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그 날, 그분이‘미술반에 들 거지?’하고 물었을 때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응답한 것은 얼떨결에 이루어진 느낌이 컸다. 소란한 교실을 일시에 제압하던 낭랑한 목소리, 깔끔한 포마드머리의 젊은 모습, 허연 얼굴빛과 간간이 빛나던 눈빛 등의 분위기가 나를 다른 대답할 겨를이 없도록 만든 게 아니었을까?
만약 후줄근한 옷차림의 노인 선생님이 우리 학급을 찾아와서, 소란스런 애들을 제압하느라 내 이름을 고래고래 불러서 데리고 갔더라면 나는 미술반에 들지 않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미술실이라니. 작은 석유곤로 하나가 교탁 부근에 불피워있긴 했지만 겨우내 방치된 탓에 아무래도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노인 선생님이 그런 미술실에 있었더라면 더욱 춥고 더 을씨년스레 보였을 텐데……다행히도‘그분’이었기에 덜 춥고 덜 을씨년스레 보인 거라고 나는 회상한다.
전학 온 처음에는, 방과 후 미술반 활동 같은 것도 없는 시골학교라서 나는‘뭐, 이런 학교가 다 있나?’하며 허탈했었다. 한 학기가 지나자, 만화책도 마음껏 보고 애들과 늦도록 놀기도 하며 방과 후 시간을 편하고 즐겁게 보내는 평범한 생활에 젖어서…… 그분이‘미술반 활동을 제대로 해 보겠다’는 어조였을 때 ‘저는 독서반을 할 건데요’하며 응하지 않았을 법했다. 그러기는커녕 교대부속초등학교 미술반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상세히 말씀드렸으니, 고생 많았던 방과 후 미술반 활동을 그 순간 나는 깜박 잊었던 걸까? 전형적인 미술선생님의 풍모를 갖춘 그분과 맞닥뜨린 순간에 별 망설임 없이‘네에’하고 미술반 활동에 참가하겠다고 답한 건 그 까닭일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날의 내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