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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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학원에 다니고, 생활을 꾸리며 어떻게든 살아가는 와중에도 뭔가 빠뜨린 것 같다는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아주 중요한 뭔가를 잊어버린 기분. 앞으로도 이렇게 모호한 상태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모든게 부질없이 느껴지곤 했다. 주기적인 우울이 찾아왔고, 그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으로 인해 치유받기도, 더 상처받기도 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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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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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은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이상 에너지의 압박으로 여러 부작용을 겪는다. 그중에서도 제일 흔하게 발생하는 건 기억 상실이었다. 대부분 자신이 누구인지, 나이나 이름, 가족을 포함하여 살아온 흔적들을 모두 잊었다.
어차피 한번 틈을 넘어온 이상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방법은 없었기에 잊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든 걸 온전히 기억하는데 돌아갈 수 없다면, 그것대로 견디기 힘든 비극이니까. 그런 이방인들을 구조하고 이후의 삶을 지원하는 게 바로 릴리와 연주의 일이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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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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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그런 식으로 사라지거나 운 나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출몰했다. 한번 벌어진 ‘틈‘은 짧게는 5분,
길게는 하루 정도 벌어져 있다가 알아서 닫히고는 했는데,
틈이 닫힐 때 근처에 서 있거나 경계를 넘고 있던 경우에는 고강도의 힘이 밀집되어 날카롭게 벼려진 단면에 신체가 절단되는 사고를 입거나 심한 경우 죽음을 맞이하기도했다. - P68

세상 곳곳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대략 한세기 전부터라고 추정된다. 말 그대로였다. 흰 종이 두 장을겹쳐놓고 한가운데를 커터 칼로 죽 그으면 두 장 다 칼집이남는 것처럼, 서로 마주할 일 없는 세상과 세상, 차원과 차원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2085년과 2107 년을,
2099년과 2195년을, 2123년과 2100년을 연결하는 구멍이생겨버린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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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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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는 자신이 언제든지 먹힐 수 있다는 걸알았다. 자신이 키우는 건 말 안 듣는 손주나, 길고양이 같은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석류가 자신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었다.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그랬다. 옥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언제 자신을 해칠지 모르는 석류 덕분에 두려움을, 공포를 덜어낼 수 있었다. 외롭게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이불 속에서 썩어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석류를 키움으로써 자신은 혼자 죽지 않을 것이다. 썩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이 죽고, 더 이상 고기를 줄 사람이 없으면 눈앞의양분인 자신을 붉은 눈의 석류가 먹어치울 것이다. 기왕이면 석류가 아주 깨끗이 자신을 발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썩을 살점도 없을 만큼 깨끗이, 오랫동안배고프지 않게 두고두고 발라 먹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 좀 더 나중의 일. 그런 미래를 위해서는 석류가 자신의 곁에서 버텨야만 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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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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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는 그것 앞으로 다가갔다. 문득 이 풍경이 아주 그립고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공간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늘 누군가 자신을 맞아주고, 라디오 음악 소리가 들리던, 생기 넘치던 시절이. 집에 돌아와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는 게 이리도 두렵지 않은 일이었다니. 죽어가는 눈을 보지 않는 게, 살아 있는 눈을 보는 게 이렇게 심장 뛰는 일이었다니. 그것이 비록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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