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오랜만에 터진 나의 발표 욕구였다. 그래서 실수하기 딱 좋은 발표였는데 뜻밖에 무난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물론 내 목소리는 떨렸다. 발음이 두어 번 헛나가거나 반복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나의 등장과 언변에 놀랐다가 주목하는 학우들의 표정들이라니……. 특히 맞수로 등장한 게 분명한 나란 존재를 착잡한 눈길로 지켜보던 녀석의 표정. 그렇다면 나의 첫 발표는 성공적이라 해도 좋았다.

역시 그분이 씨익 웃으며 칭찬했다.

“두 번째 이군도 아주 잘했습니다.”

손목시계를 보며 다시 말했다.

“자 그럼, 또 이어서 발표할 학생은?”

부드럽게 변한 어조로 봐서, 굳이 세 번째 발표자를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나까지 두 사람이 발표하면서 오십 분 강의시간 중 이미 삼십 분이 지났으니 남은 시간 이십 분은 당신이 총평하기 알맞은 시간이 아닐까. 짐작대로 그분은 창가 의자에서 일어나 칠판 앞에 서더니 총평으로 들어갔다.

“오늘 최군과 이군, 두 학생이 처음인데도 발표를 아주 잘했습니다. 두 학생의 인간성에 대한 견해와 해법이 갈리는데 저는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재단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성에 대하여 생각도 해 보고 그런 생각을 학우들한테 거침없이 표현해 봤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자세가 바로 깨어 있는 자세요, 철학하는 자세입니다.”

그런 내용의 총평으로 한 시간을 마쳤다. 쉬는 시간 십 분 뒤 둘째시간이 이어지자 그분은 비로소‘제 2장 인간성’단원의 내용을 당신이 자세히 해설해주는 것으로 강의를 마쳤다. 정말, 성실하고 멋진 철학교수였다. 항상, 당신이 맡은 철학 강의시간에서 단 일분도 허투로 쓰지 않았다. 치밀하게 계획하여 남김없이 매주 두 시간의 백 분 강의를 수행하였다. 특히 강의에 들어갈 때마다 학생들의 발표시간을 가짐으로써 강의실 분위기를 환기시킴은 물론, 본질적으로 강의의 주체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사실마저 일깨우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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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비밀의 숲>

 

무심포토‘비밀의 숲’을 블로그에 올린 뒤 뜻하지 않는 반응에 놀랐다. 짧은 글인데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읽은 조회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몇 달 전에 같은 제목의 TV드라마가 있었다고 한다. ‘무심’이란 호가 말해주듯 나는 TV드라마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아내가 말했다.

“이건, 사람들이 TV드라마‘비밀의 숲’과 관련 있는 글인가 싶어 방문한 결과야.”

나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길게 하고 싶었다.

“여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제 내 얘기를 들어 봐. …비밀은 별난 데에만 있는 게 아니야. 극히 평범한 데에도 비밀은 있어. 당신도 살아오면서 이런 경우가 분명히 있었을 거야. ‘아니, 어떻게 점잖은 분이 그런 비리를?’ 혹은 ‘아니, 동네 어른들께 인사 잘하는 그 착한 아이가 골목에 숨어서 담배 피는 게 눈에 뜨였다고?’어디 그뿐인가? 짐작이지만 우리 애들도 우리한테 말 않고 숨기는 비밀이 몇 가지 있을 거야. 하긴 우리 또한 애들한테 숨기는 비밀이 있을 거고. 부모 자식 간 비밀 따위는 없이 사는 게 좋을 듯싶지만 사람 사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 어쩌면, 부모 자식 간에도 각자 간직해야 할 비밀이 있어야 삶이 더 풍성해지는 게 아닐까? …내가 우리 동네 가까운 숲에서 산토끼, 두더지, 까투리를 보았다는 비밀 얘기를 썼는데 사실 비밀이 더 있어. 뱀도 봤어. 아주머니들이 숲속 공터에 모여서 간단한 체조를 하는 뒤편으로 뱀 하나가 조용히 기어가더라고. 내가 아주머니들이 놀랄까 봐 그 사실을 일러주지 않고 숲을 지나갔지. 이제 알겠지? 그 숲에 비밀이 있다는 블로그 얘기를. 사실 그 숲에 비밀이 그 외도 더 있지만 말하지 않을 거야. 왜냐면 의미 없는 일이니까. 가만 있자. 딱 한 가지만 더 말해줄게. 매년 1월 1일 아침에 사람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본다고 머나먼 동해안의 정동진이나 높은 태백산 정상을 찾는데… 우리 동네 그 숲이 있는 작은 산 위에서도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어. 물론 동해안이나 태백산 꼭대기보다야 그 시간이 늦지만 고작 몇 십 초의 차이라고! 그 숲 만만치 않아. 평범해 보이지만 갖가지 비밀이 있어. 내가 그 중 극히 일부를 블로그에 올려 소개했던 거라고. 평범한 그 숲에 비밀이 있다는 지난번 블로그 내용, 이제 이해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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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연이다.

본래 우리 집은 춘천 시내에서 사십 리쯤 떨어진 시골에서 살았다. 그곳의 조그만 초등학교에서 나는 항상 반장이었는데 그럴 만했다. 많지 않은 학우들 중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기 때문이다. 시골학교에서 공부 잘하면 반장을 맡기 마련이라, 나는 장장 육 년 간이나 반장을 맡았다. 그러니 얼마나 숱하게 칠판 앞으로 나가서 학우들을 향해 뭘 발표하고 그랬을까? 의기양양해서 말이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의기양양하게 발표하는 위치’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아버지가 ‘오남매나 되는 자식들의 장래를 위한’ 결단으로 시내로 이사를 강행하면서 시내의 중학교를 다니게 된 나는 발표는커녕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지내는 아이가 되고 만 것이다. 시내 학교에서는 나 정도로 공부하는 애들이 널렸을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잘하는 애들도 많아서 나는 그만 기가 콱 죽었다. 더는 칠판 앞에 나가서 발표할 일 없는, 반장이 아닌 극히 평범한 아이로 추락한 것이다.

그런 공부 차원의 이유 이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어렵게 된 가정형편이 그것이다. 시내로 이사 온 뒤 아버지가 차린 연탄직매소가 망하면서 어머니가 어느 식당의 주방보조 일로 집안의 생계를 맡게 되었다. 가정형편이 안 좋게 되자 나는 그 영향으로 하루 종일 학교에서 말이 없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고 말았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처지에 툭하면 말다툼이던 부모님, 교복이라고는 외삼촌의 낡은 교복 한 벌을 얻어 입고서 등교하던 나, 학기 초마다 장남인 내 등록금은 마련되었지만 누나나 여동생은 계집애라는 이유로 그렇지 못해 자매가 집 앞 골목에서 동네 창피하게 울고불고 난리치던 일……. 정말,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단 하나도 추억하고 싶은 게 없다. 돌이켜보면 그런 열악한 가정형편에서, 학비가 저렴한 사범대학일망정 어떻게 진학할 수 있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든지 장남 하나만은 대학교에 보내자’고 뜻을 모은 것일까? 그 순간만은 부부싸움을 멈추고?

여하튼 그런 사연을 지닌 채 대학에 들어왔는데, 그 날, 최봉석 녀석이‘미소’를 지어가며 공자 왈 맹자 왈 떠들어대는 것을 목격하고는 ‘저깟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충동에 휩싸이면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발표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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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감 농사가 풍년이다. 11월 16일자 무등일보에 이런 보도까지 나왔다.

“올해 감 농사가 풍년이 들면서 감 생산 농가들의 한숨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깊다. 영광군내 대봉감 15㎏ 한 상자에 1만원에도 안 팔려 인건비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하략)”

내 기억에 감 풍년은 올해처럼 홀수 해마다 벌어졌다. 그렇게 말할 만한 추억이 있다.

​

    

친한 선배와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1977년 가을 어느 날, 거리는 온통 감 천지였다. 장사꾼 수레에 산더미처럼 쌓인 것도 감이요, 행상 아주머니가 큰 광주리에 담아 길가에 내놓은 것들도 감이었다. 터미널 주변 가게들도 감들을 가득 진열해 놓아, 선배와 나는 마치 감 세상 한복판에서 만난 듯했다.

삼척에서 근무하는 선배와 양양에서 근무하는 내가 모처럼 상면할 수 있는 중간 장소로 정한 곳이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우리는 붉은 감들이 아우성치는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감을 사지는 않았지만 헐값인 게 분명해 보였다. 수레에 쌓아놓은 감 더미가 일부 무너져 감이 여러 알 길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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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감 풍년이라도 그렇지, 별나게 터미널에 감 장사들이 몰려 있던 풍경이 납득이 잘되지 않았는데… 오랜 세월 지난 이제 비로소 짐작이 간다. 감 농사짓는 분들이 감이 대풍을 이뤄 판로가 막히자, 궁여지책으로 외지인들에게 감을 팔 수 있는 장소로써 시외버스터미널을 선택했을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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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와 내가 터미널의 감 천지 속에 서 있을 때 갑자기 처절한 음색의 여가수 노래가 어느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부근의 전파상 스피커 같았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은하의‘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노래를 나는 그렇게 처음 들었다. 얼마 후 그 노래는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의 감들처럼 전국 각지를 붉게 물들였다. 

 

​​

그 해로부터 40년 지난 2017년 올해도 홀수 해라 어김없이 감 풍년인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은하씨를 다룬 TV 프로를 보게 될 줄이야. 모 종편 TV '인생다큐 마이웨이'라는 프로에 등장한 이은하씨는 퉁퉁 부은 듯한 얼굴로 경제적으로 파산했다는 딱한 얘기를 전했다. 원인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빚. 그 때문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사채 빚이 50억까지 돼, 결국 파산신청을 했고 이제 면책 받게 됐단다. 얼굴이 퉁퉁 부은 것처럼 된 것은 그 와중에 쿠싱증후군이라는 병까지 얻은 때문이란다.

많은 히트곡으로 1970~80년대 디스코의 여왕으로 불리며, 전성기 시절엔 9년 연속 '10대 가수상'은 물론 가수왕도 3번이나 차지했던 톱 가수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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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감이 대풍인 올해 그런 모습이라니 안타까웠다. 감은 홀수 해마다 풍년을 이루는 자연현상을 어김없이 지키는데 우리 인간사는 그렇지 못한 걸까? 하긴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선배와 나도 그 당시의 한창 젊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으니.

그래도 이은하씨는 절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스타의 꼭대기도 가봤고 어떤 면에서는 쓴 맛도 봤다. 지금은 많이 내려놨다. 내려놓으면 편하다. 가진 게 없으니 편하다.”

다시 다가올 어느 홀수 해에 ‘재기에 성공한 가수 이은하’라는 제목의 TV 프로를 보게 될 것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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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차가 얼마나 신통하더냐! 날마다 100리 길을 아무 말 없이 너를 편안히 실어나르니 말이다. 아비가 보기에는 한 마리 준마(駿馬)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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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물(휘발유)을 넉넉히 먹여야 함은 물론이고 출발 전에는 반드시 말발굽(바퀴)부터 살펴야 한다.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갈거나 고쳐야  한다.
  말이 달리는 동안 주의태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른 말과 부딪히면 네 말은 물론 너도 함께 다친다는 것을 잊지 마라.
  퇴근 후에는 바깥보다 마굿간(지하주차장)에 말을 재워야 한다. 그래야 말이 밤새 편히 지낼 수 있으며 다음 날 이른 아침, 먼 길을 힘차게  달려갈 수 있다.
  말이 짐승이라 병이 나도 말 못한다. 하지만 몸을 부르르 떤다든지 하는 어떤 이상 신호를  반드시 보낸다. 네가 틈틈이 말의 여기저기를 살펴봐야 함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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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인연 중 지금의 말과 너도 한 인연을  맺었다. 정성을 다해 말을 보살핀다면 그 인연이 오래오래 갈 수 있음을 잊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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