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년 전, 어머님은 밭에서 노는 꿈을 꾸셨다. 아는 할머니는 꿈 얘기를 듣자 대번에 딸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열달 후 어머니는 누나를 낳았다. 그 후 어머니는 구렁이 두마리가 벽에 붙어 있는 꿈을 꾸셨다. 구렁이처럼 길다란 건 남성의 상징, 어머님은 그 뒤 나와 남동생을 낳으셨다. 여기까지 듣고 엄마한테 물었다.
"그럼 여동생 가질 땐 무슨 꿈을 꿨어요?"
그땐 아무 꿈도 안꾸셨단다. 넷씩이나 낳으려니 좀 지겨웠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태몽없이 태어난 여동생은 우리 가족 중 가장 인물이 출중한데 비해 구렁이 꿈을 꾸고 태어난 나는 뭔가 많이 모자라니, 태몽이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가보다.

옛날에, 아주 옛날, 지금은 헤어진 여친과 사귈 때였다. 어느날 여친의 어머님이 꿈을 꾸셨는데, 새끼 호랑이를 안아올리는 꿈이었단다. 어머님이 딸에게 물었다. "너 오늘 민이 만나냐?" 여친이 그렇다고 하자 어머님은 이렇게 말했단다. "조심하거라"
하지만 우린 그날 아무일도 없었고-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집에 가는 와중에 갑자기 설사가 나와, 화장실을 찾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 뒤부터 우린 '대변을 본다'를 '호랑이를 잡는다'고 표현하곤 했다.

내 친구 중 일년 전에 결혼한 녀석이 있다. 어제 그와 만나 술을 마셨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다.
[내 마누라가 얼마 전에 고추-먹는 고추가 아니라-를 달고 다니는 꿈을 꿨데. 아무리 떼어도 안떨어졌다나. 무슨 그런 흉칙한 꿈이 있냐고 하더니, 글쎄 애가 생겼다지 뭐야]
친구는 지금 임신 5주째란다. 아들인지 딸인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꿈의 성격상 아들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친구에게 물어봤다. "5주 전엔 뭐했는데?" 친구는 술에 취해서 아무 생각도 안난단다. 그러자 같이 있던 여자애가 덧붙인다. "그럼 딸이네!" 그 여자, 남자가 술먹고 하면, 그래서 술취한 정자가 들어가면 딸을 낳는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보다.

아직 장가는 안갔지만 그래도 태몽 전문가인 전직피디 박모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꿈은 태몽으로 해석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결혼한 상황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바라면 그게 꿈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으니, 그런 꿈을 꿀 수밖에 없다" 내가 태몽으로 해석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꿈들, 예를 들면 학장님한테 혼난다든지, 고교시절로 돌아가 시험 전날까지 공부를 한자도 안하는 그런 꿈들만 꾸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을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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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태몽은, '앗, 이거 태몽이야!!'라는 느낌이 확~ 온다던데...^^ 나중에 결과랑 껴맞추는건진 모르겠지만, 태몽과 성별이 대충 맞아떨어지는 건 신기하죠. 시험치는 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렇다던데~