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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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형 마티즈 2를 샀다.

내 이름으로 차를 등록하는 건 생애 처음으로,

천안역과 학교 사이만 왔다 갔다 할 용도로 샀다.

그 덕분에 이제 천안역에 내린 뒤 버스를 갈아타가면서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가끔은 차를 타고 나가 맛있는 걸 먹고 올 수가 있게 됐다.


천안역에서 학교로 가다보면 5거리가 두 개 나온다.

역말5거리와 단대5거리인데, 신호대기 시간이 워낙 길어

학교까지 가는 시간의 대부분이 여기서 소모된다.

하지만 어제 아침엔 이 시간이 길다고 생각지 않았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위험한 관계>를 읽고 있던 탓이다.

저자의 전작 <빅 픽처>를 읽으며 하얗게 밤을 샌 기억 때문에

두 번째 책 또한 망설임 없이 구매를 했는데,

이번 책 역시 몸살이 날 만큼 재미있었다.

“토니 홉스를 만난 지 한 시간 쯤 지나 그는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첫 구절부터 이 책에 빠졌고,

그 뒤부턴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기차에서 잘 수가 없었으며,

걸어가는 도중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 읽고 나자 앞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이 앞섰지만,

저자의 세 번째 번역본이 9월에 나온다는 글귀에 위안을 받았다.
 


어떤 책이든 읽다보면 대충 예측이 되지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들은 벌어지는 사건들이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으며,

진행이 워낙 스피디해 시속 180킬로로 달리는 아우디를 탄 느낌을 준다.

<위험한 관계>이 내게 유익했던 건 산후 우울증과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것.

“육아는 같은 일들이 정확하게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우유 먹이기, 기저귀 갈기,우유 먹인 후 트림시키기, 흔들어 재우기, 항상 가까이 있기, 배앓이 다스리기, 또 우유 먹이기, 또 기저귀 갈기...(280쪽)”

나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됐겠지.

누나도, 그리고 내 동생 둘도, 세상에, 어머니는 어떻게 네 명의 자녀를 키우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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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1-06-11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다락방님도 추천하셨던데. 확실히 읽어봐야 할 책이네요. ^^
예전에도 마태님 운전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본인 이름으로 등록한 건 아니었나보군요. 마티즈가 마태님의 긴 다리를 수용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미모의 사모님 차는 아래 사진? ^^

마태우스 2011-06-14 15:57   좋아요 0 | URL
그 차는 어머니 차였구요. 글구 마티즈도 타보니까 아주 좋더군요. 제 다리가 생각보다 길지 않더라고요 호호홋.

Mephistopheles 2011-06-1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럼......마티즈에서.......아우디로....차종을 변경하셨다는..말씀이시라고..좋았다가 말았다는....(알고 보니 리뷰 페이퍼라는..ㅋㅋ)

마태우스 2011-06-14 15:57   좋아요 0 | URL
아우디를 타본 적은 있습니다^^ 살 생각은 없습니다

꼬마요정 2011-06-1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땡기네요. 아아.. 안돼요.. 지금 질러버린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이것까지 읽을 시간은..크흑..

마티즈에서 아우디라니..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 마시다가 루왁 커피 마시는 것 같은 충격이로군요~^^

마태우스 2011-06-14 15:58   좋아요 0 | URL
사실 아우디 타고 180 달려본 적은 없습니다. 아, 180 달리는 차를 본 적은 있어요!

blanca 2011-06-13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한창 초보운전중이라 이 글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저희 차 사각 모서리를 아주 다듬어 주고 있는 중이랍니다.==;;평행주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그럴 상황이 와서 주차요원의 지도하에 평행주차 처음 해봤네요. 저 책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육아가 같은 일들의 반복이라는 말에 완전 공감가네요. 그런데 꼭 육아가 아니어도 세상일들 대부분이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지루해하지 않고 되도록 몰입해서 즐겁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텐네 쉽지 않네요...

마태우스 2011-06-14 15:59   좋아요 0 | URL
평행주차, 그거 어렵죠. 밖에 나가시려면 반드시 익혀야 한다는... 하긴, 육아 말고 세상 일이 다 반복이긴 하죠. 하지만 육아와 가사는 좀 심하게 반복이지 않나요.

아싸가오리리리 2011-06-16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하느라 '나를 생각해'를 일주일 전에 사서 아직 반 밖에 못 읽었는데 흑 위험한 관계를 먼저 읽고 싶네요. ㅎㅎ 지루한 독서실에서 상상으로나마 아우디를 타고 잠시 드라이브 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네요. ㅎ

마태우스 2011-06-17 10:08   좋아요 0 | URL
어 그러시군요 그럼 뭐, 위험한 관계 먼저 읽으시죠 뭐. 너무 빠르다 싶으시면 다시 나를 생각해, 읽으시구요.

민세민석아빠 2011-06-3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의 마지막 날에 선생님께서 로긴하신 페북의 글귀들을 보다 문득 선생님의 홈피가 보고 싶어 와 봤더니 쉼없이 독서를 하셨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저두 선생님께서 써 놓으신 글을 보고 비오는 장마에 한번 도전해 보려 합니다.
 
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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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신춘문예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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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1-06-0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경향신문 보다가 마태님 보고 무지 반가웠어요~^^ 역시 글도 재밌게 쓰시고 속이 다 시원하더군요~ 봉투만 돌려줬다에서 뻥 터졌더랬죠~~
잘 지내시죠?

마태우스 2011-06-01 23:30   좋아요 0 | URL
요정님 안녕하셨어요. 오늘 글은 참 부끄럽습니다. 담번엔 꼭 잘써 볼게요. 뜻하지 않은 님의 댓글에 왈칵 반갑네요

모과양 2011-06-0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당신이 국가대표입니다]에 마태님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ㅋㅋ

비로그인 2011-06-10 21:32   좋아요 0 | URL
저는 본방을 놓쳐서 다운받아서 봤는데 아주 잠깐 몇컷 나오시더군요ㅋ 그거랑 2009년도쯤에 과학콘서트 출연하신것도 보고 있어요ㅋㅋㅋㅋ 여담인데 서민님은 왠지 실존인물이 아니라 만화캐릭터 같으심.ㅋ 우스타쿄스케 "삐리리불어봐 재규어" 라는 만화가 있는데 제가 보기엔 거기 주인공과 행동유형이 매우 흡사하신거 같아요.ㅋㅋ http://khr135.net23.net/mainimg.jpg

마태우스 2011-06-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거 보셨군요 너무 조금 나왔죠. 어머니도 아쉬워하시더군요. 좀 오래 나올 때도 있을 거예요 특히 다다음주 방송에는요.
츠구미님/과학콘서트도 보셨군요 부끄럽네요. 전 정말 방송체질이 아니어서, 제가 나온 걸 전 보기 싫어한답니다. 만화캐릭터에비유해주시니 좋은데요^^ 말씀하신 사이트에 들어가 볼게요 여러가지로 감사.

마태우스 2011-06-1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구미님, 대사는 저랑 비슷한데 외모는 만화가 훨씬 나은데요? 제가 저렇게 보이면 정말 좋겠네요^^

마태우스 2011-06-1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구미님, 제 캐릭터가 더 강하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전 주인공이 되기엔 많이 부족한 외모잖아요ㅠㅠ 이름은 뭐, 충분히 사랑스러운 이름이죠 호홋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크로마뇽 시리즈 1
정준호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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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의대 선생들에게 우리 학교는 초원에서 양이 풀을 뜯는, 아주 평온한 곳이었다.

아무것도 안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었단 뜻이다.

그런 좋은 시절은 시나브로 갔고,

올해부터는 나같은 기초의학 교수에 한해 주 당 6시간을 강의하지 않으면 월급을 깎겠단다.

돈에 약한 우리는 부랴부랴 교양강좌를 개설했고,

난 주말마다 강의준비를 하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평일엔 연구를 해야 하니까).


내가 개설한 교양강좌 중 기생충을 가르치는 ‘현대기생충백서’라는 과목이 있다.

그 강좌를 준비하느라 논문을 찾고 구글을 검색하다보니

그간 내가 너무 얕은 지식으로 살아왔구나,는 걸 새삼 느낀다.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는 소리인데,

강의 자료가 하나둘씩 쌓여가다 보니 “이것들을 모아 여름방학에 집필을 하자”는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전에 냈던 부끄러운 책들 말고, 이젠 정말 제대로 된 기생충 교양서를 내보자는 생각을.


여러 자료를 뒤지던 어느 날, 정준호라는 분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됐다.

런던대학에서 기생충학 석사를 하고 아프리카의 스와질랜드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훌륭한 분이던데,

글을 얼마나 잘쓰는지 읽다보면 감탄만 나왔다.

그 글들은 한편 한편이 기생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어우러진,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들이었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거이거, 이 사람이 먼저 책을 내면 어쩌지?” 싶었는데,

그만 그분의 책이 나오고 말았다.

블로그에서 본 것보다 한 차원 높은 글들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교양서로 읽을만한 책은 칼 짐머가 쓴 <기생충 제국>밖에 없었는데

이젠 더 이상 그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보다 훨씬 더 잘쓴 우리나라 책이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선 다음 구절만 읽으면 된다.

“연구가 기생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연구를 위한 연구였던 것인지 지금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결국 나는 실험실을 떠나, 실제 기생충이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지를 보고자 아프리카에 오게 되었다.”(11쪽).

훌륭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기생충학자가 안락한 실험실에서 자기가 키우는 기생충을 돌보는 데 그치지만,

저자는 아프리카로 가서 현실의 기생충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저자는 기생충과 사회, 그리고 정치와의 상관관계를 유려한 문장으로 담아냈고,

그 책으로 인해 여름에 책을 쓰자는 내 계획은 잠깐 공황상태에 빠졌다.

책을 덮고 나서 난 이런 좋은 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책을 또 써야 할 이유를 생각해 봤고, 다음과 같은 이유를 만들어냈다.


1) 기생충에 대한 지식은 정준호 선생이 더 낫다해도, 유머는 내가 한수 위다.

2) 우리나라엔 읽을만한 기생충 교양서가 너무 없었다. 올해 갑자기 두 권이 나온다고 해서 뭐 큰일날 게 있을까?

3) 책 출간과 동시에 저자는 군대에 갔다.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내가 좀 딸리지만)이 없는 틈을 노려 일을 벌이라,는 로마시대 무명 병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

4) 생각해보니 한 출판사로부터 계약금만 받고 책을 아직 안썼다. 파렴치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뭔가 써야 하고, 내가 쓸 건 기생충밖에 없다.


벌써 5월 중순이고 강의는 이제 한달 남짓 남았다.

그 기간 동안 더 열심히 준비해 정준호 선생의 책에 필적할 기생충 교양서를 써 봐야지.

유익함과 유머로 점철된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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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1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빠말이 훈장선생님이 꼭 삼정승 출신일 필요는 없다고 했어요ㅋ
눈높이를 달리 하시면 같은 책도 어린이용, 학생용, 일반인용, 전문서적등등 다양하게 권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라이벌?이 군대에 다녀오면 군대에서만 발견되는 새로운 기생충에 대해서 풀어놓을게 뻔하니 빨리요! ^^;
계약금만 받고 계시면 출판사 사장은 흙 파먹나요ㅋㅋ
그럼요, 조만간 마태님의 책을 보게 되겠군요~ 홧팅!

마태우스 2011-05-11 14:57   좋아요 0 | URL
격려 감사합니다.
눈높이를 달리해서 유머에 굶주린 분들을 위한 책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요즘 유머가 부쩍 떨어져버려서 어쩌나 싶네요
결혼하고 나서 그렇게 됐다는...^^

pjy 2011-05-11 17:31   좋아요 0 | URL
마나님이 댓글 불심검문하시면 어쩔려고요~ 진실을 이케 폭로하시면ㅋㅋㅋ;

마태우스 2011-05-12 00:18   좋아요 0 | URL
아내도 그런 말을 많이 해요
결혼하고 왜 이렇게 유머가 떨어졌냐는..^^

비로그인 2011-05-1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한 가지 이유를 더 달자면, "저는 영화배우 정준호를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마태우스님이 책을 쓰신다면 무조건 마태우스님의 책을 선택하겠습니다"입니다. 그러니 이제 무조건 쓰셔야 합니다ㅋㅋ^^

마태우스 2011-05-12 00:19   좋아요 0 | URL
후와님 안녕하셨어요 님의 주옥같은 페퍼를 안본지 어언 한달...
네...무조건 쓰겠습니다
정준호 루머는 진실인가요?

가넷 2011-05-1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생각은 안자미나 봉사갔다 오셨다고 하신 거 보니까 저도 한번 들렀던 블로그의 주인장 같네요. 그때 마태우스님의 책에 대한 간단한 평도 해놓을 걸 기억하는데.ㅎㅎ;;

한번 읽어야 겠네용.

마태우스 2011-05-12 00: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가넷님 한번 읽어보삼. 후회 안하실 거예요!

blanca 2011-05-1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태우스님의 리뷰를 읽으면 어찌나 재미가 있는지 매번 박장대소합니다. 유머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 자질인데요. 그건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11-05-12 00:21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안녕하셨어요?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유머를 열심히 갈고닦겠습니다 꾸벅

안녕하세요 2011-05-1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책을 읽고 감동받아서 편지를 썼는데.. 주소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결국.. 단국대학교(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산29)의과대학 기생충학과 서민교수님으로 보냈는데요.. 받으실수있을까요??

마태우스 2011-05-12 00:20   좋아요 0 | URL
앗 그렇게 보내시면 아마 제가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방번호가 321호입니다.

석류기생충 2011-05-12 18:2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헐; 서민님 이거 비밀글 해야되는거 아닌가요? 스토커가 잠입할수도 있습니다.

biseol 2011-05-1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랫만입니다. 마태우스님.
(이전에 서재글 재밌게 보고 몇번 들어가 본 거 말곤 통성명도 안했는데 오랫만이라니..^^;)

이 책 재밌을 거 같아서 페이지 쭉 보다가 마태우스님 리뷰보고 '사고싶다' 더 강렬해졌어요. ㅋ 마지막 문구에 응원해 드리려고 글쓰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당 ^^
 
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고백>이란 영화가 흥행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 딸을 죽인 아이가 우리반에 있습니다”라는 담임 선생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영화라니, 흥미가 당겼다. 친구와의 술약속을 기다리던 차에 생긴 30분의 시간은 내 발걸음을 교보로 향하게 했고, <고백>과 <속죄>, 그리고 역시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악인>을 사버렸다. 이 말을 써놓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같은 알라딘 매니아가 교보에서 책을 사다니! 하지만 눈으로 책을 보며 고르는 재미에 휩쓸린 탓에 정신을 차려보니 계산대 앞이었다, 정도로 해둔다.


원래는 이 책을 월요일부터 읽으려 했다. 새로운 과목 두 개를 이번 학기에 시작하다보니 주말이면 늘 강의준비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보자”는 사악한 마음에 <고백>의 앞부분을 조금 읽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고, 그 다음은 안봐도 비디오였다. “그만 읽고 강의준비해라”며 야단을 치는 아내에게 싹싹 빌어가며 책을 읽었고, 내친김에 같은 작가의 <속죄>까지 읽어버렸다. 다 읽고 난 시각이 새벽 세시. 아내가 <악인>을 안보이는 데다 숨겨놨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오늘 하루를 잠을 자느라 다 써버릴 뻔했다. 이러니 내가 아내를 좋아할 수밖에. 갑자기 흡입력 강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원망스러워진다. 그들은 대체 누굴 망치려고 그러는 걸까? 화요일에 <현대기생충백서>를 듣는 160명의 학생들을 실망시키는 게 미나토 가나에의 목적인지? 목요일 수업은 또 어떻게 하라는 건지, 지금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난다. 결국 그 두 책을 하루에 다 읽어버린 난 작가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한 셈이다.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열호란 말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다른 사람한테도 좀 알려주자”는 기특한 생각을 했고, 오늘 테니스를 치는 멤버들 중 드물게 독서가 취미인 친구에게 이 책 얘기를 했다. ‘이 반에 내 아이를 죽인 학생이 있다’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책이 있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자길 좀 빌려달란다.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고, 리뷰를 통해 더 널리 알리려 했다가 깜짝 놀랐다. 리뷰가 무려 156개나 달려 있어서. 작년 한해 알라딘에 좀 소홀한 건 인정한다. 서재달인 엠블럼을 받지 못한 것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이 책의 존재를 나 혼자만 몰랐다는 건 참을 수가 없다. <고백>에서 담임에 의해 살인범으로 지목당한 와타나베는 아이들한테 왕따가 되고 마는데, 서재에 뜸하고 리뷰 읽기에 소홀했던 난 내가 몰랐을 뿐, <고백>이란 면에서 보면 왕따였다. 그러니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씩은 서재에 들러 새 소식을 접할지어다. 화이트데이를 하루 앞둔 2011년 3월 13일에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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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4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1-03-1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미있는 리뷰가 있을까요? 책을 감춰둔 아내분이 너무 귀여워요^^ 이 책은 저도 섣불리 도전하면 안될 것 같아요. 아껴 두었다 읽겠습니다.

마태우스 2011-03-14 11:29   좋아요 0 | URL
그 책 오늘 아침에 찾고야 말았습니다. 제 책장에 몰래 꽂아뒀더군요. 그래도 강의준비 땜시 일부러 모른체 했습니다^^

비로그인 2011-03-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리뷰야말로 멋진 '고백'이네요ㅋㅋ
리뷰에 홀려 <고백>도 읽고 싶지만 어쩐지 '현대기생충백서'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이는데요^^

마태우스 2011-03-14 11:30   좋아요 0 | URL
현대기생충백서, 과목명 참 멋지게 지었죠? 의무적으로 주당 6시간을 강의하라고 해서 잽싸게 만들었는데 뭘 강의해야 할지 헤매고 있습니다. 내일로 닥쳤다는...ㅠㅠ

무스탕 2011-03-14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붕이 자원방래하니가 이렇게도 쓰이는군요 ^^
리뷰 읽으며 몇 번을 웃게 만드시는 마태님. 오늘은 월요일. 좋은 한 주 보내세요~ :D

마태우스 2011-03-14 11:30   좋아요 0 | URL
앗 무스탕님을 웃게 만들었다니,대박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순오기 2011-03-1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하건데... 저도 몰랐어요.
하루에 한번씩은 알라딘 서재에 들러 새소식을 접하겠다는 마태님의 고백을 접수합니다.^^

마태우스 2011-03-15 14:59   좋아요 0 | URL
하루에 한번 들러서 새소식을 접하려다 순오기님 댓글을 읽었습니다.
고백을 가지고 농담 한마디. 순오기님, 저한테 고백하실 거 없나요?
그닥 재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열악한 환경을 감안하면 나름 의미있었다고 생각하옵니다

순오기 2011-03-16 17:16   좋아요 0 | URL
아하~ 위 댓글에 이미 고백했는데, 그거론 부족할까요?ㅋㅋ

soyo12 2011-03-1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파워가 대단하더군요.^.^
고백도 속죄도 정말 순식간에 읽어버렸습니다.^.~

2011-03-15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섣달보름 2011-03-16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의 '고백'은 정말 전염성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 문제!!
 
하루살이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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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이하 미미여사)의 <하루살이>를 읽었다. 미미여사의 팬이긴 해도 그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흔들리는 바위>를 읽고 난 뒤에는 미미여사의 시대극은 되도록 읽지 않으려 했다. 그런 내가 <하루살이>를 산 이유는 그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으로, 에도 시대가 배경이라는 걸 알았다면 안샀을 것이다. 그저 제목이 끌렸고, 너무 오랫동안 미미여사의 글을 안읽었다는 자각이 그 책을 사게 만든 이유였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 아내가 재미있다고 하기에, 혹시나 하고 읽게 된 것.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요즘 들어 기차에서는 잠만 자기 일쑤였는데, <하루살이>를 읽는 동안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다음 장면이 궁금해 책을 읽었다. 심지어 강원도 횡성으로 출장을 갔던 날은 그 전날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가 나올 만큼 달려서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버스 안에서 계속 책을 읽었다. 앞으로는 미미여사의 시대극에 대한 편견은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게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이다.


아쉬운 대목. 각 단편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장편을 향해 달려가는 구성을 가진 이 책에서 첫 번째 사건을 해결한 이는 바로 짱구라는 아이였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초상화를 그린 부채가 연관이 있었고, 짱구는 그만의 비상한 기억력을 발휘해 오래 전 발생한 사건을 끄집어내고, 그건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여기까지 읽고 “앞으로도 쭉 짱구가 사건을 해결하겠구나” 했는데, 그 뒤 벌어진 사건들에서 짱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2권 말미에 범인에게 목을 졸려 살해당할 뻔한 오하스라는 아이를 위로하려고 웃긴 춤을 춘 게 짱구가 그 이후에 했던 유일한 기여였으니까. 첫 사건 이후 사건들에 결정적 힌트를 제공한 건 유미노스케라는 천재소년인데, 이 아이는 남자임에도 미모가 출중해 보는 사람마다 “그 녀석 참 예쁘네”라는 말을 한다. 그러니 또래 여자애들은 보는 즉시 넋을 잃을 수밖에. 심지어 한 여자애는 그를 가리켜 ‘인형인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애가 머리까지 좋아 사건을 곧잘 해결하니, 외모가 하위 10%인 나로서는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소설이긴 하지만 그렇게 완벽하게 그리는 게 미안했던지, 미미여사는 유미노스케가 잠자리에서 가끔 소변을 지리는 설정을 한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여자들한테 물어보면 “잘생기고 머리 좋으면 됐지, 소변 좀 못가리면 어떠냐?”는 반응을 보일 거다. 책을 덮고 나서 웃기는 춤이나 춰야 했던 짱구가 불쌍해 술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너무 역할이 없으니까 2권 중간쯤에 그동안 벌어졌던 사건일지를 다 외우기까지 하는데, 그렇게 외운 건 사건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범인을 잡는 건 물론이고 범인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주는 일까지 모든 걸 담당한 건 잘생긴 유미노스케였다. 좋은 소설은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미미여사의 <하루살이>는 그 범주에서 벗어난다. 머리 좋은 놈이 외모도 출중한 요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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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2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3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3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1-03-13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그렇다고 아이에게 술을 사주다니요....근데 그나저나 혈중 알콜 농도가...무려..!!

마태우스 2011-03-13 18:26   좋아요 0 | URL
벌금 8만원 아직 미납입니다ㅠ 글구 에도시대때는 아이도 술을 마셨다는 게 저만의 주장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3-1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방범' 때문에 미미여사를 알게 되고,
한동안 미미 여사에 심취하여 엄청 읽는데........
모방범이 제일 가벼운 소설이더라구요. 다른 것을은 읽고 나면 왜그리 맘이 무거운지.
아직도 안 읽은 '외딴집' '레벨7' '나는 지갑이다' 등 집에
손을 차마 못 대고 있는 미미 여사 작품이 가득하답니다. ㅠㅠ

마태우스 2011-03-13 18:27   좋아요 0 | URL
그죠 미미여사는 소설을 통해 일본사회를 얘기하는 작가인데, 그분이 제기하는 사회문제들이 참 무거운 것들이죠. 이유 같은 책이 대표적....

stefanet 2011-03-1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 여사의 에도시대 배경 시대물로는 '외딴집'도 매우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앞부분이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참고 결말까지 보시길 강력 권고드립니다!
미미여사님의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따뜻한 분위기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