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제 책이 나와도 주위 사람에게 말을 안하게 됐습니다. 전업작가도 아닌데 주위 분들에게 책을 강매하는 것 같아 미안한 게 한 가지 이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책을 너무 뻔질나게 낸다는 데 있습니다.
저를 돕는 마음으로 책을 사주던 분들이 학을 뗄 정도인데요,
하퍼 리처럼 인생의 한권을 낼 능력이 안되다 보니
양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아직까지는 <개좋음> 한 권만 딱 내는 데 그쳤는데요,
하.지.만. 10월 중순 혹은 하순 쯤에 책이 한 권 나옵니다.
갑자기 제 신간을 알리는 이유는 그 책 출간이 제겐 가슴 벅찬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3월, TV를 통해 윤지오라는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죽은 장자연 배우를 위해 증언을 한다고 하기에
참 기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윤지오가 스마트워치를 눌렀는데 경찰이 출동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 나라가 아직도 숨은 권력자에게 지배되고 있구나!”라며 개탄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4월 20일 경, 저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 한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 글은 제가 ‘의인’이라고 믿었던 윤지오가 사기꾼이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황급히 캐나다로 도망친 것은 제 마음에 남아있던 일말의 의심마저 없애 줬습니다.
윤지오는 고인이 된 장자연을 팔아 명성과 돈을 챙긴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윤지오에게 매달렸습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윤지오’를 검색했고, 관련된 기사와 댓글을 모조리 읽었습니다.
윤지오의 추악한 비밀을 폭로하는 이들이 인스타그램을 주로 사용했기에
SNS는 패가망신이라던 평소 소신을 꺾고 인스타 계정을 만들기까지 했답니다.
지난 석달간, 윤지오에 관한 자료가 제 휴대폰에, 그리고 컴퓨터에 빼곡히 쌓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지오는 거짓으로 점철된 변명의 글을 자기 인스타에 올렸지요.
그녀가 믿는 것은 자신이 캐나다에 있으므로 우리나라 경찰이 어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겠지요.
더 어이없는 것은 클리앙이란 커뮤니티를 비롯해 그녀가 의인이라 믿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체팔이가 해서는 안될 파렴치한 범죄라는 점에서,
윤지오는 사기꾼 중에서 질이 특히 나쁜 범죄자입니다.
저는 그녀를 우리나라로 잡아와서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게 하고,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쓰는 것은 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윤지오의 말처럼 책은 이슈가 되니까, 그 이슈를 이용해서 국민여론을 환기시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책을 내주는 출판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생충열전>이 괜찮은 판매를 기록한 이후 저는 늘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책을 썼는데,
몇 번 거절을 당하고 나니 제가 다시 듣보잡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출판사에 “계약금 안주셔도 되고요, 인세는 2%면 족합니다. 0%도 괜찮습니다”라며
저자세를 취했음에도, 출판사들은 다 거절했습니다.
8번쯤 거절당했을 때, 네이버에서 1인 출판사 만드는 법을 검색하기까지 했답니다.
정말 다행히도 좋은 분의 소개로 출판사를 소개받았고,
지난달 중순, 계약도 마쳤습니다 (사장님은 2%를 거절하고 제가 평상시 받는대로 해주셨답니다 흑흑)
어렵게 내서 그런지, 아니면 간만에 의미있는 책을 낸다는 생각 때문인지,
책 출간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출판사에서 정한 가제는 ‘윤지오 사기극과 진영논리’입니다.
조선일보를 잡는 데 눈이 어두워진 게 윤지오에게 사기를 당한 이유라서 이런 제목을 붙였는데요,
제목이 어떻든, 현재 7건의 고소.고발을 당한 사기꾼 윤지오가
우리나라에서 죗값을 치르는 데 이 책이 기여하길 빕니다.
여러분께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덧붙이는 말: "그래서 장자연은?”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이 있더군요. 장자연은 권력자 때문에 죽은 게 아니고, 과거사위가 종료되면서 앞으로 이 사건을 수사할 길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윤지오를 처벌하는 것은 장자연 수사와 하등의 관계가 없으며, 윤지오를 처벌하는 건 이런 사기꾼이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 장자연 사건이 앞으로도 쭉 미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선일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처음 윤지오를 파고들 땐 저도 조선일보가 범인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뭐, ‘그분들’은 이 말을 절대 믿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다른 사기꾼과 달리 윤지오는 너무나도 어설픈 사기꾼입니다. 어떻게 이런 애한테 속았지, 라는 게 공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었습니다. 정답을 말씀드리지요. 우리 안에 있는 조선일보를 미워하는 마음, 그리고 아무 검증없이 윤지오의 스피커 역할을 한 언론들, 이게 윤지오로 하여금 최소한 1억5천여만원의 사기를 치게 만들었습니다. 이 액수가 크지 않다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고인을 팔아서 번 파렴치한 돈이라는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참고로 윤지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체를 어떻게 팔아요? 언니는 시체 자체가 없는데.” 윤지오는 이런 사람입니다. 진짜 시체를 매매하는 걸 시체팔이로 알고 있기에, 죽은 뒤 화장한 장자연을 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우린, 이런 사람에게 속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