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내게도 훈장이 수여됐다.
정말 애매한 훈장이었다.
내 손아귀에 들어가는 그 쇳덩어리의 면적은, 내 한쪽 다리와 한쪽 눈알을 보상해주기엔 너무 좁아 보였다.
그리고서…… 나는 다시 이 적막한 공간에서 심심함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신음들이 끊이지 않지만 왜 이리 후송병원은 적막한 곳으로 여겨질까? 게다가 판에 찍은 듯 반복되는 일상의 심심함까지. 어쩌면 이런 풍경은 또 다른 전투 풍경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친 몸을 갖고서 통증을 견뎌 나가야 하는, 지루한 날들에 대한 매복 작전
유리창 밖으론 벚꽃들이 웃는데 온종일 쑤시는 상처. 내가 남자로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유일한 낙인 간호장교들의 몸매와 움직임. 금빛 광택뿐이던 훈장에는 꼬질꼬질한 손때가 묻어갔다.
경자를 만난 건 초가을이었다.
벚꽃이 다 떨어져버리면서 끊임없이 등창(瘡)과 싸워야 하는 여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 덧 선선한 가을바람일 때 경자가 우리 병실에 들어섰다. 경자는 세 번째 바뀐 담당 간호장교였다.
경자는 광대뼈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추녀였다. 모래밭의 개미떼 같은 주근깨들.
그 경자가 가을이 지나가고 매서운 추위가 닥친 날, 내 침대 옆 유리창에 ‘사랑합니다’ 란 글씨를 손가락으로 썼다. 흰 성에가 가득 핀 유리창이 ‘사랑합니다’ 란 글자들로 파이면서 밖의 겨울풍경이 새어들어 왔다. 무거운 잿빛 하늘, 벚나무 가지마다 핀 눈송이 꽃들.
사랑한다니?
몸의 절반이나 잃은 꼴인 나를 사랑한다는 뜻인가? 점심식사 후 낮잠들 자느라 조용한 주위를 둘러보고서 나는 소리 낮추어 반문했다.
“정말입니까?”
경자는 ‘정말입니다’고 다시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써보였다. 곤혹스러웠다.
경자가 ‘사랑합니다’란 글씨를 쓴 것은 그녀가 시월에 오고서 세 달 만의 일이었다.
세 달.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와 체온을 재고 주사를 놓았었다. 가끔씩 내 침대 맡에 머물며 얘기를 건네기도 해서 말동무가 생기나보다 했는데 그렇게 느닷없이 사랑한다 했다.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으로 그런 글씨를 쓸 나이가 아니었다. 서른이란 노처녀 나이. 넙적한 얼굴에 가득한 개미떼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더 많은 나이, 결코 일시적인 행위가 아닌 고백, 세 달이란 시간.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자기의 손목을 내밀어 내 손으로 쥐게 만들었다. 곤혹스런 내 외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랑합니다’ ‘정말입니다’의 글씨들로 벗겨진 유리창의 성에 틈새로 보이던 겨울의 풍경들도 얼룽얼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