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연 선생은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부지런히, 얇은 스웨터를 걸친 뒤 주방에 있는 아내한테 갔다.

여보. 오늘 내가 차를 쓸 일이 있어.”

당신도 참, 오늘 수요일은 내가 성당 교우 분들을 차로 모시고 봉사활동 가는 날이잖아요.”

차가 있는 다른 신자 분을 찾든지 아니면 택시 타고 다니든지 그래.”

김 선생이 교직을 퇴직한 지 3년여, ‘웬만하면 걸어 다니며 노년의 건강을 지키기로 하면서 그동안 차는 성당 다니는 아내의 독차지였다. 다시 반격에 나선 아내.

당신이야말로 택시를 타면 되잖아요.”

몇 백 리, 장거리를 가야 하는데?”

그럼, 버스 타고 가면 되잖아요?”

아니야. 이번에는 반드시 자가용차를 몰고 가야 해. 자세한 것은 저녁 때 돌아와서 말해줄게.”

대체, 어디를 가는 거에요?”

갔다 와서 말한다니까!”

김 선생은 부리나케 현관문을 여닫고 밖으로 나섰다. 솔직히, 중요하거나 시급한 일로 자가용차를 몰고 가는 게 아니라서 계속 대화를 이었다가는 책잡힐 우려가 컸다.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

차를 몰고 아파트 구내를 벗어나면서 김 선생은 잊지 못할 그 주소를 뇌까려 보았다. 그날 밤 사건이 벌어진 외갓집 동네의 주소다.

교통 정체가 심한 춘천 시가지를 벗어나자 바로 널찍한 중앙고속도로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만 하다.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지금과 달리, 40여 년 전 외갓집 가는 길은 힘겨운 고생길이었다. 시외버스니, 완행버스니 하는 대중교통수단을 세 번씩이나 갈아타고 가야 하는 데다가 하루 종일 걸렸다. 시가지 같은 경우에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었지만 시가지를 벗어나면 흙먼지가 뿌옇게 날리는 비포장 신작로일 뿐이었다. 신작로 길은 왕복 2차선으로 좁을 뿐만 아니라 굽이마저 잦아서 어린 학생이던 그는 차멀미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버스 안 바닥에 토할 위기를 모면한 것은, 그나마 버스가 자주 정차한 덕분이었다. ‘공용 터미널이나 종합교통 영업소란 데에 정차할 때마다 급히 구내 화장실을 찾아 와아악!’ 토해 버리던 추억, 아니 기억이 그에게 있다.

지금은 얼마나 좋은 찻길인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로 가다가 제천쯤에서부터 국도로 가는 건데 이제는 왕복 2차선 국도조차 굽이도 거의 없을뿐더러 아스팔트로 다 포장돼 있을 게다. 혹 멀미라도 나면 도로 변 휴게소를 찾으면 되고, 걸리는 시간도 하루 종일이 아니라 두어 시간이면 충분할 듯싶다. 자가용차가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렇다. 이런 맛을 보려고 오늘 자가용을 고집한 것이다. 아무렴, 40여 년 간 발길을 끊었던 그날 밤 사건 현장을 찾아가는데 최소한 자가용차는 몰고 가야 되지 않겠나.

40여 년, 정확히는 45년이다. 오래도 발길을 끊었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궁금한 숙제 하나를 남겨놓고 눈 감게 될지도 모른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지도가 선하게 떠올랐다. 45 년 전의 공간이 확인된 셈인데 그렇다면 그 날 밤 사건의 공간은 그대로 남고 시간만 엄청 흐른 거라 말할 수 있을까?

 

그 해 1968년은, 나중에 알았지만, 거국적인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2년 전이었다.

그 해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혼자충청북도 외갓집으로 떠난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여름방학만 되면 오남매의 장남인 그와 장녀인 누나 중 한 사람을 반드시 충청북도 외갓집에 보냈다. 방학 중 시골 외갓집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며 무언가 배우고 오라는, 고상한 교육 차원의 배려가 아니었다. 두 달 터울인 그와 누나가 툭하면 비좁은 방구석에서 말다툼을 벌이니 그게 지겨워 하나라도 딴 데로 보내자는 격리 차원이었다.

그 시절 춘천 지방은 겨울에는 춥기로, 여름에는 무덥기로 전국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러잖아도 비좁은 집에서 일곱 식구가 그 무더운 여름을 조금이라도 덜 짜증나게 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을 게다. 방이 둘 뿐인 그 집조차 독채 전세로 얻은 남의 집이었으니 돌이켜보면 기가 막힌다.

비만 오면 진창바닥인 춘천 교통 여객 영업소에서 우선, 원주로 가는 시외버스표를 끊으며 그의 외갓집 여행은 시작되었다. 짐이라고 해야 책가방에 챙긴 ‘AW메들리 영어 참고서’ , 영어사전, 그리고 양치도구 정도였다. 갈아입을 속옷 같은 것은 외삼촌 것을 입으면 되니 별 걱정이 없었다.

방학 한 달을 외갓집에서 보낸다 해도 달라질 게 없는 그의 생활이었다. 집에서 하던 영어 공부를 외갓집에서도 변함없이 잇는 것이다. 특히 당수 수련도 계속했다. 태권도를 그 시절에는 당수라 했다. 그가 당수를 독학하게 되면서 결국 그날 밤 사건의 원인(遠因)이 되었다. 그는 당수를 독학 하던 45 년 전 추억에 잠기며 운전한다.

 

그 시절 그가 사는 집은 춘천 봉의산 바로 아래 달동네였다.

어느 날 달동네에 당수 도장이 문을 열었다. 방치된 폐건물을 활용한 도장에서 30대 중반 나이로 보이는 사범이 저녁마다 당수를 가르쳤다. 수련생은 열 명이 채 안 됐는데 홍보 효과를 노렸는지 도장 창문을 모두 열어놓아, 외부 사람들이 당수 수련 모습을 밖에서도 볼 수 있게 했다.

그런 외부 사람들 틈에 그가 있었다. 사범이 하늘을 날 것처럼 공중으로 겅중 뜀과 동시에 몸을 옆으로 돌려 발차기하는’ 2단 옆차기라든가, 정권 치기라 하여 주먹을 단단히 쥐고서 온 힘을 다하여 두꺼운 송판을 격파하는 동작은 언제나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정말 그는 당수를 배우고 싶었다. 그러려면 입회비를 마련해야 했다.

간판도 달지 못한 데다가, 벽의 흙이 드러나도 회칠 하나 못한 당수 도장이니 입회비가 비쌀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입회비 얘기를 부모님한테 꺼낼 수가 없었다. 실직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시내의 식당 두 군데를 다니면서 가족들 생계를 해결하는 우울한 집안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는 당수를 독학하기로 했다. 도장 창 밖에서 눈여겨본 당수 동작들을 집에 와 복습하는 형태다. 늦은 밤 시간에 집 뒤란으로 혼자 나와 30여 분씩 당수 동작들을 재연하는 것이다. 어두운 데에서 남몰래 하는 짓이었지만 식구들 눈에 안 뜨일 리가 없었다. 시내 다방에 죽치고 앉아 하루 종일 사업을 구상하다가 귀가한 아버지 눈에 뜨인 게 그 첫 번째였다.

너 지금 뭐하냐?”

어둠 속에서 겅중겅중 뛰는 웬 사람에 기겁했다가, 조심스레 살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의 아들이라는 게 확인되자 안심하면서 던지는 첫 질문이다.

사실, 아버지보다 더 놀란 그였다. 2단 옆차기를 하려다가 아버지의 등장에 놀라 발목을 접질리고 만 것이다. 그는 몹시 아픈 발목을 참고서,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답했다.

학교 오갈 때, 깡패새끼들이 많아서, 그래서 혼자, 당수 연습하고 있어요.”

그러자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헛 참, 녀석도!’ 하는 표정으로 돌아서는 아버지. 돌이켜보면 참 가난한 부자지간이었다.

그는 지금 운전 중인데도 가슴이 먹먹해져서 액셀러레이터 밟는 것을 잠시 잊었다. 차가 제 속도를 잃고 느려지자 뒤따르던 차들이 빠바방! 경적을 요란하게 내며 추월해 간다.

, 내가 운전하고 있었지

그는 기겁해 액셀러레이터를 다시 밟으며 제 속도를 찾았다.

 

얼결에 한 대답이지만 그 무렵의 춘천에는 정말 깡패새끼들이 많았다. 시내 지역을 반 가까이 점한 거대한 넓이의 미군부대를 위시해 공병부대니 군단사령부니, 한국군의 여러 부대들까지 포진한 군사도시라서 그럴까? 미군들을 상대하는 양공주 촌에다가 일반인들 상대의 사창가까지 시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가운데 그에 빌붙어 먹고 사는 기둥서방이라 할, 눈매 사나운 깡패들이 많았다.

그런 시내 분위기에 편승해, 학교를 다니다 중퇴한 애들이 잭나이프 같은 흉기를 갖고 다니며 골목 같은 후미진 장소에서 또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품 갈취하는 일도 잦았다.

그는 그런 범죄의 피해를 본 적은 없었다. 등하교를 할 때 항상 주의해서 큰 길로 다녔기 때문이다. 막 되먹은 깡패들이라 해도 큰 길에서까지 못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의 치안은 최소한 유지되던 춘천이라 할까.

여하튼 그 날 밤 얼결에 아버지한테 그런 대답을 한 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정말, 깡패새끼들을 만나면 멋지게 해치우고 말겠다는 의지까지 난데없이 생겨나 더욱 열심히 매일 밤 당수를 독학했다. 그러던 중에 1968년 여름방학을 맞아,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사는 충청도 외갓집으로 혼자 가게 된 것이다.

 

그의 차는 홍천 외곽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쌀쌀한 바깥 날씨임에도 차 안은 덥다. 늦가을, 따가운 햇살 때문이다. 그는 버튼을 눌러 조수석 쪽 창을 반쯤 내렸다. 싸늘한 바깥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들면서 덥던 실내가 얼마 안 가 완화되었다.

 

춘천 집의 좁은 뒤란에서 당수를 수련하기는 편치 않았다. 특히 2단 옆차기처럼 일정 거리를 날아야 할 때는 담벼락과 집채 사이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동작해야 했다.

외갓집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뒷동산에, 큰 나무들 사이로 제법 널찍한 풀밭이 있어서 그곳을 도장 삼아 마음 놓고 활개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듯하게 자란 굵은 소나무를 하나 택해 새끼줄로 둘둘 감아놓으니 정권 치기나 손바닥을 날 세운 수도 치기를 연습하기도 제격이었다. 물론 싸움 상대의 머리 부분쯤이라 여기고서 발차기 하기도 좋았다.

시간을 늘려, 하루에 한 시간씩 뒷동산에서 당수 수련도 하고, ‘이번 방학 동안에 나머지 반을 다 떼자는 결심으로 챙겨온 두꺼운 ‘AW메들리영어 참고서도 다섯 페이지씩 진도를 나가고, 정말, 오랜만에 알차게 보내는 여름방학 같았다.

만일 춘천 집에 있었더라면 5남매가 함께 쓰던 그 좁은 방에서 누나나 동생들에 부대껴 영어 공부는커녕 뒤란에서 하는 당수 수련도 여의치 않았을 게다. 바로 밑에 동생 녀석이 형을 따라 자기도 당수 하겠다며 한참 성가시게 굴던 참이었으니까. 춘천 집의 형편을 생각한다면 방학 한 달간이라도 외가로 놀러오기는 아주 잘한 일이었다.

 

작은 동산이지만 제법 많은 나무들에다가, 수풀도 우거져 그의 당수 독학 광경은 웬만해서는 사람들 눈에 뜨일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쯤 지났을 때 동네 아이 눈에 뜨이고 말았는데 결국 그날 밤 사건의 태동(胎動)이라 할 만하다.

그 아이는 소 먹일 꼴 베러 산에 올랐다가 난데없는 당수 수련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같은 또래라 동네 길에서 마주치면 눈짓인사는 나누던 사이였다.

야아, 대단하구나야!”

그 아이는 감탄하며 서 있었다. 앞발차기 동작을 하던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계속했는데, 언젠가는 동네 사람들 눈에 띌 거라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서너 번 더, 소나무에 새끼줄을 감아놓은 눈높이 위치를 겨냥해 앞발차기를 연습한 뒤 그는 비로소 그 아이를 제대로 보며 말했다.

왔어?”

그런 뒤 다시 몸을 움직여 2단 옆차기를 실시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당수 동작 중 가장 멋진 동작에, 그 아이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같은 동작을 네 번이나 하자 금세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가 소맷자락으로 목덜미의 땀부터 닦을 때 그 아이가 감탄의 표정이 여전한 채 물었다.

니가 지금 한 게, 그 뭐야, 당수? 그런 기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허구까지 술술 지어내고 말았다.

내가 도장에서 당수 배운 지 1년이 넘었어. 1단이지. , 여기 시골에서는 잘 모를 테지만 춘천 바닥에는 깡패새끼들이 득실거리거든. 그래서 그 새끼들이 돈을 달라고 까불면, 까짓 거, 내가 당수로 콱 조지는 거지. 몇 놈 잘 조졌지, 지금까지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방학 때도 늘 당수를 연마해 두어야 해.”

 

돌이켜보면 그는 당시에 이미 소설가 기질을 보였던 게 아닐까? 환갑 가까운 나이에 모 문학지에 소설 두 편을 발표하는 둥, 뒤늦게 소설가의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아내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구한다는 전도차원에서 성당에 데려가려고 할 때마다 그는 당신, 내가 그리도 한가해 보여? , 요즈음 작품을 구상하느라 머릿속이 여간 바쁜 게 아냐!’하는 말로써 사절한다. 그런 뒤 속으로 정말, 내가 소설가로 등단하지 않았더라면 애먹을 뻔했다.’고 안심한다. 성당이 싫은 게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게, 생각만 해도 못 견디겠는 거다. 교직에 재직할 때에도 그는 강습이라든지 교장의 특별 훈화같이 꼼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을 아주 못 견뎌했다. 그 때문일까, 승진과는 거리가 먼 평교사로 퇴직하고 말았다. 그의 잠재의식 속에, 한창 자랄 때 그 좁은 방 한 칸에서 누나나 형제들과 함께 지내느라 몹시 힘들었던 경험이 역력하게 남아서 빚어진 일들이 아닐까?

지금 차는 홍천과 횡성 사이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삼마치재 터널이다.

 

산에서 당수를 연습하다가 동네 아이한테 목격된 다음 날 밤이다.

달빛 한 점 없이 어두운 그 밤에 동네의 또래 애들 대여섯이 그를 찾아 왔다. 늘 열려 있는 사립문이니 그냥 마당 한복판으로 들어와, 방안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는 그를 부른 것이다.

보옹길아! 보옹길아!”

봉길(鳳吉)이란 다소 촌스런 이름은 그의 아명인데 춘천 집과 여기 충청도 외가에서 쓰이고 있다. 물론 친척 어른들도 그리 부른다. 족보의 항렬을 따라 점잖게 지은 준연(俊淵)’이란 호적상의 이름은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식적인 공간에서 쓰인다.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보던 만화책을 놓고 일어나려는데 외할머니가 먼저 방문 열고 내다보며 말했다.

우리 봉길이는 왜 찾냐?”

집단으로 위해하려는가 싶어 카랑카랑하게 묻는 말이다. 그러자 동네 애들 중 어제 낮의 그 아이가 방에서 새나오는 백열등 불빛에 제 모습을 드러내며 공손한 어조로 답했다.

물고기 잡으러 같이 가려구야.”

우리 봉길이는…… 공부해야 되는데?”

그런 할머니가 민망스럽게도 그가 실마루로 나서며 말했다.

할머니. 공부는 낮에 다 했어. 쟤네들을 따라가서 물고기 잡는 것 좀 구경하다가 올게.”

그러잖아도 그는 외삼촌의 헌 만화책이나 들척이며 밤 시간을 보내느라 따분했다.

개구리들이 사방에서 와글와글 시끄런 논두렁길.

한 아이가 막대 끝에 낡은 천을 감아 만든 횃불을 쳐들어 앞길을 밝히는 가운데 동네 애들과 그는 행렬을 이루어 강으로 향했다. 어제 낮의 그 아이가 이제 강가에 가면 봉길이가 당수를 보여줄 테니까 잘들 보라구야!’ 연실 떠들었다.

몇 년째 여름방학 때마다 보는 얼굴들이지만 함께 어울리기는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이 날 밤은 신고식이 치러지는 순간이었다. ‘당수 한 번 제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에 그의 손아귀에 땀이 배었다.

강물이 강바닥의 자갈들에 부딪히며 흐르는 절절절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강가에 도착했다.

횃불이 짙은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며 만들어낸 일정 부분의 모래밭 공간. 한복판에 그가 대련 자세로 서고, 동네 애들은 넉넉한 거리로 삥 둘러앉았다. 그는 마침내 야압!’ 기합소리를 내며 2단 옆차기를 시연했다. 발이 빠지는 모래밭이라 동작하기가 불편했지만 혼신을 다 해 멋지게 해냈다.

와하!”

동네 애들이 탄성을 질렀다. 우쭐해진 그는 한 번 더 2단 옆차기를 해 보이곤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다른 동작들도 있지만, 이쯤 할게. 다음에 기회가, 다시 있을 때, 그 때 보여줄게.”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한테 당수 좀 가르쳐 주면 안 되겠냐?”

생각지도 못한 부담스런 요청이다. 그의 당수라는 게 너덧 가지 동작에 불과할 뿐더러 그조차도 창 너머로 익힌 독학이다. 그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다른 아이가 그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이런 새끼 같으니라고. 당수 같은 무술은 훤한 낮에 배워야 할 텐데 우리가 낮에 언제 그럴 시간이 있냐? 밭의 김도 매고 논의 피도 뽑고 소 먹일 꼴도 베고 돼지거름도 치고…… 종일 일하다 보면 금방 어두운데 언제 당수를 배워?”

또 다른 아이가 상황을 정리했다.

아니 강에 와서 뭐하는 기야? 빨리 물고기나 잡자고야.”

강이라고는 하나 깊어야 무릎까지 물이 닿는 정도다. 춘천의 소양강에 비하면 강이 아니라 하천이라 불러야 했다. 어쨌든 그는 동네 아이들을 따라 무릎 위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강물로 들어갔다. 물고기 잡기가 시작된 거다. 횃불을 든 아이가 천천히 나아가는 뒤로 따라들 가면서, 눈에 뜨이는 물고기를 손으로 잡는 방식이다. 미꾸라지 꺽지 퉁가리가 느닷없이 어둠 속에 등장한 환한 불빛에 놀라, 마치 강바닥에 얼어붙은 듯 그대로 있었다. 흐르는 물살 아래 그러고 있는 물고기를 손으로 조용히 접근해 움켜쥐면 되었다. 잡는 대로, 한 아이가 든 주전자에 담으며 강바닥을 누볐다.

횃불이 사그라질 즈음에 물고기 잡기를 마치고 강가로 나왔다. 모닥불에 삥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노는 일이 이어졌다. 주전자에 든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꺼내 밸을 따 날로 먹고는 소주를 마시는 거다. 그는, 불에 구운 것도 아니고 날로 먹는 물고기라 망설였지만 결국은 입안에 넣어 억지로 으직으직씹어 먹고 말았다. 혼자 예외가 되기 어려운, 전체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고소한 물고기 맛이라니! 그 다음, 옆의 아이가 건네는 술병을 받아 병나발을 한 모금 정도 불었더니 이내 취기가 올랐다. 애들이 준비해 온 소주가 댓병으로 다섯 개나 되었다. 취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부르는 유행가.

사아나이 가아슴에도 눈무울은 있다아. 이이렇게 정을 주우우고 떠어나……’ ‘다앙신과 나아 사이에에 즈어 바다가 읎었다아면 쓰으라린 이벼얼은……’ ‘삼각찌이 로오타리에 궂은비는 오오느은데……

나중에는 합창으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내놓은 담뱃갑에서 한 개비씩 꺼내 피워 물자 밤하늘로 어지럽게 흩어지는 허연 담배연기들.

사실, 그는 지난 봄 학교 소풍 때 반 친구가 가방에 숨겨 갖고 온 미제 캔 맥주를 하나 마셔 본 게 음주 경험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놓고 독한 소주를 연실 마시고 취하기까지 하다니. 어디 그뿐인가, 담배를 피워 보기도 처음이었다. 들이켜 본 담배연기가 매캐해서 눈물 콧물이 다 났지만 그렇다고 모두들 담배 한 대씩 피워 물고 노는 질펀한 자리에서 혼자만 예외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자신을 스스로 깡패들 많은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딴 무술 유단자로 포장해 놓았으니, 시골 아이들이 다 하는 술 담배 따위에 쩔쩔 매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터.

술자리가 파할 즈음에 그는 몸을 가누기 힘들게 만취했다. 전 날 산에서 만난 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외갓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변명하기를 잊지 않았다.

아 씨발, 몇 달 만에 술 좀 마셨더니 감당이 안 되네. 씨발.”

춘천이라면 통금 사이렌이 늑대처럼 으허어헝 하고 울었을 늦은 밤인데 충청도 시골에서는 그저 논 개구리들 울음소리만 성할 뿐이었다.

아이고, 이 놈이 꼭 용석이가 방학 때마다 하던 짓을 고대로 하네!”

집 마당까지 부축해 준 아이는 슬그머니 달아났고 그가 혼자 비틀비틀 토단에 올라설 때, 방문 열고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속상해 내뱉은 말씀이다.

용석이란 그의 하나뿐인 외삼촌이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닌다는데, 학창 시절에 방학만 되면 집에 내려와서 외할머니 속깨나 썩혔다던가 했다. 100여 리 떨어진 충주 시내에서 자취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니, 용석이 외삼촌도 고향 마을의 또래들 중에서는 유일한 고등학생이 아니었을까? 춘천에서 온 봉길이 조카처럼 말이다. 그가 희망리 마을 애들의 두목처럼 행세하게 된 것은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땄다는 위세도 한몫했겠지만 당시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고등학생 신분이었다는 게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시골 애들은 집에서 일꾼처럼 지내는 자신과 다르게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 신분의 또래를 선망했다. 드러내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이래저래 그는 그 날 밤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도될 수밖에 없었다.

 

새삼 놀라운 사실은 시골 동네 애들이 술 담배에 아주 능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하는 경험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는 사실상 어른 세계에 진입한 애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옆 동네의 여자애와 가끔씩 그 짓을 한다고도 했다. 동네의 담뱃잎건조장이 그런 장소로 쓰인다나. 손으로 하는 수음이 고작인 그로서는, 그 얘기를 듣던 순간 열패감에 기가 죽었다. 그러나 춘천에 있는 양공주 촌에 가면 말이야하며,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사실은 자기도 주워들었던 음담을 질펀하게 늘어놓으며 괜한 허풍을 떨었다. 그러면서 가슴 한 편으로는 영 편치 않은 양심이었다.

시골 애들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인물처럼 이중성을 가졌던 게 아닐까도 싶지만, 그건 아니었다.

술 담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종일 고된 농사일을 하다가 밤이 되어야 가까스로 쉬는 그 애들한테 딱히 무슨 낙이 있었을까. 동네에서 외진 데로 나가 술 담배로 낙을 삼을 수밖에. 텔레비전도 없고 기껏해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배우는 게 유행의 첨단을 따라가는 거라 여기며 살았을 그 시절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에서야. 하긴, 춘천 같은 도시에서도 텔레비전은 잘 사는 집에나 있는 고가품이었다.

옆 동네의 여자애와 가끔씩 몰래 그 짓을 한다는 애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어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질서에 용인되지 않을 뿐이지, 딱히 나쁜 짓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강간이나 간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혹 여자 애가 임신하는 일이 발생하면 얼마 후에는 마을회관에서 결혼식이 치러지고 한 쌍의 농사꾼 부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담뱃잎건조장 같은 은밀한 곳에서 그 아이가 남몰래그러면서 지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의 시골 애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해 보지만, 솔직히, 평온한 시골 풍경 속의 애들은 뜻밖에도 까부라진 애들이었고 반대로 깡패들도 널려 있는 대단한 도시 춘천에서 내려온 그 자신은 실상은 순박한 고등학생이었을 거라는 기묘한 의구심을 어쩔 수 없다. 수음하는 게 고작인 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소주니 담배니 모두 그 시골동네에서 처음 경험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춘천 시내의 서쪽 끝에 위치한 고등학교와 봉의산 바로 아래 달동네에 있는 그의 집 사이의 거리가 십 리 가까이 되었다. 십 리 되는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서 등하교를 하느라 경황이 없는데 언제 술 담배를 배우고 유행가까지 배울 텐가.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상한 조합이었다. ‘충청도 시골의 까부라진 애들과 춘천에서 온 순박한 봉길이가 함께 어울리는 1968년 한여름의 조합 말이다.

 

남원주 휴게소간판이 보인다. 그는 차의 속도를 바짝 낮추어 휴게소 내 광장으로 진입했다. 주차돼 있는 차들이 많지 않다. 평일이기도 하지만 재작년, 원주에 사는 처남 집에 가다가 잠깐 들렀을 때에도 주차된 차들이 별로 없었다. 편히 쉬고 갈 만하다.

화장실에 들른 뒤 휴게실 앞 빈 벤치에 앉았다. 춘천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시간 남짓해 음성군 운포면에 닿지 않을까?

한창 젊었을 때에 여행길에 나섰다면, 보통 서너 시간은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쉬었다. 이제는 그러기 힘들다. 오줌을 참기도 어렵거니와 몸도 힘들어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 피로하다. 여기서 10여 분 쉬고 가자. 인근 산의 빛깔도 이미 단풍 빛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초겨울로 들어서려는 늦가을이다. 용석이 삼촌도 세상을 떴다. 3년 전이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뜬 지는 20년 가까이 된다.

 

동네 애들과 밤에 강가에서 어울린 날을 계기로 순식간에 친해졌다. 이제는 이틀에 하루 꼴로 밤에 만나 늦도록 어울리는 것이다.

어울리기에는 일정한 룰이 있었다. 우선은, 반드시 저녁밥을 먹고 난 밤 시간에 한했다. ‘AW메들리 참고서를 다섯 페이지 떼고, 당수 수련을 한 시간쯤 하고나면 닭장 청소 같은 소소한 일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그와 달리, 동네 애들은 해만 뜨면 잠시도 쉴 새 없이 집안농사일을 돕다가 해가 진 뒤에야 비로소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자식을 낳으면 초등학교까지만 가르치고 그 후로는 집안농사일을 거들게 하다가 장가나 보내면 된다는 게 당시 농촌 부모들의 생각 같았다.

두 번째 룰은, 모여서 놀 때는 반드시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동네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달동네도 있고 깡패들도 널려 있는 도시 춘천과 달리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는 전형적인, 조용한 농촌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서너 채의 기와집 외에는 초가집들이 대부분인 고즈넉한 풍경으로서 전통적인 유교적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젊은 놈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떠들썩하게 노는 모습을 동네 어르신들에게 절대 보여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그는 단순히 춘천에서 내려온 봉길이가 아니라 남다른 당수 실력까지 갖추고서 춘천에서 내려온 고등학생 봉길이로서, 이틀에 하루 꼴로 밤마다 동네 애들과 무리지어 강가로, 먼 동네로 여기저기 놀러 다니게 된 것이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동네 애들이 시오 리 떨어진 먼 동네까지 원정 다녀오는 일은, 그와 어울리면서부터였다. 전에는 동네에 있는 강가에서 놀다 오는 게 고작이었는데 대단한 봉길이와 어울리게 되자 그 후로는 원정도 다니며 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원정지는 운포면의 면소재지 동네였다. 희망리에서 신작로를 따라 서남 방향으로 시오 리 걸어가면 나타나는 면 소재지 동네. 작은 규모이지만 우체국도 있고 약방이니 철물점이니 줄지어 있어서, 나름대로 시가지였다. 그래서일까, 희망리 애들보다 확실히 눈매 사나운 또래 애들이 어슬렁거리며 텃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희망리 애들은 어쩌다, 닷새에 한 번 면소재지 장거리에서 열리는 장날에 가도 눈을 아래로 깔고 조심스레 다녔단다.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깡패들이 널린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따고 온 고등학생 봉길이가 자기들과 함께 있으니!

밤이 되면 봉길이를 앞세워 흙먼지 날리고 자갈들도 많은 신작로를 시오 리나 걸어가 면소재지 동네를 괜히 한 바퀴 돈 뒤,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담배도 사고는 다시 희망리로 귀가하는 것이다. 귀가할 때도 조용하지 않았다. 신작로를 독차지한 듯 무리지어 걸어오면서 소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유행가도 고래고래 불렀다.

그러다가 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이 작은 사건이 그날 밤 사건의 도화선이다. 취해서들 희망리로 돌아오다가 나지막한 고개에 다다랐을 때, 한 아이가 그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다.

봉길아. 우리는 길가 숲에 숨어 있을 테니까, 니가 당수로 한 번, 고개를 넘어오는 놈을 아무나 한 놈 잡아 솜씨 좀 보여주라야.”

그런 부탁이 나올 만했다. 그 날 밤까지 몇 번이나 면소재지 동네를 휘젓다가 왔으나 특별한 사건도 없었던 데다가, 오랜만에 봉길이의 당수 실력을 다시 보고도 싶었다. 모처럼의 부탁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작로 변에 폼 잡고 서서 고개 너머에서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렸다. 물론 동네 애들은 근처 숲속에 숨었다. 달빛이 제법 훤하게 살아난 밤이다.

처음 강가에서 신고식을 치르던 날 밤은 달빛 하나 없던 그믐밤이었지만 이 날 밤은 열흘 정도 지나 달빛이 어지간히 살아난 상현달 밤이었다. 팔자걸음으로 고개 너머에서 나타난 사내가, 그가 난데없이 앞길을 가로막으며 멱살을 쥐자 !’ 하며 기겁한 표정이 달빛에 역력하게 드러난 건 그 때문이다.

, 이 새끼야! , 춘천에서 온 봉길이 알아?”

, 아뇨!.”

이런 씨발 놈이!”

사실 말도 안 되는 시비 걸기다. 그는 놀라 와들와들 떠는 사내의 멱살을 풀어주는가 싶다가 순간 오른발로 후려차기를 강행했다. 세찬 발길에 상체를 맞고는 그대로 나갔다떨어지는 사내.

아이구야, 사람 살려라!”

엉금엉금 기다 일어나 소리 지르며 달아났다. 얼마나 다급한지, 신었던 흰 고무신들까지 벗겨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10분 넘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빛은 화창하지만 그늘진 곳은 한기가 역력하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차로 갔다.

그 새 뜨겁게 달궈진 차 안의 공기. 다시 조수석 옆 창을 열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이런, 창이 내려오다가 멈췄다.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다시 버튼을 눌러도 별 변화가 없다.

젠장!’

천생, 나중에 춘천 가서 아는 카센터에 맡겨야 할 듯싶다. 이런 잔 고장이 처음은 아니다. 이 차를 구입한 지 10년이 넘었으니. 그는 하는 수 없이 조수석 쪽 창이 반쯤 내려진 채로 주차장을 떠났다. 여기 남원주 휴게소에서 제천까지는 30분 정도 걸릴 듯싶다.

 

고개 너머에서 한 사내를 보기 좋게 후려차기로 해 치운 사건 후로 그는 마치, 몇 십 년 뒤 TV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 김두한처럼 되고 말았다. 괜히 사나운 눈매로, 무리의 한가운데에서 무리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우두머리 모습이랄까.

희망리 애들과 그는 무리지어 신작로 시오 리를 걸어 면소재지 동네에 일단, 도착한다. 어깨에 힘들 주고서 짧은 시가지를 두어 번 돌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구멍가게에 들러 소주와 담배를 산 뒤 다시 희망리를 향해 신작로 길을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다. 물론 모두 소주에 취해 유행가도 부르고 담배도 피우면서 나름대로 향락을 즐긴다.

춘천이었다면 통금에 걸려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밤늦은 시간대였다. 하지만 다행히 충청북도에는 통금이 없었다. 정부에서 제주도와 함께 통금이 없는 지역으로 공포한 덕분이었다. 섬나라인 제주도처럼 충청북도도 치안유지가 잘 되는 순박한 사람들의 지역이라고 정부에서 판단한 걸까.

그가 춘천에 있었더라면 늑대처럼 으허허어엉!’ 음산하게 우는 통금 사이렌 소리에 쫓겼을 텐데 그럴 일 없는 충청북도라니, 얼마나 여유로운 밤 시간인가. 그를 우두머리로 한 희망리 애들의 밤 시간 즐기기가 날로 성해진 건 그 때문일 게다.

그러면서 춘천에서 당수 배운 봉길이란 학생이 왔다는 소문이 일대에 확 퍼진 듯싶다. 워낙 좁고 평온한 시골바닥이기에 소문이 도는 건 순식간이다. 그 결과 그에게 업보처럼 위기가 다가왔다.

그가 어언 45년 간 충청북도 외가 쪽 동네와 인연이라도 끊듯이 발길을 끊게 된 직접적 원인으로서 그날 밤 사건이 다가왔다. 면소재지 동네에서 청주의 모 고등학교로 유학 간 녀석이 있는데 방학이라 집에 왔다가 춘천에서 온, 당수 배운 봉길이소문을 듣게 된 게 그날 밤 사건의 시발점이다. 공교롭게도 녀석은 청주 시내에 있는 당수 도장에서 2단을 딴, 제대로 된 당수 유단자였다.

, 춘천에서 당수를 배운 봉길이란 놈이 툭하면 밤에 여기까지 와 설치다가 간다고? 어디 그럼, 내가 한 번 손봐줄까?”

그런 말을 녀석이 면소재지 친구들한테 내뱉더니 다음 날에는 조금 말이 달라졌단다.

이런 기회에 춘천 당수와 청주 당수가 어느 쪽인 더 센지, 대련 한 번 정식으로 붙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청주 녀석의 두 번째 발언을 그는 분석해 봤다. 녀석도 마음 한 편으로는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게 아닐까? 뒤늦게, ‘춘천이 깡패들 많은 군사도시라는데 거기서 온 봉길이라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했다. 더구나 부근 신작로 고개에서 춘천에서 온 봉길이한테 봉변을 당했다는 사람의 소문까지 들었을 테니. 녀석이 고심 끝에, 부담스런 막싸움 형태보다 무술인들의 반듯한 대결 형태로 승부 짓는 게 낫겠다며 신중한 도전장을 보낸 셈이다.

 

 

녀석의 대련 제안도전장이 하루 만에 그에게 전해졌다. 문서가 아니라 지인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구두 도전장이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희망리 애들의 우두머리로 으스대며 지내느라 재미있는 날들이 순간 허풍 짓으로 들통 날 위기다.

어떡하나?’

달리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동네 애들한테 이제는 그 먼 면소재지 동네에 가지 말고 예전처럼 가까운 강에 가서 놀다 오자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이미 동네 애들은 과연 청주 당수와 춘천 당수가 맞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하는 호기심 내지 설렘마저 생겨나, 돌이킬 수 없는 사태였다.

 

동네 애들이 소 먹일 꼴을 마련하고 돼지 똥을 치우고, 논의 피도 뽑고, 담배 밭의 김도 매고 그러는 땡볕의 낮 시간에 그는 외갓집의 윗방에 누워 이런저런 궁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루에 다섯 페이지씩 잘 나가던 ‘AW메들리영어 공부도 중단됐다.

당수 2단 녀석과 며칠 안 돼 맞닥뜨릴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묘안이 나질 않는 것이다. 물론 녀석의 빠른 시일 내 날을 잡아 대련하자는 제안은 일단 얼버무렸다.

그 새끼, 내가 뭐 한가한 줄 알고 빠른 시일 내에? 웃기고 자빠졌네. 언제고 나중에 한 번은 만나겠지. 그 때 한판 붙으면 되는 거지, 안 그래?”

호쾌한 답변을 기대한 동네 아이가 조금은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놓고는 혼자 윗방에 누워 고민하고 있다. 외할머니는 안방을 쓰고 그는 외삼촌이 쓰던 윗방을 쓰고 있다. 윗방에는 외삼촌이 보던 만화책이니 연애소설책이니, 누렇게 빛바랜 책들이 널려 있다.

액션영화의 한 장면처럼 녀석을 찾아가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드리면서 제가 당수 1단이니까 어디 형님한테 대적이 되겠습니까? 하며 위기를 모면할까?’ ‘아니 그건 너무도 비참한 꼴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나를 믿고 따르던 희망리 애들한테도 업신여김을 당해, 다시는 방학 때 외가로 놀러오지 못하는 딱한 꼴이 될 거다.’ ‘무슨 소리야? 살고 봐야지. 까짓 거, 매 맞아 죽고 나면 누가 알아나 주나? 괜한 외할머니만 고생바가지를 쓰는 거지. 외손주 장례를 치르느라고 말이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까짓 새끼, 칼 하나 품고 갔다가 싸움이 붙으면 그 칼을 휘두르면서 맞서는 거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래, 고작 당수 대련 한 번 하고 나면 그만인 것을 칼까지 갖고 가 난리친다고? 호적에 빨간 줄 갈 일이 있어?’

비좁은 춘천 집의 뒤란과 여기 뒷동산 숲에서 익힌 독학 당수갖고는 청주에서 정식으로 당수 도장을 다니며 2단을 땄다는 녀석한테 도저히, 대적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개학날이나 가까웠다면 어서 춘천 집으로 가서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짐을 싸서 새벽같이 버스 타고 달아났을 텐데, 개학날이 열흘이나 남았으니 그것도 마땅치 않고.

에라 모르겠다. 죽이 되나 밥이 되나 부딪쳐 볼 수밖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긴소매남방을 걸치고는 방에서 나왔다. 외할머니가 돼지 울에 붙어 서서, 팔자 좋게 바닥에 누운 돼지들의 몸을 작대기로 벅벅 긁어주고 있었다. 그래야 돼지 몸에 붙은 벌거지도 떨어지고, 잘 자란다는 얘기를 그는 들은 듯싶다.

돼지 울 앞을 지나 사립문밖으로 나가는 그를 외할머니가 불러 세웠다.

봉길아…… 차려 놓은 점심도 안 먹고 어딜 가는 기야?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더니만.”

밥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해? , 당수 연습하러 가는 것, 옷을 보면 몰라?”

 

차는 조수석 창이 반쯤 열린 채 제천의 외곽도로를 지나고 있다.

그나마 창이 반 내린 정도에서 고장 나길 다행이다. 쌀쌀한 바깥 기운과 화창한 햇빛이 만들어낸 실내의 뜨거운 기운이 뒤섞이면서 적절한 실내 기온을 만드는 것 같다.

남제천 인터체인지에 다다랐다.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 그는 내비게이션을 간간이 보며 국도로 들어섰다. 30분 이내로 음성군 운포면에 도착할 것 같다. 내비게이션 지도에는 운포면 면소재지를 경유해 희망리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루 종일 청주 녀석에 대한 대책에 골몰하다가 맞이한 그 날 밤이다.

45년이나 흘렀는데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건을 저지른 그날 밤이다. 보름달이 훤하게 떠 있었다. 동네 애들이 어김없이 외갓집 마당에 들어와 그를 불렀다.

, , !”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다고 둘러댈까궁리하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이!’ 응답하며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이틀에 하루 꼴로 애들이 찾아와 , , 부르고, 그러면 어이대답하고 나가는 변함없는 반복이 조건반사 같은 결과를 빚은 게 아닐까? 아니면 될 대로 되겠지하는 체념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별나게 보름달까지 환하게 뜬 그날 밤, 동네 애들과 유행가들을 부르며 신작로를 걸어갔다. 그저께 밤에 마시다 남긴 소주 댓병을 찾아, 두어 모금씩 돌아가며 마셨으므로 유행가가 안 나올 수 없다.

사아나이 가슴에도오 눈물으은 이있다아 이이렇게 정을 두우고 떠어나아 가알 바에……

면소재지 동네로 가는 신작로의 중간쯤 왔을 때다. 멀리, 거뭇한 움직임이 있더니 서서히 사람들 무리로 드러났고, 거리가 좁혀지자 무리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면소재지 애들로 보이는 대여섯 명 가운데에 학생모를 쓴, 키가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이가 있었다.

청주에서 온 녀석이구나.’

이런 순간을 예상하며 지낸 때문일까? 뜻밖에 그는 마음이 가라앉듯, 차분해져 스스로 놀랐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양 쪽이 약 3미터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섰다. 무심한 풀벌레 울음소리만이 존재하는 침묵을, 그 쪽 무리에서 키 작은 아이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깨뜨렸다.

그래, 춘천에서 왔다는 그 대단한 봉길이가, 여기 있냐?”

그 아이는 청주에서 온 녀석 옆에 서 있다가 앞으로 나선 것이다. 빈정거리는 어조인 게 춘천 당수와 청주 당수의 대련을 이 자리에서 이끌어내려고 시비 거는 역이다.

그래, 난데?”

하면서 그도 아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아이가 헤헤웃음을 흘리며 한층 빈정거리는 어조로 그래, 당수 실력이하는 순간 그는 얼굴 정면을 주먹으로 냅다 갈겼다. 있는 힘을 다한 단 한 번의 가격에 아이는 어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 떨어졌다. 정확히는, 뒤로 서너 걸음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신작로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잠시 후 엉거주춤 간신히 일어난 아이. 한 손으로 코 부분을 막고 섰지만 신작로 바닥으로 무슨 액체가 툭, , 툭 떨어지는 게 아무래도 코피가 터진 듯싶었다. 급히 지혈을 돕느라 면소재지 동네 애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그는 기세 높여 씨부렁거렸다.

이런 씨팔 놈의 새끼가 얻따 대고 까불어! 에이 썅, 죽여 버릴까 보다.”

그러면서 아이 쪽으로 나아가려 하자, 희망리 애들이 다행히도그의 양 팔을 붙잡았다.

그만 참아, 봉길아.”

순식간에 벌어진 눈앞의 참사에 놀란 청주 당수 녀석. 못 이기는 체 양팔이 붙잡혀 있는 그를 향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공손하게, 그러나 애써 품위를 잃지 않으려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씨. 반갑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왔거든요.”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도 양팔을 애들한테서 뗀 뒤 손을 내밀어 악수했는데 정말, 남은 힘 모두를 모아 내민 손이며 악수였다. 방금 전 아이를 가격한 순간 그의 주먹도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귀가해서 그 손을 살펴봤더니 온통 시커멓게 멍 든 데다가 새끼손가락은 뼈까지 휘어있었다. 만일 청주에서 온 녀석이 맞은 아이의 복수를 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당수 대련을 청했더라면 그는 꼼짝 못하고 자기 제삿날을 만들 뻔했다.

악수한 채로 청주 녀석이 말을 이었다.

저도 당수를 배웠거든요. 2단입니다.”

나도 당수를 배우긴 했는데, , 그깟 당수 백 날 배워 봤자, 구찌로 찌르면 말짱 꽝 아닌가? 아니, 역도산이 당수를 못해서 죽었나? 안 그래, 형씨?”

구찌란 깡패들이 쓰는 은어로 칼을 뜻한다. 몇 년 전, ‘역도산이라는 재일교포 출신의 유명한 프로레슬러가 일본 조무래기 깡패의 칼에 찔려 허무하게 죽은 사건이 있었다. 레슬링 경기 때마다 당수 기술을 사용해 승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의 허망한 피살은 아니, 역도산이 당수를 못해 죽었나?’하는 음산한 유행어를 낳고 말았다. 내게 칼이 있으니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위협에 다름 아니다.

청주 당수 녀석은 기겁해서 침묵했다가, 손수건으로 코피를 막느라 경황없는 키 작은 아이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말했다.

야이, 새끼야. 니가 잘못한 거야. 저 분한테 사과해.”

키 작은 아이가 왼손은 코피를 막으며 오른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말없이 고개를 한 번 꾸벅였다. 그는 몹시 아픈 손으로 다시 악수하면서, 그 아이가 코피만 터진 게 아니라 앞니도 몇 대 나갔음을 눈치 챘다. 코뿐만 아니라 입 부분도 온통 피투성이가 돼버렸기 때문에 아이는 입으로 사과의 말도 못하고 고개만 꾸벅인 것이다. 그는 이거, 내가 간단치 않은 사고를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으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일인 것처럼 넘어갈 수도 없었다. 짧은 시간에 정이라도 든 듯 그는 어울리지 않게, 측은히 여기는 따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많이 아파?”

그러자 아이는 손수건을 잠깐 떼고는 입을 다쳐 제대로 되지 않는 발음으로 겨우 답했다.

……찮아.”

주먹 한 방에 망신창이가 되었으나 애써 사나이의 담대한 기개를 잃지 않는, 딱한 아이였다.

그는 이번에는 청주 녀석한테 아픈 자기 손의 고통을 숨기며 다시 악수를 청한 뒤 말했다.

다음에 봅시다. 그 때, 따로 둘이서 소주 한 병 까자고.”

그런 뒤, ‘춘천에서 온 봉길이의 대단한 당수 실력과 그에 따른 호걸스런 마무리에 존경의 염까지 생긴 희망리 시골 애들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씨발 피 봤으니, 오늘 밤 기분도 좆같고. , 그냥 우리 동네로 되돌아가자고.”

 

돌이켜보면 사건을 저지른 그날 밤자기가 얼마나 기민하게 대처했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요즈음 애들이 잘 쓰는 말로 자뻑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예순세 살 평생에서 1968년 여름날 달밤에 충북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 신작로에서 벌인 그 사건만큼 온몸의 피를 끓게 만든 사건도 없었다. 차를 몰고 운포면에 다가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이제 그는 다소 어법에 맞지 않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 그 날 밤 내가 그 위기를 기민하게 잘 대처했을까?’

……당시 그의 나이 18세였다. 그 나이는 인생에서 가장 신체기능이 좋은 나이다. 많은 학자들이 인간은 사춘기 때 몸의 기능이 가장 왕성하다고 진술한다. 1968년 여름 밤, 그는 왕성한 자신의 갖가지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마치 한 마리의 팔팔한 수컷늑대처럼.

키 작은 아이가 시비를 걸어왔을 때 채 말도 끝나기 전에 주먹으로 가격한 사실 하나만 봐도 그런 기능의 유감없는 발휘였다. 왜냐면, 그는 본능적으로 이 순간 이 아이를 공격하지 못하면 내가 당한다. 허를 찔러야 내가 이길 수 있다.’ 판단했고 그 판단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만일 키 작은 아이가 시비를 거는 대로 그들의 작전에 휘말렸다면 그는 청주 녀석한테 엄청 맞고 터지는 결과를 낳으면서 1968년 여름은 그에게 인생 최악의 여름으로 남았을 게다.

그가 2단 옆차기 동작을 활용하지 않고 극히 단순한 동작인 정권 치기’, 즉 주먹으로 그 아이의 얼굴을 가격한 것 또한 아주 적절했다. 왜냐면 2단 옆차기는 화려하고 멋진 동작이긴 하지만 반드시 일정 거리가 확보되어야 하고 준비자세도 갖춰야 했다. 따라서 키 작은 아이가 바짝 다가서며 시비를 걸던 순간에는 결코 적합한 대응동작이 못 되었다. 평범하고 단순한 정권 치기야말로 그 순간 절묘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가격을 당하자마자 무참하게 쓰러지던 모습이 그를 입증한다.

싸움이 끝난 자리를 더 잇지 않고 씨발 피 봤으니, 오늘 밤 기분도 좆같고. , 그냥 우리 동네로 되돌아가자고.’ 며 마무리한 것도 잘한 일이었다. 괜히 머뭇대고 시간을 끌어봤자, 하나도 좋을 게 없었다. 청주 당수 녀석이 뒤늦게 친선경기 한다 치고 당수 대련을 한 번 합시다고 제안한다면 간신히 가라앉힌 재앙이 되살아나 지옥이 될 게 뻔했다. 게다가 키 작은 아이가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연실 닦고 있었으니, 잠시라도 그 자리에 더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그의 차는 마침내 운포면 희망리 마을로 가는 도로로 들어섰다. 방금 전 운포면 면소재지 동네 가까이 다다랐지만 외곽도로로 그냥 지나쳐 온 거다.

자갈 많고 먼지 나던 신작로가 아닌 깨끗한 아스팔트길이다. 그런데 다른 차들도 없이 한적한 길이라 그는 차의 속도를 시속 40키로 정도로 낮추었다.

웬 사내의 멱살을 쥐고 , 이 새끼야! , 춘천에서 온 봉길이 알아?’하고는 냅다 발로 후려차기를 했던 고개가…… 없어진 듯싶다. 고백하건대 달빛에 드러난, 놀란 사내의 얼굴은 최소한 30대는 돼 보였다. 나이도 열 살 이상 될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운이 좋았다. 만일 사내가 면소재지 파출소로 달려가 춘천에서 온 봉길이란 깡패한테 봉변을 당했다고 신고했더라면 어찌 될 뻔했나? 하마터면, 다음 날 저녁쯤 외갓집에 나타난 경찰관에 체포되어 충주나 청주 같은 대도시의 경찰서로 이송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그건 사내가 하마터먼 맞아죽을 뻔했는데 운 좋게 살았다!’며 안도의 숨이나 쉬고 만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코피가 터진 것은 둘째 치고 앞니가 몇 대 나갔을 키 작은 아이.

다행히 그 아이도 사나이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끝까지 애써 담대한 자세를 유지한 게 아니었을까?

운포면 내에는 마땅한 치과도 없었을 테니 하는 수 없이 충주나 청주의 치과를 다니면서 의치를 해 넣느라 고생이 많았을 게다. 요즈음같이 인정 삭막한 시대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키 작은 아이의 담대함이었다. 그 아이한테 지금이라도 고마워해야 한다.

그의 차가 어느 새 희망리 앞에 다다랐다. ‘희망리란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동네 어귀에 서 있다. 그 바위가 아니더라도 버스 정류장 역할 하던 도로 변 구멍가게집이 허름하나마 남아 있어서 희망리 어귀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 동네 통 털어서 하나뿐이던 그 가게가 이제는 널빤지 여러 장으로 전면을 폐쇄해 버린 폐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바위 옆에 차를 세웠다.

, 그 날 밤 사건의 현장은 언제 지나쳤을까? 험한 신작로 대신 말끔한 아스팔트길로, 차로 5분여 만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을 휙 지나치고 만 것 같다. 우선은 외갓집부터 가 보고, 다시 돌아갈 때 사건 현장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예전의 굽이 많던 신작로를 바로 펴면서 아스팔트길로 만들어 놓아, 과연 그 현장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동네 안 길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놀랍게도 예전의 즐비했던 집들이 대부분 사라진 풍경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철거됐을 그 많던 초가집들은 그렇다 치고 몇 안 되던 기와집마저 빈 터로 남았거나 농촌주택이라는 표준형 단층 건물로 변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주택보다 조립식 창고나 비닐하우스가 더 많아 보이는 동네다.

농촌 사람들 대부분 도시로 나가면서 농촌이 황폐화된다는 뉴스 보도를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듯한데, 45년 전 사건 다음 날새벽에 마지막으로 본 정겹던 풍경이 이렇게 황폐화되었을 줄이야.

45년 전 새벽이다. 그는 책가방 짐을 싼 뒤 외할머니를 찾았다. 외할머니는 새벽부터 부엌 바닥에 앉아 옥수수 껍질들을 벗기고 있었다.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하나 남은 외동아들 용석 아재를 충주의 모 고등학교에 유학까지 보낸 정성은 그렇듯 항시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 나 춘천 가야 해, 차비 좀 줘.”

갑작스레 나타난 외손주에 놀란 외할머니.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옥수수 껍질 벗기기도 멈추고, 그냥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개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는데 그걸 깜빡 잊었어. 어서 집에 가서 공부해야 돼.”

외할머니는 허리를 천천히 펴며 일어나더니 당신의 허리춤에서 비닐로 돌돌 싼 작은 돈뭉치를 꺼냈다.

차비 하고…… 남은 거는 니 에미한테 줘라. 아니 그런데 손이 왜 퉁퉁 부었냐?”

어제 벌에 쏘였어.”

그럼 된장이라도 발라야제.”

괜찮아. 가다 약방 들를게.”

그는 그 길로 외갓집을 나왔다. 먼동이 트는 새벽에 동네 안 길이 아닌, 뒷동산 오솔길로 해서 동네를 떠났다. 외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그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전 날 밤 저지른 일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전개될 듯싶은 불길한 예감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그렇듯 춘천으로 새벽같이 달아나는 방법을 택했다. 개학은 아직도 열흘이나 남았다. 뒷동산을 넘을 때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잠깐 멈춰 서서 외갓집을 비롯한 희망리 온 동네를 돌아보았다.

‘“꼬끼요오!”

닭울음소리들이 여기저기 나며, 굴뚝들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밥 짓는 연기들. 초가집들 사이로 드문드문 기와집이 있는 그 평온한 풍경.

그의 황급한 처지와 비교되던 평온한 풍경이라니…….

그 후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장 45년간이나 발길을 끊었다.

이듬해는 고 3이 되면서 대입예비고사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그 이듬해에는 학비가 저렴한 사범대학에 들어가 미팅하고 데이트하고 실연도 하고 그러느라 경황이 없었다. 그러면서 외갓집은 추억 혹은 기억 속의 무엇이 되었다.

솔직히 마음만 먹었다면 외갓집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한테 주먹을 맞고서 앞니들이 다 나간, 망신창이가 된 키 작은 아이가 마음에 걸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뒤늦게 그 날 밤 사건을 문제 삼을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

그는 낡은 기억을 뒤지듯, 동네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골목이라면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길을 뜻하는데 동네가 황폐화된 지금 골목이란 표현이 합당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 휴대폰이 부으응!’ 울었다. 아내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차에쥐색빛깔지갑있나확인바람

쥐색빛깔지갑이라면 아내가 성당 갈 때마다 지참하는 돈지갑이다. 그걸 차 안 어디에 둔 모양이다.

이런 칠칠치 못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백 날 콩나물 값 몇 푼을 깎으면 뭐해? 돈지갑도 잊고 다니면서……!’ 속으로 발칵 욕하던 그는 돌연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만 골목을 더 걸으면 외갓집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그건 지금 중요치 않다. ‘희망리바위 있는 데로 황급히 걷는데, 조수석 창이 고장 나서 반쯤 열어둔 차 생각이 퍼뜩 났기 때문이다. 인적도 그친 동네처럼 보이지만,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 조수석 창 안으로 손을 넣어 차 문을 연 뒤, 돈지갑을 갖고 갈 수 있다.

황급히 뛰어갔더니, 늦가을 햇살 아래 차는 그대로 있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움직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불편한 차 실내에서 몸을 사방으로 움직여가며 쥐색빛깔 지갑을 찾았다. 없었다. 글러브 박스는 물론이고, 의자 뒤의 주머니 닮은 부분의 속과 의자 밑까지 샅샅이 살폈으나 그 지갑을 찾을 수 없었다.

모자란 여편네 같으니라고. 대체 어디다 흘린 거야.’

마지막으로 트렁크를 뒤져볼 생각에 차 밖으로 나왔는데 그 때 조수석 쪽의 창유리가 푸르륵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졌다. 반 정도 열려 있던 게 이제는 활짝 열린 꼴이다. 장만한 지 10년 넘었음을 어김없이 증명하는 고물차다.

이제 어떻게 한다? 이대로 400리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꼴불견도 그렇지만, 차 안으로 들이치는 쌀쌀한 바람을 세 시간이나 감당해야 한다. 그건 못할 짓이다. 천생, 카센터라도 찾아, 어서 해결하자. 그러려면 면소재지로 가 볼 수밖에.’

그는 아까 오던 아스팔트길로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45년 전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이고 뭐고 차창 고장을 수리하는 일이 급하다.

면소재지 동네에 도착했다. 희망리와는 다르게 제법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선 장거리. 약국, 다방, 당구장, 철물점, 농협 하나로마트, 우체국…… 인적은 뜸하지만 있어야 할 건물들이 작은 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마침내 우정 카센터란 간판의 조립식 건물을 만났다.

차를 건물 앞에 세우자 키 작은, 때에 전 가죽점퍼 차림의 사내가 안쪽의 작은 사무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 참! 조수석 창유리가 내려가서는 안 올라오거든요.”

고치는 데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오늘 중으로야 수리되겠죠?”

그 말에 사내가 입을 벌리고 헤헤 웃는데 앞니 모두가 누런 금니였다. 작은 키에 앞니를 다 간 사내……. 그는 억지로 따라 웃으며 등허리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 때 성가시게도 휴대폰이 또 부응울었다. 아내가 다시 보낸 문자메시지.

찬미예수님지갑주방에서찾았어미안해당신지금어딨어?’

이럴 때 답신이 가능할까?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이상한 답신이 아내에게 가능할까? 그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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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강가 자갈들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박제(剝製) 천벌을 받았다

흘러가버리는

강물을

축하하는 까닭이다

 

덧없는 인생이어서

다행이었다

 

강물이 흐르며 빚어지는 무수한

무늬들

그 중 몇 점이라도 사랑하며

함께 흐르는 게

사는 즐거움이다

 

봄날

강가에서

화창한 冥想 한 점

물결 위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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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월남에서 돌아왔다.

커다란 군함을 타고 비둘기 태극기 풍선 날리는 조국의 항구로…… 환영의 플래카드 속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비행기로, 중상자 후송 비행기로 사월 어느 날 조국의 남부지방 어느 적막한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내 가슴에도 훈장은 걸렸다.

한쪽 발과 한쪽 눈은 영영 내게서 달아나고, 몇 십 그람 무게를 가진 훈장 하나가 가슴에 걸렸다. 온통 붕대에 싸인 채로 나는 한쪽 남은 눈으로 후송 비행기 창을 통해 조국의 거뭇거뭇한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아아 일 년 만의 조국이었다.

나의 한쪽 남은 눈에서, 그래도 눈물은 흘러나왔다.

내가 탄 비행기가 내린 모 공군기지. 거기에 비행기의 엔진이 멎고, 부상자들이 차례차례 들것에 실려 내려질 때 나를 감싼 붕대의 섬유조직 틈새로 밀려들던 조국의 냄새. 매캐한 비행기 연료냄새 너머 밀알이 움트는 냄새, 구수한 흙냄새…….

그리고 공항의 가득한 적막. 적막은 조국에서도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 쪽 면으로 검푸른 바다의 출렁임이 보일 뿐 나머지 삼면은 초록빛 야산뿐인 공항, 엔진을 끄고서 졸고 있는 비행기들, 무료한 표정의 관제탑, 군복무의 임무 속에서 세월의 나사를 매만지는 정비병들, 역시 세월의 들것을 무료하게 나르는 의무병들.

후송병원 침대에 누웠을 때는 유리창을 통해 만발한 벚꽃들이 보였다.

벚꽃들은 절정이었다. 병원 둘레 가득히 벚꽃들은 웃고 있었다. 연분홍, 연분홍 웃음들…….

병원은 벚꽃의 소리 없는 웃음들만 있었다. 일정한 시간으로 들르는 간호장교들의 거동밖에는, 심심하기만 했다. 내 침대머리에 걸린 훈장도 심심해 보였다. 나는 그런 훈장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심심함을 문질러버리는 동작으로 그 병원의 시간들을 걸어 나갔다.

애매한 훈장.

내 한쪽 눈과 한쪽 다리가 달아난 곳은 전쟁터 아닌 전쟁터였다.

나는 사단본부의 안전한 장소에서 복무했다. 내가 작성하는 서류에 의해 수많은 전우들이 월남의 이곳저곳으로 이동하였다. 내 펜대에 의해 부상당하거나 포로가 되거나 승리하거나, 혹은 어느 땅굴에서 베트콩과 부둥켜안고 싸울 거라는 상상이나 하면서 월남파병의 세월을 끄적끄적 보내고 있었다.

외출 나간 병사들이 납치될 뻔한 사건이 잇단 뒤로 사단본부의 근무자들은 모두 안전한 영내생활로 제한됐던 그 즈음이었다.

물론 나도 처음 월남에 상륙했을 때에는 전투부대 소대원이었다.

매복 작전.

거미줄 같은 인계철선의 크레모아가 깔린 현장에서 숨죽여 주위를 살피던 긴장 속 나날들. 그런데 매복 작전이 네 달째 이어지면서…… 나는 아무 데로나 총을 갈기고서 영창에라도 가고 싶었다.

끝없는 매복 작전. 숨은 적이 먼저 드러나거나 숨어서 기다리던 우리가 먼저 드러나거나, 어느 쪽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몸을 드러내느냐에 전투의 승패가 달린 그 지루한 작전. 성가신 숲 모기들을 견디며 오줌도 매복한 채 누어야 했다. 땀에 젖다가 마르다가를 반복하며 소금기마저 배던 내 몸.

한 번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보겠다는 나의 참전지원 의사는 착각이었다. 후회가 막급한 매복생활 다섯 달째 나는 느닷없이 사단본부로 전출되면서 그 지루한 전투부대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안전한 사단본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날사건은 터져버렸다.

그 날, 엄폐된 막사에서 책상의 일들을 끝내고 기어 나왔을 때 하늘은 푸르렀다. 비가 그친 직후였다. 월남의 날씨는 늘 그랬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도 이내 화창해지는 게, 돌아서면 베트콩이 된다는 그곳 민간인들의 표정 같았다.

나는 푸른 하늘 아래, 본부의 연병장을 걸어가고 있었다.

태양의 무수한 조각들이 땅바닥과 야자수의 푸른 이파리들과 쇳덩이 포신들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는 걸어가고 있었다.

월남의 태양은 강인했다. 철모를 부술 듯 하늘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영내 가득히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나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 걸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꿈틀대는 게 역력했다. 밀림의 모기들처럼 군복을 사정없이 꿰뚫고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 땀이 흘렀다. 영내는 넓었다. 적막은 넓었다.

적막 속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내 발끝에 무엇이 걸렸다. 나는 눈을 거의 감은 채로 그것을 걷어차 버렸는데…… 고막의 한계를 넘는 폭음과 함께 미쳐 날뛰는 한쪽 다리와 태양을 보았다. 걷어찬 것은 수류탄이었다. 적막은 찢어졌고 찢어진 틈새로 태양의 비늘들이 가득 퍼부어졌다.

그리고 내게도 훈장이 수여됐다.

정말 애매한 훈장이었다.

내 손아귀에 들어가는 그 쇳덩어리의 면적은, 내 한쪽 다리와 한쪽 눈알을 보상해주기엔 너무 좁아 보였다.

그리고서…… 나는 다시 이 적막한 공간에서 심심함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신음들이 끊이지 않지만 왜 이리 후송병원은 적막한 곳으로 여겨질까? 게다가 판에 찍은 듯 반복되는 일상의 심심함까지. 어쩌면 이런 풍경은 또 다른 전투 풍경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친 몸을 갖고서 통증을 견뎌 나가야 하는, 지루한 날들에 대한 매복 작전?

유리창 밖으론 벚꽃들이 웃는데 온종일 쑤시는 상처. 내가 남자로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유일한 낙인 간호장교들의 몸매와 움직임. 금빛 광택뿐이던 훈장에는 꼬질꼬질한 손때가 묻어갔다.

경자를 만난 건 초가을이었다.

벚꽃이 다 떨어져버리면서 끊임없이 등창()과 싸워야 하는 여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 덧 선선한 가을바람일 때 경자가 우리 병실에 들어섰다. 경자는 세 번째 바뀐 담당 간호장교였다.

경자는 광대뼈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추녀였다. 모래밭의 개미떼 같은 주근깨들.

그 경자가 가을이 지나가고 매서운 추위가 닥친 날, 내 침대 옆 유리창에 사랑합니다란 글씨를 손가락으로 썼다. 흰 성에가 가득 핀 유리창이 사랑합니다란 글자들로 파이면서 밖의 겨울풍경이 새어들어 왔다. 무거운 잿빛 하늘, 벚나무 가지마다 핀 눈송이 꽃들.

사랑한다니?

몸의 절반이나 잃은 꼴인 나를 사랑한다는 뜻인가? 점심식사 후 낮잠들 자느라 조용한 주위를 둘러보고서 나는 소리 낮추어 반문했다.

정말입니까?”

경자는 정말입니다고 다시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써보였다. 곤혹스러웠다.

경자가 사랑합니다란 글씨를 쓴 것은 그녀가 시월에 오고서 세 달 만의 일이었다.

세 달.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와 체온을 재고 주사를 놓았었다. 가끔씩 내 침대 맡에 머물며 얘기를 건네기도 해서 말동무가 생기나보다 했는데 그렇게 느닷없이 사랑한다 했다.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으로 그런 글씨를 쓸 나이가 아니었다. 서른이란 노처녀 나이. 넙적한 얼굴에 가득한 개미떼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더 많은 나이, 결코 일시적인 행위가 아닌 고백, 세 달이란 시간.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자기의 손목을 내밀어 내 손으로 쥐게 만들었다. 곤혹스런 내 외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랑합니다’ ‘정말입니다의 글씨들로 벗겨진 유리창의 성에 틈새로 보이던 겨울의 풍경들도 얼룽얼룽해졌다.

그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도시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정작 친지들보다 더 많은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들이 식장으로 달려왔다. 취재의 화살은 나보다도 경자에게로 퍼부어졌다. ‘어떻게 몸이 불편한 분과 장래를 약속하게 되었습니까?’

경자는 간단한 대답으로써 기자들의 호기심을 일축하였다.

저는 이분을 사랑합니다.”

그 이상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부모님부터 고모 이모네까지 참석한 우리 쪽에 비해, 경자네 쪽에선 같이 일하던 간호장교 두셋이 가족처럼 왔을 뿐이라 양가 어른들의 인사 차례도 생략하고 간단히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나중에 경자가 해명하기로는, 어머님 한 분이 살아계시지만 노환으로 누운 데다가 친척도 별로 없는 자기 집안이라 했다.

기자들은 결혼식장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피고서 요란뻑적지근한 판단을 내렸다. ‘신부네 집에서 극심한 반대가 있었는데도 결국은 한 여성의 진실한 사랑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기자들은 경자의 이름을 필두로 자기네 감정까지 듬뿍 발라가며 기사를 써갈겨댔다. 우리의 결혼은 그렇게 뉴스거리가 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흘간의 불국사 신혼여행.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경자는 신문들에서 우리 관련 사진과 기사들을 찾아 따로 스크랩해놓느라 바빴다.

나는 그런 경자를 지켜보면서 방구석에 심드렁하게 누워 있었다. 경자의 몸은 돌덩이였다. 아무리 껴안아도 변화가 오기는커녕 오히려 소름 돋는 피부로 나를 맞는 불감증…… 경자는 석녀(石女)였다. 나흘간의 신혼여행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수학여행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못한 따분하고 쓸쓸한 여행이었다.

어떻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묻진 않았다. 그녀와의 약속, 결혼식을 올리기 전 날의 약속 때문이다. ‘서로의 상처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그 약속이 나는 내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또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상호쌍무적인 약속이었다.

경자는 첫날밤부터 도무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어리둥절한 내게 그녀는 자기는 본시부터 그랬다면서 쿡쿡쿡 울었다. 나는 술만 마시다가 새벽녘에야 녹아 떨어져 잠이 들었다. 나흘간의 신혼여행은, 내가 경자한테서 사랑합니다란 유리창 글씨를 받던 순간 곤혹스럽던 무엇을 처음으로 헤아리게 된 여행이었다.

어쨌든 단칸셋방에서 우리의 신혼살림이 시작되었다.

상이용사와 사랑에 빠진 간호장교 출신 여인을 격려하는 전국 각지의 성금과 물품들이 답지하기를 보름여, 더 이상 답지할 게 없는 즈음이 되자 경자는 물품들을 모두 반값에 내다팔았다. 성금에다가, 병원을 퇴직할 때 받은 자기 퇴직금은 물론 내게 지급되는 상이군인 연금까지 자기 통장으로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경자는 큰 가방 두 개로 짐을 꾸렸다. 무슨 짐이냐고 묻자 경자가 답했다.

당신은 그저 따라오기만 해요. 시골로 가는 거니까.”

어리둥절한 내게 그녀는 그곳에 직장과 살 집도 얻어 놨으니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나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다 낯선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포장이 안 된 도로 탓에 심히 덜컹대는 버스로 가길 두어 시간. 마침내 버스에서 내렸다. 허허벌판에 우리 둘만 서 있었다.

큰 가방 두 개를 양손으로 나누어 든 경자와 목발을 짚은 내 그림자가 흙먼지 이는 벌판에 드리워졌다.

경자는 앞장을 서서 벌판 끝 산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쩔룩쩔룩 뒤따라가다가 힘겨워 멈춰 섰고 그러면 경자는 그걸 모르고 얼마만큼 가다가 멈추어 서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늦봄의 햇살은 비스듬한 각도로 들이쳐서 나는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하고 풀풀 날리는 경자의 발걸음 흙먼지를 주시하며 뒤따라야 했다.

조금도 지치는 기색 없이 손에 쥔 두 가방을 앞뒤로 엇갈려 흔들며 앞장서가는 경자.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 길로 들어섰다. 옆으로 다가서는 산들로 점점 좁아지는 하늘, 십 리쯤에 한 채씩 보이는 민가, 요란해지는 계곡의 물소리.

저녁나절에 어느 낡은 너와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내 목발이 부러져나가, 긴 나뭇가지를 대신 짚어야 했다.

너와집은 화전민이 사는 집이었다. 머리 한 번 감은 적이 없어 보이는 봉두난발 화전민 내외가 우리를 맞았다. 비어 있는 옆방이 우리가 며칠 묵을 방이라 했다. 빛바랜 신문지들로 도배된 벽, 가마니 두 장이 장판 대신 깔려 있는 방바닥. 보리밥 저녁을 얻어먹자마자 나는 물먹은 솜처럼 쓰러져 잤다.

사흘 후.

경자가 어디서 구해온 목발 하나. 나는 다시 경자 뒤를 따라 나서야 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또 다시 산길. 긴 뱀이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로지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기한 새 울음소리. 웬 사마귀가 경자의 머리카락에 붙었다가 날아가기도 했다.

쩔룩쩔룩, 경자를 따라 굽이굽이 산길을 갔다.

산 위의 태양은 엄청난 소리로 맴돌며 땀에 젖은 내 몸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나는 앞으로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목발을 짚었다.

한나절 걸려 도착한 곳은 조그만 학교였다. 교문도 없는 운동장 저 편에 자리한 교실 한 칸짜리 분교.

돌투성이 운동장은 잡초들까지 무성했다. 나는 목발을 내던지고 운동장 어귀의 포플러나무 등걸을 부여잡고 섰다. 겨드랑이 살갗이 벗겨지고 문드러져서 피가 웃옷에 배어 있었다. 게다가 어지럽기까지.

빈혈 증세.

분교의 빛바랜 유리창들마다 한 개씩의 태양이 담겨져 운동장을 내다보는 한낮. 나는 가쁜 숨을 가누면서 어질어질한 채로 서 있었다.

경자는 건물 한쪽 끝으로 달려가더니 종을 치기 시작했다.

땡 땡 땡 땡……

종소리들이 유리창의 널린 태양들과 함께 내 지친 신경을 후려치고 있었다. 나는 옷 속의 훈장을 만지며, 그 차가운 촉감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빈혈증세와 싸우고 있었다.

 

(2)

 

화전민 아이들 일곱 명이 전교생인 분교.

척박한 오지라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했다. 우리가 오기 한 달 전에도 어떤 청년이 일 년을 근무하다가 황황히 사표를 내고 떠났다 했다. 그런 식으로 배운 아이들이라 제대로 배운 게 없었다. 전교생 일곱 명 중 항상 두어 명은 결석하는 교실. 나는 그런 애들을 썰렁한 교실에 앉혀놓고 국어, 산수, 자연, 도덕, 미술 등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했다. 뺄셈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한테, 주워온 도토리들을 들고서 수십 번 나눗셈을 반복설명하다 보면 오전이 다 지나가면서 끝나는 수업이었다.

내가 교실에서 수업할 때 경자는 밖에서 돼지새끼들에게 매달렸다.

양돈축산의 미래란 책자를 방바닥에 펴놓고 수시로 메모하며 양돈 연구에 전념하는 경자. 경자는 여기 오기 전부터 양돈사업을 계획했던 게 분명했다. 주변 산에서 나무 등걸들을 주워 일정한 길이로 잘라 직사각형 돈사를 만들고, 삼 십여 리 떨어진 읍내에 나가 실한 돼지새끼 두 마리를 사 오는 등…… 경자는 혼자 몸으로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제자리인 애들에 비해 대견스럽게도 잘 크는 돼지들. 잡식성 동물답게 인근 개울의 가재들부터 산기슭의 도토리들, 주변의 잡초들, 우리가 먹고 남기는 음식찌기까지 모두 다 좋은 사료였다. 돼지들의 성장이 기대 이상이었으므로 경자는 돈사를 새로 더 짓기로 했다.

일요일이었다.

경자는 읍에서 불러온 인부들을 데리고 개량식 돈사 짓기에 나섰다. 반듯한 슬레이트 지붕, 환기가 잘 되는 울타리 구조, 일정하게 사료가 나오는 급식장치, 분뇨가 잘 빠지는 바닥 시설……. 외진 골짜기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돈사였다.

그럴 때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학습지도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각 과목별로 작성해야 하니 그 분량은 만만치 않았다. 물론, 학습지도안의 작성교사 이름은 박경자였다.

나는 고용직으로, 경자는 교사로 채용된 신분이었다. 정작 초등 준교사 자격증을 가진 경자는 돼지를 기르는데, 아무 자격증 없는 나는 애들을 가르치며 학습지도안도 짜는 교사 역이었다.

양돈으로 대성해 보겠다는 경자.

경자는, 아무 거나 잘 먹고 번식력도 왕성한 돼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몇 년 안에 양돈축산계의 혜성으로 떠오를 계획이라고 내게 털어놓았다. 돼지의 약점이라고는 오직 전염병에 취약할 뿐인데 이곳은 가까운 민가가 십여 리나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이니까 그런 면에서 아주 안전한 청정지대라 했다.

얼마나 치밀한 경자의 사업 계획인가.

경자는 우리의 첫 만남부터 양돈사업까지, 모든 일을 철저한 계획 아래 이끌어가고 있었다.

산골짜기는 비좁은 하늘 때문에 하루해가 짧았다.

동쪽 산등성이에 가려 오전 열 시경에 떴다가 오후 네 시경만 되면 서쪽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 그 때부터 골짜기는 서늘한 산그늘에 들어 있다가 별들이 뜰 때부터는 적막한 밤에 파묻힌다.

바람결에 흩날리듯 들리다 말다 하는 라디오 방송. 코 골며 자는 경자. 석유램프 불을 끄면 그런 소리들 이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방. 그럴 때 또 하나의 소리로 보태지던 나의 수음 소리. 죽지 않고 살아나는 젊은 성욕을 수음으로 달래는 그 쓸쓸한 어둠. 어쩌다가 경자를 깨워 관계를 시도하지만 필경은 딱딱한 돌덩이를 안은 느낌에 제풀에 죽던 그것이었다. 반쪽짜리 내 몸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길 없는 질긴 어두움, 깊은 골짜기.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낮이 더욱 짧아지면서 찬바람도 자주 불어쳤다. 개울의 가재들도 바위 밑으로 깊숙이 숨고 갈참나무 낙엽들이 무더기로 분교 주위에 쌓여갔다. 경자는 바빠졌다. 김장을 담그고, 숙소 곳곳을 비닐로 감싸고, 가마니들로 돈사를 겹겹이 둘러주고…….

마침내 암퇘지 놈이 발정하였다.

밤의 골짜기를 뒤흔드는 야릇한 울음소리를 듣고 플래시를 들고 나간 경자는 희색이 만연해져 들어왔다.

이제 접 붙여야지! 그게 벌겋게 변했더라고. 책에 적힌 그대로이네.”

그 날 밤 경자는 돈사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는데 나는 느닷없이 저리며 쑤셔오는 왼쪽다리에 방바닥을 구르면서 어쩔 줄 몰랐다. 월남에서 떨어져 나간 그 다리가 아픈 것을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없기 때문에 달랠 수도 없는 허공의 통증.

나는 부엌에서 소주를 찾았다. 그 소주는 경자가 음식 간을 맞출 때 쓴다고 남겨 둔 큰 병 소주였다. 2/3정도 남은 그것을 다 들이켰다. 그래도 없는 왼쪽다리는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급기야는 사라진 왼쪽 눈알까지 함께 쑤시기 시작했다.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깨어났을 때는 늦은 아침이었다. 경자가 끓여놓았는지, 머리맡에 놓인 미음을 떠먹었으나 쓰린 속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없는 다리 쪽을 만져보았다. 덜렁거리는 바지가닥이다. 어둑한 방안에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기진한데다가 숨 막힐 것 같은 좁은 방안. 나는 목발 없이 기어서 밖으로 나섰다. 태양이 좁은 골짜기의 하늘 안에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무거운 햇빛들.

나는 숙소 외벽에 기대고 섰다가 풀썩 쓰러졌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버린 듯한 빈혈 증세. 뒤통수부터 휘몰아치는 어지러움.

운동장 어귀 쪽에서 덜커덩 소리가 들려온 게 그 때였다. 경자였다. 수레에 무언가 잔뜩 싣고 돌투성이 많은 운동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최고가의 양돈 사료들이 반입되고 있었다.

 

늦봄에 돼지새끼를 열두 마리나 얻으면서 꿈에 부풀던 경자였다.

일 년 만에 돼지 마릿수가 열네 마리가 되었으니 몇 년 안에 백여 마리 돼지에 달할 듯싶었다. 사료도 몇 번씩 사 나르고 개량식 돈사도 세 채나 추가로 지으며 몇 년 안의 대성공을 눈앞에 둔 듯한 경자가…… 허무하게 쓰러져 버릴 줄이야!

가장 가까운 민가가 십여 리에 있는, 아주 청정한 골짜기라 믿고 지내왔는데 돼지 전염병에 열네 마리 돼지 모두가 차례차례 죽어 자빠질 줄은 몰랐다.

돼지콜레라라고 했다. 돼지들은 피를 토하며 죽어 버렸다. 뒤늦게 읍내 수의사까지 모시고 왔으나 소용없었다. 죽은 돼지들을 수레에 싣고 나가더니 저녁이 다 되어 경자는 들어왔다. 술 냄새가 독하게 났다.

이런 데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폐인이 된다며 내가 마실, 숙소의 술병들까지 내다버린 그녀가 술주정뱅이 꼴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수레는 어디다 팽개쳐두고 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두고 경자는 방에 틀어박혀 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며 폐인처럼 보냈다.

어느 날 아침.

경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밥상 위에 원고지들을 펴 놓고 앉았다. 골짜기 개울의 찬 물에 세수하고 들어오더니 그런 모습으로 방 가운데에 자리 잡은 것이다. 마침내 나는 사랑하는 그이와 큰 꿈을 품고서 도시를 떠났다-……로 시작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기였다. 몸의 절반을 잃은 상이군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체험 이야기. 경자가 두 달 가까이 밤잠까지 설쳐가며 매달린 끝에 완성된 수기의 제목은 나의 사랑, 절망을 딛고.’

수기 작성에서도 얼마나 치밀한 경자인가. 돼지들을 치다가 절망에 빠지는 사람은 그이였고 아내인 자신은 학생들을 맡아 가르치는 교사로서 분교 교육에 헌신하면서 장애자 남편 일도 돕는 얘기로 수기는 꾸며져 있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사람은 문서상으로 박 경자였으니까. 어차피 그 누구도 들여다본 적 없는 수업들이었으니까.

경자는 읍내에서 사진사까지 모셔 와 피투성이로 남은 절망의 현장들을 사진 찍게 했다. 돼지새끼들이 죽어버린 돈사 앞에 목발 짚고 선 내 독사진과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하는 자기 모습의 사진들. 어리둥절한 아이들을 야단쳐서 저요! 저요!’ 손들고 발표하는 동작들까지 만들어낸 경자. 수기 원고에 증거자료로 첨부한다고 했다. 이백 자 원고지로 천이백 매. 모 잡지사에서 창간기념 생활수기를 거금을 걸고 공모한다 했다.

우리는 분교를 떠나기로 했다.

경자가 묵직한 수기 원고를 소중하게 천으로 싸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3)

 

짐 가방 두 개로 정리된 우리의 분교생활.

스크랩북의 결혼식 사진까지 증거자료로 첨부된 수기는 읍내의 우체국에서 잡지사로 발송되었다.

밖에서 경자를 기다리며 서 있던 나는 길옆 가게의 유리창에 비쳐진 내 몰골을 보았다. 산그늘 속에서 살아온 1년 반 동안 창백하게 말라비틀어진 몰골. 목발로 기울어진 체형.

머리가 사정없이 핑 도는 빈혈증세가 되살아났다. 후송병원에서부터 링겔로 부축되던 빈혈. 그 빈혈은 내게 컴컴한 그 무엇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은밀한 목소리였다. 나는 호주머니 속의 훈장을 만졌다. 훈장은 매끄럽고 찼다.

우체국 밖으로 나온 경자는 다시 가방들을 들고 앞장을 섰다. 시골 읍에서도 가장 싼 여인숙을 찾아 가방 둘을 앞뒤로 흔들며 가는 경자. 그리 오래 걷는 게 아님에도 나는 수시로 지쳐 멈춰 서곤 했다.

짐을 푼 허름한 여인숙 방.

며칠간 하품만 하며 누워 지내던 경자는 문득 제안을 했다.

우리 여행을 가요. 여기서 오십 리 남짓한 산 너머에 갈대가 무성한 초원이 있는데, 풍경이 꽤 좋다거든요. 거기에서 하루나 이틀 야영을 해 보는 거지요. 어때요, 내 생각이?”

생활수기 당선작 발표를 사흘 앞둔 날의 늦은 오후였다. 느끼한 햇살이 쥐틀만한 유리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자의 제안에 나는 처음으로 내 의견을 말했다.

그럼, 거기서 사냥도 하자고.”

 

버스를 타고 그 산의 아랫마을에 도착한 뒤 갈대밭 초원을 찾아 길을 나섰다.

분교를 찾아갈 때처럼 짐들을 양손에 들었는데도 지치지 않고 앞장서서 굽이굽이 산길을 가는 경자. 쩔룩쩔룩 뒤따르다가 멈춰 섰다가를 반복하며 뒤를 쫓는 나.

마침내 갈대밭 초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다다랐다. 붉은 황혼 빛에 흠뻑 물든 초원 앞에서 경자는 환호성을 질렀다.

야아호 야아호……

환호성은 끝없이 메아리쳤다.

우리는 그 자리에 텐트를 쳤다. 저녁밥을 지어 먹고서 배낭 속 포도주 병을 꺼내 나누어 마셨다. 행복에 겨운 경자의 표정. 경자는 자신하고 있었다. 이틀 후 야영을 끝내고 여인숙으로 돌아가면 수기 당선자임을 알리는 통지가 와 있을 거라고. 그 날을 미리 자축하는 밤이었다.

밤중에 승냥이의 울음이 들렸다.

경자는 내 몸을 잔뜩 끌어안고 떨었고, 나는 엽총에 탄알을 넣고 승냥이를 기다렸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았다. 초겨울 같은 추위가 엄습했다가 서서히 풀리며 훤하게 동트던 새벽.

동녘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갈대밭은 일시에 금빛으로 젖었다. 금빛 바다, 그 바다로 우리는 아침 밥 짓는 연기를 푸르게 날려 보냈다.

아직도 싸늘하게 남은 새벽추위에 벌벌 떨며 밥을 먹을 때 경자는 일부러 냠냠 소리를 내면서 자기가 한 입, 남편에게 한 입 하는 식으로 장난스런 숟가락질도 하였다.

태양이 하늘 가운데로 옮겨가자 갈대밭은 아침 금빛들을 낟알처럼 털어내고 퍼렇고 누런 제 모습을 찾아갔다. 경자는 점심 반찬을 마련해야겠다며 야아호 야아호 소리 지르며 갈대밭으로 내려갔다.

나는 텐트 속에 누워 갈대밭을 내려다보았다. 키 작은 경자는 갈대밭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그 움직임은 갈대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태양은 흰 이빨들로 웃기 시작했다. ‘낄낄낄웃음소리들이 갈대밭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배낭을 뒤져 소주를 꺼냈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마셨다.

적막이 내게 눈짓을 했다. 빈혈도 은밀하게 말을 건넸다.

끝내버려.’

우체국 부근에서 본 내 퀭한 몰골이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나는 엽총을 들었다. 갈대밭을 겨누었다. 빈혈이 가늠쇠 구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여러 장면들이, 땀에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끊임없이 부침했다. 캠퍼스 시절 다방탁자에 가득 쌓이던 성냥개비들…… 내 동정을 삼킨 창녀의 하품…… 치열한 전투를 각오한 참전 지원…… 사단 연병장, 찢어진 적막의 햇살…… 사랑합니다’, 벚나무의 눈꽃들…… 산길, 목발…… 돼지새끼, 아이들, 생활수기 공모……

 

경자가 마침내 나타났을 때 나는 내 목발을 던졌다. 흰 선을 그으며 목발은 갈대밭 속 경자 부근에 파묻혔다. 얼떨떨한 표정의 경자에게 큰 소리로 일러 주었다.

경자야! 빨리 도망가. 도망가야 산다니까.”

그리고 타앙한 발을 허공에 쏘았다. 총소리는 타앙 타앙 타앙 초원을 흔들며 퍼져나갔다. 경자의 앙탈 섞인 목소리가 이내 기어 올라왔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내 입술로 흘러드는 땀의 짠맛을 느끼며 나는 답했다.

무슨 소리냐고? ……더 이상 경자의 남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소리야. 경자. 경자는 이제 빨리 도망가서 다른 남주인공을 찾으라구. 양 다리가 달아나고, 양 눈이 다 달아나간 멋진 주인공 말이야.”

나는 다시 타앙 타앙 타앙 세 발을 그 주위로 쏘아 갈겼다. 악에 받친 앙탈의 소리가 다시 나오르려다가 경자는 허겁지겁 갈대밭 속으로 몸을 낮추어 숨었다. 경자의 모습 대신 갈대의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엄습하는 졸음과 현기증을 고개 흔들어 깨우면서 갈대밭의 움직임을 조준해 한 발 한 발 쏘아갔다. 갈대의 움직임은 한참씩 안 나타나기도 했다.

경자가 갈대밭 속에 웅크리고 앉아, 불감증의 손으로 주근깨의 얼굴에 뒤범벅인 땀과 눈물을 닦으며 핵핵 떨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갈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겨냥해 쏘았다.

마침내 연거푸 두 발을 쏘았을 때 짧은 신음소리가 튀면서 갈대밭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풀과 나무와 바람과 하늘은 숨을 죽였다.

태양은 숨을 죽였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태양의 파편들도 그대로 공중에 얼어붙었다. 갈대밭 초원에는 그 파편들 대신 적막이 쌓이고 있었다. 나는 엽총을 목발 대신 짚고 그 적막을 내려다보았다.

넓기만 한 초원.

! 하는 소리와 함께 훈장이 발 주위에 떨어졌다.

무공에 관한 찬사의 글씨들이 다 닳아버린 훈장, 거기에는 바짝 얼어붙은 태양이 숨죽이며 들어 있었다.

자아 어디로 가야하나.

초원은 넓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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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우리한테 아예생각이란 게 없는 줄로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한테도 생각이 있다. ‘어떻게 니네 짐승들한테 생각이 있느냐?!’고 힐난한다면 가장 평범한 실례를 들어 보이겠다.

우리가 어린 새끼들을 입으로 물어서 옮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런 장면은 당신들이 주변에서 흔하게 목격하는 것이다. 작은 쥐들부터 개들, 커다란 사자들까지 제 새끼를 옮길 때 자기 입으로 살짝 새끼의 목덜미 부분을 물어서 들어 옮긴다. 이런 장면 하나로도 우리에게 분명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이빨들이 날카로운 입으로 어린 새끼들을 살짝 물어 옮기겠는가? 어린 새끼들의 피부는 아주 연해서 조금만 실수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그러함에도 단 한 번의 작은 상처도 내는 일 없이 우리는 새끼를 살짝 물어 다른 장소로 온전하게 옮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백 미터 먼 데까지 옮긴다. 이런 일은내 새끼를 잘 옮겨야 한다는 분명한 생각없이는, 단순한 본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데도 우리가생각이 없는 짐승인가?

물론 우리의 이런 생각들은 단발(單發)로 끝난다. 그 때 그 때 필요한 상황에서 발현되고 만다. 이런 한계가 우리와 당신네 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고 말았다. 당신들의 생각들은 우리와 달리 길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날씨가 쌀쌀하구나.’하는 인식(생각)몸이 떨리는구나.’하는 인식(생각)이 제 각기 발현되고 말 때에는 단발인 생각들이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하니까 몸이 떨리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이어지는 생각들이다.

이어지는 생각들이 쌓여 지식체계가 됨으로써 당신들은 문명 문화를 만들어냈고 역사도 이루어냈다. 생각들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 다른 차이들도 있지만 이런 차이가 당신들과 우리 짐승들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참으로 통탄할 일은, 이런 차이 하나로 갈라선 당신들이 우리를 아무 생각 없는 사물로 간주하고는 별의별 만행을 다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분명 당신들과 우리는 진화의 단계로 봐도 멀지 않은 관계인데 말이다.

당신들의 그런 만행을, 개들의 예로써 지적해 보겠다.

개들은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갖은 일을 다 한다. 집 지키기는 기본이고 양이나 염소같이 순한 놈들을 몰고 다니는 일, 같은 짐승인 멧돼지 따위를 사냥할 때 앞장서는 일, 심지어는 당신들이 판돈을 건 투견 장에서 자기들끼리 피투성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충실한 개들을 당신들은 어떻게 대하는가?

같은 배의 새끼들을 서로 접붙이거나 심지어는 어미 개와 새끼 수캐를 교접붙이기도 해서, 당신들이 바라는 괴상망측한 모양의 개들로 만들어낸다. 애완견이라 하는 유들이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짓은 당신네들 표현을 따른다면 극악무도한 패륜이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질긴 끈으로 개모가지를 매달아죽이거나 개 대가리를 도끼로 쳐서 죽인 뒤 불로 삶아 몇 끼의 음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는 당신들…… 그건 단지 우리 짐승들이아무 생각이 없는 사물들로 보인 때문이다.

정말 그건 오해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결코 생각이 없는 사물이 아니다. 분명 생각이 있는 존재이다. 단지 그 생각이 단발들로 존재할 뿐이다.

당신들이 지금 내 얘기를 듣다가 이런 질문을 던질 것 같다.

그럼 너는 뭐냐? 뭔데 짐승 주제에 우리 사람들한테 항변하는 거냐? 네 정체가 도대체 무어냐?”

그에 답하겠다. 나는 어느 때부턴가 생각하게 된 짐승이라고 말이다.

어느 때부턴가, 단발이던 생각들이 잠깐 잠깐 이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제대로 이어지면서 나를 부리는 당신들의 생각까지 읽게 된 한 마리 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내게 이런 비난을 퍼부을 듯싶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라! '생각은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너 같은 짐승은 언어가 없으니 생각 따위는 애당초 있을 수 없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길게 답하겠다.

당신들 생각이 언어적 생각이라면 우리들 생각은 본능적 생각이다. 그런, 본능적 생각들을 어느 때부터 잇기 시작한 짐승이 바로 나다. 분절음으로 발음하며 문자로도 적을 수 있는 당신네들생각과는 모양새가 다르지만 분명히 내 생각들이 존재한다. 그걸 입증해 보라고? 사실, 그런 말을 내게 한 순간 당신들은 이미 내가 생각하는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이런 말은 말장난일 수 있으므로 하지 않겠다. 그 대신, 이제 내가 하는 얘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나서 판단하기 바란다. 다만,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발음되거나 문자로 전해지는 말이 아니라 생각으로 하는 말이다. 굳이 문자를 쓴다면 이심전심 방식이랄까?”

그러면 당신들은 이렇게 야유할 듯싶다.

그건 말이 아니라 네가 혼자 하는 생각이야.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독백밖에 더 되겠어? 독백이라도 그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독백이지. 그러니까 너는 지금 말하는 게 아니야!”

좋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말하겠다. 내 말을 당신들이 듣건 안 듣건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그냥 내 생각인데, 무슨 상관이냐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별난 곰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나는 곰의 역사상(?) 최초로 생각하는 곰이 된 듯했다. 여기서생각하는이란 표현은 아까 내가 말했듯이단발적인 생각들을 이을 수 있는이란 뜻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나는 생각하는 곰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숫자 1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또 다른 숫자 1을 만나면서 숫자 2의 세계로 확장된 거나 같았다.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11+n, n='이겠지. 나의 생각들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었다. 분명 나는 곰들 중에서 매우 희귀하고 특별난 곰이었다.

그렇게 생각들이 불길처럼 확장되면서 내가 가진 첫 번째 감정은 경이감이나 자신감이나 흥분 따위가 아니었다. 막막한 절망감이 첫 번째 감정이었다. 도대체 나는 '생각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의 방식은 당신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굳건한 철장이었다.

곰은 말은커녕 생각조차 못하는 미련한 짐승이다.’라는 인식의 철장. 그 철장 안에 내가 갇혀 있었다. 이런 철장을 사이에 두고서 당신들은 자유롭고 나는 억제되어 있었다. 철장은, 오직 당신들 편의로 만들어진 수단이었다.

이런 기막힌 생각이 들기 전까지 내게는 여기 곡마단의 철장밖에 없었다. 나는 단단한 쇠막대로 만들어진 곡마단의 철장에 길들여 있었다. 간간이 철장을 붙잡고 흔들기도 했지만 그건 배고프거나 무료할 때 하는 짓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당신들 인식의 철장까지 생각하게 되니까 그 순간부터 나는 갑갑한 눈앞의 철장부터 벗어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나는 그 날부터 철장의 쇠막대들을 부여잡고 마구 흔들거나 철장 안을 길길이 뛰기 시작했다.

멍청이는 느닷없는 내 난동에 당황했다. (그는 나를 어릴 때부터 맡아서 길러주며 곡예도 가르친 사람이다. 그는 나를 데리고 곡예를 사람들한테 보여줄 때 일부러 우스꽝스런 바보짓을 하면서멍청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물론 그럴 때에는 괴상한 피에로 분장이다.)

멍청이는 채찍으로 나를 후려치기도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꿀을 그릇째 갖다 줘 보기도 하고 일부러 굶겨 보기도 했으나, 그래도 난동이 멈춰지지 않으니까 난감한 얼굴로 한참 궁리하다가 텔레비전을 갖다 놓았다. 내 철장 바로 앞에 말이다. 나는 그 때부터 난동을 멈추었다. 그 순간 희희낙락하던 멍청이의 표정이라니!

멍청이는 이렇게 외치기까지 했다.

이 미련한 새끼야! 그렇게 텔레비전이 보고 싶었으면 말로 하지.”

그러고는 아 참, 곰 새끼는 말을 못하잖아.’하면서 자기 머리를 긁적이다가 사라져 버렸다.

그 때의 진상을 이제 밝히고 싶다. 멍청이가 텔레비전을 갖고 올 즈음에 나는 이미 지쳤던 것이다. 아무리 요동을 쳐도 철장을 벗어날 수 없을 뿐더러, 내 몸만 상할 뿐인지라 지치고 만 때였다. 하도 철장을 붙잡고 흔들어서 내 발톱들에서 피까지 나던 참이었다. 그렇게 지쳐 있을 때 텔레비전이 눈앞에 놓이는 게 아닌가.

낡은 텔레비전.

멍청이가 그것을 내 앞에 갖다 놓을 생각까지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새끼 곰일 때 그가 나를 품에 안고 우윳병꼭지를 빨려가며 키웠는데 그럴 때 그 텔레비전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비좁은 방에서 곰 새끼나 기르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것을 발치에 두고 보면서 지냈던 것이다. 그 까닭에 나는 새끼 때부터 텔레비전의 화면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낯익은 물건이 오랜 세월 뒤에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 날부터 난동을 부리지 않고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는 일에 집중했다. 먹이를 받아먹거나, 잠자거나, 곡예를 하러 철장 밖으로 나갈 때 이외에는 내 굴속(철장 안에 있는, 바위들로 만들어진 인공 굴이다.) 바닥에 엎드려서 그 텔레비전 화면만 보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곡마단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지켜보기도 했으나 사나흘 지나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철장 안의 곰에게 달리 낙이 없으니 그럴 수가 있겠다고 이해하거나 곰이 저러다가 말 거다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긴, ‘쳐 박아둔 낡은 텔레비전이 저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하는 감탄도 사나흘이면 족하지 않을까.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 사나흘은 내 확장된 생각들이 지식까지 얻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그것이 다시 내 눈앞에 놓이기 전까지 내 생각들은 단순하게 확장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화면을 온종일 볼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자 나는 그것이 보여주는 다양하고 깊은 지식들까지 내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새끼였을 때에는 명멸하며 바뀌는 것으로 여겨지던 화면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 (나는 아직도 내가 몇 년을 산 곰인지 알지 못한다. 단발적인 생각들이 대부분이던 과거에서는 시간조차 짧게들 끊겨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 다시 지켜보니 놀랍게도 의미 있게 이어지는 장면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단발적인 생각들이 이어지던 나의 지적변화가 텔레비전 보기에도 깊은 영향을 준 게 틀림없다.

온종일 켜져 있는 그것을 지켜보며 나는 갖가지 깊은 지식들까지 얻게 되었다. 내게 지식들이란 의미 있게 이어지는 장면들의 모음이었다. 곡마단 사람들이전기료가 더 들긴 하지만 텔레비전을 켜 두면 순하게 철장 안에 잘 있는 곰이다고 판단했는지 온종일 텔레비전을 켜 두기 시작했다. 첫 번째 텔레비전이 수명을 다해 화면이 나오지 않게 되자, 멍청이는 두 번째로 다른 낡은 텔레비전을 구해서 갖다 놓았다. 아마도 쓰레기장에서 주워 왔을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온 사방에 버려진 게 흑백텔레비전들이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텔레비전이 당신네 사람들의 생활을 점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조차 흑백이 아닌 컬러텔레비전의 시대로 바뀌면서 그런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세 번째, 네 번째…… 낡은 텔레비전들 수십 대가 갈리도록 오래 살아온 셈이다, 나는.

사실, 텔레비전을 줄곧 보며 살게 되었다 해도 재방영이 없었더라면 내가 지식을 습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도 텔레비전은 재방영이 흔한 기계였다. 하다못해 돌발적인 사건이나 사고까지 늘 엇비슷한 장면들로 되풀이되니, 재방영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같거나 비슷한 장면들을 끝없이 반복해 보게 되면서 나는 이렇듯 박식한 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 존재에 대한 절망감은 커져갔다. 나는 곰이었다. 생각이 있어도 그 생각을 표현할 마땅한 수단이나 방법이 없는 짐승이었다. 내 뭉툭한 아가리 구조가 어디 제대로 된 발음 하나 낼 수 있는 구조이겠으며, 내 무딘 앞발이 작은 볼펜 하나 쥘 수 있는 구조이던가? 당신네 사람들이 나만 보면 흔하게 외치는 곰 새끼란 발음 하나도 내 아가리를 통해 나오면 으르렁거리는 소리밖에 되지 못했다. ‘내 몸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질 못하는구나!’하고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이란!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에서 나는 곡마단 탈출을 생각해 내었다. 겹겹이 둘러싼 철장 안 생활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 그 자체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간 숱하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광활한 자연 속의 곰들 장면. 풀들로 덮였거나 눈으로 덮였거나, 광활한 터전에서 내 종족인 곰들은 마음껏 먹이를 사냥하고 잠을 자고 번식하는 모습들이었다. 몹쓸 사냥꾼의 장총에 처참하게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광활한 자연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는 여러 번 총을 맞아도 좋았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는 채로 내 눈에 처음 보인 풍경은 곡마단 안이었으니까. 멍청이의 넓적한 얼굴이 나를 들여다보며 우윳병을 내 아가리에 물려주고 있을 때 주위로 줄무늬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바로 내가 평생을 보낼 여기 곡마단 안 풍경이었다.

이런 답답한 천막 안에서 내 삶이 마감될 거라니,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답답한 천막 안 공간도 그렇고……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과에서도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일과는 이랬다.

멍청이가 철장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사과 한 알같이 간단한 먹이를 던져준다. 나는 굴속에서 나와 그것들로 요기를 해결한 뒤 멍청이가 목의 줄을 잡아끄는 대로 철장을 나선다. 철장을 나서면 넓고 둥근 마당이다. 이 마당은 촘촘한 철망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멍청이가 가져온 자전거에 걸터앉은 나는 두 발로 페달을 밟아가며 둥근 마당을 열 번은 돈다. 그럴 때 숨죽이고 지켜보던 울타리 밖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그런 식으로 서너 가지 곡예를 보이고서 다시 멍청이가 잡아끄는 대로 철장으로 되돌아온다. 철장 안에는 아까와 달리 맛있는 먹이들이 푸짐하게 놓여 있다. 나는 이 먹이들을 먹게 된다는 기대감에 힘든 곡예를 해내는 것이다. 사과, 복숭아, 생선 등등의 맛있는 먹이들을 다 먹고 나서 나는 다시 굴속으로 들어가 엎드린 채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든다.’

멍청이의 검던 머리칼들이 허옇게 센 지금까지, 내 일과가 그러했다.

별 생각 없이 지내온 일과였지만생각하기시작하면서 이제는 지루하고 따분해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일과다. 나는 탈출할 길을 찾고 있다. 언젠가 멍청이가 실수로 철장 문을 닫는 것도 잊고 둥근 마당의 출입문까지 열어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했음에도 무심하게 굴속에 엎드려 텔레비전만 보던 나 자신이라니……. 이제는 그런 절호의 기회를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나를 길러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곳에서 탈출할 생각까지 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런 변화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게 텔레비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

얼마나 기막힌 사물인가.

자기는 아무 생각 없으면서 남의 갖가지 생각들을 다 갖다 보여주는 물건.

자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갖가지 장면들을 하나도 빠트림 없이 보여주는 그 우직함. 게다가, 끝없이 반복해 보여주는 단순함. ‘미련하다는 말은 우리 같은 곰이 아니라 저런 텔레비전에게 해야 옳지 않을까?

 

텔레비전은 나만 변화시킨 게 아니다.

우리 곡마단 전체를 변화시켰다. 아니, 세상사람 모두를 변화시켰다. 이런 놀라운 사실조차 텔레비전을 통해서 안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처음 곡마단이 등장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라에 큰 잔치가 베풀어질 때마다 초대받고 가는 단체가 곡마단이었다. 그런 잔치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곡마단을 찾아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맛보았다. 말 그대로 만백성의 사랑을 독차지한 곡마단이었다. 하지만 곡마단의 영광은 근대에 이르러 된서리를 맞는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영화에 세상 사람들이 매료되기 시작한 때문이다. 곡마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필름으로 보여주는 착시현상에 불과한 영화에 맞서 생생한 눈앞의 현장이라는 장점 하나로 곡마단은 가까스로 버텨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등장하여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자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란 공간은 물론, 곡마단까지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소수로 남은 곡마단조차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곡마단이 그 소수로 남은 곡마단 중 하나일 줄이야! 식자우환이라더니,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일을 알면 알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나의 절망감이었다.

그래서 내게 주는 먹이가 점점 더 열악해지는 걸까? 사과나 감은 늘 주지만 파인애플이나 벌꿀 같은 별미 먹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예전에는 말들이 둥근 마당을 도는 공연순서가 있었는데 그조차 사라진지 오래다. 물론 말들의 행방도 보이지 않는다. 말들뿐인가, 간단한 숫자 더하기 게임을 보여주던 염소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거꾸로 서서 두 발로 통을 굴리던 사람도, 입에서 석유 불을 내뿜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우리 곡마단이 문 닫는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애써 탈출을 꾀하지 않아도 이 곡마단을 벗어날 판이 아닌가?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내 앞날은 어떻게 될까? 탈출은커녕 불확실한 앞날을 걱정할 판에 내가 처해 있었다.

알면 알수록 요지경 속인 세상의 가장자리에 내가 엎드려 있었다. 내가 엎드려서 철장 밖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는 굴속이 바로 세상의 가장자리였다. 내가 곰이 자전거를 타는 유서 깊은 곡마단의 마지막 모습으로 사라질 참이었다.

텔레비전이 태풍처럼 휩쓸면서 변해버린 세상의 가장자리에 곡마단 천막이 놓여 있고 그 가운데에 내가 누워서 문제의 낡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곡마단 사람들의 거동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언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고 나는 본능적 생각을 가진 짐승이니까 나는 그들의 떠드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그 억양이나 어조, 내 쪽을 우울하게 보며 말하는 표정, 깊은 탄식 소리 등등을 종합해서 나는 그 뜻을 파악하였다.

그건 이런 뜻이었다. ‘저 곰 새끼를 팔아치우자고.’

 

 

그 동안 나는 객석 쪽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당신네 사람들에게는 자전거 타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나와 같은 곰에게는 얼마나 고되고 혹독한 일이겠는가. 뭉툭한 앞발로 손잡이를 쥐고 뒷발로는 쉼 없이 페달들을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일은 내 몸과 자전거와의 균형까지 조절하면서 쓰러지지 않고 나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일이겠는가. 그러느라 나는 미처 객석의 상황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곡마단 사람들의곰을 팔아치우자는 뜻을 감지한 뒤 비로소 나는 객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전거 타기가 끝난 뒤 객석을 향해서 멍청이를 따라 인사할 때였다. 살펴보았더니 과연 머리털 허연 노인들 몇몇만 앉아 있었다.

그 옛날 객석이 미어지게 들어차던 손님들이 아니었다.

정말 나는 미련한 곰이었다.

객석의 변화조차 이제야 깨달았으니 말이다. 객석 상황이 그런 즉, 경각에 달려 있는 내 운명이었다.

매일 하던 공연도 사흘에 하루 꼴로 줄여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공연을 쉬는 날의 곡마단 안 풍경이란…… 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나대로, 곡마단 단원들은 단원들대로 제각기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니 말이다. 공연자인 나는 굴속 바닥에 엎드려서 철장 밖 텔레비전을, 공연 스텝인 그들은 천막 안 사무실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방안이 보이지는 않지만 동시에 웃거나 떠드는 소리들이 나는데다가, 플라스틱류()가 전열에 달궈진 냄새가 내 코까지 풍겨오므로 텔레비전을 종일 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냄새에, 쉴 새 없이 피워대는 그들의 담배 냄새까지.

어느 날이다. 그 날도 공연 없이 쉬는 날이었다.

그렇게 전해오던 그 방 쪽의 냄새들에 다른 냄새 뭉치가 섞여서 전해왔다. 특유의 체취, 그건 나와 같은 곰들의 냄새였다. 나는 아연 긴장해서 코를 벌름거리며 그 냄새의 방향을 쫓는다.

얼마 후 그 냄새가, 아니 그 냄새를 풍기는 낯선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곡마단 단장이 그 사내를 데리고 내 철장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이빨까지 드러내었다.

철장 앞에 선 단장이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얘가 벌써 눈치 챘나 보네요.”

사내가 이빨 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곰들이 냄새를 잘 맡거든…… 그런데, 얘는 너무 늙었네. 늙은 놈은 약효가 떨어지는데.”

단장이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기껏 열 살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사내가 다시 이빨 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내가 뭐 한두 해 이런 장사 한 줄 아슈? 탁 보면 안다니까. 최소한 스무 살은 된다니까. 맞지?”

, 그렇게 보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값 좀 잘 쳐 줘요. 그 가격 갖고는 단원들 밀린 임금의 반이나 줄까…….”

글세…… 웅담이란 게 팔팔한 곰한테 나온 게 좋은 거지, 이렇게 다 늙은 거야 원.”

발바닥도 알아주는 약이라던데…….”

, 긴 소리 할 게 뭐 있소? 내가 말한 가격대로 팔 생각이면 넘기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둡시다.”

그러면, 하루 지나서 다시 연락할 게요. 우리 단원들의 의견들을 다시 들어봐서 자기들 임금을 덜 받더라도 좋다면 그 가격에라도 하지요.”

아니, 하루 지나서 연락할 게 뭐 있어? 지금 당장 단원들 의견을 들어보지?”

“‘멍청이라고, 이 곰을 맡은 녀석이 어디로 샜는지 통 낯짝을 볼 수 없거든요. 그래도 그 녀석이 이 곰의 아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녀석 의견을 들어보는 시늉이라도 내야죠.”

사내는 단장과 악수를 하고는, 바깥의 해가 저무는지 어둑해지는 천막을 나가버렸다.

밤이 되었다.

다른 어느 날 밤보다도 떠들썩한 소리들이 사무실 방 쪽에서 나고 있어서, 내 철장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는 멍청이의 발걸음 소리는 아예 없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조금은 술 냄새를 풍기는 멍청이였다.

사실은, 멀리 바깥에서부터 곡마단 천막 쪽을 향해 걸어오던 멍청이를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체취는 모르지만 멍청이의 체취라면 아무리 멀어도 맡을 수 있는 내 코였다. 다른 때와 달리 술 냄새까지 풍기는 멍청이인지라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수명이 다 됐는지 화면이 수시로 흔들리다가 제자리를 잡기도 하는 철장 앞의 텔레비전. 그래도 그 화면의 빛들이 천막 안의 어둠을 나지막하게 밀어내고 있어서 가까이 선 멍청이의 하체를 비쳐준다. 그러니까 나는 멍청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채로 텔레비전을 지켜보고 있다. 그 때 사무실 방 쪽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 야아아 슛꼴인!…… 아이구 놓쳤네…… 그래그래 다시 슈웃 꼴!…… 아이구 아이구!

그런 요란한 소리들일 때 멍청이가 철장 문을 찰칵 따고 들어와서는 내 목의 끈을 조심스레 잡아당긴다. 나는 철장을 빠져나와서 둥근 마당에 들어섰다. 내가 보던 텔레비전이 그대로 켜져 있어서 등진 화면 빛에 내가 엎드려 있던 굴속이 훤하다. 멍청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되돌아가서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몇 달째 생각 없이 눈뜨고 있던 텔레비전 놈이 잠들었다.

객석에 가득 찬 어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멍청이는 철망 울타리에 난 작은 출입구로 나를 끌었다. 이미 열려 있는 출입구이다.

꼴인! 꼴인! 와하하!

다시 요란한 사무실 방 소리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천막의 큰 출입구도 빠져나왔다. 이 출입구는 단장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입장객들의 돈을 받던 곳이다.

곡마단 천막 안의 어둠 따위는 비교조차 안 될 엄청난 밤의 어둠이 밖에 있었다. 아아 이 맑고 서늘한 밤. 그 언제던가, 기차로 곡마단이 이동하던 어느 날 밤에 열린 차창으로 이런 밤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신다.

멍청이는 나를 잡아끌어 찝차 안의 뒷좌석에 앉혔다. 단장의 차인지 단장의 퀴퀴한 몸 냄새가 역력하다. 잠시 후 차는 푸르륵 몸을 떨더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차가 곡마단 천막을 떠나 부근에 있는 마을의 앞 도로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을 때에도 야하하! 아이고 저런저런 하는 등등의 탄성들이 모든 집들에서 동시에 나다가 가라앉다가 하고 있었다.

마을을 반 넘게 지나쳐 갈 즈음이었다. 어느 집 개 한 마리가 요란하게 짖기 시작하니까 덩달아 다른 개들도 따라 짖기 시작했다. 멍청이는 차의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집 개인지 타다닥 도로를 내딛는 발소리까지 내면서 우리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허옇게 살아나는 본능으로 이빨들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멍청이는 나를 달래는 자 자 자 자소리를 내면서 더욱 차의 속력을 높인다.

차는 마을을 훨씬 벗어나 벌판길로 들어섰다.

밤하늘과 그대로 맞붙은 채 펼쳐진 벌판. 곡마단 천막 위에 매단 장식등 같은 별들이 밤하늘에 숱하게 매달려서 반짝이고 있다.

따라오던 개의 발걸음 소리는 사라져 버렸다. 간간이 덜컹거리기도 하면서 달리는 차.

멍청이가 나 들으란 듯이 뇌까린다.

이상하단 말이야. 어느 때부턴가 네가 사람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는…… 꼭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 같더라니까. 그러니, 내가 너를 그런 백정 놈한테 팔려가도록 그냥 있겠니?”

나는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안타깝다. 다른 때 같았으면 표정 손짓 등을 살피면서 당신이 하는 말의 뜻을 헤아릴 텐데, 당신이 운전하느라 앞을 보며 말하니까 뒷자리의 내가 볼 수가 있어야지. 나 참, 참으로 답답하네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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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동안 별 일 없었니? 으응 별 일 없었다고? 나는 별 일이…… 있었는데. 그 별 일을 얘기해 줄까?

이 얘기는 너한테만 하는 거다. 그러니까 다른 애들한테 절대 말하지 마. 절대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치고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는 게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믿어. 너는 내 유일한 절친이잖아. 그러니까…… 어제 새벽, 아니 오늘 새벽의 일이네. 이렇게 새벽까지 장사하다가 귀가하는 생맥주집 마담 생활이 칠 년이나 됐으면서도 그 날 새벽이 전 날 새벽처럼 여겨지는 착각은 뭔지, 나도 참.

그래그래, 오늘 새벽에 있었던 별 일을 얘기해 줄께. 그럼 어제 밤부터 소급해서 얘기해야겠네. 어제 밤 열한 시는 넘어서 그 자식이 어디서 일차로 술 한 잔을 걸치고 우리 가게에 왔거든. 건축업을 한다는 자식인데 아직 이름은 몰라. 열흘에 한 번 꼴로 우리 가게에 와서 혼자 소주 한 병 노가리 한 접시를 시켜놓고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손님들이 없으면 내게 수작을 걸지. “저 여기, 술 한 잔 받지 않겠수?”하고 합석을 청하고는 쓴 소주 한 잔 건네며 쓸데없는 얘기들을 늘어놓는 거지. , 자기 젊었을 적에 특수부대에서 명사수로 활약했다는 얘기인데…… 내 보기에는 몸도 작고 약해 보이는 게 아무래도 동사무소 방위로 때운 자식 같아.

나야 손님들 접대하는 장사니까 어떤 손님이 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할 처지가 아니잖아? 그래서, 그 자식이 뭐라 하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를 들어주다가 다른 손님이 들어오거나, 씨디 판이 다 돌아가서 음악이 끊기면 그것을 핑계로 자리를 뜨는 거지.

그런 핑계 말고도 갑자기 어디서 전화 온 듯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꺼내어 여보세요, 아 네네…….”하면서 급하게 통화할 모양으로 그 자리를 뜨기도 하지. 그냥 더 앉아서 안주라도 추가 주문하도록 부추길 수 있지만 그 자식한테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니까. 얼굴도 못생긴데다가 매너도 꽝인 거야. 솔직히 바쁜 사람을 불러다 앉혔으면 마시고 싶은 술이나 안주라도 있어요? 내가 낼 테니까 말입니다.”하는 정도의 매너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니겠니? 그런 매너 한 번 보이는 일 없이, 자기가 마시는 쓴 소주나 한 잔 건네며 말동무 하자는 그런 작자한테 내가 호감을 가질 일은 없잖아.

그런데 어제 밤은 이 자식이 이상하더라고. 거나하게 취해서 다 늦은 시간에 우리 가게로 들어온 것도 그렇지만 나를 불러서는 웬 일로 나는 소주면 되지만 댁은 무슨 술을 좋아하슈?”하고 묻더라니까? 전에 없는 매너라 미심쩍긴 했지만 모처럼의 매너를 물리칠 필요는 없잖니? 그래서 저는 복분자주를 좋아하는데요.” 해 버렸지. 그 술이 우리 가게에서 제일 비싼 술이잖니. 내가 좋아하는 술이지. 그랬더니 그 자식이 그럼, 댁도 그거 한 병 드슈.”하는 거야. 그래서 그 자식의 애호 메뉴인 소주, 노가리와 복분자주를 준비해 갖고서 그 자식의 맞은편 자리에 합석해 마시기 시작했거든.

2차로 들른 게 분명한데다가 내게 비싼 술도 내는 것으로 봐서, 나는 속으로 이 양반이 오늘 낮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지. 달리 그 늑대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니까. 다른 날보다 손님도 별로 들지 않고 해서 그 자식의 특등사수 얘기를 다시 들어주면서 복분자주를 한 병 다 마시고는, 눈치를 보았잖니? 그랬더니 그 자식이 한 병 더 마시지 그래? 소주도 한 병 더 갖고 오고 말이야.” 하더라고. 매상도 적은 날이니 이렇게 해서라도 보충해야겠다는 욕심이 들대. 그래서 고맙습니다, 사장님.” 하면서 추가로 복분자주와 소주를 갖다 놓고 앉아 마시기 시작했다니까.

그러다가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었어. 다른 테이블에서 생맥주잔들을 부비며 뭐라 열심히 속삭이던 남녀도 가 버리고, 나와 그 자식만 가게에 남게 됐지. 다른 날이면 손님이 한 팀 정도는 들어오기도 하는 시간대인데 전혀 그런 기미도 없는 거야. 그래서 슬슬 겁이 나더라니까. 그 자식이 소주를 세 병째 주문하면서 복분자주 한 병 더 하겠수?”하고 내 의사를 물었을 때 사양하고 일어날 수밖에. 아무래도 그 자식 하는 수작이, 내가 더 합석하고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어. 내 자리, 주방 자리야 항상 일거리가 있지 않니? 안주거리를 점검해야지, 가스기기 주변을 소제해 놓아야지, 술잔들을 물통에 담가서 하나하나 씻어 놓아야지…… 장사 준비할 게 늘 있잖니?

그러면서 그 자식의 눈치를 보는데 그 자식이 빈 술병들을 늘어놓은 채로 뭘 궁리하는 표정 같더라니까. 마음 같아서는 문 닫을 시간이니까 계산 부탁 합니다.’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세 시간 가까이 합석했는데 매정하게 그러기는 좀 뭣했지. 그래서 저 자식이 저러다가 졸리면 알아서 일어서겠지 하는 기대심으로 설거지를 하면서 기다렸지. 그러다가 두 시를 넘어서 세 시가 돼가는 거야. 내가 보통 가게 문을 닫고 귀가하는 시간인 거지.

그런데 그 자식이 게슴츠레해진 눈길을 내 쪽으로 던지며 죽치고 앉아 있는 게, 아무래도 내가 문 닫고 갈 때 따라붙으려는 속셈 같더라고. 내가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해 본 줄 아니? 안 되겠더라고, 마침내 내가 한 마디 했지. “사장님, 지금 문 닫고 갈 건데요.”

그랬더니 그 자식이 뭐라고 한 줄 아니? 이러더라고. “여기 복분자주 한 병 하고…… 제일 비싼 안주 하나 더!”라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아니에요, 저는 술 됐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하세요.” 했지. 그랬더니 이러더라니까. “내가 복분자주를 마시려는데 무슨 소리야?”

그래서 내가 아예 음악까지 끄고 나서 말했어. “복분자주 다 떨어졌어요. 이제 문 닫고 나갈 겁니다.” 했지. 음악도 끄니까 숨소리까지 들리는 판이 되었는데 그 자식이 부스럭거리며 지갑을 품에서 꺼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여봐, 목욕 값 넉넉히 줄 테니까 나하고 같이 나가면 안 되나?”하는 거지. 그렇게 그 놈의 새끼가 늑대본성을 드러내더라니까. 대꾸도 않고 가게 안의 전등들을 안쪽에서부터 끄기 시작했는데 그 자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오더라고. 기겁해서 그 자식을 피해서 후다닥 문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지. 112로 전화해서 경찰차를 부를 수도 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냐? 조용한 새벽시간에 요란 벅적한 경찰차가 오는 것도 그렇고…… 경찰차가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그 가게는 오래가지 못하거든.

밖으로 피하긴 했지만 가게 문을 닫지 못했으니 멀리 갈 수도 없고…… 그러니 우리 가게가 보이는 골목구석에 숨었는데 그 자식이 비틀거리며 나를 잡겠다고 가까운 골목언저리부터 뒤지는 거야. 그 자식이 우리 가게 오기 전부터 단단히 무슨 결심을 하고 온 게 분명했어. 모르긴 해도 우리 남편에 대한 조사까지 마치고는 남편이 산재병원에 십 년째 있는 여자라니, 까짓 거 생과부나 다름없구먼.’ 하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야. 내가 서러울 때가 이런 때지.

그 자식이 긴 골목의 구석구석, 전봇대 뒤라든가 슈퍼마켓 집 바깥의 하드상자 뒤편 같은 데를 하나하나 뒤지면서 오더라고. 하는 수 없이 숨었던 남의 집 대문 앞 후미진 데를 떠나서 골목을 한 바퀴 돌았는데…… 어쩜 좋니? 그 자식이 골목을 떠나지 않고 계속 내 뒤를 쫓는 거야. 가게 문도 못 채웠으니 골목을 벗어날 수도 없고 시간은 새벽 네 시로 되어가고…… 늦어도 그 시간에는 들어가야 우리 집 애들 아침상이라도 차려놓고 늦은 잠을 한잠 잘 수 있잖니? 애들이 다 컸어도 아직도 내가 아침상을 차려놓아야 밥 먹고 학교들 간다니까.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한데…… 웬일이야, 그분이 큰길가에 서 있더라고! 그분이 누구냐고? 내가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 줄게. 아주 점잖은 분이란 것만 우선 말할게.

그분한테 체면 불구하고 다가갔지. 컴컴한 골목에서 내가 나타나니까 그분이 펄쩍 놀라더라고. 슬리퍼를 신고 있다가 그만 한 쪽을 발에서 놓치더라니까.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어. “선생님, 저 아시죠?” 그랬더니 그분은 큰길의 가로등 빛을 이용해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그래서 부탁했지. “지금 나쁜 자식이 저를 어떻게 하려고 쫓아오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남편인 것처럼 제 옆에만 서 주세요.”

그러니까 그분이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자식이 그 때 다가왔어. 느닷없이 내 옆에 어떤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그 자식도 놀라, 대여섯 걸음 거리를 두고 멈춰 서더라고. 내가 말했어. “내가 늦으니까 우리 남편이 걱정돼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니까 사장님이 나를 바래다주지 않아도 됩니다. 계산이나 하고 가세요. 오만 육천 원입니다.”

그 자식이 지갑을 꺼내더니 기가 꺾인 소리로 묻더라고. “여기서 돈 드리나?”

나는 가까이도 가기 싫어서 그냥 문 안에 놓고 가세요.” 했지. 키도 작은 자식이 기가 꺾이니까 더 작아 보이더구나. 그런 꼴로 그 자식이 사라진 뒤 나는 그분을 모시고 가게로 다시 들어갔지. 그 자식이 문 안 바닥에 놓고 간 돈을 세어 보니까 오만원이더라고. 육천 원을 덜 낸 거야. 정말 나쁜 자식이지.

그분한테 앉으시라고 해 놓고 생맥주 한 잔을 만들어 드리려 했더니 이러시는 거야. “아니 마담, 새벽부터 무슨 술은?” 웃으면서 하는 말씀에 나는 당황해서 그럼 뭘 드릴까요?”했더니 그냥 냉수나 한 컵 주쇼.”하는 거였지. 그래서 냉수 한 컵을 갖다 드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왜 그리 쏟아지던지, 나도 모르게 잠시 흐느꼈단다. 얼마나 서러운 내 팔자냐 말이다.

그분이 내가 눈물을 훔치고 나니까 말씀하더라고. “늙어서 새벽잠이 짧아지는지라 오늘도 꼭두새벽에 깨어나는 바람에 다시 잘 수도 없고 해서 옷을 입고 집을 나와 마냥 걷다보니까 이 동네까지 온 거라고. 그러면서 어찌 됐건 자기가 곤경에 처한 마담한테 도움을 주었다면 기쁜 일이라 덧붙였지.

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말씀을 길게 드릴 수도 없고 해서 선생님, 오늘 저녁에 한 번 들러주세요. 제가 아까 신세진 것을 갚고 싶거든요.”했지. 그랬더니 그분은 , 나는 그냥 마담 옆에 서 있었을 뿐인데 무슨 신세는…….”하면서 나가시더라고.

정말 좋은 분이지?

아무래도 어디 대학교 교수가 아닌가 싶어. 나이는 우리보다 서너 살쯤 위가 아닐까? 가끔씩 우리 가게에 들러서 말없이 생맥주 한 잔을 들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가곤 하시지. 생김새는 그냥 순하게 생겼어. 글쎄, 교수로써 좀 늙은 분 얼굴을 생각하면 될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그 자식 이야기 하느라고 정작 그분 이야기를 조금밖에 못했는데…… 이상하게 내 가슴이 뛴다니까? 그분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인데도 말이야. 새벽에 내 옆에 남편인 척 서 계실 때에는 내 옆구리가 따듯하고……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 있지?

나도 미쳤나 봐, 멀쩡한 남편을 두고 이런 말을 하니 말이다. 뭐라고? 내가 연애한다 해도 뭐라 나무랄 사람 하나 없을 거란 말이지?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나는 그냥 솔직한 심정을 너한테만 말하고 싶었던 거야.

얘도 참…… 내가 다시 전화할 게. 오늘 저녁 때 그분이 오면 어떤 분인지 여쭈어 보고 다시 너한테 전화할게. 그럼 이만 끊어. 그래그래, 지금 오후 네 시이니까 부지런히 화장하고 가게 나갈 채비를 해야지. 그럼…….

 

별 일 없었니? 내가 날마다 전화하는 셈이네? 그럼, 그분 얘기를 하고 싶어서 전화 걸었어. , 궁금하지 않았다고? 시끄러워, 년아! 하하하하.

자 그럼, 얘기 들어. 너는 힘들 것 없어. 어제처럼 그냥 듣기만 하면 돼.

내가 …… 다른 날들보다 한 시간은 이르게 가게 문을 열고서 기다리는데 그분이 오지를 않더라고. 그런데 앞마당 비로 쓸자 문둥이가 온다고…… 그 망할 자식이 일찍이도 들어와서 소주 한 잔을 시켜놓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내 마음이 편치 않던지! 눈치를 보니까 그 자식이 뒤늦게 정말 그 여자, 남편이었나?’ 수상하단 생각에 확인 차 온 모양이야. 자기가 알기에는 분명 남편이 산재병원에 십 년째 누워 있다는데 그렇게 꼭두새벽에 남편이란 사람이 멀쩡하게 와 있다니,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생각이 든 게지.

덜 낸 돈 육천 원부터 달라고 싶어도 일단 참고서, 그 자식이 주문한 소주와 노가리를 준비해 갖다 주고 주방에 있었지. 그러다가 시간이 웬만큼 지나서 손님들이 들어올 때부터는 주방을 나가 주문도 받고 합석도 해 주고 하면서…… 그 자식 있는 구석 쪽으로 가는 일은 피했지. 벌레 같은 자식이라 내쫓고 싶지만 여기가 서비스업이니까 어떡하니? 그냥 냅둬야지.

그런데 그분은 오시지 않는 거야. 그 자식은 소주 한 병 갖고 두 시간 넘게 미적거리면서 나를 살펴보는데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친정의 오라비라도 불러서 그 자식을 해결하고 싶은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이냐? 친정에 근심거리 하나 덧붙이는 일밖에 더 되겠니? 문둥이 같은 자식은 오늘도 자정 넘어서까지 남아서 무언가 짓거리를 할 눈치이고…… 그래서 고민하면서 장사를 하는데 그분이 나타났단다!

얼마나 반가운지 냉동 오징어들을 가스 불에 녹이다가 그만 태울 뻔했단다, . 그러니까 밤 아홉 시가 될 즈음에 그분이 물방울무늬 티셔츠 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거, 있지. 나는 얼른 주방을 나가서, 창가 테이블의 의자를 잡아 조금 뒤로 빼주어 그분이 편히 앉도록 한 뒤에 말을 건넸지. “선생님, 뭐 좋아하세요?” 물었더니 늘 하던 대로 생맥주 오백하고 마른안주 줘요.”하는 거야. 내가 더 비싼 것을 시키셔도 됩니다. 제가 내는 거니까요.” 했더니 허허 웃으면서 그럼, 마담이 좋아하는 복분자주 한 병을 추가합니다.” 하더라니까. 그분이 내가 좋아하는 술도 알고 계신 거야.

나는 가슴이 콩닥거리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더라니까. 아마 실내 불빛이 밝았다면 그런 내 얼굴빛이 보였을 텐데 어둡기 다행이었지. 뭐라고?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얘는…… 내가 팔자가 꼬여서 이리 됐지만 이래봬도 여고 시절에는 문예반을 했었잖니?

맞다, 맞아. 그분은 국문학과 교수일 거야. 점잖은데다가 희끗희끗한 머리, 생각 깊어 보이는 얼굴…… 틀림없어, 내가 이 장사 칠 년 동안 통달한 것 중 하나가 손님들 직업 맞추기라니까.

나는 주방에서 마른안주와 술을 준비해서 그분 자리에 가서 합석했단다. 구석에 앉은 그 개자식이 연실 가자미 눈깔이 되어서 그분과 나를 째려보더구먼.

얘도, 고만 웃어라 얘.

그분이 복분자주 병마개를 따더니 내게 한 잔 따라주어서 나는 그분의 맥주잔과 보조를 맞추면서 마셨지. 다른 손님들의 추가 주문을 받거나 나가는 손님들의 계산을 받을 때 이외에는 그분 자리에 합석해서 술잔을 나누었단다. 어쩜 그분은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은지! ‘호텔 캘리포니아가 나오니까 이건 몽롱한 대마초를 피우는 그런 세기말적 분위기의 노래인데하면서 그에 얽힌 뒷얘기라든가, ‘디 엔 오브 더 월드가 나오니까 마담, 이 노래 부르는 스키드 데이비스가 지금 할머니가 되었다는 것 아시나?”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적이 있다는 등…… 웬만한 라디오의 음악전문 디제이 못지않으시더라고.

처음으로 합석해 본 셈인데 얼마나 구수하고 박식하게 말씀을 잘 하시는지!

사실, 내가 특정 손님과 오래 합석하는 것은 그리 좋은 게 아니거든. 다른 손님들한테 소홀히 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다른 생맥주집에 갈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내가 보고 싶어서 들른다는 손님들이 삐쳐서 다른 데로 갈 수도 있거든.

얘는, 뭔 소리니? 난 아직도 예쁘다는 말을 듣잖니? 우리 가게가 외진 데 있어도 손님들이 찾아오시는 이유를 너는 모르니? 내가 오십 나이인데도 다들 사십대 초 중반으로 보고 있다니까. 물론 화장발 덕을 단단히 보긴 하지만 말이다. 하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그분이 말씀도 잘하시지만 얼굴도 동안이더라고. 나는 그분이 그 새벽에 늙어서 새벽잠이 짧아진다.’는 얘기를 할 때에는 이분이 무슨 소리를 하나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정년퇴직한 분이더라고. 공직생활을 하다가 막 퇴직하셨다는 거야. 그러니까 환갑이 다 된 분이지. 그런데도 어쩜 오십대 중반이나, 우리 또래처럼 보이냐? 가까이서 뵈니까 얼굴에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게 전혀 환갑 나이가 아닌 거야. 이런 분이 우리 가게를 전부터 간간이 들렀는데도 내가 어떻게 제대로 알아 뵙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까 싶더라니까.

그분이 나는 생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게 취미인데 이렇게 예쁜 마담도 알게 되었으니 이 집의 단골이 되겠다.”고 하시는 것 있지? 그러니 앞으로는 자주 들를 거야. 그래그래, 그분이 들를 때 곧바로 너한테 전화할 게. 그 때 와 봐. 그분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너한테 보여주고 싶구나.

내가 그분한테 혹시 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다가 퇴직하지 않으셨어요?”하고 물었더니 허허 웃으면서 그건 아닙니다. 거기는 환갑이 넘어 예순다섯이 정년이거든요. 나는…… 가만 있자, 이 문제는 퀴즈로 두겠소. 마담이 내가 뭐하다 나온 사람인지 맞추면 상으로 점심 한 번 내리라.”하는 거였지. 어쩜 목소리도 그윽하고 잔잔한지.

그러고 있으니까 그 개자식이 영 수상하다는 눈길로 우리 쪽을 째려보며 앉아 있더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무래도 부부로 보이지 않았겠지. 어디 부부가 그렇게 매너를 갖추고 마주앉아서 술잔을 나누니? 그러니까 그 자식이 저건 아무래도 수상하다. 부부는 아니다. 그럼 무슨 관계일까?’ 생각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든든한 백 하나가 생긴 셈이므로 그 자식을 눈앞에서 내쫓아야겠다는 마음까지 들더라니까. 그깟 자식 하나 안 온다고 매상이 줄면 얼마나 줄겠냐? 그래서 그분께 생맥주 한 잔을 추가로 갖다드리려고 일어난 김에 그 자식한테 가서 말했지. “어제 육천 원을, 마저 주셔야죠.”

그랬더니 그 자식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는 거, 있지? 내가 그깟 자식이 겁날 게 뭐가 있니, 든든한 그분도 가까이 앉아 있는데…… 그분이 덩치도 좋아서 작은 그 자식 덩치의 두 배는 돼 보이거든.

그 자식이 이러더라고. “이따 나갈 때 주면 안 되나?” 그래서 지금 주세요.” 했더니 그 자식이 나 참!” 하며 일어나면서 어제 남긴 돈 육천 원과 오늘 계산 만 이천 원을 합쳐서 만 팔천 원을 테이블 위에 팽개치듯 탁 놓고서 문 밖으로 나가 버렸어. 꼬리를 밑으로 감은 똥개 모양, 꺼지던 꼴이라니! 하하하하.

그분과 나는 자정 가까이 술잔을 나누었단다. 나는 복분자주를 두 병이나 마셔서 좀 취했는데 그분은 기껏 생맥주 오백을 세 잔 마셨는데도 취하신 것 같더라고. 내가 더 드시겠어요?” 물었더니 아니, 됐어요. 나는 많이 못합니다. 이만 가야죠.” 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어쩐 줄 아니? 글쎄, 지갑을 꺼내 계산하시려는 거야. 내가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내는 겁니다.” 해도 다음에 마담이 내세요.” 하면서 굳이 만 원 짜리 네 장을 주시는 거 있지. 나는 하는 수없이 오천 원을 거슬러서 그분한테 드렸어. 복분자주까지 삼만 오천 원이 나왔거든. 그런데 그분은 됐습니다.” 하면서 잔돈도 받지 않으시니…… 얼마나 넉넉하고 좋은 분이니!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아마 내가 취해서 힘든 내 팔자 사연을 털어놓았나 봐. 그분이 그런 나한테 술값 부담은커녕 몇 푼이라도 남겨주고 싶었던 게 아니겠어? 얼마나 마음씨 좋은 분이니!

나는 그분이 문 밖으로 나갈 때 뒤따라 나가서 배웅까지 했단다. 그분은 내가 따라 나왔는지도 모르고 그냥 걸어가다가 선생님 또 오세요.”하는 내 인사말을 뒤로 듣고는 놀라서 뒤돌아보더라고. 그럴 때는 어쩜 청소년 같던지.

잠깐, 밖에 누가 왔나 보네. 뭐요? …… 아파트 노인회? 아예, 폐휴지 받으러 오셨구나. 잠깐만요. 얘야. 오늘 전화는 여기까지 할게. 그럼 끊어.

 

별 일 없었니?

먼저 통화하고 열흘만이지? 바쁜 일들이 있어서 너한테 전화 한 번 못하고 지냈네. 남편 있는 산재병원도 다녀오고 서류도 떼어다 주고 그러느라 좀 바빴어.

그분 얘기부터 시작할 게. 그분이 자기가 뭐하다가 퇴직했는지 퀴즈로 낸다 했잖아? 알아냈어. 그분은 바로 일 년 전에 여기서 가까운 시골의 군청에서 과장으로 있다가 퇴직한 분이시더라고. 문화관광과라고 갖가지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의 장이셨다는구나. 그분이 내게 말해 준 것은 아니고 우연히 다른 손님한테서 얘기 들었지.

그러니까 지난 주 일요일이었어. 그날 초저녁부터, 등산 다녀온 분들이 한꺼번에 여남은 명 들어찼는데 그분이 공교롭게 그 직후에 나타난 게 아니겠니? 일주일 만이었지. 그분은 잠깐 들어왔다가는 실내가 떠들썩하니까 그냥 휭 나가시더라고. 나는 얼마나 속상하던지 쫓아나가서 선생님, 이따가 다시 들르세요.”하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고개를 그냥 끄덕끄덕 하며 가시는 게 다시 들를 것 같지 않더라니까. 얼마나 속상하니, 하필 기다리던 그분이 오기 직전에 무더기로 손님들이 닥칠 게 뭐니? 매상도 좋지만 이럴 때는 속상하단다.

맞아 맞아, 그 날이야. 내가 일손 좀 도와 달라고 너한테 전화 건 그 날이야. 네가 남편이랑 속초에서 광어회를 먹고 오는 중이라 했지. 그래서 하는 수없이 이웃 식당 집 아주머니 일손을 빌려서 손님들 접대를 치렀다니까. 아주머니한테 돈 만원을 나중에 드렸지 뭐. 그런데 그 손님들 중 한 분이 내게 이러시는 거야. “아까 들어왔다 그냥 나가신 분, 여기 잘 오세요?” 그래서 내가 네에, 우리 집 단골입니다.”했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야. “그분이 ○○군청에서 문화관광과 과장님으로 퇴직한 분이지요. 내가 십여 년 전에 상사로 모시기도 했는데 오늘 얼결에 인사도 못 드렸네. 그분이 글 쓰는 게 취미라 수필집도 한 번 냈어요.”

나는 그 말씀에 얼마나 가슴이 벅찬 줄 몰라. 내가 그분 정체에 대해 반은 맞춘 게 아니겠니? 국문과 교수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수필집을 낸 분이라니…… 대학 교수와 뭐가 다르겠니? 내가 누구니? 여고 시절에 글짓기 백일장만 나가면 상을 타던 애가 내가 아니었니? 여류작가가 되는 게 그 때 내 꿈이었다고.

어쩜, 글 잘 쓰는 분을 이렇게 만날 줄이야!

역시 뭔가 다른 분이었어. 내가 왜 진작부터 그런 괜찮은 분이 우리 가게를 들르는데도 모르고 있었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까 그럴 이유가 있었어. 다른 손님들과는 합석하면서 신상을 알게 되는데 그분과는 합석이 그 날 처음이었거든. 합석이란 게, 내가 청하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청해야 가능한 일이잖아. 그러니 항상 혼자 말없이 맥주를 마시다가 가는 그분이…… 어려워서 어디 내가 말이나 붙일 수 있었겠니?

그런데 그 날 새벽 이후로 그분과 합석하게 되면서…… 알면 알수록 아주 괜찮은 분인 거야. 무뚝뚝해 보이지만 마음속도 따듯하고, 역시 글 쓰는 분이니까 뭐가 달라도 달랐어. 우리 여자들이 사내들은 다 똑같이 도둑놈들이라고 말하지만……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분은 달라. 정말 점잖고 좋고 괜찮은 분이야. ? 잠깐 기다리라고? 알았어, 년아.

그래…… 무슨 일이야? 강아지가 거실바닥에 오줌을? 니미, 개 팔자도 좋네. 삼십 평 넘는 아파트에 사람과 같이 살면서 아무 데다 오줌 싸고 먹고 자고…… 나보다 낫네. 정말 개 팔자 상팔자네.

, 그분 이야기를 마저 할게. 시끄러워! 너는 그냥 듣기만 해. 내가 수다 떠는 일 외에 무슨 낙이 있니, 년아. 하하하하.

그분 이야기나 조금 더 하고 오늘 전화 끊을 게.

그분이 그렇게 단체 손님들로 떠들썩하니까 휭 하니 가시고 난 그 이튿날 초저녁에 다시 우리 가게에 오셨다는 게 아니니? 내가 안의 전등들을 켠 뒤 바깥의 간판 불을 켜는데 그분이 들어오셨다니까. 항상 당신이 즐겨 앉는 창가 테이블 자리에 앉더니 마담, 음악 틀어줘요. 그리고 생맥주 오백하고 마른안주…… 그리고 복분자주도 한 병.” 하시는 게 아니겠니?

그래서 그분이랑 호젓하게 마주앉아 술잔을 나누었다는 게 아니니?

우리 가게가 외진 데 있어서 초저녁에는 손님들이 거의 없거든. 대개 시내에서 일차로 술 한 잔 마시고 귀갓길에 들르는 늦은 손님들이 많지. 그러니까, 잔잔한 팝송 씨디를 골라서 틀어놓고 나는 그분과 호젓하게 마주앉아 술잔을 나누었단다. 네가 알지만 나는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시집갔잖아? 이 장사를 한 뒤로 남자들이 단골손님이랍시고 접근들 많이 했지만 다 그게 그거야. 빤한 늑대속셈이 아니겠니? 자기 마누라 아닌 다른 여자 맛 좀 보자는 게 아니겠니? 내가 손님 자리에 합석을 잘하긴 해도 항상 조심한다니까. 이 좁은 바닥에 외간남자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하니? 손님들 떨어져 나가는 게 문제 아니지, 머지않아 시집 장가보낼 내 새끼들 앞날까지 먹칠할 일이지.

가만 있자, 그분 얘기를 한다는 게 심각한 얘기로 들어섰네. 그 날 그분 얘기로 다시 돌아갈게.

내가 그분한테 말씀 드렸지. “이렇게 초저녁에 들르시면 대개 손님들도 없고 조용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시간대에 자주 와 주세요.” 그러니까 그분이 이러시더라고. “내가 겉보기보다는 몸이 안 좋아요. 환갑 다 된 노인네니까 당뇨니 고혈압이니 해서 몸이 시원치 않아서…… 그래서 이 집을 자주 오고 싶어도 그러지를 못 하는 거요. 의사가 술은 절대 금하라지만 노후에 술도 못하면 무슨 낙으로 사나? 그래서 도수가 약한 생맥주를 마시는 거지.”

자주 오실 것 같았는데도 그러지 않은 이유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어. 나는 그분께 그 퀴즈 얘기를 꺼냈단다. “선생님, 먼젓번에 내신 퀴즈의 정답을 제가 알 것 같거든요? 맞추면 점심 한 번 사신다 했지요?”하니까 그분이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선생님은 ○○군청 문화관광과 과장님을 하시다가 나온 분이잖아요? 수필가이시고. 맞죠?” 하니까 그분이 껄껄 웃으면서 하여튼 이 도시가 좁아. 금세 알아냈네! ……그래, 마담한테 점심 한 번 내야지. 그럼 말이야, 마담 휴대폰 번호 좀 가르쳐 줘요. 내가 적당한 날 낮에 연락할 테니까.” 하시더라고. 그래서 내 번호를 가르쳐 드리고 제가 오전 중에는 잠을 자고 낮 열두 시경에 일어나니까 그걸 참조해서 연락 주세요. 그리고 오실 때, 선생님의 수필집도 남은 게 있으면 한 권 부탁합니다.” 말씀드렸지. 그분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어.

이렇게 내가 손님과 점심식사 약속하는 것은 드문 일이란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쯤 될 거야. 아무 손님하고나 그런 약속 하면 안 되거든. 인구 이십만은 넘는 도시라지만 얼마나 좁은 바닥이게? 그래서 나는…… 쉽게 점심약속을 잡지 않고 몇 달을 끌면서 그 손님이 어떠한 인간인지 잘 살펴보고서 약속에 응한다니까. 솔직히 여자 손님이 나한테 식사를 사겠니? 남자손님이니까 나한테 식사를 사는 거지. 그러니까 조심해서 응해야 하거든. 대개는 별 일 없이 식사나 하고 말지만 안 좋은 작자들도 있지.

예를 들어 작년의 어떤 사장님은 아주 점잖게 우리 가게를 다니면서 나를 잘 대해주다가, 내가 믿고 점심약속을 했더니 어떻게 나온 줄 아니? 중형차 큰 것을 몰고 나와 드라이브부터 하자며 외곽으로 나가더니 글쎄, 모텔 주차장으로 불쑥 들어가더라니까? 내가 어이가 없어서 아니 점심식사라더니 왜 이러시는 거에요?”했더니 뭐라 그러는 줄 알아? “방에 들어가서 식사를 부탁해도 다 갖다 줍니다. 걱정 마세요.”하는 것 있지? 미친놈의 새끼지! 내가 그냥 차에서 내려 도로로 뛰쳐나왔지 뭐니. 그 새끼가 아무리 힘센 놈이면 뭣하니? 벌건 대낮에 길바닥에서 나를 붙잡아 갈 수는 없잖아? 거기서 택시를 휴대폰으로 불러서 타고 왔지 뭐야. 괜히 점심도 굶고 비싼 택시비만 쓰고 말았지. 그 실없는 사장 새끼가 나를 매춘부로 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나 참!

아냐, 수필가인 그분은 그런 분이 아니야.

내가 그분과 술잔을 나눈 지는 채 한 달도 안 되지만 나는 알아. 다른 남자였으면, 내가 각별히 대해준다는 느낌 하나만으로도 벌써 뻔질나게 우리 가게를 들르면서 수작을 건넸을 텐데 그분은 전혀 그런 기미도 없었잖아? 그 뒤로 기껏 세 번 들렀던가? 정말 보기 드문 점잖은 양반이야.

뭐라고 년아? 노인네니까 그 생각이 감퇴한 거라고? 이 년도 참, 그렇지 않아! 그분은 동안이라니까. 연세는 환갑 근처이지만 몸은 우리 또래야. 나도 참,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좋아. 네년 말대로 노인네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점잖을 수도 있겠지. 그러면 어떠냐? 나는 그런 푸근한 분 품에 그냥 한 번 안겨보고 싶어. ‘그거없이도 그냥 안겨서 잠이라도 푸근하게 자고 싶어. 그래그래, 농담이 아니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십년이나 부부생활도 못하고 사니? 여자 나이 사십대 말 오십대 초가 한창 부부 맛을 아는 나이라는데 나는 뭐니?

나는 이제는 지쳤단다. 남편 복이야 날아갔다 치고 애들 바라며 사는데 애들이야 얼마 안 있으면 다 제짝 찾아서 떠날 것 아니니? 그럼 내 인생은 뭐니?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 나이에 밤잠 한 번 제 때 자지 못하고 밤샘 장사니?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니?

…… 미안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다시 전화할 게.

 

오랜만이야.

이번 전화도 열흘만이지, 아마. 어쩜 그분은 무정하기 짝이 없니? 먼젓번에 내가 낮 열두 시경부터 시간이 난다는 말씀까지 드렸는데도…… 어떻게 전화 한 통화가 없니? 다른 손님 같았으면 점심약속이 이루어지자마자 당장 다음 날 낮에 전화를 걸거나, 길어 봤자 이삼 일 이내에 전화를 준다고. 그런데 그분은 네 말처럼 뭐가 감퇴한노인인지 영 연락이 없는 거야. 오늘까지 열흘째 그러네?

건강이 안 좋은 편이라더니 몸에 문제가 생긴 건가?’ 걱정도 들었다가, ‘혹시 내가 술장사 하는 년이라고 업신여기는 건가?’ 열 받아 봤다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집안에 무슨 힘든 일이 생겼나 봐.’하고 스스로 달래보기도 하면서 이렇게 열흘이 흘렀지 뭐니.

그래, 년아. 그분이 우리 가게에 왔었다면 내가 너한테 즉시 전화를 했겠지. 빨리 와서 그분 얼굴을 보라고 말이야. 그 약속을 내가 잊은 줄 알았니? 이제 오해가 풀렸니, 년아?

그나저나 고민이란다. 몇 번 되지도 않지만 내가 그분과 합석을 오래했더니 벌써 후유증이 생긴 것 같아. ‘다른 생맥주집에 갈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나를 보는 낙으로 우리 가게를 들른다는 손님들 중 삼십 퍼센트는 줄어든 느낌이야. 글쎄, 불경기가 심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위로가 되겠지만…… 내가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단란주점도 아니고…… 이런 생맥주 집은 여주인의 역할이 결정적이란 말이야. 안주 만드는 솜씨는 기본이고 손님들을 아주 세심하게 대해 주어야 하거든. 손님들 섭섭하지 않게 적당히 합석해 주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단 얘기야. 내 나름대로 합석의 원칙도 정해 놓은 게 있단다. 들어볼래? 첫째 합석을 오래하지 않기. 어떤 손님과 오래 합석하면 다른 손님들이 삐칠 수 있거든. 사내들이 의외로 속이 좁다는 걸 너는 잘 모를 거다. 둘째 가급적 두루두루 여러 손님들과 합석하기. 그래야 보다 많은 단골을 확보할 수 있거든. 셋째, 합석을 원치 않는 손님은 그대로 두기. 손님에 따라서는 혼자 있기를 즐기거나, 아니면 애인이라도 기다리는 경우가 있거든. 그걸 헤아리지 못하고 합석했다가는 망신당한다니까.

부근의 생맥주집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거나 주인들이 바뀌지만 우리 가게는 유유장창 잘 나가는 비밀이 바로 나의 이런 합석 원칙 준수에 있었다는 것, 오늘 너한테만 알려준단다. 이거…… 절대 비밀로 해야 돼. 알았지?

나도 참.

그리운 임한테서 아무 소식 없으니까 영업비밀이나 밝히고…… 나도 이 장사 걷을 때가 되었나 보다. 폐경이 되면 우울증이 나타난다더니 내가 그 모양인가? 요즈음엔 다 집어치우곤 머리 깎고 산속으로 들어가 비구니로 살까 하는 생각도 불쑥불쑥 한다니까. 하하하하.

알았어, 년아. 그렇게 하려도 복분자주 생각나고 새끼들 생각나서 안 되겠지? 오늘은 얘기해 줄 소식도 없는데 괜히 전화했나 보다. 그래그래, 이만 끊을 게. 그럼…….

 

얘야, 어제 오늘 사이에 아주 대단한 드라마가 있었단다. 그분 얘기인데 이건 드라마나 다름없어. 잘 들어 봐. 그분이 어제 밤 자정 가까이 되어서 우리 가게를 들른 거야!

다른 때하고는 다르게 휘청거리는 걸음인 게 시내 어디서 일차를 하시고 들른 게지. 그 때 내가 다른 손님 맞은편자리에 합석해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그렇게 들어오는 그분을 보고는 후딱 자리를 일어나서 그분한테 갔다니까? 합석했던 손님한테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떡하니? 내 마음이 그런 걸.

그분은 많이 취해 있더라고. 내가 그분 주문대로 생맥주, 복분자주, 복숭아 통조림 안주까지 갖추어 가서 옆에 앉았지 뭐니. 그랬더니 그분이 무슨 큰 봉투 하나부터 내게 건네는 거야. 뭔가, 봉투를 열어봤더니 그분이 몇 해 전에 펴냈다는 수필집이더라고. ‘늦가을 강변에 서서라는 제목이지. 어떻게 술에 취해서 우리 가게로 오는 중에도 책을 흘리지 않고 왔는지, 너무나 고마워서 뭐라 말을 못하겠더라니까. 표지를 열고 안을 펼쳐 보니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 ‘열심히 사는 마담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김호준 드림.’

귀중한 책을 잃으면 안 되니까 우선 그 책을 주방 안에 갖다 놓고 다시 그분 자리에 와 앉았지. 그분이 복분자주 병마개를 따서 술을 내 잔에 따라준 뒤 우리는 잔들을 부딪치고 우선 한 잔 마셨단다.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라던 말씀이 기억나서 내가 이런 말씀을 드렸어. “선생님한테 오늘은 맥주를 한 잔 이상 팔지 않겠어요. 선생님 건강도 안 좋으시다는데…….”

그랬더니 그분이 나를 빤히 보더니 내 두 손을 자기 손으로 끌어 모아서 꽉 쥐더라. 다른 손님들이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는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그러고 앉아 있었지 뭐니. 그 때 무슨 음악이 나온 줄 아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 웬투 유어 웨딩이 나오더라고. 그분은 영어 노랫말도 아는지 작은 소리로 흥얼흥얼 따라 부르더라니까. 그 노래가 끝날 즈음에 다른 손님들이 여기 계산이요.”하고 소리쳐서 나는 그 자리를 일어났지. 술값 계산을 마치고 다시 그분 맞은편자리에 앉았더니 이러시는 거야. “그 동안 내가 안 온다고, 전화 한 번 없다고 나를 원망했지? 나도 사실…… 마담이 좋아. 그래서 겁이 나는 거야. 마담과 사랑에 빠질까 봐 겁나는 거야. 이게 진심이야. 마담과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것 같거든. 다 늙은 놈이 그게 무슨 꼴이겠어? 그래서…… 그 동안 일부러 전화하지 않은 거야.”

알겠니?

얼마나 순진하고 문학적인 분이니! 그제야 나는 그분을 제대로 알 수 있겠더라고. 그분은 평생 살아오면서 외도 한 번 없이 살아온 분인 거야. 이런 분을 남편으로 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질투심도 나더라니까. 그분은 내가 부탁한 대로 생맥주 한 잔만 마시며 앉아 있고 나는 그분의 양해를 구한 뒤 복분자주 한 병을 마시며 육, 칠십 년대 팝송들을 말없이 들었단다.

다른 손님들도 다 나간 한 시경까지도 그렇게 나는 그분과 말없이 손을 잡고 앉아 팝송을 들었어. 그러다가 그분이 이만 가야겠다고 할 때 내가 솔직한 얘기를 했지. “선생님, 저도 선생님을 좋아해요. 저는요 선생님같이 좋은 분을 망가뜨릴 생각이 전혀 없어요. 선생님, 데이트는 데이트에요. 그 이상은 아니에요. 선생님이나 저나 같은 오십대 아닌가요? 이팔청춘은 아니니까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더 솔직한 말씀을 드릴까요? ……저는 선생님 품에 한 번 안기고 싶어요. 그뿐이에요. 한 번 안긴다 해서 문제가 생길 게 뭐가 있어요?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는 우리 둘의 비밀로 간직하면 되지 않겠어요? 이해하시겠어요?”

그분은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다 듣고는 잡은 내 두 손을 다시 한 번 꼭 쥐었다가 풀면서 일어나서 갔어. 물론 계산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지. 그분은 어느 때부턴가 계산하실 때 잔돈은 그냥 두고 가신다니까. 나는 그분 뒤를 몇 발자국 따라가서 골목길에서 다시 말씀 드렸어. “‘늦가을 강변에 서서수필집, 너무 고맙고요…… 이삼 일 이내로 낮에 전화 주세요. 알았죠?” 하니까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갔지.

이게 어제 늦은 밤부터 오늘 새벽 한 시경에 걸쳐서 있었던 일이야. 정말 한 편의 드라마 같지 않니? 그래서 다른 때 같았으면 낮 열두 시는 되어야 잠에서 깨는데 오늘은 열한 시경에 일어났다니까. 세수와 기초화장까지는 해놓고 기다려야 되지 않겠니? 그래야 그분이 전화를 주는 대로 늦지 않게 나갈 수 있잖아.

그런데 지금이 오후 세시이니까…… 오늘은 전화 없이 그냥 지나간 거겠지?

내 짐작에는 그분이 어제, 오늘 새벽까지 술 마시며 다니느라 고단해서 늦게 일어나셨을 것 같아. 그러니 전화할 새가 있었겠니? 이런 정도의 추리는 기본이지. 그분이…… 내일 낮에 전화하실 거야. 틀림없어. 내가 그분과 만나고 난 뒤에, 나중에 너한테 얘기해 줄게.

, 나쁜 년 아니지? 나는 그분을 좋아하지만 우리 남편도 사랑해. 이제야 하는 얘기인데 먼젓번 산재병원에 갔을 때 우리 남편이 이러더라고. “나는 당신이 다른 좋은 남자가 있으면 연애도 하고 그랬으면…… 내 마음이 편하겠어.”

내가 남편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더 말을 못하게 했지만…… 그래그래, 고마워. 역시 너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친구야. 너도 우리 남편과 같은 마음이구나. 고마워. 이만 전화 끊을게.

내일이나 모레쯤 무슨 일 있고서, 그 때 다시 전화할게. 하하하하. 알았어. 그래그래, 하하하하.

 

 

☓ ☓

 

아무래도 말해줘야 할 것 같아 오늘은 내가 먼저 전화했단다. 네가 말하는 그분 내가 알아. 그분이 같은 아파트의 옆 동에 살거든. 그런데 그분이 괜찮은 분인 건 맞는데 딱한 사정이 있어.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을 못하거든. 하필 그분이 퇴직하자마자이니까 일 년쯤 되지. 그래서 그분이 아내 수발을 드느라 외출도 잘 못한다고 소문나 있어. 요양보호사를 쓸 만도 한데 평생 내 뒷바라지 하다가 쓰러진 아내인데 어떻게 남한테 맡기냐며 거절한다고 해. 그나마 밤에는, 직장 다니는 아들이 퇴근하는 대로 교대해 줄 때가 있어서 바람을 쐰다더라.

나는 네 절친이잖니. 웬만하면 네가 그분과 각별한 정도 쌓고 그러려는데 찬물은 끼얹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더 이상 침묵하지 못하겠구나. 그분이 그런 사정이 있는 분이니까 낮에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러려니 하고 말아라. , 낮 시간에 전화가 와서 그분과 밖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그러면, 이건 내 생각인데, 그저 간단하게 식사나 하고 말아. 그게 그분의 어려운 가정을 생각한다면 맞을 둣 싶다.

? …… 우니? 미친년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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