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29, 김유정 문학촌은 김유정 추모제를 맞아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넘쳐났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내게 소리쳤다.

이병욱 씨. 최돈선 씨가 찾고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찾아갔더니 최돈선 시인이 특유의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도행 씨 알지? 자네를 만나보고 싶다고 기다리고 있어.”

네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도행(道行)’

내가 그 이름을 인지하기는 49년 전인 1970년 그 해 무더운 어느 여름날부터다. 춘천 중앙로 로터리 부근에 있는 조양인쇄소에서 동급생 ○○’(여학생이다.)와 함께 타 교지(校誌)들을 살펴볼 적에, ‘이도행이란 독특한 이름이 눈에 뜨였다. 그녀와 나는 강대 교지 편집위원으로 선정되어 출판을 맡은 조양인쇄소에 와, 참고삼아 타 교지들을 살피던 참이었다. 아마 춘천교대 교지에서 이도행이름 석 자를 봤나 보다. 게재된 단편소설의 작가 이름으로서.

그녀가 불쑥 말했다.

이도행이란 사람을 내가 아는데 우리보다 5년 위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런 말을 이었다.

우리 언니가 이도행 씨와 동급생이라서 잘 아는데 성질 고약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뭔가 재미난 사연이 있어 보여서 이어지는 얘기를 기대했는데 그녀는 다시 침묵하다가 불쑥 이런 말로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하기사, 소설 쓰는 사람들은 괴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강대 입학하기 전인 1969, 춘고 3학년일 때 13회 학원문학상소설 부문 당선으로 나름대로 촉망받는 미래 작가소리를 듣는 참이었으니 말이다. 하긴, 국어교육과 1학년생인데도 학생회에서 교지 편집 일을 맡긴 건 그 경력 때문이다. 동급생 그녀도 춘여고 다닐 적에 글 잘 쓰는 학생으로 명성이 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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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숲이 푸른 것을 ‘GREEN', 바다가 푸른 것을 ’BLUE'라고 분명히 구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같은 푸른색으로 표현하는데 말이다.

나는 오늘 춘심산촌에 왔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같은 푸른색으로 표현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주위의 짙푸른 녹음이 바닷물처럼 넘실거리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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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 춘천에 미미(美美) 다방이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던 거북당빵집 건물의 맞은편 건물 2층에 있었다. 이름이 얼마나 예쁘나. 한자로도 예쁘지만 그냥 우리말로도 예쁜 미미’.

2층에 있으므로 지상의 입구에서부터 층계를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야 했다. 다 올라가서 문을 열면 연한 꽃무늬 장식의 30여 평 공간에 팝송이 흐르고 있었다. 폴모리아 악단의 ‘LOVE IS BLUE'라든가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가 자주 나왔다. 한편에 뮤직박스가 있어서 전문 DJ가 희망음악을 신청 받았다. 딴 음악다방과 다른 점이라면 신청 받은 음악을 항상 나지막하게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톰존스가 우렁차게 불러 세계적인 팝송이 된 딜라일러조차 폴모리아 악단의 경음악으로 나지막하게잔잔하게 틀어주었다.

나는 1971년에 한동안 미미 다방 가기를 좋아했다. 커다란 엠프스피커가 설치된 구석이 내 자리였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그 자리에서 점심도 거르면서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사랑문제도 쉬 풀리지 않고 학교 다니기도 따분했다. 따분한 것은 둘째고 어려운 집안 형편상 다음 학기부터 휴학할지 몰랐다. 서툰 줄담배를 피우면서 고뇌에 잠겨 보내던 미미 다방의 날들.

어느 날이다. 빈속에 줄담배를 태우며 음악을 듣다가 오줌이 마려워졌다. 뮤직박스 앞을 지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변기 앞에 섰는데 눈높이에 작은 창이 나 있었다. 소변을 보면서 바깥 풍경도 즐기라고 창을 그리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요즘 같으면 다른 건물들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았을 텐데 당시는 그럴 만한 건물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번쩍하며 창밖 하늘을 번개가 지나갔다. 나는 오줌 누다 말고 얼떨떨해서 계속 하늘을 지켜보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마른번개였다.

집에 돌아와서 일기장에 한 줄 적었다. 의미 없는 듯, 있는 듯한 한 줄.

창밖으로 번개 한 마리가 지나갔다.’

 

내 젊은 날 춘천에 미미 다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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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서는 한 번 본 영화를 또 보는 일 없는 내가 살인의 추억은 세 번이나 보았다. 연쇄살인범을 잡고자 분투하는 시골 경찰서의 강력계 형사 송강호에 매료된 때문이다. 그는 영화 상영 중에 배우가 아니라 강력계 형사로서 내 눈앞에 있었다. 영화 마지막에 시체가 발견되었던 도랑을 고개 숙여 살피면서 생각에 잠기던 표정. 소설의 결말 방법 중 여운을 주는 결말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결말의 진수를 보여주던 것이다.

 

송강호 그가 최근의 기생충영화에서는 반 지하 셋방집의 가장으로 나왔다. 빵을 뜯어먹다가 곱등이가 눈에 뜨인 순간 손가락으로 그것을 튕겨버리던 동작과 표정 연기. 무료하게 사는 궁핍한 가장 모습으로서 100% 성공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나는 궁금한 게 있다. 그 하찮은 곱등이를 어떻게 출연(?)시켰을까 하는 점이다. 아무리 봐도 CG 같지는 않았다. 영화 속 디테일로 명성이 높은 봉준호 감독의 솜씨라고 이해하면 될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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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나와 대화하다가 당신 가는 귀 먹은 게 아니야? 왜 엉뚱한 말을 하지.’ 면박 주기를 여러 번. 결국 내 청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 원인은 농장에서 잡초들 깎느라 수시로 예초기를 돌린 때문이라는 데 도달했다.

 

예초기를 안 돌린다면 낫을 써야 했다. 농사 준비할 때 농막 창고에 있는 낫이란 낫들은 다 꺼내다가 숫돌에 날을 간 게 그 때문이다. 가볍고 경박하게 생긴 왜낫, 무겁고 투박하게 생긴 조선낫 모두 꺼내 놓으니 열댓 자루다. 낫을 쓰다가 날이 무뎌지면 숫돌에 갈지 않고 그냥 새 낫을 사다 쓴 결과다. 사실 낫은 생각 외로 값이 싼 농기구다. 비싼 예초기를 구입하면서 때가 되면 고물상에 갖다 줄 생각으로 창고에 방치해 두었던 낫들4년 만에 복권(復權)됐다.

 

아내는 밭을 김매기(잡초들을 뿌리째 뽑기) 시작했고 나는 낫으로 밭 주변의 무성해진 잡초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만일 밭 주변의 잡초들을 방치한다면 금세 뱀이 기어 다녀도 모를 정도로 무성해지며밭의 작물들까지 잡초에 묻혀버릴 수 있다.

 

잡초들이 내 낫질에 다스려지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하도 팔을 휘둘러 팔이 아프기 시작한 데다가 풍경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헌 가위로 깎은 머리털처럼 잡초들이 들쑥날쑥하다. 깎아도 깎은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다시 예초기를 돌리기로 했다.

그러려면 사전에 준비할 게 있다.

첫 번째: 휘발유 한 통 사기. (경유는 안 된다.)

두 번째: 2행정 엔진오일 사기. (4행정 엔진오일도 있는데 자동차에나 사용하는 것이란다. 오토바이나 예초기 엔진오일은 2행정 엔진오일이어야 한다는 사실.)

세 번째: 휘발유와 엔진오일을 약 101 정도의 비율로 섞기.

 

창고 한편에서 잠자고 있던 예초기를 밖으로 꺼내놓았다. 예초기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필요한 부품만으로 이뤄진 기계다. 동력원(動力源)인 엔진, 회전 날을 부리는 긴 대와 그 끝의 손잡이, 엔진에 달린 연료통. 이게 전부다. 땅바닥에 놓인 예초기는 인체 해부실에 있는, 두개골과 등뼈모습을 연상시킨다.

 

연료통에 혼합유를 부어놓고서엔진의 시동 줄을 잡아 당겼다. 8개월만의 시동이라 잘 걸리지 않는다. 푸드득거리다가 꺼지는 엔진. 어쩌면 엔진의 점화플러그가 닳아서인지도 모른다. 몇 번을 더 시동 걸어보고서 그러고도 안 된다면 농기구 서비스센터로 들고 가는 수밖에.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 낭비가 만만찮다.

푸드득 푸드득 하더니 !’하면서 엔진이 되살아났다. 회전 날이 무섭게 돌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예초기 엔진을 등에 메고 대를 두 손으로 잡았다. 시행착오는 끝났다. 들쑥날쑥한 잡초 밭을 향해 나아갔다. 전통 방식의 늙은 이발사가 그러듯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털을, 아니 풀을 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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