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날 밤이 좋은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분과 술자리를 다시 갖지 못했으니까.
고향의 부모님이 ‘좋은 처녀가 있으니까 꼭 만나 보라.’며 전화를 주었기에 나는 주말마다 버스 타고 태백산맥을 넘어가 그 여자를 만난 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일은 진전되지 못했다. 나는 장남이란 의무감이 앞서 있었고 그 여자는 다른 남자도 만나면서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전 날 밤부터 자욱하게 낀 안개가 아침에도 그대로 남은 십이월 십삼일이었다. 텔레비전이 긴급 뉴스를 전했다.
“10․26 시해사건 때 범인 김재규와 묵시적 동조를 한 게 드러난 계엄사령관 등 일당이 전격적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신문은 그 때도 늦은 걸음이어서 ‘안개 속 총성, 심상치 않은 안개 정국’의 제호나 뽑은 채 배달되어 있었다.
시월 말에도 등장했던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온 국민을 노려보는 표정으로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발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옆의 텔레비전을 다시 켜 놓고 지켜보던 물문어 교감선생이 한 마디 내뱉었다.
“다시 군인들 세상이 시작되었구먼!”
그리고는 텔레비전을 더 보지도 않고 회전의자에 몸을 깊게 꾸겨 넣고 잠자기 시작했다. 수업이 비는 교사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며 쑤군거리고들 있었다. 나는 그분을 찾아보았다.
그분은 말없이 교재를 보고 있었다. 창백한 표정이었다.
그 날 밤 나는 소주 한 병과 구운 오징어를 봉지에 담아 들고 그분의 집을 찾았다. 대문도 없는 집이므로 그냥 마당에 들어서서 가쁜 숨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불렀다.
“김 선생님, 계십니까?”
응답이 없었다. 전등불빛이 둥그렇게 안방 문창호지에 어려 있으니 안에 아무도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소리 높여 다시 불렀다.
“계십니까!”
내 큰 목소리에 어느 집 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돌아서야 하나 망설이는데 방문이 열렸다. 그분의 아내 되는 분이 방안의 전등불빛을 등 뒤로 받으며 나왔다. 잔기침을 콩콩 하면서 내게 말했다.
“몸이 안 좋으셔서 (콩콩) 초저녁부터 주무시고 (콩콩) 계시거든요. 어떡할까요? 너무 몸이 안 좋으시니(콩콩)…”
나는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는 그냥 되돌아섰다.
어두운데다가 춥기까지 한 겨울 밤의 골목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창이던 곳이 얼어 있어서 구두나 바지 밑을 더럽힐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조심스레 걸어오면서 왠지 이 겨울이 여느 해 겨울보다 길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글쎄 그게 직감인지, 쓸쓸한 마음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달 뒤 80년대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컬러텔레비전의 시대도 열렸다.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컬러로 나타나 온 국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