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로웠다. 내가 명퇴하고 얼마 안 되어 부동산 경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우리 집 경제력의 한 축이었던 아내의 복부인 짓도 덩달아 마감되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내게 매달 얼마씩 공무원연금이 나오니까. 게다가, 딸애는 시집갔고 아들애는 객지에서 직장을 다니니 자식 뒷바라지도 끝났고…… 단지 외식 같은 불필요한 지출이나 줄이면 되는데,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기를 즐기는 성격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내는 나와 달라서, ‘도시농업센터’라는 데를 일주일에 이틀 꼴로 다녔다. 복부인 하다가 농사 가르치는 데를 다닌다니, 그 변신이 영 납득이 안 갔다.

해가 바뀐 올해 이월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제의했다.

“여보. 날씨가 풀리는 대로 우리 농사지읍시다.”

나는 놀라서, 보던 텔레비전도 끄고 물었다.

“갑자기 무슨 농사를 짓자는 거야?”

“당신 퇴직금으로 산 팔백 평 밭 있잖아요. 거기가 우리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다니기도 좋고, 게다가 당신이 고혈압 환자잖아요. 농사일은 건강관리 차원에서도 좋대요.”

“그 밭은 당신이 그 동네 사람한테 부쳐 먹으라 했다 하지 않았어?”

“그 사람이 들깨나 심고 그러는 게 영 내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봄에 한 번 씨 뿌리고 가을에 추수하는 게 들깨 농사의 전부라니 그건 밭을 놀리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내가 얼마 전에 그 사람한테 통지했죠, 올봄부터는 우리가 직접 밭을 부칠 테니까 그리 알라고.”

도시농업센터를 다닌다더니 내게 농사 제의를 할 줄이야. 그래도 그렇지, 내가 환갑이 코앞인데 그런 육체노동이 가당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아내한테 반문했다.

“우리가 식량이 부족한 형편도 아닌데, 그냥 그 밭을 내버려두면 안 되나? 그냥 놀리자고. 힘들게 뭐 하러 농사를 져?”

아내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도 참! 밭을 놀리면 벌금도 나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환수 될 수 있는 줄도 모르시는구먼. 농지법이 있어서, 매년 면사무소의 담당 공무원이 관내를 다니면서 그런 농지가 있는지 살펴본다니까.”

“그런 법이 있다고?”

“당신 같은 한량도 없을 거야. 하긴, 그 좋은 교직도 정년을 칠 년이나 놔두고 명퇴했으니.”

“알았어, 농사지을 게. 그만 얘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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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낙지’라는 음식점 간판을 봤다. 낙지가 과연 착할 수 있을까? ‘착하다’는 말은 도덕적 기준에서 나오는 표현인데 글쎄, 바닷가 뻘에서 살다가 운 없이 사람들에게 잡혀 식탁에 오를 운명한테 합당한 표현일까? 낙지 입장에서는 착하다기보다는 억울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억울한 낙지’?

그 또한 이상하다.

물론 ‘착한 낙지’란 간판의 속뜻은 ‘서민들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낙지’란 말일 게다. 어쨌든 간판의 명을, 무심한 내가 발길을 멈추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도록 지었다면 식당 주인 입장에서는 성공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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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전 대통령 박근혜의 발목이 본격적으로 잡힌 것은 2014년 4월의 세월호 침몰 사건 때부터였다. 그 후 그녀는 쉼 없이 ‘세월호’에 시달렸다. 그녀가 눈물 흘리는 모습까지 TV를 통해 전 국민에게 보여주었지만 별 소용없었다.

마침내 3년 만에 탄핵당하여 법정에 서게 된 그녀. 공교로운 것은, 그 동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었던 세월호가 수면 위로 인양되려는 시기와 맞물려져간다는 사실이다. 픽션으로는 결코 따라갈 수 없는 현실의 절묘한 타이밍. 나는 할 말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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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주택단지다.

옆집과 우리 집은 거의 같은 시기에 완공됐다. 1996년 8월 중순이었으니 벌써 21년 됐다. 집을 다 지으면 준공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런 뒤에야 법적으로 입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떤지 모르는데 여기 춘천에서는 나무 몇 그루를 집 주변에 심어놓아야만 준공검사를 받을 수 있단다.

옆집어른께서 어린이 키만 한 나무 한 그루를 자기 집 마당가에 심으면 말했다.

“이게 목련인데 봄날 되면 꽃잎들이 볼 만할 겁니다.”

21년 동안에, 어린이 키만 했던 그 목련이 지금은 장대처럼 자라 3층 건물인 옆집의 지붕 높이까지 됐다. 키만 큰 게 아니다. 5월쯤 되면 탐스런 흰 꽃을 ‘허공으로 튄 강냉이들’처럼 무수히 단다. 처음에는 바라보기 좋더니 그 무수한 꽃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 집 안팎까지 날아들어, 그것들을 치우느라 한 달은 쩔쩔 매야 하는 수고를 안기면서 우리 생각이 바뀌었다. 꽃들뿐만 아니다. 가을에는 시든 목련나뭇잎들이 봄철의 꽃들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전 난리다. 봄가을로, 꽃들과 나뭇잎들을 쓸어내는 일에 지친 아내가 내게 말했다.

“옆집 분께 말해서 저 목련나무를 톱으로 베 달라고 할까?”

나는 답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이웃 간 언쟁이 벌어질지 몰라, 판단이 서지 않는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어린이 키만 한 목련이 3층 높이로 자라는 데 21년 걸렸다. 21년이 세 번이면 63년이다. 인생 뭐 있나? 목련나무가 3층 높이로 자라는 일이 세 번 반복되면 거의 다 가는 게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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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봄의 시작이라 한다. 하긴, 절기상 입춘은 벌써 2월초에 있었다.

3월의 산하는 뜻밖에 풀빛 하나 없다. 밭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느끼는 일이다. 산하는 지난해늦가을의 시들어 마른 빛깔들뿐이다. 푸른 풀빛의 봄 풍경은 4월 중순은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사진에서 보이는 푸른빛은 농협에서 산 퇴비들 겉포장과 ‘작년에, 산짐승들로부터 작물들을 보호하려고 둘러친’그물망울타리와 5평 넓이 컨테이너 농막이 전부다. 그 외는 무채색이나 다름없이 황량한 ‘지난해늦가을의 시들어 마른 빛깔들’뿐.

참, 밭의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들은 포장지를 뜯어 쏟아놓은 퇴비들이다. 황량한 3월의 봄 풍경에 올 한해 밭농사의 의지(意志)들을 일단 쏟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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