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느낌이 있어야 책이 재미있는데 그런 것을 캐치하지 못하니 읽으면서도 재미가 없었다.

 

거창한 철학책을 읽는 것도 아닌데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간 이유는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전개되는지 읽으면서도 머리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으니 계속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읽어도 읽어도 줄거리가 전진하지 않고 그저 글만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00페이지가 넘어가도 제자리라 고민이 될 정도였다.

 

100페이지를 넘어 150페이지 정도 되다보니 겨우 겨우 '폐허'라는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연히 여행을 하던 젊은이들이 숲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마야인들이 숲에 들어간 사람들을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숲에는 덩굴이 있어 덩굴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덩굴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자체에는 별 것이 없지만 이 덩굴이 다른 덩굴과 다른 점은 신기하게도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냄새도 나게 만들어 인간들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덩굴이 몸에 붙어 떼내면 떼낼 때 강한 자극으로 살갗이 상처가 생겨 화상이 생긴것과 같은 작용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직접 끌어가기도 하고 기도를 막기도 하고 인체 내부로 침투해 들어가기도 한다.

 

마야인들은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인체에 침범한 덩굴이 외부로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불침번을 서면서 들어간 인간들이 외부로 나오지 못하게 살인까지 하고 있던 것이였다. 워낙 깊은 곳이라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탈출은 요원한 일이고 자신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는 없지만 그때까지 살아 남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폐허'는 이러한 숲에 갖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순응하는 사람, 막서려는 사람, 우와 좌왕하는 사람, 다쳐 꼼짝도 못하는 사람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이들이 벌이는 내용으로 이뤄진 소설인데 사실 나로써는 재미가 없었다. 용케 끝까지 다 읽었지만 중간에 그만 읽을까를 생각하기도 했었다. 재미있게 읽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써는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중간에 덩굴이 사람을 유혹하고 현혹시키고 똑같은 사람 소리와 핸드폰 소리도 내고 심지어 냄새까지 낸다는 사실에 잠시 흥미를 갖고 읽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시후 더이상의 재미가 없었다.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죽고 만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모두 덩굴에 잡아 먹히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치밀한 사람의 심리와 공포에 대한 묘사를 하는 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영 별로였다.

 

 

 

스콧 스미스의 다른 소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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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의 복음
톰 에겔란 지음, 손화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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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만큼 흥미롭고 재미난 것도 없다. 있을법하고 그럴직한 일들이 개연성을 갖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에 딱히 벗어나지 않거나 잘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맞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음모론에 점점 빠져든다. 음모론은 한 편으로 그대로 진실이 된다면 괜히 재미 없어진다. 남들은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하고 이야기를 해 준 당사자만 알고 있어야 할 듯 하다.

 

음모론만큼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것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중학교때 '사람의 아들'을 읽고 충격을 먹기는 했지만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간 이후에는 종교중에서도 특히 기독교나 카톨릭과 관련되어 있는 소설은 흥미롭다. 특히, 잘 알지 못하는 중세시대나 악마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재미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지 그 쪽 분야의 책들은 종종 심심치않게 세계적인 초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꼭, 마법이나 마술같은 것들이 나오지 않아도 무엇인가 감추려 하고 무엇인가 밝히려 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게임이 읽는 사람으로써는 흥미로웠다. 거의 대부분 광신교에 가까운 집단과 진실을 밝히려는 개인의 싸움인 경우가 다수이다.

 

한편으로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결부된다. 진실을 밝히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논리와 행동을 보이지만 이성이 아닌 믿음으로 행하는 집단입장으로써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할 뿐이다. 믿음이 사실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고 전 세계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고 행하는 대부분의 가장 최악의 결과물이 여기서 나온다는 무서움이 존재한다.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도덕관념을 떠나 믿음의 관점에서 나오니 말이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귀에 들어올리가 없는 것이다. 믿음에 반하는 이야기는 이성으로도 통하지 않는 절대 고정이다. 오히려 코방귀를 뀌며 웃게 된다. 나를 시험하는 것이라 여기며 믿음으로 극복하려고 하니 광신도들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루시퍼의 복음'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쪽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아주 군침을 흘릴만하다. 하나님에 대적되는 루시퍼의 복음이라니 이 얼마나 흥미를 끄는 제목이란 말인가 말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노골적인 제목이라 반신반의했지만 도서관에서 자주 눈에 밟히고 저자가 북유럽출신이라는 점과 저널리스트 출신이라는 점에 선택을 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갖고 접근하여 줄거리를 이끌어가지만 많이 아쉬었다. 분명히 재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포텐셜을 터뜨리지 못한 느낌이랄까? 보다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 여기면서 읽었지만 다소 뻔한 내용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에서 그럴 듯 하다.

 

특히, '당신의 세계관이 흔들릴까 두렵다면 이 책을 절대로 펼치지 마라!'는 광고문구에 기대를 많이 했던 듯 하다. 기대가 큰만큼 실망이 크다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졌다. 아무 기대를 하지도 않았으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텐데 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려 뜸도 들여 더욱 그런 듯 하다. 

 

'루시퍼의 복음'이라는 두루마기를 발견하고 이를 획득하려는 두 집단 사이에 주인공이 위기상황을 맞이하지만 한 집단을 선택하고 두루마기에 얽혀 있는 비밀을 밝히면서 인류에 대한 진정한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현재, 인간의 탄생이나 지구의 탄생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그 중에 최근 각광 받고 있는 것이 외계인 설계설로 알고 있다. 얼마전에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영화가 바로 대표적이다. 사실, 그 쪽분야에 대해 음모론적인 관심만 있고 영화같은 곳에서 좀 알게 되고 인터넷을 통해 관련 내용을 접해 저절로 읽은 것 밖에 없어 딱히 할 이야기는 없지만 '루시퍼의 복음'에서 나온 외계인 설계설은 '프로메테우스'와 밀접한 연관이 많다.

 

워낙 꽁꽁 숨겨놓다가 거의 막판에 가 외계인에 대한 언급을 시작해서 설명이 불충분하지만 책에 묘사된 외계인이 프로메테우스에서 묘사된 외계인과 흡사하다는 것을 보면 외계인 설계설에서 나오는 외계인들이 그렇게 묘사되나 보다. '루시퍼의 복음'을 읽고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두 편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착각이 들어 훨씬 더 재미있게 읽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루시퍼의 복음'은 외계인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지 인간을 창조한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뒷 내용에서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뭐, 내용만 재미있다면 용서는 된다. 마지막에 용두사미격으로 끝나 '잉~~'한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50페이지 정도 더 분량을 늘려 설명을 좀 더 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추리, 스릴러 장르로 중간까지 흥미롭게 읽다가 막판에 반전을 선사하지만 그에 대한 충분한 묘사와 설명이 없다보니 읽는 나로써는 공감을 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이미, 외계인 설계설을 알고 있어 전혀 반전으로 보지 못한 것일수도 있고. 참, 김을 빼자면 루시퍼는 악마가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설정이다. 이쪽 분야 책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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