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나와 대화하다가 당신 가는 귀 먹은 게 아니야? 왜 엉뚱한 말을 하지.’ 면박 주기를 여러 번. 결국 내 청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 원인은 농장에서 잡초들 깎느라 수시로 예초기를 돌린 때문이라는 데 도달했다.

 

예초기를 안 돌린다면 낫을 써야 했다. 농사 준비할 때 농막 창고에 있는 낫이란 낫들은 다 꺼내다가 숫돌에 날을 간 게 그 때문이다. 가볍고 경박하게 생긴 왜낫, 무겁고 투박하게 생긴 조선낫 모두 꺼내 놓으니 열댓 자루다. 낫을 쓰다가 날이 무뎌지면 숫돌에 갈지 않고 그냥 새 낫을 사다 쓴 결과다. 사실 낫은 생각 외로 값이 싼 농기구다. 비싼 예초기를 구입하면서 때가 되면 고물상에 갖다 줄 생각으로 창고에 방치해 두었던 낫들4년 만에 복권(復權)됐다.

 

아내는 밭을 김매기(잡초들을 뿌리째 뽑기) 시작했고 나는 낫으로 밭 주변의 무성해진 잡초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만일 밭 주변의 잡초들을 방치한다면 금세 뱀이 기어 다녀도 모를 정도로 무성해지며밭의 작물들까지 잡초에 묻혀버릴 수 있다.

 

잡초들이 내 낫질에 다스려지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하도 팔을 휘둘러 팔이 아프기 시작한 데다가 풍경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헌 가위로 깎은 머리털처럼 잡초들이 들쑥날쑥하다. 깎아도 깎은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다시 예초기를 돌리기로 했다.

그러려면 사전에 준비할 게 있다.

첫 번째: 휘발유 한 통 사기. (경유는 안 된다.)

두 번째: 2행정 엔진오일 사기. (4행정 엔진오일도 있는데 자동차에나 사용하는 것이란다. 오토바이나 예초기 엔진오일은 2행정 엔진오일이어야 한다는 사실.)

세 번째: 휘발유와 엔진오일을 약 101 정도의 비율로 섞기.

 

창고 한편에서 잠자고 있던 예초기를 밖으로 꺼내놓았다. 예초기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필요한 부품만으로 이뤄진 기계다. 동력원(動力源)인 엔진, 회전 날을 부리는 긴 대와 그 끝의 손잡이, 엔진에 달린 연료통. 이게 전부다. 땅바닥에 놓인 예초기는 인체 해부실에 있는, 두개골과 등뼈모습을 연상시킨다.

 

연료통에 혼합유를 부어놓고서엔진의 시동 줄을 잡아 당겼다. 8개월만의 시동이라 잘 걸리지 않는다. 푸드득거리다가 꺼지는 엔진. 어쩌면 엔진의 점화플러그가 닳아서인지도 모른다. 몇 번을 더 시동 걸어보고서 그러고도 안 된다면 농기구 서비스센터로 들고 가는 수밖에.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 낭비가 만만찮다.

푸드득 푸드득 하더니 !’하면서 엔진이 되살아났다. 회전 날이 무섭게 돌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예초기 엔진을 등에 메고 대를 두 손으로 잡았다. 시행착오는 끝났다. 들쑥날쑥한 잡초 밭을 향해 나아갔다. 전통 방식의 늙은 이발사가 그러듯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털을, 아니 풀을 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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