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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ㅣ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평점 :
이리
두껍고 글이 빼꼼하게 채워져 있는 줄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거의 700페이지나 된다는 것을 책을 선택할 때 보면서도 의식하지 못했고
그림 하나, 페이지 여백도 없다는 것을 얼핏 보면서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그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읽어도 여전히 두껍게 남은 페이지와 읽어도 쉴 공간을 주지 않는 글자의 압박.
엄청난
압박을 주는 책이 재미마저 없었다면 읽는내내 고역이자 시험이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재미있다~! 그것도 많이. 너무 주저리 주저리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내용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알려주는 바람에 중반까지는 다소 힘겹게 읽을 수도 있다. 내가 읽으려고 택한 책은 추리류라고 생각하고 읽고
있는데 아무리 읽어도 추리가 아닌 정치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딱히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어 읽기는 했지만 언제 내가 생각했던 분야의 책이 될련지 궁금했지만 읽다보니 어느순간부터 추리라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그 자체로 재미있다는 뜻이다. 경찰서 내부에서 벌어지는 경찰들의 정치와 경찰과 기자들간의 신경전과 음모(??)들이 읽으면서
서서히 긴장 아닌 긴장으로 읽게 되었다.
일본에는
특이하게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순위가 있나본데 거기서 2013년에 1위를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64'는 재미있다보다는 대단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마지막 100페이지 전까지는 재미있다는 생각을 읽게 되었다면 나머지 100페이지는 대단하다는 감정으로 읽게 만들어
준다.
한마디로,
700페이지 정도는 권력 투쟁과 암투, 다른 직업끼리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이 팽배하며 같은 경찰끼리도 각자의 소속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상대방을 우습게 보고 그 안에서도 계열이 있고 중간에 껴 이쪽도 저쪽도 가지 못하는 주인공이 점차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하든 잘
되게 하려는 고군분투로써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나머지
100페이지부터 이 책을 읽으려고 선택한 사람들이 원하는 바로 그 추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책을 읽는동안 추리에 대해서는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고 지금까지 다루었던 내용에 젖어 열심히 읽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급변하는 전개에 놀랄 정도로 설마, 설마하면서 읽게되다가 정말로 추리가
펼쳐지는 것에 대해 뒤통수를 맞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책의
제목만으로 책이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책이 있다. 제목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으니 책을 읽으면서 확인하고 동감하고
심화학습을 하면 된다. 책의 제목만으로는 어떤 감도 잡히지 않고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책이 있다. '64'는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후자다.
작가의
스토리를 읽어보면 사실 추리 전문 작가가 아니라 소설을 썼을 뿐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거의 대부분의 소설이 추리 소설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추리류의 소설일 것이라 지레짐작으로 읽었던 내 실수였던 것이다. '64'는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대단하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 본다.
첫
장면이 두 부부가 딸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결국에는 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딸을 찾기 위한 여정의 책이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지만 전혀 아니다. 딸은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드러내는 하나의 메타포일 뿐이다. 결국, 딸은 나타나지 않지만 계속해서 주인공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정신으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 후로
주인공이 경찰 홍보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단순히 그 정도면 재미삼아 읽는 정도가 될 것이고 경찰서 내부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의 한 복판에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어 이리 저리 장기판의 말로 뛰어다니지만 스스로 자각하여 장기판의 말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그들을
옭아메는 과정이 전개된다.
여기까지라면
이 역시나 흥미롭게 잘 읽었다고 할 수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 생각지도 못하게 책 전체를 계속 짓누르고 있던 사건이 다시 발생한다. 그것도 똑같은
방법으로. 그럼에도 읽는 독자들은 계속해서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사건이 진짜인지 시선을 돌리기 위한 유도책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
확신은 없지만 주인공의 생각처럼 자작극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는데 최종적인 반전이 책 말미에 나온다. 자연스럽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 책을 무려 10년 동안 집필해서 완성했다고 하니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닐까라는 심정마저 든다. 초반에 이리 저리 계속
깔아대는 밑밥을 잘 읽어야만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마지막에 가서 더욱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다.
초반에는
좀 집중이 안 되지만 중반에 들어가면서는 재미있다는 느낌으로 보게 되고 후반에 가서는 '우와~~'라는 감정으로 읽게 만든다. 분명히 글자도
여백없이 가득하고 엄청 두꺼운 책이지만 어느순간부터 인식하지 못하고 읽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가서는 침을 묻혀가며
읽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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