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 - 그리스도인을 위한 길 위의 신학
요르그 리거 지음, 홍병룡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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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종교에서, 특히 기독교에서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그건 상징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과 40년 동안의 광야 여행은 민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호출된다. 복음서의 예수님과 제자들 역시 끊임없이 갈릴리와 유대 지역을 오고가는 과정에서 복음을 가르치셨고, 바울은 지중해 동부를 반복적으로 여행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편지를 통해 신학적 정리를 이루었다.


여행에 대한 이런 강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어 이어졌다. 중세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순례라는 위험한 여행을 자발적으로 나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회개와 신적 은혜를 추구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광범위한 여행을 거듭하고 있는 오늘날, 여행의 성격은 다시 한 번 바뀌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개인적인 성장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지극히 내적인 동기, 나아가 자기 과시를 위한 관광에 집중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관광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다. 저자는 그 가장 큰 이유가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의 권력의 격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행자는 돈을 지불하고 현지의 자원을 가져가거나 훼손시키고, 이 과정에서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무엇보다 현지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상품화하도록 부추긴다.


이건 여러 형태의 종교 관광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소위 단기 선교나 성지 순례라고 불리는 많은 종류의 종교적 여행들에서, 여행객은 현지인들보다 권력의 우위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걸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말이다. 개인적으로 단기선교 과정에서 들었던 뭔지 모를 불편함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주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에 기인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에 관해 “자신이 해결책 일부가 되기에 앞서 자신이 어떻게 문제 일부가 되었는지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전히 기독교 신앙에서 여행의 모티브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한 집을 짓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자리는 여행지에서 보내는 일정일 것이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 뽑아버릴지 모르는 텐트의 고정못을 마치 보물처럼 여기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야곱이 파라오 앞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는 평생 나그네로 사는 사람들이다.


책의 저자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약자들의 위치에 서보지 않는 종류의 여행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나 도전을 줄 수 없다고 보는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나그네로 살지만 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진정한 나그네의 입장(연약하고,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구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비는 입장)에 서 볼 때에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보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떠나는 종교 관광을 떠올려 보자. 여행 내내 무슨 성경 이야기가 나오고, 가끔 기도를 한다고 해도 아마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결국 돈을 내고 현지의 자원을 소진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소비자(Consumer, 소진시키는 사람)로 다녀오는 것뿐이라면, 그저 휴대폰 사진첩 속 자랑용 여행이었을 뿐일 게다. 예수님이 함께 하셨던 사람들과의 어떠한 교류도 없다면, 굳이 그 비싼 돈을 들여서 온갖 환경오염과(비행기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어마어마하다) 자연파괴, 쓰레기 생산을 일으킬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진정한 순례란 무슨 유명한 건축물이나 자연물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은혜와, 특별히 그 은혜를 여전히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는 약하고 가난한 이들과 (우리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가 되어 보는 것, 과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런 경험을 했던 자리를 밞으면서 동시에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여행이라는 주제에 관한 본격적인 인문학적, 신학적 해석을 담은 책. 물론 정치, 경제적인 부분에 좀 치우친 면이 있지는 않나 싶지만, 그래서 오히려 신학적인 면이 좀 밀려나지 않았나 싶긴 하지만, 그 부분은 읽는 사람이 어느 정도 감안해서 읽으면 되는 부분이다. 분명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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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돌아온 "로마인 이야기" 읽기 입니다. 

이번에는 9권 오현제 시대를 다루는데요, 

그 중에서도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를 집중적으로 읽어보았습니다. 

로마를 최전성기로 이끌었던 검소하고 성실했던 지도자를 보면서 

오늘 우리의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떠올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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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에 대한 외침은 질투에서 기인한다.

사회에서 고용의 안정성은 중요한 문제이고

비정규직 철폐는 여전히 유효한 목소리지만,

내가 아닌 남에게 돌아가는 일은 다른 문제인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입장이 뒤바뀐다면

“누군가의 공정을 해치는 일이니 나는 거절하고 비정규직으로 남겠다”고

할 수 있을까?


안톤 숄츠,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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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했던 교회로 가주세요
이숙경 지음 / 엠오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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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7월 한 달 동안 씩씩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한 소설가의 일기다. 작가가 소설가이긴 하지만, 여기에 실린 일기는 진짜 작가 자신의 일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바, 이 이야기는 가공의 인물이 아닌 소설가 자신을 주인공을 하는 실제 이야기다.


제기역 1번 출구 앞에 실제로 있는 한 교회의 오랜 교인인 작가는, 그 해 여름 정말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하루에 두 번씩 교회를 오고가는 날도 일주일에 며칠은 되었고, 그 중 몇 번은 은근히 또는 대놓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남편과 아들을 두고 나와야 하는 저녁 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하면 또 엄청나게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재미있게도 그해 7월 작가는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술자리를 갖고,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문다. 물론 주초문제가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만 특별히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작가 자신도 흡연 후에는 가글을 한 후에야 교회에 가는 걸 보면 나름 의식은 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함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그걸 눈치 채지 못하겠는가. 교회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소설가니까, 예술 하는 사람이니 하면서 적당히 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작가의 신앙생활이 위태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목이 왠지 좋았던 예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래서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인 것 같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지만, 이 제목도 어느 시집의 한 구절에서 떠온 것이라고 한다. 그 시절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의미 정도로 보면 될까. 책 말미에 붙어 있는 일종의 후기에는, 지금은 담배도 진작 끊고, 술도 상당히 줄였다고 한다.(몇 년 전 항암치료를 했다고도..)


책에는 자주 “실패한 한 달의 기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주된 이유는 역시 술과 담배인가 보다. 물론 그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에게 그게 큰 문제였고, 해결하고자 하나님과 함께 씨름했다면 그건 그에게는 큰 문제일 테니까. 사실 작가의 성격으로 보아 다른 무엇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갔을 것 같지만.


사실 이야기 전체에 무슨 특별하거나 대단한 사건이 나오지는 않는다. 월초엔 잘 써지지 않는 소설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교회에서 맡긴 100주년사의 원고를 받아 놓기도 하고(월말에 가서야 프린트를 한다) 그 사이 수많은 모임들과 만남을 하면서 보냈던 소소한 하루하루의 이야기다. 그 와중에 거의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말씀묵상을 하는 건 또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소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날들의 연속이 아닐까.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그런 평범한 장소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주 무대다. 교회를 자주 나간다고 하더라도 먹고, 자고, 이야기 하고, 노는 시간이 훨씬 더 기니까 말이다. 결국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느냐가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 여기에 단 한 가지 표준적인 삶의 모습이 있을 리 없다. 조금은 덜컹거리더라도, 또 조금은 우왕좌왕 하더라도 제대로 된 목적지를 자주 확인하면서 한 걸음씩 나가면 되는 거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편안하게 읽힌다. 물론 신학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작가의 어떤 생각들에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르겠지만, 신학자들이 할 일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짐을 지우는 게 아니라 복음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것을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 나름의 이런 분투기가 또 어떤 이들에게는 좋은 위로와 도전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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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꾸짖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남은 인생을 올바로 살아가도록 훌륭한 덕성을 길러 주기보다,

당장의 평화를 깨고 얼굴 찌푸리는 일이 생길까봐

주저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 알렉스 켄드릭,스티븐 켄드릭, 『하나님의 부모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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