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우리한테 아예‘생각’이란 게 없는 줄로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한테도 생각이 있다. ‘어떻게 니네 짐승들한테 생각이 있느냐?!’고 힐난한다면 가장 평범한 실례를 들어 보이겠다.
우리가 어린 새끼들을 입으로 물어서 옮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장면은 당신들이 주변에서 흔하게 목격하는 것이다. 작은 쥐들부터 개들, 커다란 사자들까지 제 새끼를 옮길 때 자기 입으로 살짝 새끼의 목덜미 부분을 물어서 들어 옮긴다. 이런 장면 하나로도 우리에게 분명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이빨들이 날카로운 입으로 어린 새끼들을 살짝 물어 옮기겠는가? 어린 새끼들의 피부는 아주 연해서 조금만 실수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그러함에도 단 한 번의 작은 상처도 내는 일 없이 우리는 새끼를 살짝 물어 다른 장소로 온전하게 옮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백 미터 먼 데까지 옮긴다. 이런 일은‘내 새끼를 잘 옮겨야 한다는 분명한 생각’없이는, 단순한 본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데도 우리가‘생각이 없는 짐승’인가?
물론 우리의 이런 생각들은 단발(單發)로 끝난다. 그 때 그 때 필요한 상황에서 발현되고 만다. 이런 한계가 우리와 당신네 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고 말았다. 당신들의 생각들은 우리와 달리 길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날씨가 쌀쌀하구나.’하는 인식(생각)과 ‘몸이 떨리는구나.’하는 인식(생각)이 제 각기 발현되고 말 때에는 단발인 생각들이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하니까 몸이 떨리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이어지는 생각들이다.
이‘이어지는 생각들’이 쌓여 지식체계가 됨으로써 당신들은 문명 문화를 만들어냈고 역사도 이루어냈다. 생각들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 ― 다른 차이들도 있지만 이런 차이가 당신들과 우리 짐승들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참으로 통탄할 일은, 이런 차이 하나로 갈라선 당신들이 우리를 ‘아무 생각 없는 사물’로 간주하고는 별의별 만행을 다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분명 당신들과 우리는 진화의 단계로 봐도 멀지 않은 관계인데 말이다.
당신들의 그런 만행을, 개들의 예로써 지적해 보겠다.
개들은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갖은 일을 다 한다. 집 지키기는 기본이고 양이나 염소같이 순한 놈들을 몰고 다니는 일, 같은 짐승인 멧돼지 따위를 사냥할 때 앞장서는 일, 심지어는 당신들이 판돈을 건 투견 장에서 자기들끼리 피투성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충실한 개들을 당신들은 어떻게 대하는가?
같은 배의 새끼들을 서로 접붙이거나 심지어는 어미 개와 새끼 수캐를 교접붙이기도 해서, 당신들이 바라는 괴상망측한 모양의 개들로 만들어낸다. 애완견이라 하는 유들이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짓은 당신네들 표현을 따른다면 극악무도한 ‘패륜’이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질긴 끈으로 ‘개모가지’를 매달아죽이거나 ‘개 대가리’를 도끼로 쳐서 죽인 뒤 불로 삶아 몇 끼의 음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는 당신들…… 그건 단지 우리 짐승들이‘아무 생각이 없는 사물들’로 보인 때문이다.
정말 그건 오해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결코 생각이 없는 사물이 아니다. 분명 생각이 있는 존재이다. 단지 그 생각이 단발들로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