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름다운 것이나 선한 것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이나 선한 것을 위해 죽는 일은 쉽지만,
비참한 것이나 부패한 것들을 위해 죽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저는 그날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 엔도 슈사쿠, 『침묵』 중에서
문화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하나의 문화는 그 주변부와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된다. 특별히 국가적 문화양식은 그 나라의 힘과도 연관이 되어 있어서, 대체로 강한 나라의 문화가 주변국으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물론 중국의 원나라나 청나라처럼 강한 힘을 지난 이민족 국가가 피정복민인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 경우 비록 정복을 당하긴 했지만 피정복민들의 수와 영역이 월등히 많고 넓었다는 특이점이 영향을 주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강한 나라”란 단순히 군사적인 힘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뜻.
아무튼, 이런 경향은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에도 대체로 적용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심 주제인 “점술” 또한 그렇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고대 이스라엘에서 점술은 엄격히 금지되었다고만 배우지만, 이 책의 저자는 고대 근동(주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자세히 다뤄지고, 히타이트와 가나안이 일부 설명된다)의 다양한 점술 사례들을 고고학과 문헌학적으로 살핀 뒤, 이들 인근 문화권의 점술에 관한 관행이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내용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점술이라는 주제로 고대 근동의 역사와 문화를 잘 정리해 냈다는 점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와 가나안 지역의 점술 문화를 그 유형별로 나누어 고대 신화나 문학 속 언급들을 잘 분류했다. 여기에 고대 이스라엘의 점술 문화 역시 이런 유형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까지 다양한 영향을 받았구나 싶다.
고대 이스라엘의 점술 문화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가 거의 구약성경에 한정된다는 점과 일부 고고학적 발굴이 전부라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저자는 꽤 충실한 연구를 통해서 최소한 고대 이스라엘의 민간 문화 속에서 점술이 퍽 널리 사용되었다는 점을 나름 입증해 낸 것처럼 보인다. 물론 많은 경우 민간의 점술 문화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일부 구절들은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고고학적 결과물들을 정리하는 부분은 잘 해냈지만, 그 결과물들을 엮어서 결론을 내는 과정은 평이했다. 문서설에 기초해서 비교적 후대에 신명기적 사가들에 의해 민간의 점술 관행이 억압되었다는 식의 설명은 학계에서는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추정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추정에는 언제나 그렇듯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선입관 이외의) 별다른 결정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니라서 얼마든지 전혀 다른 방식의 추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결과물은 그저 흩어진 자료들을 잘 정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을 받을 만한 법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그런 결과물 중 하나라고 본다. 당장에 여러번 반복해 읽을 것 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꼭 다시 찾아보게 될 그런 좋은 참고 자료.
지식 획득의 즐거움이 그 자체로는 선하고 아름답지만,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짝을 지으면
지식에 대한 욕구조차
매우 고등한 형태의 집착과 탐욕으로 둔갑할 수 있다.
- 송인규, 『책의 미로 책의 지도』 중에서
신약의 모든 독자가 직면하는 유혹은 ‘과도한 주해’이다.
즉 주어진 명사, 전치사, 동사 또는ֵ 구문론적 특징에서
작은 의미까지 쥐어 짜내는 것이다.
그리스어가 일종의 마법 해독기라는 (잘못된) 개념에서 비롯된 습관일 것이다.
이를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은
신약 시대의 언어를 반영하고
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그리스어 구약을 읽는 것이다.
- 그레고리 R. 래니어,윌리엄 A. 로스, 『칠십인역 입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