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놀라운 사실은 시골 동네 애들이 술 담배에 아주 능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하는 경험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는 사실상 어른 세계에 진입한 애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옆 동네의 여자애와 가끔씩 그 짓을 한다고도 했다. 동네의 담뱃잎건조장이 그런 장소로 쓰인다나. 손으로 하는 수음이 고작인 그로서는, 그 얘기를 듣던 순간 열패감에 기가 죽었다. 그러나 춘천에 있는 양공주 촌에 가면 말이야하며,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사실은 자기도 주워들었던 음담을 질펀하게 늘어놓으며 괜한 허풍을 떨었다. 그러면서 가슴 한 편으로는 영 편치 않은 양심이었다.

시골 애들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인물처럼 이중성을 가졌던 게 아닐까도 싶지만, 그건 아니었다.

술 담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종일 고된 농사일을 하다가 밤이 되어야 가까스로 쉬는 그 애들한테 딱히 무슨 낙이 있었을까. 동네에서 외진 데로 나가 술 담배로 낙을 삼을 수밖에. 텔레비전도 없고 기껏해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배우는 게 유행의 첨단을 따라가는 거라 여기며 살았을 그 시절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에서야. 하긴, 춘천 같은 도시에서도 텔레비전은 잘 사는 집에나 있는 고가품이었다.

옆 동네의 여자애와 가끔씩 몰래 그 짓을 한다는 애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어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질서에 용인되지 않을 뿐이지, 딱히 나쁜 짓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강간이나 간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혹 여자 애가 임신하는 일이 발생하면 얼마 후에는 마을회관에서 결혼식이 치러지고 한 쌍의 농사꾼 부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담뱃잎건조장 같은 은밀한 곳에서 그 아이가 남몰래그러면서 지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의 시골 애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해 보지만, 솔직히, 평온한 시골 풍경 속의 애들은 뜻밖에도 까부라진 애들이었고 반대로 깡패들도 널려 있는 대단한 도시 춘천에서 내려온 그 자신은 실상은 순박한 고등학생이었을 거라는 기묘한 의구심을 어쩔 수 없다. 수음하는 게 고작인 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소주니 담배니 모두 그 시골동네에서 처음 경험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춘천 시내의 서쪽 끝에 위치한 고등학교와 봉의산 바로 아래 달동네에 있는 그의 집 사이의 거리가 십 리 가까이 되었다. 십 리 되는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서 등하교를 하느라 경황이 없는데 언제 술 담배를 배우고 유행가까지 배울 텐가.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상한 조합이었다. ‘충청도 시골의 까부라진 애들과 춘천에서 온 순박한 봉길이가 함께 어울리는 1968년 한여름의 조합 말이다.

 

남원주 휴게소간판이 보인다. 그는 차의 속도를 바짝 낮추어 휴게소 내 광장으로 진입했다. 주차돼 있는 차들이 많지 않다. 평일이기도 하지만 재작년, 원주에 사는 처남 집에 가다가 잠깐 들렀을 때에도 주차된 차들이 별로 없었다. 편히 쉬고 갈 만하다.

화장실에 들른 뒤 휴게실 앞 빈 벤치에 앉았다. 춘천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시간 남짓해 음성군 운포면에 닿지 않을까?

한창 젊었을 때에 여행길에 나섰다면, 보통 서너 시간은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쉬었다. 이제는 그러기 힘들다. 오줌을 참기도 어렵거니와 몸도 힘들어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 피로하다. 여기서 10여 분 쉬고 가자. 인근 산의 빛깔도 이미 단풍 빛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초겨울로 들어서려는 늦가을이다. 용석이 삼촌도 세상을 떴다. 3년 전이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뜬 지는 20년 가까이 된다.

 

동네 애들과 밤에 강가에서 어울린 날을 계기로 순식간에 친해졌다. 이제는 이틀에 하루 꼴로 밤에 만나 늦도록 어울리는 것이다.

어울리기에는 일정한 룰이 있었다. 우선은, 반드시 저녁밥을 먹고 난 밤 시간에 한했다. ‘AW메들리 참고서를 다섯 페이지 떼고, 당수 수련을 한 시간쯤 하고나면 닭장 청소 같은 소소한 일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그와 달리, 동네 애들은 해만 뜨면 잠시도 쉴 새 없이 집안농사일을 돕다가 해가 진 뒤에야 비로소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자식을 낳으면 초등학교까지만 가르치고 그 후로는 집안농사일을 거들게 하다가 장가나 보내면 된다는 게 당시 농촌 부모들의 생각 같았다.

두 번째 룰은, 모여서 놀 때는 반드시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동네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달동네도 있고 깡패들도 널려 있는 도시 춘천과 달리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는 전형적인, 조용한 농촌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서너 채의 기와집 외에는 초가집들이 대부분인 고즈넉한 풍경으로서 전통적인 유교적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젊은 놈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떠들썩하게 노는 모습을 동네 어르신들에게 절대 보여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그는 단순히 춘천에서 내려온 봉길이가 아니라 남다른 당수 실력까지 갖추고서 춘천에서 내려온 고등학생 봉길이로서, 이틀에 하루 꼴로 밤마다 동네 애들과 무리지어 강가로, 먼 동네로 여기저기 놀러 다니게 된 것이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동네 애들이 시오 리 떨어진 먼 동네까지 원정 다녀오는 일은, 그와 어울리면서부터였다. 전에는 동네에 있는 강가에서 놀다 오는 게 고작이었는데 대단한 봉길이와 어울리게 되자 그 후로는 원정도 다니며 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원정지는 운포면의 면소재지 동네였다. 희망리에서 신작로를 따라 서남 방향으로 시오 리 걸어가면 나타나는 면 소재지 동네. 작은 규모이지만 우체국도 있고 약방이니 철물점이니 줄지어 있어서, 나름대로 시가지였다. 그래서일까, 희망리 애들보다 확실히 눈매 사나운 또래 애들이 어슬렁거리며 텃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희망리 애들은 어쩌다, 닷새에 한 번 면소재지 장거리에서 열리는 장날에 가도 눈을 아래로 깔고 조심스레 다녔단다.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깡패들이 널린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따고 온 고등학생 봉길이가 자기들과 함께 있으니!

밤이 되면 봉길이를 앞세워 흙먼지 날리고 자갈들도 많은 신작로를 시오 리나 걸어가 면소재지 동네를 괜히 한 바퀴 돈 뒤,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담배도 사고는 다시 희망리로 귀가하는 것이다. 귀가할 때도 조용하지 않았다. 신작로를 독차지한 듯 무리지어 걸어오면서 소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유행가도 고래고래 불렀다.

그러다가 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이 작은 사건이 그날 밤 사건의 도화선이다. 취해서들 희망리로 돌아오다가 나지막한 고개에 다다랐을 때, 한 아이가 그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다.

봉길아. 우리는 길가 숲에 숨어 있을 테니까, 니가 당수로 한 번, 고개를 넘어오는 놈을 아무나 한 놈 잡아 솜씨 좀 보여주라야.”

그런 부탁이 나올 만했다. 그 날 밤까지 몇 번이나 면소재지 동네를 휘젓다가 왔으나 특별한 사건도 없었던 데다가, 오랜만에 봉길이의 당수 실력을 다시 보고도 싶었다. 모처럼의 부탁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작로 변에 폼 잡고 서서 고개 너머에서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렸다. 물론 동네 애들은 근처 숲속에 숨었다. 달빛이 제법 훤하게 살아난 밤이다.

처음 강가에서 신고식을 치르던 날 밤은 달빛 하나 없던 그믐밤이었지만 이 날 밤은 열흘 정도 지나 달빛이 어지간히 살아난 상현달 밤이었다. 팔자걸음으로 고개 너머에서 나타난 사내가, 그가 난데없이 앞길을 가로막으며 멱살을 쥐자 !’ 하며 기겁한 표정이 달빛에 역력하게 드러난 건 그 때문이다.

, 이 새끼야! , 춘천에서 온 봉길이 알아?”

, 아뇨!.”

이런 씨발 놈이!”

사실 말도 안 되는 시비 걸기다. 그는 놀라 와들와들 떠는 사내의 멱살을 풀어주는가 싶다가 순간 오른발로 후려차기를 강행했다. 세찬 발길에 상체를 맞고는 그대로 나갔다떨어지는 사내.

아이구야, 사람 살려라!”

엉금엉금 기다 일어나 소리 지르며 달아났다. 얼마나 다급한지, 신었던 흰 고무신들까지 벗겨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10분 넘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빛은 화창하지만 그늘진 곳은 한기가 역력하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차로 갔다.

그 새 뜨겁게 달궈진 차 안의 공기. 다시 조수석 옆 창을 열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이런, 창이 내려오다가 멈췄다.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다시 버튼을 눌러도 별 변화가 없다.

젠장!’

천생, 나중에 춘천 가서 아는 카센터에 맡겨야 할 듯싶다. 이런 잔 고장이 처음은 아니다. 이 차를 구입한 지 10년이 넘었으니. 그는 하는 수 없이 조수석 쪽 창이 반쯤 내려진 채로 주차장을 떠났다. 여기 남원주 휴게소에서 제천까지는 30분 정도 걸릴 듯싶다.

 

고개 너머에서 한 사내를 보기 좋게 후려차기로 해 치운 사건 후로 그는 마치, 몇 십 년 뒤 TV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 김두한처럼 되고 말았다. 괜히 사나운 눈매로, 무리의 한가운데에서 무리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우두머리 모습이랄까.

희망리 애들과 그는 무리지어 신작로 시오 리를 걸어 면소재지 동네에 일단, 도착한다. 어깨에 힘들 주고서 짧은 시가지를 두어 번 돌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구멍가게에 들러 소주와 담배를 산 뒤 다시 희망리를 향해 신작로 길을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다. 물론 모두 소주에 취해 유행가도 부르고 담배도 피우면서 나름대로 향락을 즐긴다.

춘천이었다면 통금에 걸려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밤늦은 시간대였다. 하지만 다행히 충청북도에는 통금이 없었다. 정부에서 제주도와 함께 통금이 없는 지역으로 공포한 덕분이었다. 섬나라인 제주도처럼 충청북도도 치안유지가 잘 되는 순박한 사람들의 지역이라고 정부에서 판단한 걸까.

그가 춘천에 있었더라면 늑대처럼 으허허어엉!’ 음산하게 우는 통금 사이렌 소리에 쫓겼을 텐데 그럴 일 없는 충청북도라니, 얼마나 여유로운 밤 시간인가. 그를 우두머리로 한 희망리 애들의 밤 시간 즐기기가 날로 성해진 건 그 때문일 게다.

그러면서 춘천에서 당수 배운 봉길이란 학생이 왔다는 소문이 일대에 확 퍼진 듯싶다. 워낙 좁고 평온한 시골바닥이기에 소문이 도는 건 순식간이다. 그 결과 그에게 업보처럼 위기가 다가왔다.

그가 어언 45년 간 충청북도 외가 쪽 동네와 인연이라도 끊듯이 발길을 끊게 된 직접적 원인으로서 그날 밤 사건이 다가왔다. 면소재지 동네에서 청주의 모 고등학교로 유학 간 녀석이 있는데 방학이라 집에 왔다가 춘천에서 온, 당수 배운 봉길이소문을 듣게 된 게 그날 밤 사건의 시발점이다. 공교롭게도 녀석은 청주 시내에 있는 당수 도장에서 2단을 딴, 제대로 된 당수 유단자였다.

, 춘천에서 당수를 배운 봉길이란 놈이 툭하면 밤에 여기까지 와 설치다가 간다고? 어디 그럼, 내가 한 번 손봐줄까?”

그런 말을 녀석이 면소재지 친구들한테 내뱉더니 다음 날에는 조금 말이 달라졌단다.

이런 기회에 춘천 당수와 청주 당수가 어느 쪽인 더 센지, 대련 한 번 정식으로 붙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청주 녀석의 두 번째 발언을 그는 분석해 봤다. 녀석도 마음 한 편으로는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게 아닐까? 뒤늦게, ‘춘천이 깡패들 많은 군사도시라는데 거기서 온 봉길이라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했다. 더구나 부근 신작로 고개에서 춘천에서 온 봉길이한테 봉변을 당했다는 사람의 소문까지 들었을 테니. 녀석이 고심 끝에, 부담스런 막싸움 형태보다 무술인들의 반듯한 대결 형태로 승부 짓는 게 낫겠다며 신중한 도전장을 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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