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우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 이는 마치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면 지나친 비유일까.

 

코로나 역병이 기승부리는 어느 날, 나는 공지천 가에 있는 의암공원에 갔다가 그 서늘한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공원길에 늘어선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이 그 서늘한 아름다움의 주역이었다.

거기에 더해, 따가운 햇살을 가리면서 온 사방의 바람들에게 훤히 열려 있는 목조 그늘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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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K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그러곤 어이가 없었다. 개울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끼 낀 바위들이 널려 있어서, 비가 오면 개울물이 흘렀을 것 같았다. 바위들은 미끄러웠다. 그뿐 아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막걸리 병과 과자 봉지 같은 것들이 퇴색한 채 바위 들 틈에 박혀 있었다. 누군가가 무더운 여름이면 서늘한 이곳을 찾아, 과자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더위를 피하곤 했던 모양이다. 꾀죄죄하게 때가 낀 물건들의 꼴로 봐서는 근래의 일은 아니었다. 최소한 이삼년 전 일일 것 같았다.

사방 어둑한 숲속에서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보니 K는 왠지 안도가 되었다.

개울 흔적을 지나서 다시 10분쯤 나뭇가지와 칡덩굴을 낫으로 치며 나아가자, 갑자기 K의 눈앞이 훤히 트였다. 거짓말처럼 나무 한 그루 없이 잡초들뿐인 넓은 땅이 펼쳐져 있었다.

프랑스 사람이 인적 끊긴 깊은 숲속에 들어갔다가 생각지도 않던 거대한 앙코르와트 유적을 발견했다는데 그 때 놀란 심정이 지금의 내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K에게 직감이 왔다. 오래전 누군가 밭농사 지었던 흔적이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농사짓던 자국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울창한 나무 숲속에 숨겨져 있는 공간.

누군가가 나무 숲속에서 낯선 침입자 K를 살피고 있는 것 같은 공포감에, K는 손의 낫을 다시금 확인했다. 고요하다기보다 적막함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농사짓던 이들이 일하다가 힘들 때 쉬는 곳으로 삼았는지, 가까운 거리에 큰 포도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거미줄에 얽힌 포도송이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는 게 보였으나 K는 다가가지 않았다. 식욕마저 나지 않는 적막한 공간.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공간과 K를 한꺼번에 내리쬐었다.

왜 농사를 중단하고 사라졌을까?’

만나본 적 없지만 어느 한 때 땀 흘려 경작하다가 무슨 사연인지 다 포기하고서 떠나버린 그들’. 공간의 넓이로 봐 결코 혼자 농사지을 수 없을 거란 판단에 K그들이라고 복수(複數)를 생각했다. 마치 K네 부부처럼.

K가 퇴직금으로 외진 골짜기 땅을 사서 아내와 밭농사 짓기 여러 해. ‘그들부부도 K네 부부처럼 이 공간을 사서 밭농사 지었던 듯싶다. 하지만 무슨 사연인지 다 포기하고 떠나버렸다. 문득 며칠 전 아내가 K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여보. 잡초들 김매다가 지쳐 죽겠어. 이 돌투성이 밭을 팔아치우고 편히 삽시다. 다 늙어서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 말에 K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껏 비싼 포클레인까지 불러들여 경지정리하고 컨테이너 농막까지 사다 놓고는 농장을 시작했는데 그만 둔다니 될 말인가. 그렇기도 하고 적적한 노후를 집에서 날마다 TV나 보며 보낼 거야?

K는 돌아섰다. 숲속에 숨어있는 농사짓다가 떠나면서 황폐하게 남은 밭을 더 지켜보기 힘들었다.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 K는 다시 낫을 들어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와 여기저기 뱀처럼 널려 있는 칡덩굴들을 쳐내며 무겁게 한 걸음 한 걸음 농장을 찾아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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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네 농장은 북향이다. 북쪽만 훤하게 트여 있고 나머지 세 방향은 울창한 나무숲이다. 특히 서쪽 방향은 잣나무들이 빽빽이 조림돼 있어서 농장이 다른 곳보다 서녘 해가 일찍 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쪽 방향은 소나무 참나무 산벚나무 느티나무 아카시나무 들이, 남쪽 방향은 흰닥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들이 어지럽게 장벽처럼 들어서 있다.

K는 밭에서 일하다가 지치면 컨테이너농막에 들어가 댓자로 누운 채로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쉬곤 했는데그 날은 불현듯 남쪽 방향의 숲속을 살피고 싶어졌다. 나무들은 괜찮은데 칡덩굴이 별나게 기승을 부리는 곳이라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 숲속은 이미 여러 번 가 봤었다.

칡덩굴.

그 놈들은 남쪽 방향 숲에서부터 기어 나와 농장 안까지 기웃댄다. K의 아내가 질색하여 전년도에 낫으로 놈들을 열심히 쳐냈으나 해가 바뀌자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되살아나 있었다.

오늘 아내는 성당에 가는 날이라며 K 혼자 농장에 가게 했다. 부부가 사는 집은 농장에서 20 리 넘는 시내에 있다.

K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농막에 갖다 놓은 긴팔 남방을 걸친 뒤 등산화도 찾아 신었다. 한 손에는 낫을 쥐고서 남쪽 숲으로 조심조심 들어갔다. 깨진 바위도 많은 데다가 칡덩굴까지 어지러운 숲. 대낮인데도 어두운 숲이라 발걸음 하나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만일 아내가 있었다면 그냥 농막으로 되돌아가자고 만류했을 것 같다.

낫으로 눈앞의 나뭇가지들과 칡덩굴을 쳐 내면서 10분 쯤 걸었을까 갑자기 눅눅하면서 찬 기운이 K를 휘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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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농사를 8년째 짓고 있다. 산속에 있는 밭이라 그런지 잡초가 극성이다. 내가 위험한 예초기까지 장만한 건 그 때문이다. 예초기로 잡초들을 깎은 지 5년째. 깨달은 사실이 있다. 잡초가 1년 내내 기승부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는 4월 중순경에서 시작되어 9월 하순까지 잡초는 기승을 부린다. 반년간이다. 9월을 지나면 잡초는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일조량이 부족해지는데다가 날씨가 추워진 탓일 거라 추측한다.

 

지랄 맞은 코로나 역병이다. 하지만 머지않았다. 끝날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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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맛비에 농장에 가지 못했다. 웬일로 어제는 비가 그치며 해까지 잠시 났다. 나는 집에 가만있을 수 없어 차를 몰고 20리 넘어 있는 농장에 갔다. 역시 농장은 잡초들이 기승을 부려 얼마 안 되는 작물과 아내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화초들을 쉬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록적인 50일 장맛비의 결과였다.

다행히도 예초기가 작동했다. 예초기를 들고 잡초들을 쳐나가다가 순간 강렬한 통증에 작업을 중단했다. 내 왼손의 손등 한 군데에서 발생한 통증.

누가 그랬는지, 잡초더미로 달아나버려서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벌의 소행 같았다. 예초기를 든 손의 높이로 봐, 그런 높이에서 뱀이 깡총 뛰면서 저지르기 만무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의 반응이다. 그 통증에 순간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하루 지나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50일이나 계속된 지루한 장맛비와, 그 이상 지루하고 답답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 나는 갑갑해 죽을 뻔했다가 그 벌에 쏘였기 때문이다. 강렬한 통증은, 기나긴 갑갑한 생활을 순간 잊게 해주는 쾌감 같았다. 하루 지난 오늘 손등이 부어올라 약을 발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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