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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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있는 중에 처음이다. 그동안 읽었던 책은 사실 작가는 알지만 작품을 몰랐거나 작가도 작품도 알지만 이미 다른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그 책에 대해 접했던 책들이였지만 세계문학전집을 읽기로 결정했을 때 작가와 작품만 알고 전혀 접하지 못했던 책을 읽고 싶었던 생각이 강했는데 드디어 작가와 작품은 알고 있지만 접하지 못했던 첫 책에 당도했다.

 

솔제니친은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오랜 기간동안 수용소에 갖혀 있었고 망명도 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당시에 소련에서 사상투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공산당은 무조건 나쁜 놈이고 그 중에서도 소련에서 감옥에 있는 사람이니 무조건 우리편인데 그의 작품으로 노벨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어딘지 모르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당시에는 명확하게 흑백논리가 횡행하고 있어 우리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이였다. 지금이야 러시아라고 하면서 교역도 하지만 당시에 우리는 미국과 함께 자유진영이였고 소련은 공산당으로 대변되는 아주 아주 나쁜 놈들의 우두머리였다. 중국은 별로 존재감이 없던 시절이였는데 이제는 사정이 변화해서 러시아가 예전의 존재감 근처도 못가고 있다.

 

책에서 재미있게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의 영화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나와 상당히 반가웠다. 지금이야 사람들의 관심도 없는 작품이지만 몽타주 기법으로 영화의 기술사적으로도 대단한 작품이고 영화내용적으로도 선상반란에 대한 이야기로 예전에는 참으로 많이 언급되었던 작품이 나와 반가웠고 두번째로 한국전쟁에 대한 언급도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중국이 한국전쟁에 뛰어들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솔제니친의 작품은 노벨상으로 인해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에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에 괜히 반갑고 친근함이 느껴졌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것에서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만나거나 노래를 들은 것과 같은 감정이 아주 잠시 왔다.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도 꽤 있고 책으로도 좀 있다. 한 때는 영화들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아 수용소에서 탈출하는 작품이나 '빠삐용'같은 작품들도 있었고 최근에 가장 유명한 '프리즌 브레이크'는 아예 수용소를 탈출하는 내용으로 하나의 시리즈가 구성되어 있다. 최근에도 수용소의 부조리한 상황을 사회의 축소판으로 들여다보는 작품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대부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자유 주의(??)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이지만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전혀 정보가 없고 알지도 못하는 소련의 수용소, 그것도 공산당 정권 시절의 하루를 그리고 있어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읽어보면 인간 사는 것은 결국에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수용소라고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점호받고 식사하고 노동을 하고 다시 들어와 식사를 하고 점호를 받고 하루를 마감한다. 어느 나라의 작품을 봐도 동일하다. 직접 경험해 본적은 없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일상이다.

 

딱 하루동안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그리고 있으나 솔제니친의 인생과 결부되어 소설이라 느껴지기보다는 실제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하루로 축약하고 압축하여 보여줬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다. 더구나, 직접 수용소에서 체험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묘사할 수 없는 세밀한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기본 밑밥으로 작품의 작가가 경험한 바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게 되면 도저히 작품의 주인공과 작가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저절로 작가의 상황이였다고 감정이입이 된다. 그에 따라 주인공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에 따라 함께 감정의 고조를 겪게 된다. 

책의 배경인 소련의 수용소에서만 겪을 수 밖에는 없는 환경이 묘사된다. 무려 영하 20도의 추위에 제대로 된 낭방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옷이랄 것도 보잘기 없고 신발도 따뜻함은 바랄 수도 없고 발을 덮는 정도이고 음식은 죽이니 아주 작은 환경적인 변화에도 쉽게 자신의 몸이 상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수용소 안에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별의 별 이유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 각자 억울한 사정도 있지만 이미 수용소라는 환경은 수용소 밖에서의 지위와 환경은 무시된다. 오로지 수용소 안에서의 권력이 중요하다. 그나마, 유일하게 지켜주는 것은 바로 돈이다. 외부에서 돈이 될 수 있는 것이 들어온 죄수는 그 안에서도 남들보다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다. 수용소 안에서 거기서 거기지만 보다 따뜻한 곳에 있을 수 있고 노역을 가도 편한 것을 할 수 있는 정도면 아주 아주 훌륭한 것이다.

특히, 음식과 관련되어서는 서로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한다. 추위는 어찌 할 수 없지만 음식만큼은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노력하고 먼저 먹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 작은 차이로 인해 인생의 행복까지 느낀다. 각자 알아서 빵같은 것을 숨겨서 몰래 몰래 먹는다. 열량을 보전하지 않으면 이 추위에 버텨낼 방법은 전혀 없다.

의외로 주인공은 끊임없이 빵을 먹는다. 몰래 옷에 숨겨 놓고 죽을 먹을 때 발라 먹기도 하고 너무 배가 고플때도 먹는다. 훔친 것은 아니고 배급을 아껴 먹는 것인데 한편으로 참 신기했다. 잘도 틈틈이 먹어서 말이다. 더구나, 들키면 영창인 상태에서 - 영창을 가면 이 추위에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 인간의 생존능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다른 죄수들도 각자 그런 부분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인지 그에 대한 반응은 전혀 없는 걸로 묘사된다.

밖에 나가 노역을 한 후에 점호가 늦어져 수용소에 늦게 들어가게 되어 이미 좋은 자리와 음식을 선점할 수 없다는 포기감에 일부러 느리게 걸음을 옮기던 죄수들이 자신들말고도 다른 조들도 늦어졌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에 엄청난 속도에 자리를 선점하려고 하는 묘사는 애잔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참으로 잘 알려준다. 아무리 빨리 걸으라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온갖 회유와 협박을 경비병들이 해도 일심단결해서 서로 말없이도 알아서 느릿하게 걷던 죄수들이 말이다.

딱 하루동안 수용소에서 겪는 생활에 대해 묘사를 한다. 여러 날을 묘사할 이유가 없는 것이 탈출은 꿈도 못 꾸는 상황에 - 그 모습으로 영하 20도에 탈출한다는 것은 죽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 하루 하루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루만 이야기로 전달해도 사람들은 충분히 알아들을 것이라 본다.

읽으면서 책 제목 자체에서 하루라고 되어 있어 어떤 식으로 작품이 끝이 날지 궁금했다. 잠을 자면서 끝이 나는지 하루에 대한 감상으로 끝이 날지에 대해서 괜히 호기심이 발동했다. 뭐, 딱히 특별한 것은 없고 그렇게 하루가 끝이 났고 주인공은 그렇게 10년을 수용소에서 지냈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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