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지금 내 얘기를 듣다가 이런 질문을 던질 것 같다.

“그럼 너는 뭐냐? 뭔데 짐승 주제에 우리 사람들한테 항변하는 거냐? 네 정체가 도대체 무어냐?”

그에 답하겠다. 나는 어느 때부턴가 ‘생각하게 된 짐승’이라고 말이다.

어느 때부턴가, 단발이던 생각들이 잠깐 잠깐 이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제대로 이어지면서 나를 부리는 당신들의 생각까지 읽게 된 한 마리 ‘곰’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내게 이런 비난을 퍼부을 듯싶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라! '생각’은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너 같은 짐승은 언어가 없으니 생각 따위는 애당초 있을 수 없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길게 답하겠다.

“당신들 생각이 ‘언어적 생각’이라면 우리들 생각은 ‘본능적 생각’이다. 그런, 본능적 생각들을 어느 때부터 잇기 시작한 짐승이 바로 나다. 분절음으로 발음하며 문자로도 적을 수 있는 당신네들‘생각’과는 모양새가 다르지만 분명히 내 생각들이 존재한다. 그걸 입증해 보라고? 사실, 그런 말을 내게 한 순간 당신들은 이미 내가 생각하는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이런 말은 말장난일 수 있으므로 하지 않겠다. 그 대신, 이제 내가 하는 얘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나서 판단하기 바란다. 다만,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발음되거나 문자로 전해지는 말이 아니라 ‘생각으로 하는 말’이다. 굳이 문자를 쓴다면 이심전심 방식이랄까?”

그러면 당신들은 이렇게 야유할 듯싶다.

“그건 말이 아니라 네가 혼자 하는 생각이야.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독백밖에 더 되겠어? 독백이라도 그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독백이지. 그러니까 너는 지금 말하는 게 아니야!”

좋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말하겠다. 내 말을 당신들이 듣건 안 듣건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그냥 내 생각인데, 무슨 상관이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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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우리한테 아예‘생각’이란 게 없는 줄로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한테도 생각이 있다. ‘어떻게 니네 짐승들한테 생각이 있느냐?!’고 힐난한다면 가장 평범한 실례를 들어 보이겠다.

우리가 어린 새끼들을 입으로 물어서 옮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장면은 당신들이 주변에서 흔하게 목격하는 것이다. 작은 쥐들부터 개들, 커다란 사자들까지 제 새끼를 옮길 때 자기 입으로 살짝 새끼의 목덜미 부분을 물어서 들어 옮긴다. 이런 장면 하나로도 우리에게 분명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이빨들이 날카로운 입으로 어린 새끼들을 살짝 물어 옮기겠는가? 어린 새끼들의 피부는 아주 연해서 조금만 실수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그러함에도 단 한 번의 작은 상처도 내는 일 없이 우리는 새끼를 살짝 물어 다른 장소로 온전하게 옮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백 미터 먼 데까지 옮긴다. 이런 일은‘내 새끼를 잘 옮겨야 한다는 분명한 생각’없이는, 단순한 본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데도 우리가‘생각이 없는 짐승’인가?

물론 우리의 이런 생각들은 단발(單發)로 끝난다. 그 때 그 때 필요한 상황에서 발현되고 만다. 이런 한계가 우리와 당신네 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고 말았다. 당신들의 생각들은 우리와 달리 길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날씨가 쌀쌀하구나.’하는 인식(생각)과 ‘몸이 떨리는구나.’하는 인식(생각)이 제 각기 발현되고 말 때에는 단발인 생각들이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하니까 몸이 떨리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이어지는 생각들이다.

이‘이어지는 생각들’이 쌓여 지식체계가 됨으로써 당신들은 문명 문화를 만들어냈고 역사도 이루어냈다. 생각들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 ― 다른 차이들도 있지만 이런 차이가 당신들과 우리 짐승들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참으로 통탄할 일은, 이런 차이 하나로 갈라선 당신들이 우리를 ‘아무 생각 없는 사물’로 간주하고는 별의별 만행을 다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분명 당신들과 우리는 진화의 단계로 봐도 멀지 않은 관계인데 말이다.

당신들의 그런 만행을, 개들의 예로써 지적해 보겠다.

개들은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갖은 일을 다 한다. 집 지키기는 기본이고 양이나 염소같이 순한 놈들을 몰고 다니는 일, 같은 짐승인 멧돼지 따위를 사냥할 때 앞장서는 일, 심지어는 당신들이 판돈을 건 투견 장에서 자기들끼리 피투성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충실한 개들을 당신들은 어떻게 대하는가?

같은 배의 새끼들을 서로 접붙이거나 심지어는 어미 개와 새끼 수캐를 교접붙이기도 해서, 당신들이 바라는 괴상망측한 모양의 개들로 만들어낸다. 애완견이라 하는 유들이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짓은 당신네들 표현을 따른다면 극악무도한 ‘패륜’이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질긴 끈으로 ‘개모가지’를 매달아죽이거나 ‘개 대가리’를 도끼로 쳐서 죽인 뒤 불로 삶아 몇 끼의 음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는 당신들…… 그건 단지 우리 짐승들이‘아무 생각이 없는 사물들’로 보인 때문이다.

정말 그건 오해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결코 생각이 없는 사물이 아니다. 분명 생각이 있는 존재이다. 단지 그 생각이 단발들로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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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6-12-11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생각하는 곰?
곰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후편이 기대됩니다.
 

 

   제복 차림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있다. 우선은 모 우체국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언뜻 보면 경찰복 비슷한 차림으로 일하는데 둥글둥글한 얼굴형이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준다.

두 번째 청년은 모 식품매장에서 일한다. 주로 주부들을 상대하는 식품매장의 분위기 상 대부분 여 직원들인데 그만 혼자 남자 직원이다. 말하자면 청일점이라 할 만하다. 그는 회사의 제복 차림인 것은 물론이고 동료 여 종업원들처럼 앞치마까지 두른 모습으로 항상 상냥하고 성실하게 손님을 맞는다.

세 번째 청년은 세탁소 사장이다. 물론 혼자 하는 자영업이다. 아무 옷이나 걸치고서 근무해도 될 듯싶은데 그는 그렇지 않다. 항상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이다. 특별한 ‘제복’ 차림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항상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에서 제복 느낌을 받는다.

 

내가 사는 도시가 아직은 좁은 것일까? 그 제복 차림의 청년들을 잇달아 밖에서 목격할 줄이야.

우체국 청년은 경찰복 비슷한 차림 대신 청바지 패션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어딘가로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식품매장의 청년은 앞치마를 두르는 회사 제복 대신 멋진 선그라스까지 쓴, 산뜻한 야외복 차림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세탁소 청년은 식당에서 보았는데 친구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세탁소에서 입는 옷이 아닌, 간편복 차림이었다.

 

세 청년들을 밖에서 잇달아 목격하게 되면서― 제복 차림이 아닌 평상복 차림의 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시대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제복 차림으로, 밖에서는 편안한 차림으로 열심히 사는 젊은 그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침체의 늪에서 결국은 일어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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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는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난데없는 ‘새마음 운동'이 그 중 하나다. 내가 근무하는 시골 학교 교무실에서 “아니 새마음 운동은 또 뭐야? 새마을 하나면 됐지 나 참.” 탄식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얼마 후에는 그 새마음 운동 관련 일로, 윤리과장 선생이 1박 2일로 출장 가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큰영애가 전국의 도청소재지를 돌며 ‘새마음 ----’관련 행사를 여는데 그 장소인 실내체육관에 참석하는 것이라 했다. 이틀간이나 윤리 및 사회 수업을 비운다니, 펑크난 시간들을 다른 과목들의 시간으로 메우느라 교시 담당 선생이 고생 많을 수밖에.

 

1박 2일 출장을 마치고 윤리과장 선생이 출근했다. 교시 담당 선생이 볼멘소리로 물었다.

“아니, 무슨 행사를 이틀씩이나 한단 말이요?”

윤리과장 선생이 더 볼멘소리로 답했다.

“첫 날은, 큰영애가 무대에 등장해서 시선을 줄 때마다 그에 맞춰 박수치는 연습으로 하루 종일 보냈고 둘째 날은 큰영애를 실제로 맞아 박수만 치다가 끝났다니까! 내가 다 늙어서, 실내체육관에서 박수 치는 것으로 이틀씩 보낼 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그 즈음, 1979년경은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노려보기 시작했다’는 그 즈음의 어느 시골 학교 교무실이 배경이다. 길이가 짧은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10‧26과 12‧12 직후에만 초점을 맞췄고 ‘새마음 운동’ 건은 다루지 못했다.

1979년이라면 39년 전이다. 관에서 깨어난 드라큘라처럼 오랜 과거의 그 이상한 일들이 근래에 부활했던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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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이 좋은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분과 술자리를 다시 갖지 못했으니까.

고향의 부모님이 ‘좋은 처녀가 있으니까 꼭 만나 보라.’며 전화를 주었기에 나는 주말마다 버스 타고 태백산맥을 넘어가 그 여자를 만난 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일은 진전되지 못했다. 나는 장남이란 의무감이 앞서 있었고 그 여자는 다른 남자도 만나면서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전 날 밤부터 자욱하게 낀 안개가 아침에도 그대로 남은 십이월 십삼일이었다. 텔레비전이 긴급 뉴스를 전했다.

“10․26 시해사건 때 범인 김재규와 묵시적 동조를 한 게 드러난 계엄사령관 등 일당이 전격적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신문은 그 때도 늦은 걸음이어서 ‘안개 속 총성, 심상치 않은 안개 정국’의 제호나 뽑은 채 배달되어 있었다.

시월 말에도 등장했던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온 국민을 노려보는 표정으로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발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옆의 텔레비전을 다시 켜 놓고 지켜보던 물문어 교감선생이 한 마디 내뱉었다.

“다시 군인들 세상이 시작되었구먼!”

그리고는 텔레비전을 더 보지도 않고 회전의자에 몸을 깊게 꾸겨 넣고 잠자기 시작했다. 수업이 비는 교사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며 쑤군거리고들 있었다. 나는 그분을 찾아보았다.

그분은 말없이 교재를 보고 있었다. 창백한 표정이었다.

그 날 밤 나는 소주 한 병과 구운 오징어를 봉지에 담아 들고 그분의 집을 찾았다. 대문도 없는 집이므로 그냥 마당에 들어서서 가쁜 숨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불렀다.

“김 선생님, 계십니까?”

응답이 없었다. 전등불빛이 둥그렇게 안방 문창호지에 어려 있으니 안에 아무도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소리 높여 다시 불렀다.

“계십니까!”

내 큰 목소리에 어느 집 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돌아서야 하나 망설이는데 방문이 열렸다. 그분의 아내 되는 분이 방안의 전등불빛을 등 뒤로 받으며 나왔다. 잔기침을 콩콩 하면서 내게 말했다.

“몸이 안 좋으셔서 (콩콩) 초저녁부터 주무시고 (콩콩) 계시거든요. 어떡할까요? 너무 몸이 안 좋으시니(콩콩)…”

나는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는 그냥 되돌아섰다.

어두운데다가 춥기까지 한 겨울 밤의 골목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창이던 곳이 얼어 있어서 구두나 바지 밑을 더럽힐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조심스레 걸어오면서 왠지 이 겨울이 여느 해 겨울보다 길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글쎄 그게 직감인지, 쓸쓸한 마음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달 뒤 80년대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컬러텔레비전의 시대도 열렸다.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컬러로 나타나 온 국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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