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은 화장실 좌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집에 와서 불고기를 많이 먹은 게 체한 듯싶다. 나 참, 그 아이가 그런 기막힌 사연으로 기숙사에 맡겨진 줄을 몰랐다. 삼월 인사이동으로 이 학교로 전근 오면서 맡은 기숙사 사감 일이다. 세 달째로 접어드는데 팔십 명 되는 기숙사 애들 중에 그런 애가 끼어있을 줄은 나는 정말 몰랐다. 진작부터 애들의 신상을 파악해 두었어야 하는데, 낮에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밤에는 기숙사를 지켜야 하니까 바빠서 그럴 사이가 없었다. 직접 드릴 말씀이 있다면서 사감실로 찾아온 그 아이. 처음 보는 얼굴에 복장까지 아주 불량해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야단치려는데 그 아이가 하던 말. “네에…… 부모님이 없는데요.”

그런 충격적인 존재한테 무슨 꾸지람인가? 그 아이의 용의나 복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했고,‘연휴에 혼자 기숙사에 남아서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이나 묵살해 버렸다. 괜히 이런 이상한 자식을 남겨 두었다가, 전기도 내린 기숙사 방에서 무슨 사고라도 내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촛불이라도 켜놓고 지내다가 잘못돼서 기숙사에 불이라도 낸다면 그건 정말 수습할 수 없는 사고다. 사감인 내가 책임을 지게 되면서 최소한 ‘교감으로 승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산될 게 뻔하다. 내 나이가 어언 오십육 세. 교장보다는 두 살 아래이지만 교감보다는 다섯 살 위다.

아이를 박정하게 처리해서 내 보냈는데, 뒤늦게 께름칙한 마음이다. 오갈 데 없는 그 아이가 그 꼴로 거리를 헤매다가 무슨 사고를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 나이가 환갑을 바라보면서 생겨난 쓸 데 없는 노파심인가? 아니다. 아무래도 불길하다.

끙!

하고 힘을 주는데도 편치 않은 아래뱃속의 것이 나올 기미가 없다. 꾸럭꾸럭 속이 편찮은 대로 더 기다려 봐야 하나? 결국 일을 못 보고 화장실을 나왔다. 거실의 아내는 오전에 목욕탕에라도 다녀왔는지 허벅지 속살을 언뜻언뜻 보이며 이심전심의 욕정을 전한다. 제기랄, 보름 만에 서울 집으로 올라와 편히 쉬려도 아내 욕정을 달래줄 의무가 기다리고 있다니. 그 아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뱃속도 시원치 않은데 그런 의무가 가능할까?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는 있지만 그 아이 걱정뿐이다.

아비가 위암으로 삼 년이나 앓다 죽고, 그 바람에 집안이 거덜 나면서 엄마마저 다른 남자와 재혼해서 산다는 막장 가정의 아이. 몇 안 되는 친척들도, 아이 아비가 사업할 때 보증 선 것이 잘못되면서 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아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피붙이라고는 독서실에서 총무를 한다는 형 하나. 그 형도 집안이 해체되자 숙식을 해결하고자 그 곳에 가 있단다.

기가 막힌 아이 사정이 학교에 파악된 게 작년 삼월 학기 초에 학급 별로‘가정환경조사 자료’를 걷으면서였다고 했다. 그 때부터 학교에서는 아이를 기숙사에 넣어 숙식을 해결해 주는 한편으로‘학업성적은 우수하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까지 주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 아이가 학교 측의 후의를 단단히 입게 된 것은,‘서울대 합격 가능성이 높은, 학업성적 우수 학생’이라는 사실이 적극 고려된 때문이라 했다. 이런 사실들을 나는 오늘 오후에야 알았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아이여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담임한테 전화를 걸어‘낮에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의견을 구했더니 그렇게 그간의 사연을 일러주었다.

담임은 이런 말을 덧붙이며 통화를 마쳤다. “너무 염려 마세요. 요즈음 날씨가 더워졌으니까 아무 데서 잔들 얼어 죽기야 하겠습니까? 하하하. 애들은 말입니다, 야영가면 밤새 한 잠 안 자고 잘 놀잖아요? 그런 애들이니까…… 부장님, 전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럼 이만 끊습니다.”

담임은 사십 대 초반의 사내이다. 그런 나잇대 사람이니까 말을 쉽게 하는 것이지, 어디 나처럼 세상의 이런저런 풍파를 보거나 겪으면서 살아온 나이의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지금 어느 곳에서 헤매고 있을 그 아이.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그 아이가 안전하게 오늘 밤을 보낼 수 있을까.

그렇다. 비상시를 대비해서 내가 지갑 안에 접어서 넣어둔 유인물 한 장이 있지 않나. ‘기숙사 학생회 임원 명단 및 전화번호’.

회장 녀석의 휴대폰 번호를 찾아 통화를 시도한다. 녀석은 뭔 바쁜 일이 있는지 일 분 넘게 있다가 전화를 받으며 내게 한 첫 마디가 이랬다. “너, 누구니 새끼야?”

기가 막히지만 화를 억누르고 답한다. “나다, 사감 선생이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는 제 친구가 건 줄 알고!”

“괜찮다. 다름이 아니고 내가 하나 물어볼 것이 있거든.”

“예예 말씀하십시오.”

멋모르고 전화 받은 죄를 씻고자 회장 녀석은 아주 어조가 공손하다. 휴대폰을 들고 연실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싶다.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대며‘연락할 일이 있는데 혹시 휴대폰 번호라도 알지 않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 걔요. 걔는 휴대폰 같은 것도 없어요. 그냥 밤낮으로 공부만 하는 애에요. 왜 그러세요, 선생님?”

“내가 꼭 연락할 게 있어서 그러거든.”

“걔는 기숙사에 남아 공부하지 않나요? 작년 연휴 때도 걔는 특별히 봐 주는 것 같더라고요. 뭐, 걔는 엄마가 쌩까서 그렇게 된 애잖아요? 참, 안 된 애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쌩깐다’는 말은 일부러 모른 척 한다거나 도망갔다는 뜻이 아닐까? 애들도 다 아는 그 아이의 가정사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굳이 조심스레 얘기할 것도 없겠다. 솔직하게 말하자.“그러면 너를 믿고 말하겠다. 다름이 아니고.”

하면서 낮에 그 아이가 사감실을 찾아와서 벌어진 일을 대강 말하고서, 내가 지금 걱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장 녀석이 반문했다.“무슨 걱정이세요?”

“그 아이가 잠자리도 없이 길거리를 헤매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지. 그 아이한테 하나 있는 형이란 사람도 자기 몸 하나 해결하기 바쁜 처지라니…… 아이가 형한테 들를 것 같진 않고. 그래서 내가 그 아이와 연락이 닿으면, 거 뭐야, 학교 수위실에 딸린 방에서라도 하룻밤 잠을 자라고 일러주려는 거지. 그 방이야, 내가 수위 아저씨한테 전화 한 통 걸어주면 되니까.”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제가 만일 그 애를 만나거나 연락이 닿으면 그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바쁜 어조로 봐서 회장 녀석은 ‘뭐 이런 시시한 일로 전화를 다 하시나?’하는 표정인 게 역력했다. 어찌 됐건 이만 하면 됐다. 내가 아이한테 여기 멀리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 그러면…… 가만 있자, 우리 아내가 어디 있나? 이제야 한 번 안아줄 마음이 생겨나는데 말이야.

 

 

앞뒤바퀴의 바람이 다 빠진 낡은 자전거가 105동 ‘3-4’현관의 왼쪽 벽에 기대어 있다. 그 위쪽에 있는 각 호별 우편물 수취함.

아이는 수취함에서 403호 칸을 본다. 오래 되어‘403’이란 페인트 글씨는 흔적도 없고 이삿짐센터 스티커들만 겹겹이 붙어 있지만 아이는 403호 칸인 것을 안다. 그 칸 아가리에 무슨 유인물이 물려 있다. 아이는 아가리 덮개를 쳐들어 그것을 꺼내어 본다.‘재개발 사업 시행 인가 고시’

다른 칸의 아가리들도 같은 유인물을 물고 있다. 어떤 것은 상품 광고 전단들까지 물고 있어 구토하는 모양 같다.

일 년 전, 403호 칸의 아가리에는 기분 나쁜 우편물들이 끊임없이 물렸다.‘채무변제 3차 독촉’‘법적처리 통보’’신용불량자 등재를 예고함’‘파산신청 안내 ’ 등등. 해골이 다 되어 누워 있는 아버지를 대상으로 날아들던 기분 나쁜 문서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아니 그 여자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 줄어들어갔다.

아이는 ‘재개발 사업 시행 인가 고시’유인물을 수취함 아가리에 다시 쳐 넣고서 층계에 발을 디딘다. 사 년 전인가, 일 층의 103호에 살던 귀여운 꼬마가 층계 벽에 그려놓은 그림이 여태 남아 있다. 빨강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꽃 한 송이. 그 즈음부터 이 아파트는‘최소한의 관리’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이 층.

삼 층.

사 층으로 오르는 층계에서 아이는 가슴이 떨린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이제 층계를 다 올라서 403호 문을 열면 멀리 안방의 아버지가 희미한 기척으로 자기를 맞을 것 같다.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지내면서 힘이 다 빠져버려, 머리맡의 물병을 손으로 쓰러뜨려 소리 내거나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로 당신의 반가운 마음을 알렸다. 그러면 아이는 “아버지, 저 왔습니다.”하면서 현관으로 들어섰다. 책가방을 거실바닥에 내려놓고서 여기저기 창문들부터 활짝 엶으로써, 십팔 평 실내에 가득한 역한 냄새부터 환기시키는 첫 번째 집안일을 했다. 두 번째 집안일은 아버지의 병 수발이다. 병 수발이랬자, 아버지 샅에 채워진 기저귀를 갈아주고 죽 그릇을 설거지한 뒤 새 죽을 끓여 담아 놓는 일이다. 죽도 그냥 방치하면 곰팡이가 퍼렇게 껴서 내버려야 했다.

아이가 당신 샅의 기저귀를 갈 때 눈을 꾹 감고 마른 장작개비처럼 움직여지던 아버지 모습. 아이는 그 아픈 기억을 지울 듯이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403호의 문 앞을 지나 오 층으로 향한다. 밤 열 시도 안 되었을 텐데 무덤처럼 어둡고 조용한 통로다. 텔레비전 소리나 어느 집 말다툼 소리 같은 것도 없다. 아까 공중전화 부스 옆에 서서 올려다봤을 때 열 가구 중 두 가구가 불을 켜고 있었는데…… 불 꺼진 가구들은 모두 다른 데로 이사 간 걸까?

이제 오 층이다. 층계가 끝났다. 여기서 벽에 있는 쇠사다리로 삼 미터쯤 오르면 자물쇠로 채워진 정사각형의 철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옥상이다. 그 열쇠가 아직도 있을까? 관리소 아저씨가 그 자물쇠의 열쇠를 층계 벽의 작은 환기창에 몰래 놓고 다니던 것을 아이는 기억해 냈다. 높은 환기창이라 아이는 발끝을 곧추세우고 오른팔을 바짝 올려 손바닥으로 더듬어 본다. 있다, 먼지 속에. 아이는 차가운 그 열쇠를 입에 물고서 쇠사다리 틀을 하나하나 잡으며 오른 뒤, 자물쇠를 따고 철문을 연다. “삐이이걱”

낮에 달궈진 옥상의 더운 기운이 아이 얼굴을 공격한다. 아이는 철문을 열어놓은 채 다시 쇠사다리로 오 층까지 내려와 동복 상의를 벗는다. 팔소매들을 서로 잡아매자 상의는 광주리처럼 되었다. 그 안에, 아까 바닥에 놓았던 소주병과 오징어 구운 것을 담은 뒤 목에 걸고 조심조심 쇠사다리를 오른다.

지상은 어둠에 깔리면서 낮의 열기가 식었는데, 옥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뜨듯한 옥상 바닥에 주저앉은 뒤 소주병 마개를 따고서 꿀꺽꿀꺽 소주를 마신다. 점심은 기숙사 식당에서 먹고 나왔지만 저녁은 먹은 게 없어, 목구멍 너머로 들어간 소주는 이내 독한 기운으로 내장에 퍼진다. 아이는 벌써 흔들리는 눈길로 오징어를 찾아 두 손으로 뜯어 먹다가, 다시 소주병을 들어 마신다.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하게 보여야 할 옥상인데 그렇지 않다. 백여 미터 거리를 두고 지어진 이십오 층 고급 아파트의 휘황한 전등불빛들이 여기 옥상까지 날아오면서 밤하늘을 허연 그물처럼 막은 탓이다. 그 여자가 산다는 저 이십오 층 아파트의 어느 집. 그 여자는 아버지 화장한 재를 강물에다 뿌리고 돌아온 날 저녁에 우리 형제한테 이런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나는 네 아버지와 이혼해서 벌써부터 남이었다. 인제는 너희끼리 잘 살기 바란다.’

그 때부터 엄마는 ‘그 여자’가 되었다.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한 사실은 우리도 아는 오래 전 일이었다. 아버지의 부채가 넘어오는 것을 피하기 위한 문서상의 위장이혼이라 했는데…… 그것을 실제로 적용시킨 것이다. 아버지의 건강음료 판매사업이 그럭저럭 되어가고 있었을 때 그 여자는 엄마였었다. 아파트 관리비니 전기료니 하는 것들을 꼬박꼬박 잘 내고 살 때는 좋은 엄마였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래도 오늘 밤, 예전에 십 년 넘게 살았던 105동 403호 가까운 위에서 지내게 되지 않았나. 403호 안방의 아랫목처럼 따듯한 옥상 바닥이라니……. 소주에 취한 탓일까, 아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진 채로 앉아 있다가, 벗었던 상의를 이불처럼 뒤집어쓰며 옥상 바닥에 누웠다. 밤잠을 청한다. 뒤집어 쓴 상의가 검은색 동복이니까, 박쥐가 하늘로 날아오르려다가 쳐 놓은 빛 그물에 걸려 추락해 버린 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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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들 대부분이 불 꺼져 있는 데다가 보안등까지 고장 난 게 많아 아파트 단지는 ‘어둠의 단지’가 되었다.

철지난 검은 동복 차림에 뒤축이 반쯤 닳은 운동화를 신고서 어둠의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온 아이. 삼십여 분 전에 ‘돌발사건’을 겪어서 경황없는 정신상태다. 이상한 것은, 그런 정신상태가 되자 아이는 이곳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걸어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아이가 걸어올 때 도로 변 전주에 있는 불법주정차 단속카메라나 상점들의 방범카메라, 심지어는 지나가던 차량들의 감시카메라에도 그 모습이 잇달아 찍힐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면 돌발사건 현장에서 부근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 골목은 감시카메라 하나 없이, 비좁고 긴 터널 같은 길로 이어져서 도피 로로써는 최적이었다. 아이는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넓은 보도를 걸어서…… 어둠의 단지 앞 정문으로 들어온 것이다. 정문이라고는 하지만 기둥 구조물들만 남은 열린 공간이다. 게다가 양쪽 기둥 구조물에 설치한 등 두 개도 그 중 하나는 아예 켜지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제 촉광을 잃고 일대의 어둠에 눈치 보듯 아주 흐릿하게 켜져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들어서는 아이를 아무도 보지 못한 까닭이다.

정문을 지나자마자 왼편으로는 단지 내 상가가 있다. 열 개 점포 중‘2단지 슈퍼마켓’하나만 전등불을 켜놓아서 단지 내 상가임을 겨우 알리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서 어둠 속 보도를 이십 미터쯤 걷던 아이는 문득 멈춰 섰다. 긴 밤을 노숙하려면 아무래도 맨 정신으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아이는 동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 한 장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학교에 잠깐 들른 형이 비상금 하라며 쥐어 준 돈 만 원이다. 형은 시내 독서실에서 총무를 맡아 그곳에서 먹고 자며 한 달에 사십 만원 받는다는데, 아이와 함께 지낼 십 평 원룸의 전세 보증금 오백만 원을 목표로 그 돈 대부분을 예금하고 있다 했다.

아이는 방금 지나친 상가 쪽으로 되돌아 걷는다. 어두운 바닥의 보도블록도 깨지거나 파인 것들이 많아서 걷기가 편치 않다. 아스팔트가 깔린 차도로 내려와 걷는데 그 때, 정문 쪽에서 웬 차 한 대가 전조등 불빛을 두 눈처럼 부라리며 들어왔다. 아이는 경찰차가 아닌가 싶어서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차는 전조등 불빛을 쏘면서 아이 가까이로 다가오더니, 휘발유 태우는 시큼한 냄새를 남기고 옆으로 지나쳐 갔다. 아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다시 상가 쪽으로 걷는다.

지린내 가득한 상가로 들어섰다. 문 닫은 점포 개수만큼이나 공허한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2단지 슈퍼마켓’. 무덤덤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앉은 주인 영감은, 아이가 소주 한 병과 오징어 구운 것 하나를 고른 뒤 만 원을 건네자 잠시 갈등했다.‘까짓 거, 학생복을 입었다고 해도 부모 심부름으로 온 줄 알았다 하면 되는 거다’고 속으로 다짐한 뒤 돈을 받았다.

아이는 상가를 나와서 다시 걷는다. 105동 아파트를 향하는 걸음이다. 그 몇 분 사이에 더욱 무거워진 어둠.

일 년 전만 해도 아이는 105동의‘3-4’현관을 향해 늦은 밤마다 이 길을 걸어갔었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고 오느라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항구에 닻을 내리는 배처럼 안온했었다. ‘우리 집’에 다 왔으니까. 아버지가 105동 403호 안방에 혼자 해골처럼 누워 있어서, 썩어가는 몸 냄새로 십팔 평 공간이 진동했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왔다’는 생각에 아이 마음은 안온했었다.

지금 아이는 그런 안온한 닻 하나 내릴 데 없이 사는 삶이다. 오늘 105동 아파트의 밤 풍경이 생소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까? 일 년 전보다 불 꺼진 빈 집들이 더욱 늘어난 탓도 있겠지만.

아이는 걸음을 멈췄다. 105동의 ‘3-4’ 현관이 코앞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와 예전의 ‘꿈동산 유치원’ 건물 사이다. 공중전화 부스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유치원은 ‘현대 재활용 센터’로 간판이 바뀌었다. 재갈대던 유치원 꼬마들 대신에 빈병과 폐휴지 따위가 와글거리며 모여 있는 걸까?

아이는 ‘주공 2단지 아파트 열 개 동 중 가장 전망 좋고 양지바른 곳’이라던 105동, 그 중의 403호를 어둠 속에서 올려다본다. 예전에 중간고사라도 치르고 일찍 귀가하면 아이는 저 403호의 발코니에 서서 눈앞에 펼쳐지는 한낮의 전경을 즐겼다. 멀리 단지 앞 차도를 느릿느릿 지나가는 시내버스들, 단지 내 상가의 다양한 간판들, 그리고 바로 앞의 꿈동산 유치원 꼬마들이 병아리들처럼 재갈대며 귀갓길을 서두르는 모습들…….

덥수룩한 머리에, 뒤축이 반쯤 닳은 운동화에, 철지나서 땀내 풀풀 나는 동복 차림으로 잠시 회상에 잠겨 있는 아이. 누가 아이의 지금 외양을 봤다가는 고등학생이기는커녕 밤거리의 노숙자인 줄 알고 기겁했을 게다. 하긴, 기숙사의 사감 선생이 오늘 낮에 아이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너, 노숙자냐?”

사감 선생이 보기에 아이는, 당신이 기숙사 일을 맡은 지 세 달 만에 처음 보는‘용의 및 복장 상태가 100% 불량인 학생’이었다. ‘어떻게 이런 자식이 내 눈길을 피해서 기숙사에서 지내왔지?’하는 험한 눈빛으로 다시 아이한테 이렇게 물었었다. “그래, 너는 부모님도 없냐? 용돈이라도 타서 이발하고 운동화도 사 신고 그래야 되지 않겠어?”

아이는 답했다.“네에…… 부모님이 없는데요.”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쾅 맞은 듯했던 사감 선생의 표정을 떠올리면 아이는 우습다기보다 캄캄한 나락으로 다시 굴러 떨어지는 심정이다.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게 다, 일 년여 전에 우리 집안이 해체된 후 벌어지는 일들이다. 조금 전의 돌발사건도 그렇다. 그 여자는 내가 어쩐 게 아니었다. 그 여자는 나와 마주치자 제풀에 놀라 차도 건너 편 보도로 달아나다가, 그 때 마침 달려오던 시내버스에 치인 것이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버스가 뭐에 부딪힘과 동시에 급정거하는 소리를 내며 섰고 순식간에 일대가 소란스러워질 때 나는 그냥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냐면…… 그냥 가는 길이었다. 처음부터 그냥 가는 길이었는데 그렇듯 그 여자는 보도에서 나와 맞닥뜨리자 제풀에 놀라서 달아나다가 그랬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 자리를 떠나 보도를 걸어 올 때 구급차가 경광등을 희뜩이며 내 옆의 차도로 허겁지겁 지나갔다. 그 여자를 수습하려고 가는 건지, 다른 일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알 바가 아니니까. 솔직히 나는 그 여자가 모르는 여자였다면 그 자리에 남아서 사건을 수습했을 테다. 여자가 숨이 붙어 있었다면 택시라도 잡아서 응급실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갔을 테고, 그것도 아니라면 하다못해 그 자리에 남아서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한테 전후 사정을 진술했을 테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여자였으니까. 그냥 나는 내 갈 길을 걸어갔다. 오가던 차량들이 일제히 급정거하고 행인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어수선한 사고 현장을 나는 그렇듯 담담하게 벗어났다. 그때가 만일 대낮이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행인들이 사고 현장에서 나를 붙잡고는 멱살을 쥐고 난리 치지 않았을까? 정말 어둡고 어수선하기가 천만다행이었다.

햇빛 환한 대낮은 내게 늘 두려운 시간이었다. 오늘 대낮만 해도 그렇다. 평상시였다면 교실이나 기숙사의 방 같은 그늘진 데서 편히 지냈을 대낮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연휴를 맞아 기숙사에서 ‘1박 2일 전원 귀가'를 실시하니까, 갈 데가 없는 나는 대낮에 잘못 나온 박쥐처럼 거리를 헤매다가 결국 이 지경에 다다랐다.

기숙사 친구들이 인디언처럼 ‘끼호끼호’ 소리까지 지르며 신나게 귀갓길로 나설 때 나는 사감실을 찾아가 이번 연휴 동안에 혼자 기숙사에 남아 있으면 안 되냐고 말씀 드리려 했다. 말씀드리기도 전에 사나운 얼굴로 내 용의복장의 불량부터 지적하던 사감 선생님. 급기야는 내가 ‘부모님이 없다’고 말씀 드리자 놀라서 입을 떡 벌린 그 표정이라니. 내 얘기를 듣고 나서 하는 그분의 대답이란 게 이랬다.“어찌 됐건…… 예외는 없다. 여하튼, 이 기숙사를 나가서 하루 지내고 내일 오후 다섯 시까지 귀사 하는 거다. 이상 끝.”

일은 그렇게 꼬이기 시작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이번 사감 선생님이다. 먼젓번 사감 선생님은 달랐다. 작년 연휴 때 내가 그런 사정까지 다 말씀 드리자, 참 안 됐구나 하는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씀해 주었었다.“그렇다면 말이야, 다른 애들한테 절대 말하지 말고 너만 혼자 남아 있어라. 다만, 내가 기숙사의 철문을 닫고 전원도 내려놓고 갈 거니까, 그런 불편은 참고 지내야 해. 웬만해서는, 낮에 공부하고 밤에는 그 동안 밀린 잠이나 열심히 자두는 게 어떻겠니?”

그 때가 작년 추석연휴 때였다. 그런 분도 있었는데 올해의 사감 선생님은 영 아니다. 교장선생님보다도 더 늙어보여서‘인자한 할아버지’일 거라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까다롭기가 여간 아니다. 일이 그래서 꼬이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하룻밤 잠자리를 얻고자 힘겹게 찾아간 아는 교회마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일 년 전까지도 고등부 활동에 빠지지 않은 나였으니까 그것을 믿고 찾아간 것인데 그 모양이 되어 버렸다. 닫힌 교회의 문짝에는 이런 글이 A4 용지 한 장에 적혀서 달랑 붙어 있었다.‘연휴를 맞아 1박 2일로 산상기도회를 갑니다. 연락처 011-’

교회 문 앞 층계에 맥이 쭉 빠져 주저앉아 있을 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햇살은 얼마나 무겁던지. 그래, 나는 한 마리 박쥐였다. 잘못돼서 대낮에 나온 박쥐. 환한 대낮이 그토록 끔찍할 줄이야.

참, 내 책가방? 지금 내 손에 들린 것은 소주병과 구운 오징어뿐이다. 그럼, 기숙사를 나설 때부터 들었던 책가방을 내가 어디에 놓았지? 연휴 중에도 풀어야 할 문제집만 골라서 담은 책가방인데. 나 참. 여하튼 그 여자와 아까 마주친 것 하나만 봐도 오늘은 재수에 옴 붙은 날이다. 인구 이십만을 넘었다는데도 그 여자와 보도에서 딱 마주쳤으니 아직도 좁은 도시다. 그 여자나 우리 형제나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며 살아왔을 텐데, 오늘 참, 일이 더럽게 꼬여 버렸다. 나야 항상 교실이거나 기숙사에서 지냈고, 형은 독서실을 밤낮으로 지키면서 사는데 어떻게 내가 오늘 그 여자와 보도에서 맞닥뜨리는 재수 없는 일이 생겨났을까?

이게 다 늙은 사감 선생 새끼 때문이다. 개새끼. 기숙사에 빈대 붙어 사는 내 처지를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 준다면 길어야 아홉 달 뒤에 수도권 대학에‘입학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합격하면서 이 도시를 영영 떠날 것인데…… 그거 하나 봐 주지 않아 내가 대낮부터 헤매다가 책가방도 잃고 이 고생이다. 에에 개새끼 퉤퉤퉤.

아이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분무되는 빛들에 몸을 반쯤 적시고 서서 침을 욕처럼 뱉다가, 105동의 ‘3-4’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웬 인기척 때문에 이루어진 행동이다. 아이는 방문할 집이라도 있는 양 바삐 걸어 ‘3-4’현관으로 들어갔다.

노인 한 분이 폐휴지 가득한 수레를 끌고 나타난 것이 웬 인기척의 정체였다. 공중전화 부스의 빛들에 모습을 드러낸 노인은‘현대 재활용 센터’건물 앞에 수레를 세워놓고서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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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게도 훈장이 수여됐다.

정말 애매한 훈장이었다.

내 손아귀에 들어가는 그 쇳덩어리의 면적은, 내 한쪽 다리와 한쪽 눈알을 보상해주기엔 너무 좁아 보였다.

그리고서…… 나는 다시 이 적막한 공간에서 심심함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신음들이 끊이지 않지만 왜 이리 후송병원은 적막한 곳으로 여겨질까? 게다가 판에 찍은 듯 반복되는 일상의 심심함까지. 어쩌면 이런 풍경은 또 다른 전투 풍경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친 몸을 갖고서 통증을 견뎌 나가야 하는, 지루한 날들에 대한 매복 작전

유리창 밖으론 벚꽃들이 웃는데 온종일 쑤시는 상처. 내가 남자로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유일한 낙인 간호장교들의 몸매와 움직임. 금빛 광택뿐이던 훈장에는 꼬질꼬질한 손때가 묻어갔다.

 

경자를 만난 건 초가을이었다.

벚꽃이 다 떨어져버리면서 끊임없이 등창(瘡)과 싸워야 하는 여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 덧 선선한 가을바람일 때 경자가 우리 병실에 들어섰다. 경자는 세 번째 바뀐 담당 간호장교였다.

경자는 광대뼈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추녀였다. 모래밭의 개미떼 같은 주근깨들.

그 경자가 가을이 지나가고 매서운 추위가 닥친 날, 내 침대 옆 유리창에 ‘사랑합니다’ 란 글씨를 손가락으로 썼다. 흰 성에가 가득 핀 유리창이 ‘사랑합니다’ 란 글자들로 파이면서 밖의 겨울풍경이 새어들어 왔다. 무거운 잿빛 하늘, 벚나무 가지마다 핀 눈송이 꽃들.

사랑한다니?

몸의 절반이나 잃은 꼴인 나를 사랑한다는 뜻인가? 점심식사 후 낮잠들 자느라 조용한 주위를 둘러보고서 나는 소리 낮추어 반문했다.

“정말입니까?”

경자는 ‘정말입니다’고 다시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써보였다. 곤혹스러웠다.

경자가 ‘사랑합니다’란 글씨를 쓴 것은 그녀가 시월에 오고서 세 달 만의 일이었다.

세 달.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와 체온을 재고 주사를 놓았었다. 가끔씩 내 침대 맡에 머물며 얘기를 건네기도 해서 말동무가 생기나보다 했는데 그렇게 느닷없이 사랑한다 했다.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으로 그런 글씨를 쓸 나이가 아니었다. 서른이란 노처녀 나이. 넙적한 얼굴에 가득한 개미떼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더 많은 나이, 결코 일시적인 행위가 아닌 고백, 세 달이란 시간.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자기의 손목을 내밀어 내 손으로 쥐게 만들었다. 곤혹스런 내 외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랑합니다’ ‘정말입니다’의 글씨들로 벗겨진 유리창의 성에 틈새로 보이던 겨울의 풍경들도 얼룽얼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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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놀라운 사실은 시골 동네 애들이 술 담배에 아주 능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하는 경험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는 사실상 어른 세계에 진입한 애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옆 동네의 여자애와 가끔씩 ‘그 짓’을 한다고도 했다. 동네의 담뱃잎건조장이 그런 장소로 쓰인다나. 손으로 하는 수음이 고작인 그로서는, 그 얘기를 듣던 순간 열패감에 기가 죽었다. 그러나 ‘춘천에 있는 양공주 촌에 가면 말이야’ 하며,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사실은 자기도 주워들었던 음담을 질펀하게 늘어놓으며 괜한 허풍을 떨었다. 그러면서 가슴 한 편으로는 영 편치 않은 양심이었다.

시골 애들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인물처럼 이중성을 가졌던 게 아닐까도 싶지만, 그건 아니었다.

술 담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종일 고된 농사일을 하다가 밤이 되어야 가까스로 쉬는 그 애들한테 딱히 무슨 낙이 있었을까. 동네에서 외진 데로 나가 술 담배로 낙을 삼을 수밖에. 텔레비전도 없고 기껏해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배우는 게 유행의 첨단을 따라가는 거라 여기며 살았을 그 시절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에서야. 하긴, 춘천 같은 도시에서도 텔레비전은 잘 사는 집에나 있는 고가품이었다.

옆 동네의 여자애와 가끔씩 몰래 그 짓을 한다는 애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어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질서에 용인되지 않을 뿐이지, 딱히 나쁜 짓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강간이나 간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혹 여자 애가 임신하는 일이 발생하면 얼마 후에는 마을회관에서 결혼식이 치러지고 한 쌍의 농사꾼 부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담뱃잎건조장 같은 은밀한 곳에서 그 아이가 ‘남몰래’ 그러면서 지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의 시골 애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해 보지만, 솔직히, 평온한 시골 풍경 속의 애들은 뜻밖에도 까부라진 애들이었고 반대로 ‘깡패들도 널려 있는 대단한 도시 춘천’에서 내려온 그 자신은 실상은 순박한 고등학생이었을 거라는 기묘한 의구심을 어쩔 수 없다. 수음하는 게 고작인 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소주니 담배니 모두 그 시골동네에서 처음 경험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춘천 시내의 서쪽 끝에 위치한 고등학교와 봉의산 바로 아래 달동네에 있는 그의 집 사이의 거리가 십 리 가까이 되었다. 십 리 되는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서 등하교를 하느라 경황이 없는데 언제 술 담배를 배우고 유행가까지 배울 텐가.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상한 조합이었다. ‘충청도 시골의 까부라진 애들과 춘천에서 온 순박한 봉길이’가 함께 어울리는 1968년 한여름의 조합 말이다.

 

‘남원주 휴게소’ 간판이 보인다. 그는 차의 속도를 바짝 낮추어 휴게소 내 광장으로 진입했다. 주차돼 있는 차들이 많지 않다. 평일이기도 하지만 재작년, 원주에 사는 처남 집에 가다가 잠깐 들렀을 때에도 주차된 차들이 별로 없었다. 편히 쉬고 갈 만하다.

화장실에 들른 뒤 휴게실 앞 빈 벤치에 앉았다. 춘천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시간 남짓해 음성군 운포면에 닿지 않을까?

한창 젊었을 때에 여행길에 나섰다면, 보통 서너 시간은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쉬었다. 이제는 그러기 힘들다. 오줌을 참기도 어렵거니와 몸도 힘들어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 피로하다. 여기서 10여 분 쉬고 가자. 인근 산의 빛깔도 이미 단풍 빛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초겨울로 들어서려는 늦가을이다. 용석이 삼촌도 세상을 떴다. 3년 전이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뜬 지는 20년 가까이 된다.

 

동네 애들과 밤에 강가에서 어울린 날을 계기로 순식간에 친해졌다. 이제는 이틀에 하루 꼴로 밤에 만나 늦도록 어울리는 것이다.

‘어울리기’에는 일정한 룰이 있었다. 우선은, 반드시 저녁밥을 먹고 난 밤 시간에 한했다. ‘AW메들리 참고서를 다섯 페이지 떼고, 당수 수련을 한 시간쯤 하고나면 닭장 청소 같은 소소한 일’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그와 달리, 동네 애들은 해만 뜨면 잠시도 쉴 새 없이 집안농사일을 돕다가 해가 진 뒤에야 비로소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자식을 낳으면 초등학교까지만 가르치고 그 후로는 ‘집안농사일을 거들게 하다가 장가나 보내면 된다’는 게 당시 농촌 부모들의 생각 같았다.

두 번째 룰은, 모여서 놀 때는 반드시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동네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달동네도 있고 깡패들도 널려 있는 도시 춘천과 달리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는 전형적인, 조용한 농촌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서너 채의 기와집 외에는 초가집들이 대부분인 고즈넉한 풍경으로서 전통적인 유교적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젊은 놈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떠들썩하게 노는 모습’을 동네 어르신들에게 절대 보여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그는 단순히 ‘춘천에서 내려온 봉길이’가 아니라 ‘남다른 당수 실력까지 갖추고서 춘천에서 내려온 고등학생 봉길이’로서, 이틀에 하루 꼴로 밤마다 동네 애들과 무리지어 강가로, 먼 동네로 여기저기 놀러 다니게 된 것이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동네 애들이 시오 리 떨어진 먼 동네까지 원정 다녀오는 일은, 그와 어울리면서부터였다. 전에는 동네에 있는 강가에서 놀다 오는 게 고작이었는데 ‘대단한 봉길이’와 어울리게 되자 그 후로는 원정도 다니며 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원정지는 운포면의 면소재지 동네였다. 희망리에서 신작로를 따라 서남 방향으로 시오 리 걸어가면 나타나는 면 소재지 동네. 작은 규모이지만 우체국도 있고 약방이니 철물점이니 줄지어 있어서, 나름대로 시가지였다. 그래서일까, 희망리 애들보다 확실히 눈매 사나운 또래 애들이 어슬렁거리며 텃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희망리 애들은 어쩌다, 닷새에 한 번 면소재지 장거리에서 열리는 장날에 가도 눈을 아래로 깔고 조심스레 다녔단다.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깡패들이 널린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따고 온 고등학생 봉길이’가 자기들과 함께 있으니!

밤이 되면 봉길이를 앞세워 ‘흙먼지 날리고 자갈들도 많은 신작로’를 시오 리나 걸어가 면소재지 동네를 괜히 한 바퀴 돈 뒤,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담배도 사고는 다시 희망리로 귀가하는 것이다. 귀가할 때도 조용하지 않았다. 신작로를 독차지한 듯 무리지어 걸어오면서 소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유행가도 고래고래 불렀다.

그러다가 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이 작은 사건이 ‘그날 밤 사건’의 도화선이다. 취해서들 희망리로 돌아오다가 나지막한 고개에 다다랐을 때, 한 아이가 그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다.

“봉길아. 우리는 길가 숲에 숨어 있을 테니까, 니가 당수로 한 번, 고개를 넘어오는 놈을 아무나 한 놈 잡아 솜씨 좀 보여주라야.”

그런 부탁이 나올 만했다. 그 날 밤까지 몇 번이나 면소재지 동네를 휘젓다가 왔으나 특별한 사건도 없었던 데다가, 오랜만에 봉길이의 당수 실력을 다시 보고도 싶었다. 모처럼의 부탁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작로 변에 폼 잡고 서서 고개 너머에서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렸다. 물론 동네 애들은 근처 숲속에 숨었다. 달빛이 제법 훤하게 살아난 밤이다.

처음 강가에서 신고식을 치르던 날 밤은 달빛 하나 없던 그믐밤이었지만 이 날 밤은 열흘 정도 지나 달빛이 어지간히 살아난 상현달 밤이었다. 팔자걸음으로 고개 너머에서 나타난 사내가, 그가 난데없이 앞길을 가로막으며 멱살을 쥐자 ‘헉!’ 하며 기겁한 표정이 달빛에 역력하게 드러난 건 그 때문이다.

“야, 이 새끼야! 너, 춘천에서 온 봉길이 알아?”

“아, 아뇨!.”

“이런 씨발 놈이!”

사실 말도 안 되는 시비 걸기다. 그는 놀라 와들와들 떠는 사내의 멱살을 풀어주는가 싶다가 순간 오른발로 후려차기를 강행했다. 세찬 발길에 상체를 맞고는 그대로 나갔다떨어지는 사내.

“아이구야, 사람 살려라!”

엉금엉금 기다 일어나 소리 지르며 달아났다. 얼마나 다급한지, 신었던 흰 고무신들까지 벗겨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10분 넘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빛은 화창하지만 그늘진 곳은 한기가 역력하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차로 갔다.

그 새 뜨겁게 달궈진 차 안의 공기. 다시 조수석 옆 창을 열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이런, 창이 내려오다가 멈췄다.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다시 버튼을 눌러도 별 변화가 없다.

‘젠장!’

천생, 나중에 춘천 가서 아는 카센터에 맡겨야 할 듯싶다. 이런 잔 고장이 처음은 아니다. 이 차를 구입한 지 10년이 넘었으니. 그는 하는 수 없이 조수석 쪽 창이 반쯤 내려진 채로 주차장을 떠났다. 여기 남원주 휴게소에서 제천까지는 30분 정도 걸릴 듯싶다.

 

고개 너머에서 한 사내를 보기 좋게 후려차기로 해 치운 사건 후로 그는 마치, 몇 십 년 뒤 TV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 ‘김두한’처럼 되고 말았다. 괜히 사나운 눈매로, 무리의 한가운데에서 무리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우두머리 모습이랄까.

희망리 애들과 그는 무리지어 신작로 시오 리를 걸어 면소재지 동네에 일단, 도착한다. 어깨에 힘들 주고서 짧은 시가지를 두어 번 돌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구멍가게에 들러 소주와 담배를 산 뒤 다시 희망리를 향해 신작로 길을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다. 물론 모두 소주에 취해 유행가도 부르고 담배도 피우면서 나름대로 향락을 즐긴다.

춘천이었다면 통금에 걸려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밤늦은 시간대였다. 하지만 다행히 충청북도에는 통금이 없었다. 정부에서 제주도와 함께 통금이 없는 지역으로 공포한 덕분이었다. 섬나라인 제주도처럼 충청북도도 치안유지가 잘 되는 순박한 사람들의 지역이라고 정부에서 판단한 걸까.

그가 춘천에 있었더라면 늑대처럼 ‘으허허어엉!’ 음산하게 우는 통금 사이렌 소리에 쫓겼을 텐데 그럴 일 없는 충청북도라니, 얼마나 여유로운 밤 시간인가. 그를 우두머리로 한 희망리 애들의 밤 시간 즐기기가 날로 성해진 건 그 때문일 게다.

그러면서 ‘춘천에서 당수 배운 봉길이란 학생이 왔다’는 소문이 일대에 확 퍼진 듯싶다. 워낙 좁고 평온한 시골바닥이기에 소문이 도는 건 순식간이다. 그 결과 그에게 업보처럼 위기가 다가왔다.

그가 어언 45년 간 충청북도 외가 쪽 동네와 인연이라도 끊듯이 발길을 끊게 된 직접적 원인으로서 ‘그날 밤 사건’이 다가왔다. 면소재지 동네에서 청주의 모 고등학교로 유학 간 녀석이 있는데 방학이라 집에 왔다가 ‘춘천에서 온, 당수 배운 봉길이’ 소문을 듣게 된 게 ‘그날 밤 사건’의 시발점이다. 공교롭게도 녀석은 청주 시내에 있는 당수 도장에서 2단을 딴, 제대로 된 당수 유단자였다.

“뭐, 춘천에서 당수를 배운 봉길이란 놈이 툭하면 밤에 여기까지 와 설치다가 간다고? 어디 그럼, 내가 한 번 손봐줄까?”

그런 말을 녀석이 면소재지 친구들한테 내뱉더니 다음 날에는 조금 말이 달라졌단다.

“이런 기회에 춘천 당수와 청주 당수가 어느 쪽인 더 센지, 대련 한 번 정식으로 붙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청주 녀석의 두 번째 발언을 그는 분석해 봤다. 녀석도 마음 한 편으로는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게 아닐까? 뒤늦게, ‘춘천이 깡패들 많은 군사도시라는데 거기서 온 봉길이라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했다. 더구나 부근 신작로 고개에서 ‘춘천에서 온 봉길이한테 봉변을 당했다’는 사람의 소문까지 들었을 테니. 녀석이 고심 끝에, 부담스런 막싸움 형태보다 무술인들의 반듯한 대결 형태로 승부 짓는 게 낫겠다며 신중한 도전장을 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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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월남에서 돌아왔다.

커다란 군함을 타고 비둘기 태극기 풍선 날리는 조국의 항구로…… 환영의 플래카드 속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비행기로, 중상자 후송 비행기로 사월 어느 날 조국의 남부지방 어느 적막한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내 가슴에도 훈장은 걸렸다.

한쪽 발과 한쪽 눈은 영영 내게서 달아나고, 몇 십 그람 무게를 가진 훈장 하나가 가슴에 걸렸다. 온통 붕대에 싸인 채로 나는 한쪽 남은 눈으로 후송 비행기 창을 통해 조국의 거뭇거뭇한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아아 일 년 만의 조국이었다.

나의 한쪽 남은 눈에서, 그래도 눈물은 흘러나왔다.

내가 탄 비행기가 내린 모 공군기지. 거기에 비행기의 엔진이 멎고, 부상자들이 차례차례 들것에 실려 내려질 때 나를 감싼 붕대의 섬유조직 틈새로 밀려들던 조국의 냄새. 매캐한 비행기 연료냄새 너머 밀알이 움트는 냄새, 구수한 흙냄새…….

그리고 공항의 가득한 적막. 적막은 조국에서도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 쪽 면으로 검푸른 바다의 출렁임이 보일 뿐 나머지 삼면은 초록빛 야산뿐인 공항, 엔진을 끄고서 졸고 있는 비행기들, 무료한 표정의 관제탑, 군복무의 임무 속에서 세월의 나사를 매만지는 정비병들, 역시 세월의 들것을 무료하게 나르는 의무병들.

후송병원 침대에 누웠을 때는 유리창을 통해 만발한 벚꽃들이 보였다.

벚꽃들은 절정이었다. 병원 둘레 가득히 벚꽃들은 웃고 있었다. 연분홍, 연분홍 웃음들…….

병원은 벚꽃의 소리 없는 웃음들만 있었다. 일정한 시간으로 들르는 간호장교들의 거동밖에는, 심심하기만 했다. 내 침대머리에 걸린 훈장도 심심해 보였다. 나는 그런 훈장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심심함을 문질러버리는 동작으로 그 병원의 시간들을 걸어 나갔다.

애매한 훈장.

내 한쪽 눈과 한쪽 다리가 달아난 곳은 전쟁터 아닌 전쟁터였다.

나는 사단본부의 안전한 장소에서 복무했다. 내가 작성하는 서류에 의해 수많은 전우들이 월남의 이곳저곳으로 이동하였다. 내 펜대에 의해 부상당하거나 포로가 되거나 승리하거나, 혹은 어느 땅굴에서 베트콩과 부둥켜안고 싸울 거라는 상상이나 하면서 월남파병의 세월을 끄적끄적 보내고 있었다.

외출 나간 병사들이 납치될 뻔한 사건이 잇단 뒤로 사단본부의 근무자들은 모두 안전한 영내생활로 제한됐던 그 즈음이었다.

물론 나도 처음 월남에 상륙했을 때에는 전투부대 소대원이었다.

매복 작전?

거미줄 같은 인계철선의 크레모아가 깔린 현장에서 숨죽여 주위를 살피던 긴장 속 나날들. 그런데 매복 작전이 네 달째 이어지면서…… 나는 아무 데로나 총을 갈기고서 영창에라도 가고 싶었다.

끝없는 매복 작전. 숨은 적이 먼저 드러나거나 숨어서 기다리던 우리가 먼저 드러나거나, 어느 쪽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몸을 드러내느냐에 전투의 승패가 달린 그 지루한 작전. 성가신 숲 모기들을 견디며 오줌도 매복한 채 누어야 했다. 땀에 젖다가 마르다가를 반복하며 소금기마저 배던 내 몸.

한 번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보겠다는 나의 참전지원 의사는 착각이었다. 후회가 막급한 매복생활 다섯 달째 나는 느닷없이 사단본부로 전출되면서 그 지루한 전투부대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안전한 사단본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날’ 사건은 터져버렸다.

그 날, 엄폐된 막사에서 책상의 일들을 끝내고 기어 나왔을 때 하늘은 푸르렀다. 비가 그친 직후였다. 월남의 날씨는 늘 그랬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도 이내 화창해지는 게, 돌아서면 베트콩이 된다는 그곳 민간인들의 표정 같았다.

나는 푸른 하늘 아래, 본부의 연병장을 걸어가고 있었다.

태양의 무수한 조각들이 땅바닥과 야자수의 푸른 이파리들과 쇳덩이 포신들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는 걸어가고 있었다.

월남의 태양은 강인했다. 철모를 부술 듯 하늘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영내 가득히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나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 걸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꿈틀대는 게 역력했다. 밀림의 모기들처럼 군복을 사정없이 꿰뚫고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 땀이 흘렀다. 영내는 넓었다. 적막은 넓었다.

적막 속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내 발끝에 무엇이 걸렸다. 나는 눈을 거의 감은 채로 그것을 걷어차 버렸는데…… 고막의 한계를 넘는 폭음과 함께 미쳐 날뛰는 한쪽 다리와 태양을 보았다. 걷어찬 것은 수류탄이었다. 적막은 찢어졌고 찢어진 틈새로 태양의 비늘들이 가득 퍼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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