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존엄사 - 의사 딸이 동행한 엄마의 죽음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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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현직 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제목에도 이미 언급되어 있고, 비슷한 내용의 책을 한두 권 읽은 것도 아닌지라, 내용상의 새로움은 없었지만, “단식 존엄사”라는 개념을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겠다 싶어 집어 들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소뇌실조증이라는 유전적 질환을 갖고 있었다. 우리 몸의 운동능력을 담당하는 소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일반 발병되면 온몸이 점차 굳어가는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가계도 속 적지 않은 인원이 이 질병을 갖고 있었고, 질병을 발현하는 인자는 우성인자로 보였다. 자녀를 낳으면 1/2의 확률로 같은 질병을 갖게 된다니 당사자로서도 꽤나 걱정을 하게 만드는 질병이다.


다행이도 어머니는 늦은 나이에 발병이 되었고, 그 덕분인지 병의 진행 속도도 늦었다. 하지만 결국 고통스러운 결정을 할 시기가 왔고, 어머니는 담담하게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여기에 세 명의 자녀들도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고(남편은 이미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반복해서 지적했던 것처럼, 단지 죽음을 피하는 것이 현대 의학의 최고선이 되어버린 상황은 분명 허점이 많은 제도다. 소위 연명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는 오히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고통(가장 대표적으로 삽관 자체가)을 겪게 되고, 그 기간 결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의식도 또렷하지 않으면, 누군가 영양 공급과 배변을 대신 처리해주어야 하고, 심지어 기계장치의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또, 흔히들 많이 보는 제세동기는 환자 입장에서는 (피부가 검게 그을릴 정도로) 전기충격기와 다를 바가 없는 고통이다.


환자의 가족이 지불해야 하는 의료비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집중 치료실에서의 일주일은 적게 잡아 50만 원 이상에서 100만원을 쉽게 넘긴다. 간병인을 둘 경우 비용은 더욱 증가하고, 가족 중 한 명이 전담해 간병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런 인공적인 수명 연장술은 종교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흔히 종교계는 이른바 “존엄사”에 반대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의 자연적인 수명을 기계장치를 통해 그저 연장하는 행위는 수명에 둔 신의 뜻을 저항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저자 역시 이런 면을 의식했는지 “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대신, 음식섭취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런 식의 죽음은 고대 로마에서도 자주 있었다. 예를 들면 스키피오를 실각시켰던 공화파 정치인 대(大) 카토는 자신의 몸이 죽음에 가까워졌음을 인식하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이런 결정은 환자에게 죽을 때까지 고통을 가하는 현대의 연명의료(와 이를 유지시키는 법)에 대항하는 유효한 방식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역시 악용되거나 오용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사람이 만든 모든 제도가 지니는 숙명이니까.


한편으로 책의 구성이 조금은 난잡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중간 중간 가족의 이야기, 특히 어머니의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담아내고 있기도 하고, 덕분에 이야기의 호흡은 자주 끊긴다. 책이 존엄사라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쓰였다기보다, 일종의 가족 문집으로 쓴 것인가 싶을 정도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 심지어 책 말미에는 저자의 동생이 쓴 어머니에 대한 기억 같은 글도 덧붙여져 있다. 물론 가족적 의미는 있겠지만, 단식 존엄사라는 주제 자체에 집중하려는 독자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내용들이긴 하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죽음에 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의 삶을 좀 더 큰 맥락 안에서 생각해 보게 만들고, 오히려 현재의 하루하루에 좀 더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비단 이 책이 아니라도, 한 번씩은 읽어 봐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전히 연명 신화 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관련 법률도 개정을 위한 좀 더 실제적인 움직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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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24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한국에서는 안락사는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어머님 친구분중에서도 대장암 수술후(대장 대부분 제거),대변 팩을 밖으로 달고 다니셨는데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마기 았냐면서 한 두주 스스로 곡기를 끊고 돌아가신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아마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이 되어다면 보다 더 편하게 돌아가셨을 텐데 돌아가실때끼지 매우 힘드셨던 것으로 들었습니다.이제 우리 사회도 개인이 스스로 존엄을 지키며서 죽음을 선택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