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 6교시 특활시간이 다가왔다. 특활반을 정하는 시간이었다. 그분한테서 미리 당부 받은 듯, 담임선생님이‘올 해 미술반은 금요일뿐만 아니라 토요일에도 따로 남아 할 거라니까, 잘 생각해서들 희망해라’했으므로 우리 학급에서 미술반 희망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학급 애들이‘역시 그림 잘 그리는 애는 다르다.’며 쑤군거리거나 ‘이제 너는 고생길에 들어섰다!’며 걱정하는 표정들인 가운데 나는 담임선생님한테서‘미술반 희망자 명단’ 쪽지를 받아들고 교실을 나섰다.
희망한 특활반을 찾아가는 전교생들로 복도는 붐볐다. 나는 애들 틈을 비집고 가며 간신히 본관 끝 미술실에 다다랐는데 그 앞 복도에는 애들이 하나도 없었다.
‘미술실 명패가 달려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 텐데?’
조심스레 뒤의 미닫이문을 열었더니 애들 여남은 명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지난 학기만 해도 희망자가 넘쳐 더 못 받는다던 미술반이 인원부터 확 줄어들어 있었다. 한 교실이라면 보통 육십 명이 정원인데 여남은 명의 애들만 앉아 있으니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그분이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교단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 앉아 있는 어린이들은 미술반을 희망해서 온 게 맞지요?”
“네에.”
“내가 이 자리에서 말할 게 있어요. 담임선생님한테 말씀 들었겠지만 올해 미술반은 금요일 특활시간만 하는 게 아니라 토요일 오후도 할 겁니다. 그리고 봐서, 일요일도 할 것이고 어쩌면 여름방학 때도 할지 모릅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애들이 있었다. 그분은 애써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어요. 아무래도 미술반 활동을 따라가기 힘들겠구나 싶은 어린이는 지금 이곳에서 나가도 좋습니다. 다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다른 특활반을 찾아가도록 하세요. 자아, 그럼?”
안색이 하얗게 질린 애들 대여섯 명이 주섬주섬 일어나 뒤쪽 미닫이문을 열고 나갔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미술반 인원이 일곱 명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순전히 자발적으로 희망해서 온 애들이 세 명, 나처럼 사전에 그림 솜씨로 인정을 받고 참가약속이 되어 있던 애들이 네 명이었다. 대부분 3,4학년생이었고 6학년은 한 명도 없었다. 유일한 5학년인 내가 미술반 반장으로 정해졌다. 그분은 모두 교탁 앞으로 모여 앉도록 한 뒤 말했다.
“내일, 토요일 오후부터 그리기 활동에 들어갑니다. 알겠죠?”
이어서, 그에 따른 ‘지시사항들’도 말했다.
“첫째, 자기 학급에서 수업이 끝난 뒤 오후 두 시까지 성당 마당으로 와야 합니다. 지각하는 어린이에게는 그리기 활동이 끝난 뒤 주변 청소를 맡길 것입니다. 둘째, 화구를 빠짐없이 갖춰 와야 합니다. 갖출 화구는, 천천히 말할 테니까 연필로 적으세요. 화판, 스케치북, 스무 가지 색 이상의 크레파스, 4B연필 한 자루와 보통 연필 한 자루, 연필깎이 칼, 고무지우개입니다. 내가 화구를 검사해서 한 가지라도 빠졌으면 역시 청소를 맡길 것입니다. 셋째, 만일 비가 오면 말입니다, 그냥 이 미술실에서 활동하겠습니다. 자아, 내가 할 얘기는 다 한 것 같네요. 그럼, 혹시 무슨 질문이 있습니까?”
요즈음 어린이들이었다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선생님은 언제 저희 학교에 오셨나요? 어느 대학을 나오셨고 결혼은 하셨나요?’. 당시의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분을 올려다봤을 뿐이다.
“그럼 이만 귀가해도 좋습니다.”
나중에 들은 소문으로는, 그분은 임시로 와 있는 선생님이라 했다. 서울에 있는 어느 미대를 졸업하고 군대를 갈 참이었는데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쉬던 중에 우리 학교 미술반을 맡게 된 거라던가. ‘여의치 않은 사정’이란 건강이 안 좋은 사정인 듯싶었다. 그분의 마른 몸매에다가 허연 얼굴빛을 보고 나온 추측이 아니었을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이튿날 오후 두 시에 우리 미술반원은 성당 마당에 모였다. 지각하는 사람은 청소를 시킨다고 한 엄포 때문인지, 지각은커녕 이십 분 전에 모두 모였다. 성당은 남향한 석조 건물로써 그리 높지 않은 동산에 위치했음에도 읍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였다. 오래된 큰 밤나무들이 울타리처럼 성당 마당을 에워싸고 있어서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것 같았다.
이른 봄이라, 그 그늘에 들어가면 추웠다. 우리는 그늘이 없는, 나무들 사이의 양지에 모여 있었다. 각자 커다란 화판의 끈을 어깨에 건 채 스케치 북, 크레파스 등을 손에 쥐고 있으니 화구들 틈에 우리가 끼어있는 모습 같았다. 두 시가 되기 오 분 전에 그분은 성당 마당 입구에 나타났다. 햇빛에 포마드 바른 머리를 빛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자아, 여기서 그리기 좋은 풍경을 각자 선택해서 그리는 겁니다. 연필로 스케치를 한 뒤에 크레파스로 칠한다는 거는, 더 말 안 해도 잘 알겠지요?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그 안에 다 그렸으면 내게 갖고 올 것. 그럼, 각자 그림 그리기 좋은 자리를 찾아서 이동 실시!”
미술반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토요일 오후 두 시는 물론 금요일 6교시 특활시간에도 우리는 으레 성당 마당에 모여 한 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성당은 학교와 멀지 않아, 금요일에는 5교시가 끝나는 대로 화구들을 챙겨들고 부지런히 가면 모임 시간에 늦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그리기 편한 곳에 화판, 스케치북 순으로 내려놓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읍내 풍경을 열심히 그렸다. 다 그리고 나면 근처 벤치에서 쉬는 그분한테 갖다 보였고, 그러면 그분은 구도 원근법 명암 색칠 순으로 꼼꼼하게 살펴 미흡한 부분은 직접 고쳐 보이며 지도했다.
날씨가 무더워지자, 밤나무 그늘은 그림 그리고 지도 받기에 괜찮은 시원한 장소로 바뀌었다.
한낮의 읍내 풍경은 투명한 햇빛 속에 잠겨 있었다. 자동차 경적이 간간이 들릴 때에는, 햇빛 한두 가닥이 튕겨져 날아오는 것 같았다. 자동차도 별로 없던 육십 년대 초의 시골 읍은 그 자체가 소리 없는 풍경화였다. 그림의 구도를 깨뜨릴 만한 큰 건물도 없고 대부분 아기자기한 규모의 가옥들이 가느다란 도로들을 끼고 장난감 마을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 있었다.
그분이 낭랑한 음성으로 우리 그림을 낱낱이 지적하며 지도할 때 그 가늘고 흰 손가락이란. 그림의 미흡한 부분을 직접 고쳐 보이느라 혼합 색 크레파스처럼 변하기 일쑤였다. 나는 미술반 반장이기도 했지만 그리기 솜씨로도 모범이었다. 수 년 간 교대부속초등학교 미술반에서 닦아온 기량에 그분의 섬세한 지도가 덧입혀지자 사실상 더 배울 게 없는 나의 그리기 솜씨였다.
어쩌면, 나는 그 때 그분한테 지도를 받지 않는 게 더 좋았을는지 모른다.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 생각이다…….
여름방학에도 미술반 활동은 계속됐다. 방학 전의 활동 흐름을 이으려는지,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두 시’에는 성당 마당으로 모여야 했다. 한여름의 읍내 풍경은 따가운 햇볕 때문에 조금씩 흔들리는 듯 보였다. 나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눈가에 힘을 줘 그 흔들리는 풍경을 붙잡아 그렸다.
어느 날 나는 눈앞에 있는 밤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읍내 풍경만 그리기가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밤나무 잎들만 해도 여러 색이었다. 그 시기나 햇빛을 받는 정도에 따라 흰빛이 도는 연두색부터 온전한 연두색, 조금은 짙은 초록색, 초록색에 흙색을 더한 올리브그린 색…… 숱한 녹색 계통들의 어우러짐이 밤나무 잎사귀들이었다. 그런 잎들을, 암갈색 나무그루와 가지가 적절한 균형으로 떠받쳐주는 게 밤나무 전경이었다.
“모두 이리로 모여라!”
내가 그 그림을 제출했을 때 그분은 떨리는 목소리로 미술반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분이 그림 그리고 있는 우리를 도중에 불러 모으기는 처음이었다. 그분은 내 그림을 벤치에 펴 놓고 말했다.
“과연 미술반 반장이다. 자, 이 그림을 잘 보고 어떻게 나뭇잎들의 색깔을 칠했는지, 어떻게 줄기나 가지 모양을 그렸는지, 잘 보라고!”
그분이 내 앞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니, 나는 쑥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개를 숙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이 여름방학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분은 처음으로 눈앞에 놓인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정도의 그림이라면 더는 손댈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분은, 고개 숙이고 선 내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정도 그림이면 전국 그리기 대회에 나가도 단연 특상이야. 아암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