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생명을 향해 달려온 사람들
박일환 지음 / 불어라바람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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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나는 성남그 중에도 그리 발전하지 않았던 태평동에서 태어나 군대에 가기 전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살았다책에 나온 인하병원은 바로 그 인근에 있었고성남시의료원 설립을 위한 다양한 운동들이 이루어지는 모습도 직접 옆에서 봤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것처럼 그 자세한 내용까지는 다 알지 못했다아버지의 사고로 몇 번인가 가보긴 했지만병원이라는 곳이 그리 관심이 가는 곳은 아니었으니까어느 날 갑자기 병원이 문을 닫는다고 하고사람들이 여럿 나와 무슨 운동을 벌이고한참 후에 그 가까운 자리에 성남의료원이라는 병원이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


     병원이 문을 닫는 과정에 소유권을 둔 법적다툼이 있었고병원의 소유자가 하필 갑질 삼남매로 유명한 한진그룹이었고시민들의 복지를 위한 병원을 세우고 운영하는데 일년에 고작 수십 억이 아깝다는 이유로 방해만 일삼았던 양심 없는 시장과 시의원시 고위 공무원들에 관한 이야기는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얼마 전 지인의 가족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성남시의료원 장례식장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원래 시청이 있던 그 자리에는 문화회관도 있어서 몇 번인가 합창공연을 위해 서기도 해서 익숙한 자리에 세워진 새로운 건물이 인상적이었다다만 건물만 새롭게 새워진 게 아니라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새롭게 바뀌었다는 건 조금 아쉽다인하병원이 폐업한 이후 새로운 병원을 세우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던 이들은새로 만들어진 병원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정치와 행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내가 성남에 사는 동안 세 명의 시장이 있었는데이재명 이전의 두 시장은 모두 비리로 구속되었다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가장 집요하게 이 문제를 방해했던 이대엽은 온갖 비효율적인 설계와 낭비로 가득한 새 시청사를 세우면서 엄청난 금액을 빼먹었던 사기꾼이었다이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시의원들은 자기 할 일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모지리들이었고시청의 고위 공무원들은 공무를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들보다 자기들이 더 위에 있다는 뜻으로 여기는 한심이들이었다.


     복지부동이 기본 스킬로 장착된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언제나 이전에 해 왔던 대로만 되뇌일 뿐이었고시장은 이 당에서 저 당으로 바뀌었지만 시정이 바뀌는 건 전혀 체감할 수 없었다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개선한 게 이재명 시장이었다어떤 사람들은 그가 왜 이렇게 싸움을 자주 하는지 힐난하기도 하지만책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공무원 조직의 관성은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좀처럼 꿈쩍하지 않는다시장 하나가심지어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해도 행정은 쉽게 달라지기 어렵다.


     10년이 훨씬 넘는 투쟁을 해온 분들에게는 조금 죄송한 일이지만결국 문제를 푸는 핵심적인 열쇠도 정치가 아니었나 싶다물론 정치적 상황을 바꾸는 데에는 시민운동의 힘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겠지만애초에 일단 당선되고 난 후에는 여론이니 뭐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던가좋은 정치인을 선출해 내는 건 시민들의 권리이자 책임나아가 의무일 것이다.

 


     어렵게 완성된 시립의료원이 시민을 위해 잘 운영되기를그리고 이를 위해 애쓰고 수고한 이들의 노력이 너무 빨리 잊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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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의의 정체 - 아베 신조의 군국주의의 꿈, 그 중심에 일본회의가 있다!
아오키 오사무 지음, 이민연 옮김 / 율리시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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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과 일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대륙의 선진문화를 섬나라 일본에 전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해왔고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통신사 일행을 극진히 떠받들 만큼 우리나라는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이랬던 상황이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 크게 변해버렸다. 36년 동안의 강점기 동안 일본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고일본제국군 출신의 독재자와 그 아류들이 통치하던 군부독재 기간 이런 경향은 고착화되었다최근에야 K팝을 비롯한 우리나라 문화가 다시 일본에서 널리 인기를 끄는 상황이 되긴 했지만이렇게 가까이 위치한 두 나라는 서로 질투하면서도 닮은 점이 많아져버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정치가 아닐까 싶다전후 일본을 지배해 온 자민당의 일당독주는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발견되는 모습이었다하나의 정당이 무려 70년 가까이 집권하는 초유의 사태는 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보수정당과 그 소속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부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90년 대 후반을 전후하며 우리나라는 비로소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이후 몇 번의 선거를 통해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어졌고지난 박근혜 탄핵사태 이후 보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정치지형이 그 상대편 쪽으로 조금은 무게가 움직여진 것 같긴 하다당연히 이런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고그렇게 쫓기는 마음으로 선택한 게 이명박 정권의 뉴라이트나 박근혜 정권의 태극기 부대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보수정치인들의 이런 의아한 행동이 단지 충동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그건 그들의 정치적 스승인 일본 우익으로부터 학습해 이 책의 주제인 일본회의” 같은 것들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본회의는 일본의 가장 큰 우파조직이다. 2차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점령군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 헌법을 폐지하고일본을 전쟁 전 메이지 유신 때의 천황중심국가로 되돌리려는 망상에 빠진 우익인사들이 만든 조직과 생장의 집이라는 불교계 신흥종교와(이 세력은 현재 이탈했다고 한다신도 등의 종교세력이 연합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책은 이들이 어떻게 영향력을 키워왔는지를 자세히 조사해 밝히고 있다그리고 이 부분이 위에서 말한우리나라 보수세력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위들이 그대로 겹쳐지는 지점이다이들의 뿌리가 되었던 조직 중 하나는 원호법제화운동을 추진하던 단체였다과거 왕정시기 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왕이 정하는 연호 같은 게 필요했었다일본에서는 패전 후 새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이런 내용이 빠졌었는데이를 법제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쇼와 몇 년이니 하는 표현들이 그런 건데얼마 전 새로 즉위한 일왕의 원호는 레이와였다사실 그렇다고 해서 ‘2020’ 같은 서력표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그 자체로 무슨 특별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그 내용이 왕을 중심으로 시간을 읽어나간다는우익계의 주장과 맞닿으면서 이 운동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고정말로 그것이 법제화에 성공하면서 사람들은 그 성공의 기억을 크게 가졌다는 것.


     이후 좌파 세력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풀뿌리 조직과 지방으로부터 시작해 수도로 밀고 들어오는 여론전이 효과적임을 깨달은 우파세력은마침내 일본회의라는 거대조직을 결성해 일본 사회를 과거로 되돌리고자 하고 있다주권이 국민이 아닌 천황에게 있다고 주장하고식민지배와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한 사과에 반대하거나일본제국군의 군가였던 기미가요를 국가로 제정하고민주주의 교육을 부정하는 등의 시대착오적 움직임 마다 일본회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렇게 일본회의가 세력을 키워가자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치인들도 자의든 타의든 한 발을 걸쳐놓게 되면서 점점 우파시민세력과 정치인들 사이의 결합이 일어났고나중에는 단체 출신의 국회의원까지 나오면서 이런 경향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얼마 전 아베는 자리에서 물러났지만일본의 중참의회의 절대 다수가 일본회의에서 여는 모임에 이름을 걸어둔 걸 보면 이런 추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앞서도 말했듯 일본의 이런 우파 풀뿌리 조직운동은 자연히 우리나라 보수파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물론 시민운동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 저마다의 뜻에 따라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자체로 보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주장의 내용일 텐데근거 없는 선동적 주장을 남발하거나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평화 대신 무력과 폭력 사용을 옹호하는 식이라면 결코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한 때 우리나라에서 여러 사람들의 입에 꽤나 오르내렸던 뉴라이트라는 말이 잊히고자신들은 끊임 없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일본회의라는 조직이 무슨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일본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그림자정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하지만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유의 얕고 천박함이라든지망상에 가까운 허황된 주장이라든지 하는 걸 보면당장에야 신사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돈으로 유지는 될지 모르겠으나 일본 밖으로 그 영향력이 확장되지는 못할 것 같다는일종의 안도감도 살짝 든다저런 수준의 집단이 활개를 치고 있다면 한 나라나 그 사회 공동체의 발전은 상당히 지체될 것이고그로 인해 피해를 볼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중요한 건 우리나라다일본식 풀뿌리 우파조직을 키워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보려 했던 시도는 지난 몇 번의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실패로 돌아간 듯하다운동의 형태 뿐 아니라 메시지까지 배워왔던 것이 패착이다하지만 종교계와 우파인사들의 결합이었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언론까지 끼어있으니 그 영향력은 조금 더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선동에 현혹되지 말고사실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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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겼다는 낌새가 보이거든 잠시 쉬어 가야 한다

요새 나는 체중을 재듯 주기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지켜본다. 

상태가 나쁠 때 단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자꾸 화가 나고별것 아닌 일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증상이 보이면 일을 좀 줄이면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최소화한다.


- 정문정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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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피라미드사회 - 능력주의가 낳은 괴물
하승우 지음 / 이상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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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정부의 공공의대 신설 정책에 반대해서 전국의 의사들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들 밥그릇 줄어드는 게 싫다는 건데아무튼 겉으로는 자신들이 국민건강을 위해 대단한 투쟁이라도 하는 듯 슬로건을 내걸었던 지라주장과 모순되는 행동으로 스텝이 좀 꼬이긴 했다.


     당시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라는 곳에서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겠다며 만들었던 황당한 이미지가 있었다당신이 생사를 두고 진단을 받아야 한다면 어떤 의사에게 가겠느냐는 질문과 함께, 1번은 매년 전교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2번은 성적은 한참 모자르지만(그나마 맞춤법도 틀렸다! ‘모자라지만이 맞다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라는 선택지를 두었다이 이미지는 엄청난 비난을 받고 금방 삭제되긴 했는데이 사람들이 얼마나 특권의식에 쩌들어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비단 이런 사고는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정부 고위 관료나 선출직 공무원들의 특권의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근래에는 재벌 3, 4세처럼 부모덕에 누리는 놈들까지 나서서 자기들이 특별한 존재인 양 설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이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걸까?

 


     이 책의 저자인 하승우는 이런 현상에 관해 흥미로운 설명을 한다문제의 본질은 능력주의였다는 것우리는 흔히 뛰어난 능력을 맡은 사람이 더 중요하고더 높은 지위와 대우를 받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이런 사고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있는 상식이다그런데 정말 그래야 하는가?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맡게 될 더 중요하고 높은 지위란상대적으로 다른 시민들보다 더 많은그리고 더 강한 권력이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의미이다이건 민주주의적 원칙에 합당한 일일까단지 그들이 능력이 뛰어나니까저자는 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회는 정의로운 권력을 경험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과정의 공정성에만 매달렸고그러면서 능력과 지위를 분리시킬 조건을 만들지 못했다지위가 곧 능력이능력이 곧 지위가 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어렵다.

 

     때문에 저자는 능력주의에 대한 신화는 사실 피라미드 구조의 신분제 사회를 감추기 위한 미화된 수사법과 같다고까지 말한다흠칫 놀랄 만한 통찰이다.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이런 신분제는 좀 더 은밀하고내재적으로 변신되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운동을 이끌었던 학생그룹 안에서도 능력주의가 퍼져있었기 때문이다그 결과 학생운동권 안에서도 소수의 지도자들의 말에 나머지 구성원이 굴종하는 문화가 이어져 왔다이건 YS나 DJ 같은 지도자들에 의한 정치운동 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소위 무슨 계무슨 계 하는일본식 정치패거리 문화가 우리나라 정치 뉴스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장에서 저자는 이 신분제를 지리적인 차원에서 분석한다도시와 농촌수도권과 지방이라는 구분 아래서 철저하게 농촌과 지방은 도시와 수도권에 종속되는 하부 피라미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노동 분야를 다루는 3장에서는 파견근로제와 정리해고제소위 플랫폼 노동 같은 노동형태가 어떻게 이런 피라미드 구조에 의해 고착화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핀다끝으로 4장에서는 시민운동계 안에서도 의외로 능력주의가 널리 퍼져 있고그래서 정작 내부에서는 비민주적인 구조와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노비제가 폐지되면서 공식적으로 신분제를 철폐했지만여전히 신분제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사뭇 무겁게 다가온다그리고 여기에 능력주의의 신화가 중심에 있다는 지적도 깊이 새겨보게 된다이제와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내일이 수학능력시험일이지만사실 수학능력이라는 것을 200여 개 안팎의 문제풀이 결과로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걸까책 속에도 언급되듯학업성취도는 온전히 개인의 노력이나 실력에만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고액 과외에 부모찬스로 여기저기 인턴과 봉사활동학술대회 언저리라도 들락거린 아이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니까.


     사실 수능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평가라는 게 그렇다평가에는 기준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고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발 빠르게 그 기준에 맞춰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물론 그것도 능력이긴 하다당면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사고하고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은 중요하다문제는 특정한 영역에서 발휘한 재능이 모든 영역에서도 효과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인데신분제는 이를 동일한 능력으로 치환해서 고착화 해 버린다.


     예컨대 진중권은 미학을 전공했지만온갖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훈수를 두려고 애쓴다그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쓰며 그에게 굉장한 권위가 있는 듯 포장한다하지만 나는 진중권이 미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에 대해선 한 번쯤 귀를 기울이겠지만그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별 무게를 두지 않는다기생충학을 전공했다는 서민 교수도 마찬가지다기생충에 대한 그의 지식과 경험엔 전문가에 대한 존중을 하겠지만그가 하는 정치평론은 그냥 동네 아저씨가 술에 거나하게 취해 내뱉는 말과 비슷한 수준으로 들릴 뿐이다.


     이들이 교수니까 그들의 생각에 보통 사람보다 더 우월한 통찰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순간 우린 학벌을 기준으로 하는 신분제에 동참하는 꼴이 될 것이다그리고 이러는 동안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도 발견하기 어렵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저자 역시 마찬가지의 기분인 듯하다책 말미에 희망은 그 자체가 원인이라는 말을 인용하고가봐야 길을 알 수 있듯 부딪혀 봐야 상대를 가늠할 수 있다며지금은 좀 부대껴야 할 때라고 덧붙인 이유도 그것이리라.


     책의 문장들이 친절하지는 않다수백 군데의 인용구와 문장의 문학성보다는 내용전달에 집중한 결과 문장이 편안하게 읽히지는 않는다초반의 주요 소재였던 능력주의가 도농격차나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종속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도 명확하지는 않다신분피라미드제가 다양한 분야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지 않았나 싶지만책을 읽고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히 의미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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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02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참 그게 문제긴 하더군요.
외국에선 사람이 새로 들어오면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 들어왔다고
반가워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는 저 녀석이 내 자리를 찬탈하면
어쩌나해서 경계하고 굴리고 그런다더군요.
왜 동료의식을 갖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가지곤 흙수저니 헬조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죠.

사람이 문제겠습니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을 수 있는데
언론을 비롯한 사회 전반이 너무 특정 대학 출신만을 선호하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언제나 수직 사회가 깎일지 모르겠어요.

노란가방 2020-12-02 21:29   좋아요 0 | URL
여기나 저기나 먹고사는 건 다들 쉽지 않을 텐데
왜 우리는 그렇게 각박해졌을까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짐 콜린스 지음, 이무열 옮김 / 김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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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책에서 말하는 개념을 정리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겠다여기서 말하는 좋은 기업과 위대한 기업은 기본적으로 모두 수익을 내는 회사를 말한다기업의 가장 주된 목적이 이윤추구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말그리고 이 두 기업의 차이도 오롯이 시장 평균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달성하느냐가 기준이다무슨 윤리적인 기분을 적용한 건 아니다예컨대 저자가 뽑은 위대한 기업’ 중 하나는 담배회사다.


     사실 위대한 기업이라고 번역된 원문은 단지 great company이다기본적으로는 규모를 가리키는 great이지만저자는 단순히 ‘(규모가 큰대기업이 아니라 적어도 15년 이상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대단한 기업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써 놓고 보니 괜찮은 표현인데이 책의 콘셉트를 조금 더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나름 수익을 내는 기업에서 대단한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정도가 아닐까?

 


     책은 대단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을 명료하게 정리해 제시한다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단계5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다이들은 쉽게 말해기업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쏟아내면서도자기 자신의 명성이나 과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책임감 없는 리더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무너져 내리는지를 생각해 본다면리더에 대한 강조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


     두 번째는 이 책을 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으로사람을 먼저 모아야 한다는 부분이다책의 표현으로 하자면 버스에다 적합한 사람들을 먼저 태우고 나면(부적합한 사람들은 내리게 하고버스는 적절한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흔히 말하는 인사의 중요성을 가리킨다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또 동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가르쳐 일하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


     세 번째는 분명한 현실 인식 부분이다무조건적인 긍정이 능사는 아니다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 없이 내미는 긍정적 예측은 구성원들을 절망시키기 쉽다이를 위해서 진실이 들려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리더의 눈치를 살피며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되는 회사는 곧 망한다.


     네 번째는 저자가 고슴도치 콘셉트라고 부르는 개념이다여기에는 세 가지 지수가 제안되는데깊은 열정을 가진 일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경제 엔진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이 세 가지가 만나는 지점을 파악해 집중하는 것이이런저런 일에 손을 대며 정력을 낭비하는 일보다 낫다는 것의외로 많은 기업들은 정확한 분석이 아닌 허세로 사업을 시작한다.


     다섯 번째는 흥미롭게도 규율에 대한 강조다흔히 회사가 커지면 온갖 종류의 관료제적 절차들과 단지 유지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난다이런 것들은 초기의 창조성과 열정을 사그라지게 만드는 요인이다저자는 관료제 대신자기 규율적인 문화를 통해 문제를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쓸 데 없이 낭비되는 요소를 줄이고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건데여기엔 역시 앞서에서도 말한규율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그 다음은 기술이다그러나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기업으로 가는 필연적인 단계는 아니었다그것이 우리 기업의 고슴도치 콘셉트에 맞는지 분석하는 작업이 먼저다이와 관련해 저자는 기술이 도약의 발동기가 아니라 가속 페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곱 번째는 축적의 중요성인데어떤 대단한 기업도 단 한 번의 특별한 결정과 판단으로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는 통찰이다최소한 몇 년 동안의 지속적인 분투가 쌓일 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생각해 보면 한 방에 뭔가를 이루려는 투기적 심리를 가지고 지속적인 성공을 얻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마지막 장은 그렇게 오른 대단한 기업이라는 자리에 어떻게 오랫동안 머물 수 있을까에 관한 내용이다중요한 건 그 자리에 오르게 해 주는 핵심적인 가치들을 보존하면서변화되어 가는 상황에 끊임없이 적응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당연하게 느껴지는 말이지만의외로 많은 조직들이 과거의 성공에 머문 채 적응을 피하다가 스스로 무너지곤 하니까.

 


     간만에 경제가 아닌 경영에 관한 책을 읽는다사실 경영이라는 분야는 단지 회사를 운영하는 데만 사용되는 게 아니고다양한 조직과 공동체를 관리하고 이끌어 가는데 필요한 연구 분야다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속한 조직에 대해그리고 내가 이끄는 그룹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얼마나 어설프고 형편없는지...


     책의 구성이 명확하고빙빙 돌리는 식의 문장이 아니라 상당히 속도감을 갖고 읽을 수 있다각 장의 말미에는 주요 내용이 요약되어 있어서 정리도 쉽고주요 개념을 적절한 상징으로 만들어 놓아 기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예를 들면필요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라든지고슴도치 전략이라든지 하는 것들.


     조직의 발전조직 문화를 바꾸고 싶을 때 챙겨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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