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이기는 법 - 승부사 알바트로스의
성필규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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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성필규씨의 책 '돈을 이기는 법'을 우연히 서점에서 본 후 내가 알고 있는 - 물론, 나만 알고있다 - 그 알바트로스인가 했는데 그 알바트로스가 맞았다. 자세한 것은 몰라도 이렇게 저렇게 인터넷을 통해 그가 쓴 글을 읽어 흥미가 동했다. 어떤 이야기가 실려있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은 투자 책치고는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투자와 관련되어 이런 저런 책을 읽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 이론적인 부분이 많았고 직접 투자를 하는 사람의 속깊은 이야기를 가감없이 해 주는 책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런 분야의 책을 많이 안 읽은 영향도 있겠지만 두루뭉실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그정도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는 드라마틱한 인물의 이야기가 갈수록 과거와 같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돈을 버는 방법은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투자로 돈을 벌고 먹고 산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돈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많이 힘들다. 자신의 노동이 아닌 지식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멋지고 우아해 보일지 몰라도 심신이 함께 피곤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동경을 하기도 한다.

 

투자를 하는 사람들중에서도 자신이 투자를 하는지, 투기를 하는지, 거래를 하는지등에 대해 정확히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자신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투자(투기,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반해 성필규씨는 자신이 정확하게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에 맞는 투자를 하고 있다. 투자, 투기, 거래가 어느 것이 정의이고 어느 것이 불의라는 정의는 무의미하다. 자신의 행위가 현재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려 20년 동안 주식판에서 투자를 거쳐 거래를 하고 있는 와중에 3번의 실패를 겪었다고 이야기를 해 분다.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3번의 실패를 해 본 적이 없다면 투자자가 아니라는 말로 책이 시작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문구로 이야기해 주는지 알았는데 실제로 자신이 3번의 투자를 통해 실패 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단, 여기서 이야기하는 실패는 완전히 망한 실패는 아니다. 최소한 갖고 있는 돈을 잃었어도 그 즉시 다시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투자로 실패한 것이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표현처럼 자신의 탐욕이나 부주의, 확증편향등을 통해 실패를 했을 때 마다 투자를 하며 느꼈던 경험과 지식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약간 관점을 달리해서 본인이 돈을 잃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내가 볼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람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토록 많은 손실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고 다시 기회를 주었던 여러 사람들 덕분에 다시 할 수 있었다고 본다. 본인이 돈도 없는데 주변 사람들이 과감히 성필규라는 벌거벚은 개인을 믿고 투자금을 맡기거나 그에게 투자했다는 사실말이다.

 

실력이 좋고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어마 어마하게 많다. 그들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실패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보다 크다. 그럴 때 과연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할텐데 이럴 때 그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투자로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어도 인생에 있어 실패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거의 대부분 트레이딩 관점에서 하는 투자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투자 방법에 대해서는 소개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소개를 해도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기에 생략하고 자신의 투자 여정에 보다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읽다보면 초 집중을 하면서 읽게 된다. 한 두푼도 아니고 처음에는 몇 천만원 단위의 실패가 몇 억으로 늘려가며 그 과정에 대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저절로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단순히 자신의 투자 거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는 기간동안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심해야 할 점등이 언급되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각심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본인이 3번의 실패 과정에서 작전에 휩쓸리기도 하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는 과정이 묘사되고 있어 거래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배우게 된다.

 

책에서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특성과 성질과 가치관등이 포함된 투자를 해야 된다고 보는데 난 도저히 이 책에 나온 것과 같은 투자를 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너무 쪼잔하고 겁이 많아서 말이다. 투자를 하는데 있어 가장 두렵고 어려운 것이 인간의 감정이다. 감정으로 인해 욕심이나 공포를 느끼고 제대로 된 투자를 못하게 만든다.

 

문제는 감정을 제거한다고 성공한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투자를 하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계가 프로그램에 의해 매매를 한다고 해도 그를 다루는 것은 또한 사람이다. 순간 순간 결정적으로 최종적인 판단은 사람이 하기 때문에 감정이라는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투자의 어려움이자 재미다. 그래서, 사람들이 투자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먼저 자신이 어떤 투자자인지를 알고 자신만의 길을 정하라는 것이 첫째이고, 게임을 법칙을 파악하여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겨놓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 둘째이며, 자금 관리를 생명선으로 여기라는 것이 셋째, 겸손하게 꾸준히 노력하라는 것이 넷째, 마지막으로 투자 심리를 이해라라는 것이다." 이것마저도 너무 길어서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투자는 마음 게임(mental game)이다."

 

성필규씨가 자신의 투자 철칙이라면 책에서 사람들에게 알려준 내용이다. 본인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무척이나 널리 알려지고 아주 아주 당연한 기본적인 원칙일 수 있는데 - 심지어 이걸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할정도 - 이걸 지키는 것이 핵심이자 성공의 비결이다. 누구나 다 아는 걸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이 드문 것이다.

 

저 원칙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먼저 오는 것이 있고 나중에 오는 것이 있게 된다. 하지만, 역시 모든 세상 이치가 그렇듯이 마음이 중요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벌어진 일들도 벌어지려고 하는 일들도 전부 어떤 마음으로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공포를 느끼거나 욕심을 갖거나 평정심을 찾거나 다 자신의 마음에 따라 동일한 현상이 사람마다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기회를 갖거나 늪에 빠지는 것이다.

 

최근에 투자와 관련되어 여러가지로 고민들이 많은데 - 개인적으로 새롭게 갈 길에 대해 정립하고 있는 중이라 - 간만에 울림이 있는 책을 읽었다. 한편으로는 나는 도저히 이렇게 못했고 못할 것 같아 대단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나는 그렇다면 투자로 큰 부자는 될 수없다는 지레짐작마저 갖고 만든다.

 

'불광불급'이라고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불광불급이다. 책을 읽으면서 위인전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기도 했는데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 온 사람들에게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아도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성공의 잣대는 천차만별이고 주관적이지만.

 

'돈을 이기는 법'은 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해 투자에 대해 고백하는 책이다. 그 안에서 투자에 대해서, 거래에 대해서, 투기에 대해서, 공포에 대해서, 탐욕에 대해서, 감정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자신이 살아 온 만큼 책의 밀도가 나오는 것이라 본다. 참,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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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전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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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자신들만의 신화와 전설이 존재한다. 신화라는 말을 하면 현실과는 동 떨어진 이야기로 의심할 수 있어도 신화와 전설이 떠 돌던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신화와 전설이 처음 퍼 졌을때는 저잣거리의 아낙네들이 하는 소문으로 치부하거나 재미삼아 이야기하는 흥미거리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발전하여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소문이 존재하는 것처럼 가장 그럴 싸한 음모론마저 사람들이 동감을 표명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증거이다. 음모론에 나오는 이야기는 너무 그럴싸하기 때문에 보고 듣는 사람들이 전부 100%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믿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신화와 전설도 당시에는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과학이 발달하지 않고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이 사회를 지배하던 당시라 거기에 맞는 이야기들이 각색되고 윤색되어 전파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위정자들이 자신의 치세와 업적을 자랑하거나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한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본다.

 

이러한, 신화와 전설은 당시에는 어느 정도 신비감을 주면서 사람들에게 경외감마저 전달했겠지만 시대가 흘러 사실이 아니라 신화와 전설로 구전되어 내려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100% 믿지는 못해도 그랬을 것이라 추측하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은 현대의 음모론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신화와 전설이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실제로는 그리스 신화를 로마에서 이름만 변경해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그리스 로마신화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로마의 현명함도 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이름 하나만 살짝 얹었을 뿐인데.

 

중국에도 당연히 신화와 전설이 있을 것이지만 그다지 많이 알려진 것이 없다. 중화사상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화와 전설이 많이 퍼지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워낙 철학적인 백가쟁명으로 유명하고 삼국지, 초한지등의 역사와 서유기와 같은 스토리들이 많아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신화전설'을 읽어보니 근본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재미가 없다. 이 점이 가장 크다. 오랜 시간동안 살아남은 스토리들은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역시나 사람들이 들으면서 재미있고 교훈도 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중국 신화 전설을 읽어보니 중국쪽의 신화들은 그러한 스토리 전개가 조금 어설프고 엉성해서 짜임새가 적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몰입도를 많이 떨어뜨려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많은 민족들의 신화에는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세부적인 내용들은 약간씩 달라도 전체적인 얼개는 비슷한데 그렇다면 얼마나 내용의 완성도가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더욱 현실성을 갖춘 믿음을 부여하게 되지 않나 싶다. 한편으로는 각 민족마다 비슷한 신화와 전설과 동화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하는 의문도 든다. 또한, 최초의 유포자는?

 

중국은 대륙답게 스케일이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것에 비하면 중국 신화 전설에 나오는 내용들은 그다지 스케일이 크다고는 할 수 없다. 몇 몇 이야기들에서 나오는 존재들의 크기가 대단하고 정말로??할 정도의 이야기들이 있지만 차라리 무협지가 더욱 스케일이 크다는 생각도 든다고 하면 그래도 신화인데 하는 생각이 들까?

 

중국은 여러 민족들이 섞여 살고 있는 국가라서 각 민족들에서 전해지는 내용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은 되는데 의외로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대표적인 몇 몇 민족들의 신화와 전설들을 교차해서 소개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저자가 설명하기도 하는데 단순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가치판단을 내리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 부분은 개인적으로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그냥 신화와 전설이니 내용 전달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말이다. 어차피, 알고 있는데 하면서. 그래도 몇 몇 부분은 그러한 부연 설명을 통해 그렇구나~~하는 점들도 있었다만.

 

책을 집필한 것이 1984년이다. 모든 신화와 전설의 구성이 그런지 몰라도 초반에 신화와 전설을 소개하지만 말미부터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 소개된다. 흔히 요순시대라고 이야기하는 시대인데 나오는 인물들이 서서히 인간으로써의 역할과 내용이다. 몇몇 사례에서는 여전히 신화적인 내용들이 구성되어 있어도 말도 안되는 인물과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우공이산도 나오고 - 그 산을 정성이 갸릇해서 신이 직접 옮겨주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 강태공도 나오는데 전설의 인물로 소개되고 의외로 신화적인 인물보다는 보다 객관적인 묘사를 한다. 또한, 백이숙제의 이야기도 나오면서 점점 신화와 전설이 아니라 현재도 제법 쓰고 있는 한자성어나 인물들이 나오다보니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굳이 볼 때 그리스 로마신화의 상상력은 뛰어나고 기발하고 흥미로운 것이 많은데 중국신화전설은 그 보다는 괴기하고 좀 빈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신화와 전설을 중국은 살아있는 사람을 통해 충분히 극복하고 더 번영, 번창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워낙 여러 민족이 섞여 있어 각 민족의 신화와 전설이 널리 퍼지도록 방지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늘 듣고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비해 처음 듣는 중국 신화 전설이라 적응하는데 낯설기도 하지만 그림삽화가 있어 보다 괴기스러운 장면들이 직접 연상되어 친숙(??)하기도 한데 가장 가까운 중국의 여러 신화와 전설을 알게 되어 그 자체로도 꽤 괜찮은 읽기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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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상처 스토리콜렉터 1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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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는 다른 나라에서의 상황까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작가이다. 상당히 많은 책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딱히, 대단한 스릴러적인 요소나 추리적인 요소가 박진감있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근 조근하게 하나씩 이야기가 전개되며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난 작가로 보인다.

 

유럽쪽의 추리소설이 미영소설보다는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것인지 몰라도 긴박한 요소는 드물어도 생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천천히 하나씩 밝혀지며 전개되는 이야기에 서서히 녹아든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에서 범인이 누군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이다.

 

추리 소설은 범인을 끝가지 꽁꽁 숨겨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지적 대결을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지 찾아봐라는 페이크를 쓰기도 하면서 범인과 주인공의 추리 싸움뿐만 아니라 독자와 작가의 추리 게임도 함께 연계되어 진행된다고 할 수 있는데 넬리 노이하우스의 소설은 그런 요소보다는 살인이 벌어진 그 동기에 대해 더 집중하고 그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인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딱히 대단한 능력자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보다는 형사라는 직업을 갖고 직업적인 활동을 할 뿐이지 여타의 추리소설처럼 대단한 추리능력과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형사로써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행동한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이다.

 

주인공이라 표현했지만 딱히 보덴슈티인과 피아가 주인공이라 하기에도 뭐할 정도로 다양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고 작품마다 두 사람의 비중도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이런 스토리가 갖는 힘이 바로 넬리 노이하우스가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는 힘이 아닐까 싶다. 줄거리가 탄탄하게 구성되어 하나씩 연결되는 것이 말이다.

 

지금까지 읽은 작품중에 가장 방대하고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 '깊은 상처'로 보인다. 솔직히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끝까지 각 개인의 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구분하지도 못했다. 막연히 도둑이 잡혔다정도로 소설을 읽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한 가족의 인물이 총 출동을 하니 비슷한 이름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니 도대체 헛갈려서 포기했다.

 

'깊은 상처'는 나치 시대의 그림자가 여전히 독일 사회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 일본과 달리 독일은 철저하게 자기 반성을 통해 지금의 국가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고 나치와 관련된 것을 국가적으로 금지하고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주변 국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독일 특유의 국민성까지 더해서 과거와 다른 좋은 나라가 된 듯 하다. 특히, 유럽은 워낙 자기들끼지 크고 작은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져 어지간한 전쟁은 평안한 나날이 지속된다는 표현까지 쓴다고 하니 우리와 상황이 다를 수 있겠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하고 지나간 것과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지나온 시간은 갈수록 점점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치상황에서 앞장서 활동하고 좋은 기회를 가졌음에도 자신의 모든 과거를 깨끗히 지우고 이에 반하는 인물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부 제거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여 사회의 덕망있는 인사로 다시 태어나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상한 척을 한 인물에 대한 까발림은 살아온 세월만큼 거대하고 치밀했다.

 

계속적인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추가적인 살인이 발생하면서 동일 인물의 살인인지에 대한 추리가 벌어지면서 서서히 과거의 행적이 하나씩 밝혀지며 경악할만한 추악한 감춰졌던 현실에 관계된 여러 인물이 각자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건은 더욱 꼬이기만 하는 이야기에 작가의 노력이 대단한다는 느낌을 가졌다.

 

결국,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있다. 물론, 현실과 달리 소설은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말이다. 꼭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다들 그래서 잘 되었답니다는 식으로 결말이 되어 읽는 독자로써도 안도의 한 숨을 쉬게 된다. '깊은 상처'는 우리와 달리 독일에서는 여전히 과거에 대해 반성을 하려 한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 주는 소설이고 추리적으로도 재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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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짜로 공부한다 - 우리가 교육에 대해 꿈꿨던 모든 것
살만 칸 지음, 김희경.김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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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다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겨 집중적으로 읽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노력은 스스로 공부를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공부를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공부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 저절로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다. 좀 더 효율적인 공부방법에 대한 갈증을 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라는 것은 딱히 더 빨리 가는 방법은 없어 보이지만 보다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은 있다고 본다. 대학 진학을 위한 시험때문에 하는 공부에서 죽어라고 하루종일 앉아 공부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점수가 오르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누가 봐도 정말 열심히 하는데도 점수는 오르지 않고 중위권에 머문 친구들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낀다.

 

분명히 효율적으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하는데도 너무 많은 것을 공부한다. 시험에 나올 공부를 해야 하는데도 쓸데없는 것까지 전부 습득하고 기억하고 암기해서 시험을 치려 하니 점수가 나오지 않고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니 알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공부를 안 하는 스타일이라 죽어라고 앉아 공부하기 보다는 적당히 했던 듯 싶다. 공부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닌. 또한, 포기가 빨라 수학같은 과목은 그저 한 자리 점수가 당연하다고 여기며 남는 시간에 확률이나 통계는 남는 페이지에 전부 하나씩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하여 풀며 답을 풀었다.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책이라는 것을 접하고 책을 통해 공부를 한다는 관점에서 책을 읽을 때 깨닫게 되었다. 수학은 결코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도 아니고 우리 실생활에서 전혀 필요없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너무 수학을 수학이라는 과목으로 따로 떨어져서 보다보니 수학을 무가치한 과목이라 여기며 포기했는데 우리 실생활에서 많은 부분이 수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학은 나에게는 우주 여행과도 같은 어려운 과목이다. 그런데,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괴롭히기 위해서 뛰어난 학자들이 어려운 공식이나 식을 만들거나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 인류에게 엄청난 기회와 발전을 제공했고 인문과도 연결되어 있는 하나였다.

 

중요한 것은 수학을 이해하고 원리를 알려고 하기 보다는 엄청나게 피해야 할 질병처럼 여겼던 것이다. 지금도 아이들의 수학을 볼 때 현기증이 나고 혹시나 나에게 질문을 할까봐 두려워하고 질색을 한다. 가끔 물어보면 저 멀리 도망갈 정도이다. 다만, 예전과 달리 수학이라는 과목을 한 번 공부할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정도는 한다. 

 

단순히 공부를 한다는 차원을 넘어 그 원리를 파악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얻을 수도 있다는 뜬금없는 생각도 한다. 단지 수학을 풀기 위해 배운다기 보다는 그 원리라는 것이 그토록 재미있고, 지식의 확장을 이뤄줄까하는 의구심과 호기심과 궁금증이다. 이런 것들은 공부라는 것과 맞닿아 있다. 공부라고 하는 것들에 있어 수학을 그토록 기초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더욱 그렇다.

 

인문이라는 것들은 그나마 읽고 읽고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 생각, 생각. 불행히 아직 그 단계를 가지 못했어도 느껴보고 싶다고 할까? 공부라는 것을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궁금하고 호기심나는 분야에 대해 알아서 찾아보고 탐구하고 하나씩 계단을 올라가는 재미가 공부라는 묘한 매력이라 생각된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공부를 우리는 그동안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강요했고 당연하게 여겼다.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공부라 여기며 강요하고 해야만 한다는 최면과 쇄뇌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공부를 한다. 공부가 재미있을리는 없다. 성취감보다는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더 크다. 아주 일부만 그 안에서도 재미를 느끼고 더 고도의 지적인 탐구를 할 뿐이다.

 

성인이 아닌 학생들에게 공부라는 것은 무조건 일단 싫은 것이다. 어른은 하지 않으면 된다. 하고 싶어 하는 성인은 공부가 재미있어 하게 되지만 학생은 공부라는 것이 결국에는 점수와 연결되어 억지로 해야 하는 행위이다. 더구나, 학교에서 공부는 학습목표와 진도에 맞춰 학생들의 성취도와 이해와 상관없이 진행이 될 뿐이다. 아마도, 이런 작위적이고 일방적인 공부 방법의 희생이 내 수학실력이 아닐까하는 자위를 해 본다.

 

수준별 학습은 학생들을 편 가르는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보지만 - 이건 사실 정치적인 성격을 가질 때가 많다만 - 각자의 이해력과 성취도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게 안 되니 과외를 하게 되는 것인데 과외를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은 쫓아가지 못하고 선행학습은 다시 또 학교에서 수업을 재미없게 만들어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장면은 대한민국만이 아닌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된다. 전 지구적인 현상인가 보다.

 

'칸 아카데미'는 무료 동영상을 통해 수학의 원리를 알려주고 각자 자산의 수준에 맞게 동영상을 반복해 보며 이해도에 맞게 학습을 진행하게 했다. 이러한 방법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지지를 받아 결국에는 빌 게이츠가 투자하게 만들어 여전히 무료로 각종 과목에 대한 학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누구든지 원하면 볼 수 있고 반복해서 이해할 때까지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칸 아카데미'를 가 보니 수학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동영상이 있었다. 수학 기초인 덧셈을 잠시 봤는데 그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 원리를 설명하는 듯 했다. 국어로 설명은 없고 자막만 국어가 나오는데 유트브에는 국어로 설명하는 영상이 있어 나중에 한 번 실행해 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뭐, 꼭 아이들의 수학을 도와주기 위한 것은 아니고 순수하게 호기심에 관련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료로 동영상을 만들어 한 살만 칸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잘 나가는 헤지펀드를 때려치고 했다는 사실마저도 말이다. 나름, 교육이라면 교육분야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존경스럽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칸 아카데미정도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은 든다. 과연, 빌 게이츠와 같은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책에 소개된 교육에 대한 철학과 방법에 대한 고찰을 많은 부분에서 동의하지만 몇 몇 부분은 조금은 갸웃거리기도 했다. 보다 더 깊은 성찰을 보여주지 못한 듯 하여 그다지 내가 설득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책을 다 읽고 '칸 아카데미'를 즐겨찾기 했다. TED는 아직까지 알기만 하고 제대로 본 적은 없는데, 이런 것이 바로 책을 읽은 장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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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 마녀의 탄생, 마녀축제, 마녀 재판과 화형의 역사 또는 슬픈 추방자들을 위한 자유의 이야기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봄아필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책이 재미없거나 내가 아직 잘 몰라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한다. 전혀 생소한 분야의 책을 읽을때면 머리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익숙한 내용이나 개념이면 그다지 어려움 없이 집중하고 책의 내용에 젖어들 수 있는데 평소에 전혀 접하지 않는 분야는 읽어도 잘 안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모르고 안 읽은 분야는 여전히 무궁무진하고 읽어도 모르는 것들은 더욱 많다. 그러다보니 이 책처럼 평소에 전혀 읽어보지 않은 분야는 읽는데 좀 불편하고 어색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읽는데 있어 안 읽히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재미가 없었다. 새로운 지식을 알기 위해 읽은 측면이 분명히 있을텐데 영~~ 나에게는 재미가 없었다. 불행히도.

 

'마녀'라는 책을 선택한 것은 호기심이 동했다. 중세부터 내려오는 마녀의 개념과 어떤 식으로 마녀가 생성되고 발전되고 악용되었는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 면을 속 시원히 밝혀주는 책이라 여기며 선택을 했지만 내 생각과는 달라 더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책의 저자인 쥘 미슐레는 1798년에 태어 났으니 이 책의 이야기인 마녀에 대해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생생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 여겼다. 마녀가 사라 진지 지금과 비교해서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 여전히 그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을 시대였으니 더욱 적나라하고 솔직하고 이야기할 것이라 봤다.

 

더구나, 이 책은 마녀에 대한 정체를 밝히는 것보다는 어떤 식으로 마녀로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일반인들이 써 먹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 더욱 마녀에 대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분명히 그런 면이 나오기는 하는데 내 생각과 달리 보다 편협적이고 세밀한 이야기가 많았다. 보다 거시적인 스토리를 원한 내 마음과 달리 말이다.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저자가 상당히 내용을 위트있게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배배 꼬여 이야기를 하니 읽으면서 혼동도 된다. 분명히 저자는 카톨릭에 대해 냉정한 시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는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마귀는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초 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부정해야 할 듯 한데 그건 그렇지도 않다.

 

분명히 마녀로 몰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귀가 들린 사람들에 대해 설명을 할 때는 아무리 봐도 그 존재를 믿고 있는 상태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도 믿고 있다는 뜻이 될 듯도 한데 뉘앙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은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위선적인 종교인들에게 대한 이야기가 핵심으로 보인다.

 

초반에 마녀가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 설명할 때는 영주들로부터 시작을 하지만 마녀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과 어떤 식으로 마녀로 몰리고 처형과 화형을 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에서는 수도원들과 수녀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이용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한다. 심지어, 책에서는 성스러운 수도원과 수녀들이 아니라 아주 음탐하고 세속적이고 막가파식의 이야기가 도배된다.

 

마녀는 어떤 이유로도 갖다 대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불에 탈 때 소리를 내도 소리를 내지 않아도 마녀라고 규정할 정도이니. 그런데, 걔중에는 죽고 싶어 마녀라고 고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스스로 죽는 것은 힘들고 용기가 필요하니 그런 식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판단도 든다. 살아있는 것이 고통이고 저주인 경우라면 죽음이 그 여인에게는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책에서는 사바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데 정확하게 다가오지는 못했지만 난잡한 파티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모든 것이 억압된 세상에서 사바에서는 어떤 사람과도 자유롭게 무엇(??)이든지 가능했다. 특히,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대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눈이 맞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이를 통해 마녀라는 개념이 처음 통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마녀는 지금과 같은 나쁜 의미보다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억압된 심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했던 듯 하다. 굳이 따지면 우리의 무녀의 개념으로 시작되어 점점 마귀에 사로잡힌 여인으로 치환된 듯 하다. 그러면서 점점 수도원들의 주교와 교황의 역할을 빼앗아 가기 시작해서 역습을 하게 된다.

 

또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마녀로 몰아 여론을 변경시키거나 자신의 노리개로 갖고 놀다가 마녀로 모는 등의 치졸한 짓을 서슴치않고 한다. 그것도 당시의 권력자로 할 수 있는 주교들과 주교가 되는 영주들에 의해서. 특히, 수녀들이 당시에는 음란한 문제로 마녀로 지목된 경우도 묘사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읽는데 재미는 없었는데 얻은 지식은 있었나 보다. 마녀라는 개념자체와 어떤 식으로 이용되었는지는 알았지만 그 보다 조금 더 세부적인 내용을 알게 되었다는 정도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도 어느 순간 불쌍한 여인을 갖고 놀고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마녀로 지목되었던 20대 초반의 여인에게 사람들의 여론이 달라져 '말도 안 된다'며 수도원까지 몰려 들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로부터 점점 마녀로 처형되고 화형되어 처벌을 받는 경우는 사라졌다. 그것이 1700년대 초반이라고 한다.

 

중세 시대에 의사와 법집행인들은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치부되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해 신이 아닌 인간이 치료하고 판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실제로 신이 아닌 가진 자들이 못 마땅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거나 나눠 가져야 하니 말이다. 뭐, 그렇게 마녀는 서서히 실제하지 않고 개념만 남았다.

 

문제는 이 개념이 점점 더 무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녀는 이제 없다. 자신이 마녀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서워하지 않고 웃는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제는 마녀로 지목하고 정신적인 화형을 시켜려 한다. 마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마녀는 사라졌지만 마녀는 여전히 존재하고 배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과 법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의 암울하고 불행한 역사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 곳곳의 마녀들은 도대체 무엇때문일까? 비교할 수도 없이 과학과 법이 발달하고 다양성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마녀로 지목된 사람들보다 마녀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였던 것과 같이 지금도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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