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없다 -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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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언젠가부터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처럼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그 평등의 당위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 책의 저자인 해리 G. 프랭크퍼트는 경제적 평등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저자도 지적하듯,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실적 조건과 부합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와 필요를 가장 적절하게 실현해줄 수 있는 것보다는 타인들이 가진 것에 기초해 자신의 요구를 계산하는 데 더 애를 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에게 실제로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은 무엇을 갖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동안(우리의 시선이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만 맞춰져 있는 동안), 정작 자신의 진정한 꿈이나 목표가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92-93). 결국 이런 차원에서 경제적 평등의 도덕적 중요성을 과장하는 것은 (자기) 소외를 초래한다(22).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완전한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소수의 상류층이 국가 전체의 부에서 자신이 잘사는 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몫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매우 부유한 사람들은 일종의 경제적 과식이라는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한다(15). 물론 경제적 불평등은 가능한 극복되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 이유는 경제적 평등이 (일종의 정언명령처럼)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여러 종류의 불의한 불평등을(예컨대 미국의 선거제도는 돈이 많은 이들에게 유리한 체제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입법, 사업, 행정적 감시를 통해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8).

 

      다만 문제의 본질은 경제적 불평등이 아니라 어떤 이들이 겪고 있는 불충분함에 있다. 우리는 왜 극빈층의 삶을 보며 마음이 괴로워질까? 그들이 생존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자원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상대적 양의 차이가 아니라 절대적 질의 결여다. 가난한 사람들이 나보다 경제적 자원을 적게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너무 적게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48-49).

 

      기계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종종 역효과를 가져온다. 예건대 생존하는 데 5단위의 자원이 필요한 사람이 열 명이 있는데 자원의 총합은 40이라면, 모두가 평등하게 4단위씩을 분배받아 다 함께 죽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을까?(물론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누가 희생해야 하는가 하는 건 또 다른 질문이다)

 

      이사야 벌린은 평등에는 아무런 이유도 필요 없고 불평등에만 이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평등에도 이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각 사람의 사정이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차등적 분배는 존중(그 한 사람에게 맞는대우이기 때문에)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평등주의에 도덕적 당위를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적,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생존에) 충분한경제적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2. 감상평 。。。。。。。

     흔히 자유와 함께 핵심적인 가치로서 평등을 꼽곤 한다. 우리는 평등이라는 가치에 일종의 도덕적 당위를 부여하려고도 한다. 물론 정서적으로는 그렇게 볼만한 여지가 있다. 깨끗한 식수가 없어 더러운 웅덩이의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아프리카의 병약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비슷한 마음이 들지 않던가.

 

      하지만 이 책은 그 정서의 영역을 좀 더 세심하게 분석한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그들이 평등하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충분한 수준의 경제적 자원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적은 경제적 자원을 갖는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수준의 분노나 죄책감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관건은 충분성이라는 부분이다.

 

     물론 평등의 추구가 일부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평등 자체를 절대적으로 달성해야 할 무엇으로 여기고 집착할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사실 평등주의는 달성하기가 불가능한 목표이기도 하다. 자원을 평등하게 분배하는데 어떤 기준을 사용할 것인지, 이를 위해 필요한 행정적 소요는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나아가 이와 관련된 정치적 다툼까지...

 

 

     평등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일종의 도구적 가치라고 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산을 허물어 구덩이를 메운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애초에 만족도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다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똑같이만들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평등주의에 대한 몰입이 경제적인 영역을 넘어 다양한 사회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이론이 경제와 각종 문화, 역사의 영역에까지 절대적인 원리인 양 통용되는 것처럼(이건 마치 암석을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고양이의 습성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우기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하는 건 타당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생각이다(단일작물재배는 하나의 병충해에 의해 전멸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또 기여한 공로와 관계없는 평등한 보상은 감정적으로도 적절치 못하다(친일파와 독립운동가에게는 다른 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자원을 임의로 분배할 수 있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지도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모두가 누리고 남을 만큼 충분한 자원이 존재해서 똑같이 나누더라도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기계적 평등의 강요는 오히려 더 시급한 문제를 가릴 수 있다는 데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과도한 이상주의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주제를 존중과 연결시키는 지점도 흥미롭다. 경제적 정의는 개개인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추구되어야 하는 가치여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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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9-05-1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평등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한 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노란가방 2019-05-13 13:14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하면서 읽어볼 만한 책인 듯 합니다.
 
지정학 -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최린 옮김 / 가디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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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1부에서는 지정학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설명을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과 그 개념에 대한 역사적 변천에 관해 다룬다. 나치즘에서 적극적으로 지정학을 이용했기에 한동안 이 용어 자체가 터부시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 인식이 바뀌고 있다. 지정학적 관점으로 문제를 본다는 것은 상황을 한두 개의 당사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나 협력으로가 아니라 좀 더 넓은 시야로, 역사, 지리학, 사회학, , 경제, 정치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렌즈를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부에서는 테러리즘, 핵무기, 지구 온난화 같은 이 시대의 문제를 지정학적으로 읽어내고 설명하고, 3부에서는 좀 더 제한된 범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들(크림반도를 두고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이란, 중국과 대만, 한반도, 티베트 등)에 관한 설명이다. 4부와 5부는 일종의 미래예측인데, 4부는 현재까지의 지정학적 분석에 기초해 현재의 패권 국가들의 힘이 장래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를 주로 다루고, 5부는 좀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의 예측들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일단 띠지에 붙어 있는 책에 관한 설명만 보면 남북미 정상회담, 일본의 초계기 도발과 같은 민감한 상황에 대한 뛰어난 식견(탁월한 지정학적 분석?) 같은 내용이 실려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우선 지정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이 늘어져 있을 뿐 두 번을 반복해 읽어도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없다. ‘그래서 지정학이 정확히 뭔데?’ 같은 물음이 사라지지 않는...

     자연히 세계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정확히 어떤 게 지정학적 분석인지 모르겠다. (설마 이미 내가 지정학적 분석에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운 게 보이지 않았던 걸까?) 물론 일부 내용들, 예를 들면 크림반도를 두고 벌어지는 충돌이나 카슈미르에 얽힌 복잡한 역사 같은 항목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많은 경우 익히 다른 신문기사나 책들을 통해 접했던 수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우선 다양한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각각의 항목에 할애할 수 있는 분량이 대여섯 페이지 정도로 짧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정작 일본 초계기 문제는 언급도 되지 않고...) 딱 대중교양서적의 한계처럼도 보인다. 다양한 정보를 간략하게 간추려 놓았다는 데서 의의를 찾는. 뭐 요새처럼 다양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굳이 책 한 권에 모든 내용을 자세히 써 넣을 필요도 없고. 그래도 최근의 국제정세를 전반적으로 살피는 데는 나름 쏠쏠한 재미도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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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제국의 몰락 - 엘리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집대성한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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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소위 엘리트들의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상류층에서 시작한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윤리관을 갖고 있다.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가며 막대한 금액을 탈세하고도 그게 무슨 잘못이냐는 투의 대응(나아가 세금 제도에 대한 공격으로도 이어진다)을 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저자는 정부와 기업 고위층 간의 회전문인사, 고급사립학교(엘리트 학교)를 통한 배타적인 사회적 출발선 획득, 인재선발에 있어서의 같은 배경을 지닌 이들의 선발 등을 통해 엘리트를 위한 구조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의 각종 정책들(특히 세금 정책)을 입맛에 맞게 조정함으로써 이런 구조는 더욱 공고화된다.

     그렇게 특권층을 위한 구조가 강화될수록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진다. 엘리트층을 감싸고 있는 벽은 더욱 단단해지고, 또한 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남발하는 것도 다 그런 특권의 벽 안에 갇혀 지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문제의 해결을 정치에서 찾는다. 미국의 샌더스나 영국의 코빈 같은 정치인들을 예로 들면서, 좀 더 선명한 대중을 위한 정치 비전을 제시하고,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끌어 모을 때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

 

 

2. 감상평 。。。。。。。

     몇 년 전에 서울대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들과 작은 모임을 한 적이 있다. 모임의 목적인 공부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주제가 리걸 마인드라는 것이었다. 이게 공식적으로는 법률적 사고 같은 법조인에게 필요한 요소지만, 이게 또 이면으로는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논리라는 뜻도 있다.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는 사건에 대한 판결이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것 같을 때, 등장하는 표현이다. 많은 경우 그 사람들이 뭔가 대가를 위해서 그런 판단을 내렸다기보다는, 리걸 마인드에 따르면 그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식.

 

 

     책은 이런 그들만의 리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강화되고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토마 피케티가 미국의 예를 자세하게 분석했던 것처럼,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의 예를 분석하는데 그 결과는 굉장히 유사하다. 최상층에 해당하는 이들이 전체 부의 증가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격차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일들을 해 내느냐 또 그건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분석이다.

     예컨대 엄청난 돈을 연봉으로 받아가는 기업의 최상층부에 대한 비판이 일어날 때, 그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갖고 경제효과를 유발시키는 줄 아느냐는 반론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서 기업을 경영하는 게 아니다. 최대한 돈을 뽑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인원을 고용하고 있는 것일 뿐.

 

 

     최근 유럽 이곳저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파 대중영합주의가 엘리트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에 기초해 있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단순한 좌파 우파식의 구분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일반적으로 부유층에 대한 옹호는 우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니까) 부분인데, 확실히 유럽 연구자다보니 이 부분을 좀 더 실제적으로 보고 있구나 싶었다.

     어쩌면 이런 분석의 틀이 우리나라의 우파 대중영합주의(소위 태극기 부대 같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이쪽이 공격하는 건 엘리트가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이들이고, 오히려 핏줄로 이어지는 수령에게 대대로 충성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니 썩 잘 들어맞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분석은 이미 많은 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다.(경제학적 분석 쪽은 피케티 쪽이 좀 더 충실하고, 철학적 분석의 깊이와 통찰은 샌델 쪽이 더 마음에 든다) 관건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하는 부분일 텐데, 저자는 선명한 좌파적 정책들을 도입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좀 강성으로 보이는 코빈이나 원내 지지기반이 거의 없는 무소속 정치인 샌더스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는 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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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이유 -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10가지 원리
노엄 촘스키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데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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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의 원제목이 Requiem for the American Dream”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조가(弔歌)’라는 의미. 레퀴엠은 장송곡을 의미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끝났다는 것. 그러면 아메리칸 드림이란 무엇인가?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저마다 꿈을 품고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기대를 말한다. 저자인 촘스키는 그런 기대가 깨져버렸다고 말하는 것.

 

      원인은 과도한 불평등이다. 초고소득자들과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 사이에는 이제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벌어졌다. 저자는 이것이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다양한 측면에서 준비되어 온 조치들의 필연적인 결론이라고 단정 짓는다

 

      멀리는 1787년 미국의 헌법제정회의의 회의록이나 1850년 목화의 독점을 위해 멕시코로부터 강제로 텍사스를 빼앗은 존 타일로 대통령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부터, 가깝게는 2000년 대 이후 나온 각종 보고서나 칼럼 등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열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2. 감상평 。。。。。。。

     열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에 포함되어 있는 글의 양이 그리 많지 않다. 자연히 요건만 간단히, 그리고 명료하게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학술서적보다는 대중강연이나 연설에 맞는 방식의 글. 덕분에 이해하기엔 그리 어렵지 않다.

 

     ​책에 실린 저자의 주장은 일종의 해석, 혹은 설명이다. 각 챕터의 말미에 그 장에서 다룬 내용의 근거가 되는 기록들이 붙어 있는데, 본문은 이 내용들을 풀어 쓰거나 약간의 해석을 덧붙인 정도. 때문에 길고 자세한 논증이 따로 필요가 없고(있는 걸 설명하는 수준) 쉬우면서도 강한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불평등 혹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주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넘어, 이제는 실질적인 박탈까지 초래하고 있으니까. 산업의 구조는 근대에 비해 수백 수천 배 더 커지고, 각종 기술은 세상을 바꿀 정도로 발전했지만, 최저임금에 허덕이고, 굶어 죽고, 산업재해로,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숫자도 함께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은 지금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런 체제가 다분히 의도적이며, 또 어떤 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1700년대의 어떤 인물과 21세기의 경제 엘리트들이 서로 직접 공모했다는 의미는 아니고, 다분히 같은 목적을 위해 애쓰다보니 전체적으로 하나의 공통된 그림이 나왔다고 보는 게 현실적.

 

     ​하지만 뭐 그들이 공모를 했든 안 했든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문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다 한 데 모여 거대한 그림자 카르텔이 형성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카르텔은 이제 한 개별 국가를 넘어 국제적인 공조까지도 이루고 있다는 의심이 될 정도고. (이러다 프리메이슨이니 일루미나티니 하는 음모론이 꽤나 실감나게 다가오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

 

 

     ​촘스키는 책 이곳저곳에서 반복적으로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단지 선거 날 투표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촘스키는 투표에는 10분 이상 투자하지 말라고 말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행동, 권력자들에게 순응하는 대신 이의를 제기하고, 대중에게 불리한 정책들을 좀 더 적극적인 의사표시(시위?)를 통해 막아내고 해야 한다는 것. (다만 이 책은 뭘 어떻게 하다는 내용보다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데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역사는 꼭 유명하고 힘이 있는 영웅들의 힘만으로 진행되어 온 것은 아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소위 평범한사람들의 힘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일을 바꾸는 일들도 드물지 않다. 그러니 당장 눈앞에 변하는 것이 없다고 해서, 일이 잘 되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해서 너무 빨리 포기하거나 불만을 터뜨리지 말고, 좀 더 멀리 보며 인내심을 가지고 나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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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워라밸
가재산.장동익 지음 / 당신의서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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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

     최근 유행하는 말인 워라밸을 주제로 한 책. 책의 약 절반은 왜 워라밸이 필요한지, 그것이 회사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개인에게가 아니라)를 산발적으로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고, 나머지는 어떻게 하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관한 단편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2. 감상평 。。。。。。。

     책 제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내 경우에는 현명하게 워라밸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으로 읽혔다. 하지만 이건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예측이었고, 실제로 이 책은 기업 입장에서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라는 목표의식 아래, 그 한 가지 도구로서의 워라밸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데 그친다. 이쯤 되면 책 제목이 영 잘못 붙여진 것처럼 보인다.

 

     사실 책 내용으로 들어가더라도 책 제목에도 붙어 있는 워라벨은 전체 비중 상 대단히 제한된 비중으로 다뤄진다. 내용의 대부분은 업무효율을 높이고 개인의 생산성 증가를 위한 마음가짐, 시스템 설계 같은 것이니까. 그나마 다른 책들에서 봤던 내용들이 많고, 수십 가지 짧은 항목들 좀 새로운 단어 몇 개를 소개하는 것 그 이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기업 컨설팅을 해 왔다는 내공이 잘 느껴지지도 않고.(그런 건 돈을 내야 알려주는 건가)

     더 큰 문제는 책의 구성에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도 문제지만, 뜬금없이 보편적 복지정책을 비판하면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 건 뭔지. 애초에 일과 생활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제목을 붙여놓고 말이다. (,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밸런스8 : 개인생활 2” 정도의 비중이었던 걸지도) 더구나 두 명의 공저자가 따로 썼던 건지 책 안에서도 서로 논리가 충돌하는 게 보이고, 온갖 비유들 중에는 영 어색한 내용들도 발견된다.(예컨대 새끼를 위한 수컷 황제펭귄의 희생을 과보호 부모에 비유하며 비난하는 식은 한숨이 나올 정도. 93)

     군데군데 흥미로운 통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초의 독서 목적과 전혀 다른 내용의 책이 재미있게 읽힐 리 없다. 물론 내가 아직 경영자의 입장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튼 지금은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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