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경쟁·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은

일본과 같이 제국주의의 길로 가는 데 합당한 논리였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확장을 정당화하는 침략자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과 중국의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론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진화론을 내면화하고

전쟁과 침략으로 얼룩진 일본의 근대화를 모델로 삼았다.

사회진화론을 내면화한다는 것은

제국주의의 올가미에 걸려든 꼴이었다.

정인경, 『뉴턴의 무정한 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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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복잡한.


영화의 시작은 익숙한 퇴마의식 장면이다. 이민기가 잘 생긴 얼굴로 구마 사제 반해신 신부 역을 하는데, 영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단골 레퍼토리인 라틴어 축귀문 발음은 국어책을 읽는 듯하고, 그렇다고 의식 자체에서 뭔가 실감나는 공포나 으스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이 영화가 엑소시즘을 주로 하고 있다면 시작부터 기대가 많이 꺾이는 부분.


악귀에 들린 아이 소미(이레)는 얼마 전 심장 수술을 받은 모양이다. 수술의 집도는 아버지인 차승도(박신양)가 맡았었고. 어쩌다가 악귀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는 극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데, 이게 너무 늦다. 그때까지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이게 다 뭔 소동인가 하는 마음으로, 썩 몰입되지 않는 과정을 따라갈 뿐이다.


아마도 감독은 영화의 또 하나의 축으로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즉 부정(父情)을 담아내려고 한 것 같다. 영화 내내 딸의 이름만 부르며 오열하기에 바쁜 차승도 캐릭터가 이를 담당하는 인물인데, 오랜만에 영화에서 만나는 박신양의 연기는 딱히 문제 삼을 게 없으나 그가 맡은 캐릭터가 좀처럼 답답함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관객은 이 인물에게 몰입을 해야 되는 상황인데 심각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반 신부가 분명 악귀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는데도 다시 사로잡혔다가 결국 현장에서 사망을 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실은 또 하나의 악귀가 숨어 있었다는 설정이고, 그 과정에 소미의 심장 수술이 관련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장기이식수술과 관련된 의료부정, 비리 건까지 더해진다. 어디까지 복잡해 질거니..


물론 이 소재가 이제는 너무 흔해졌고, 여기에 차별점을 도입하기 위해 이런저런 애를 쓴 것 같긴 하지만, 영화가 지나치게 복잡해졌고, 그 이야기들이 잘 연결되는 것 같지도(스토리 상으로는 연결되지만 정서적으로 연결이 매끄럽지는 못하다) 않다. 총체적 난국이다.





배우들과 연기, 그리고 제작진.


오랜만에 영화에서 보는 박신양은 반가웠고, 아역 배우 출신으로 벌써 대학생이 되었다는 이레의 얼굴도 반가웠다. 그동안에도 이런 저런 영화들에 조연으로 출연해 왔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10년 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영화에서 귀여운 아역으로 나왔던 게 기억이 난다. 딱 그 얼굴 그대로 잘 자랐고, 조금씩 연기력도 성장해 가는 느낌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민기의 연기는.. 뭐랄까 일단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기도 하고, 구마 사제보다는 좀 더 팔팔하게 뛰어다니는 현장 요원 쪽이 더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영화 속에서는 또 이 캐릭터에도 잔뜩 사연을 붙여두었는데, 굳이 그게 이번 영화의 메인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크게 의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이 외에도 연기력으로 딱히 티가 날 정도로 모자란 배우들이 보이지는 않는데, 결정적으로 러시아니, 정교회니 하는 쪽으로 넘어가면서 확 분위기가 깨진다. 이쯤 되면 감독이고 제작진이고, 묘사하려고 하는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충분히 조사나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는 느낌. 여기에 장르에 대한 이해도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고.





지치지 않고 나오는 퇴마물.


이런 저런 퇴마의식을 다룬 영화들이 제법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 봤던 송혜교 주연의 “검은 수녀들”도 있고, 헐리우드 쪽에서는 콘스탄틴의 후속편이 제작된다는 소문도 있고.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유는, 역시나 사람들의 욕망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 세상 가운데 널리 퍼져 있는 악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때로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의 원인을 찾고 싶은 심리 이런 것들이 기본이겠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런 악의 문제의 원인을 악마와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런 악마를 찾아 때려눕히면 내 죄까지 사라지는 것 같은 안도감도 찾을 수 있는 건 아닐까.


뭐 그런 게 아니라도, 일단 재미가 있으니까 많이들 만들고 보는 것이긴 할 게다.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악마의 모습이라든지, 그것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마법 같은 대결들, 여기에 담겨 있는 도덕적, 윤리적 이슈들 같은 것들은 언제나 흥미를 끄니까. 다만 이런 영화처럼 그저 양산형 영상물도 많이 나오는 거고. 좀 다르게 생각하면, 많이 만들다 보면 개중에 괜찮은 작품들도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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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17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퇴마물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아마도 파묘의 흥행 성공으로 해당 영화 제작당시 퇴마물이 일종의 트렌드가 아니었나 싶네요.하지만 검은 수녀들이나 성스러운 밤-데몬헌터스등이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흘의 흥행 여부에 따라서 한동안 퇴마물이 다시 퇴조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연기파 배우 박신양이 영화로 다시 복귀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반가운 생각이 듭니다.
 
기획자의 사전 - 기획자가 평생 품어야 할 스물아홉 가지 단어
정은우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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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뭔가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한테도 있을까 싶은 사람이지만, 그런 내가 유튜브 채널이라는 걸 운영하고 있다. 창조적 콘텐츠의 치열한 경쟁의 현장에서 (당연히 썩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지만) 확실히 좋은 기획의 중요성을 깨달아 알아가는 중이다. 이 책은 여기에 도움이 될까 손에 들었고.


스물아홉 개의 단어(키워드)를 중심으로 기획이란 무엇인지, 기획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전체적으로는 어느 정도 서로 연계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각의 키워드가 거의 독립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각 장은 10페이지 이내로 되어 있어 천천히 항목별로 끊어 읽기에도 괜찮은 책. 제목처럼 “사전”의 느낌이랄까.


내 경우처럼 처음부터 쭉 읽어나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각자가 필요한 상황에 맞는 항목부터 먼저 골라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책은 3부로 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기획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전반적으로 살피고, 2부에서는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일상에서의 습관에 집중을 한다. 3부는 조금은 더 큰 이야기로, 기획자가 가져야 할 태도, 자세 같은 내용.





초반부에 인상적인 조언들이 많아 마음에 담아 두게 된다. 업계의 격언 같은 것들도 꽤 쏟아지는데, “나쁜 기획자는 트렌드를 베끼지만 좋은 기획자는 그 안에서 욕망을 찾으려 한다”거나, “보통의 기획자가 남의 사례를 조사하는 이유는 그 사례를 자기 기획서에 담기 위해서지만, 뛰어난 기획자가 같은 일을 하는 이유는 그 사례가 자기 기획서에 담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태용도 인상적이다.


고객이 자신의 욕망을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진짜 욕망이라는 것을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도 굉장히 와 닿는다. 뭐가 필요한지 말해주면 그걸 줄 수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는 이유다. 그리고 관건은 그렇게 자신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제공했을 때 엄청나게 호감이 생긴다는 것. (메모)


물론 실제 어떻게 일을 해 나가야 하는지는 워낙 다양한 사례들과 다른 상황들이 있기에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고, 그래서 책이 어떤 원리 차원에 머문다고 할 수도 있지만, 누가 다 떠 먹여줄 수는 없는 거니까. 책을 읽고 통찰을 얻었다면, 직접 부딪히면서 익혀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글이 난해하지도 않아서 술술 읽힌다. 이런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이렇게 쉽게 빼먹어도 되나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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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현대 과학의 기초를 다진 이들은

대개가 힘에 대한 사랑보다는

진리에 대한 사랑이 컸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학운동은

“건강하지 못한 이웃 가운데서, 또 불운한 시간에” 태어났고,

“너무 빨리 성공을 거두었고 또 너무 큰 대가를 치렀”으며,

그리하여 이제 “근본적인 재고,

일종의 회개가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이종태, 『경이라는 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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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응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에 “내 나이가 되면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줘.”라고

자랑하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억지로 참고 들어주는 것을

할머니는 받아들이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 소노 아야코, 『노인이 되지 않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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