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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살림출판사에서 ‘잘 읽어 달라’는 메모와 함께 책을 보내왔다.
신간인 줄 알았는데 출간일이 6월 14일이다.
아마도 좋은 책을 냈는데 판매량이 저조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자리에 누운 채 책을 읽다가 놀라서 몸을 일으켰고,
알라딘에 들어가 세일즈 포인트를 확인했다.
세일즈 포인트 44,640, 종합 Top 100 11주.
뭐야 이거, 이미 잘 팔리고 있는 책이잖아!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정의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승리하는 비율이 높구나 싶었다.
이 소설은 초반부터 스피디한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다른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책이 잘 팔리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저자가 우리나라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며,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제목이 아주 흥미를 끄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책이 주는 재미가 다 삼켜버렸다.
이 책이 아마존 판매 1위를 차지한 것도 이해가 간다.
두 가지 정도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첫째, 이 정도 책이, 나온 지 석달째를 향해 가는데도 겨우 4만점 대라는 건 아쉽다.
책 말고 다른 놀 거리가 너무 많아서 그럴 텐데,
특정 책을 저격하는 게 좀 마음이 아프지만,
떡볶이와 관련된 책이 11만을 기록한 현실에서
이 대단한 작품이 10만도 못 넘는다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외국독자1: 한국 독자의 수준은 어떤가요?
외국독자2: 제가 보기엔 별로에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란 책이 4만밖에 못찍었어요.
외국독자1: 그럴 수가!
둘째, 책의 저자는 동물학 전공자로, 이게 나이 일흔에 내놓은 첫 번째 소설이다.
난 늘 ‘소설은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만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문학적 재능은 주머니 속의 송곳 같아서,
그걸 가진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 마련이라고.
델리아 오언스라는 분은 평생 야생동물만 연구했던 분,
그런데 이 소설로 미루어 보건대 오언스는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오랜 기간 이 재능을 숨겨왔던 것 같다.
동물학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쓰긴 했지만,
자기 분야에 관한 책을 쓰는 건 대단한 재능이 필요한 일은 아니잖은가?
이런 아쉬움이 든다.
동물학 연구도 중요한 분야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일가를 이뤘다면 후배들에게 넘기고
좀 더 일찍 소설을 써줬어야지 않을까?
평생 한 권의 대작만 쓴 사람이 있다.
하퍼 리도 그 중의 하나,
하지만 훗날 그녀가 쓴, 하지만 발표하지 않았던 책이 발견되는데
그게 바로 <파수꾼>이다.
그 책을 읽어보면 발표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하퍼 리는 그 책을 썼다가 마음에 안들어서 때려치우고 <앵무새 죽이기>를 쓴 것 같다.
그녀 의사와 달리 결국 <파수꾼>은 출간됐다.
그건 하퍼 리도 원치 않았을 테지만,
하퍼 리의 다른 작품에 목마른 독자들의 욕구를 세상은 외면하지 못했다.
오언스님,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당신이 해야 될 일이
뭔지 아시겠지요?
앞으로 세권은 더 써주십시오! 플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