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 춘천에 미미(美美) 다방이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던 거북당빵집 건물의 맞은편 건물 2층에 있었다. 이름이 얼마나 예쁘나. 한자로도 예쁘지만 그냥 우리말로도 예쁜 미미’.

2층에 있으므로 지상의 입구에서부터 층계를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야 했다. 다 올라가서 문을 열면 연한 꽃무늬 장식의 30여 평 공간에 팝송이 흐르고 있었다. 폴모리아 악단의 ‘LOVE IS BLUE'라든가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가 자주 나왔다. 한편에 뮤직박스가 있어서 전문 DJ가 희망음악을 신청 받았다. 딴 음악다방과 다른 점이라면 신청 받은 음악을 항상 나지막하게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톰존스가 우렁차게 불러 세계적인 팝송이 된 딜라일러조차 폴모리아 악단의 경음악으로 나지막하게잔잔하게 틀어주었다.

나는 1971년에 한동안 미미 다방 가기를 좋아했다. 커다란 엠프스피커가 설치된 구석이 내 자리였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그 자리에서 점심도 거르면서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사랑문제도 쉬 풀리지 않고 학교 다니기도 따분했다. 따분한 것은 둘째고 어려운 집안 형편상 다음 학기부터 휴학할지 몰랐다. 서툰 줄담배를 피우면서 고뇌에 잠겨 보내던 미미 다방의 날들.

어느 날이다. 빈속에 줄담배를 태우며 음악을 듣다가 오줌이 마려워졌다. 뮤직박스 앞을 지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변기 앞에 섰는데 눈높이에 작은 창이 나 있었다. 소변을 보면서 바깥 풍경도 즐기라고 창을 그리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요즘 같으면 다른 건물들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았을 텐데 당시는 그럴 만한 건물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번쩍하며 창밖 하늘을 번개가 지나갔다. 나는 오줌 누다 말고 얼떨떨해서 계속 하늘을 지켜보았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마른번개였다.

집에 돌아와서 일기장에 한 줄 적었다. 의미 없는 듯, 있는 듯한 한 줄.

창밖으로 번개 한 마리가 지나갔다.’

 

내 젊은 날 춘천에 미미 다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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